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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15화)
Chapter 05.(3)


“허허! 이거 들켜 버렸구먼!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하지. 자네가 연구한 그 검술……. 내게도 좀 찬찬히 알려 주면 안 되겠는가?”
‘역시 원하는 게 그거였구나!’
훈련 교관들이 배운 검술은 기사들이 말하는 정통 검술이 아니었다. 정통 검술은 가문의 기사들에게만 이어졌고, 결코 외부 사람들에게 전수되지 않았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무예를 익히는 사내들이라면 모두 같지만, 고귀한 혈통을 가진 기사들에게만 정통 검술이 이어졌다.
그런데 울리히의 검술은 정통 검술이 아니면서도 상당히 뛰어났다. 윈프레겐의 입장에선 이를 탐내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울리히는 인튜이션―리프 통해 얻는 자신의 검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마도학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가문의 정통 검술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기사들의 정통 검술만큼 뛰어나진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기껏해야 응용 동작 몇 가지를 만들었을 뿐이니, 아무렴 수세기 동안 가다듬어져 온 기사들의 정통 검술에 미치진 못하겠지.’
울리히는 검술 분야에 거의 무지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좋습니다. 원한다면 가르쳐 드리죠.”
“자네! 정말 허락한 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란 말에 윈프레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으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무슨 조건인지 말해 보게.”
“일단 제게 배운 것은 다른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 무엇을 얼마만큼 가르칠지는 전적으로 제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대가라고 하긴 뭣하지만, 절 단련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울리히의 말이 끝나자 윈프레겐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각오했던 것보다 별로 어려운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또 뭐라고.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약속하겠네! 아니, 맹세하겠네! 그런데 마지막에 단련시켜 달라는 건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형님이 체력 단련을 지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개인 연무장을 쓸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 연무장은 지금이라도 당장 빌려 줄 수 있네. 그런데 체력 단련을 지도해 달라는 건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이미 단체 훈련을 받지 않았는가?”
울리히는 윈프레겐이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히 풀어서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극심한 저질 체력이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만족할 만큼 체력을 기르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좀 더 체계적인 단련 방법을 연구해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맞춤형 단련 방법을 고안해 달란 말이지? 머리 쓰는 건 딱 질색이지만……. 알겠네! 자네의 검술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윈프레겐은 울리히의 조건에 흔쾌히 승낙했다. 뿐만 아니라 울리히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호탕하게 말했다.
“자네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자네를 스승이라 부르겠네.”
“그러실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다소 부담이 된 울리히가 농담조로 말을 받았으나 윈프레겐은 계속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닐세! 이런 건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불편하네. 스승이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제자의 실력이 늘지 않는 법이니까! 차차 말을 높일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스승님!”
울리히는 그가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여 고집을 피운다고 생각했지만 나름 진지한 것 같아서 이해해 주기로 했다.
“뭐, 그럼 좋을 대로 하십시오, 형님.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윈프레겐과 약속하긴 했지만 울리히는 몹시 바빠서 한동안 그를 가르치지 못했다.
‘뭐, 언제 무엇을 얼마만큼 가르칠지는 전적으로 내 마음이라고 했으니 좀 미뤄 둬도 괜찮겠지?’
실제로 윈프레겐은 이 약속 때문에 가르침이 늦어져도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울리히는 병상에서 일어난 직후부터 학자들을 회유하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열심히 돌아다닌 것에 비해 별다른 소득은 없었는데, 모두들 참모장인 살바도르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이틀 후면 연회가 끝날 텐데……. 그때까지 확실한 성과를 보여 주지 않으면 제뮤엘이 결코 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초해한다고 해서 별달리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지친 탓에 잠시 분수대 옆에서 쉬고 있을 때, 윈프레겐이 불쑥 찾아왔다.
“자네, 여기서 뭘……. 아니, 여기서 뭘 하십니까? 스승님.”
윈프레겐은 아직 존대가 익숙하지 않은 듯 말투가 오락가락했다.
“일이 생각처럼 잘 안 풀려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머리를 식힐 겸 몸을 좀 움직여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스승님을 위해 간단한 체력 단련 동작을 만들어 봤으니, 잠깐 따라와 보시오.”
존댓말과 반말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윈프레겐의 말투는 울리히를 잠깐 피식 웃게 만들었다.
‘사실은 검술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 하고 싶을 텐데, 잘 참는 걸 보니 나름 신의가 있는 사람이구나.’
울리히는 윈프레겐을 따라 개인 연무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제가 쓰고 있는 개인 연무장입니다. 제 소유인 것은 아니고, 매월 초마다 다시 신청해서 배정받아 쓰는 거죠. 신청 자격은 훈련 교관 이상의 신분부터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작지만 아늑한 공간인 것 같습니다.”
“개인 수련실로 쓰기엔 나쁘지 않은 편이죠.”
연무장 안쪽을 살펴보며 울리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안에서 문을 잠그면 밖에서 엿보기 힘든 구조구나! 나중에 이곳에서 뇌전 마법을 연습해도 되겠다.’
그간 은밀히 수련할 곳이 없어서 나름 고심했던 울리히는 윈프레겐의 개인 연무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다행이군. 자! 그럼 이제부터 제가 하는 동작을 잘 보고 따라 하십시오.”
그때부터 윈프레겐은 울리히에게 체력 단련 동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가르쳐 주는 동작은 아무래도 가벼운 스트레칭처럼 보여 이것으로 근육이 단련될 것 같지 않았다.
“별로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정말 그것만으로 체력 단련이 되겠습니까?”
“겉보기처럼 쉬운 동작이 아니니 한번 해 보고 나서 말씀하십시오!”
윈프레겐의 말투가 워낙 단호해서 울리히는 하는 수 없이 그가 가르쳐 주는 동작을 열심히 흉내 내어 보았다.
‘어? 이거 생각보다 꽤……. 윽! 장난이 아닌데?’
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쉬워 보였던 동작이었지만, 직접 해 보니 요구하는 자세를 유지하려면 전신 근육을 많이 써서 버텨야 했다.
잠시만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근육에 아릿한 통증이 몰려왔다.
“반복 동작을 통해 근육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서서히 단련시키는 동작입니다. 스승님의 허약한 체질을 바꾸려면 먼저 전신 근육을 조금씩 단련시켜 줘야 합니다!”
‘으으……. 죽겠군!’
근육통이 심해지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심각할 정도로 허약 체질이었던 울리히는 곧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허약한 육체를 단련시키려면 이 정도 고통은 견뎌 내야 했다.
울리히가 이처럼 체력 단련을 결심한 이유는 검술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록 인튜이션―리프 상태에 전적으로 의지하긴 했지만, 오직 한 자루의 검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과정은 울리히에게 형용하기 힘든 짜릿함과 통쾌함을 선사했다.
‘검술은 무식하고 야만적인 기술일 뿐 오직 마법만이 진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구나!’
애초에 검술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열등감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몹시 허약한 체질이었던 울리히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가문의 검술을 전수받지 못했다.
만약 그가 다섯 살 무렵부터 마도학에 탁월한 재능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면?
분명 가문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즉 철저히 소외받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술을 못하는 귀족은 귀족도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으니까!
실제로 울리히에겐 검술을 못하는 귀족,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도학자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붙었다.
‘이제는 달라! 나는 더 이상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도학자도 아니다! 검술에 재능이 없는 허울뿐인 귀족도 아니다! 하지만 제멋대로 흥분해서 과대망상에 빠지는 어리석음은 범하진 말아야겠지?’
다소 흥분된 상태에서도 울리히는 냉정을 읽지 않고 본인 스스로에 대해 명확히 분석하고 있었다.
자신은 인튜이션―리프 상태가 아니라면 눈앞에 있는 윈프레겐 교관도 이기지 못하는 처지였다. 또한 말이 좋아 훈련 교관이지, 그는 어디까지나 나름 출세한 평민에 불과할 뿐!
제대로 된 검술을 배워 보지 못한 자에 불과했다. 그런 자를 이겼다고 의기양양해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거기다 울리히는 지독한 허약 체질이었다.
윈프레겐이 그를 위해 나름 맞춤형 훈련법(?)을 고안해 왔지만, 제대로 훈련된 병사 정도의 체력을 갖추게 되려면 최소한 1년 이상은 단련해야 하리라!
즉,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우선은 저질 체력에서 벗어나 건강한 몸이 되는 것만 생각하자! 차근차근 쉼 없이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검술을 마음껏 펼치기에 충분한 체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거다.’
잠시 후 윈프레겐이 울리히의 훈련을 중단시켰다.
“그만! 잠시 누워서 쉬십시오.”
“으으……. 아직 좀 더 버틸 수 있습니다.”
울리히가 나름대로 충만한 의욕을 보였지만 윈프레겐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완전히 탈진하는 상태까지 가서는 안 됩니다! 특히 스승님처럼 몸이 약한 사람은 절대 한 번에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휴우……. 알겠습니다.”
울리히는 전적으로 그의 지도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윈프레겐은 울리히의 체력을 고려하여 훈련의 강도를 적절히 조절해 줬다.
“오늘 근력 운동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부턴 밖으로 나가 좀 걷는 것이 좋겠습니다.”
“뛰는 게 아니라 그냥 걷기만 하는 겁니까?”
윈프레겐은 다소 냉정한 어조로 지적했다.
“지금의 스승님에게 뛰어다닐 만한 체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은 뛰기 전에 오래 걷는 것부터 생각하십시오. 뭐, 여유가 되신다면 빨리 걷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 정도까지 저질 체력은 아닌데…….’
억울하게 생각했지만 울리히는 윈프레겐의 지적대로 30분 정도 걷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지쳐 버렸다.
그동안 주로 아카데미나 연구실 근처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했을 뿐!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질 체력이었던 것이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심각한 수준이구나! 지금이라도 체력 단련을 결심하길 잘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흐르자 윈프레겐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스승님.”
“헤엑! 헥! 가…… 감사합니다!”
남들에게는 그저 산책하는 정도로 보였겠지만 나름 혹독한(?) 훈련을 마친 울리히는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그런데 윈프레겐은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울리히를 향해 은근한 어조로 넌지시 물었다.
“저어……. 그런데 스승님, 검술은 언제부터 가르쳐 주실 겁니까?”
마치 이 정도 성의를 보였으면 너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말투였다.
어찌 보면 뭔가 독촉하는 듯한 태도였지만 어조에서 절박함이 느껴져 그리 밉살스럽게 들리지는 않았다.
“내일부터 합시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이처럼 울리히는 체력 단련에 유난히 힘을 쏟으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아말락기흄 황자를 환영하는 5일간의 성대한 연회가 끝났다.
“연회 기간 동안 포섭한 건 고작 두 명뿐인가?”
사실 울리히가 포섭한 학자의 수는 기껏 두 명뿐이었는데, 그것도 둘 다 연구 실적을 쌓기는커녕 무능의 극치를 달리는 자들이었다.
‘뭐, 어쩌겠어? 하여간 난 최선을 다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공동 연구 계약서를 빌미로 목줄을 움켜쥔 제뮤엘이 이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욕이나 좀 심하게 얻어먹겠지 설마 이만한 일로 내치기야 하겠냐는 생각도 슬그머니 들었다.
이래저래 시달리다 보니 울리히는 점점 배짱이 두둑해지고 있었다.
‘골머리를 썩혀 봤자 답도 없는 고민은 그만하고 윈프레겐에게 가 보자!’
저녁을 먹은 후 울리히는 윈프레겐의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