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도학자 1권(19화)
Chapter 06.(3)


마그누스의 연구일지!
지금까지 울리히는 연구일지에 숨겨진 문장을 대부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착각일 뿐!
인튜이션―리프로 활성화된 두뇌는 어렵지 않게 일지 안에 숨겨진 나머지 문장들을 모조리 찾아냈다.
그것은 울리히가 지금까지 찾아낸 문장들의 두 배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목표물을 챠지드(Charged, 대전된) 상태로 만들어 무한히 확산하려는 성질을 가진 뇌전 마력을 제어한다! 익숙해진다면 어떤 대상이든 순식간에 챠지드 바디(Charged Body)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울리히는 마그누스 역시 자신이 연구하여 알아낸 것과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몹시 기뻐했다.
‘역시 마그누스는 이 방식을 사용해 뇌전 마력을 제어했구나! 역시 회전관성을 이용해 뇌전의 방향성을 제어하는 방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군. 그렇다는 건 회전관성 응용 방식은 나의 독자적인 연구 결과물이라고 봐도 되겠지?’
마그누스를 이겼다는 생각에 울리히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기뻐했다.
그런데 마그누스의 숨겨진 문장은 아직 몇 줄 더 남아 있었다. 워낙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인튜이션―리프 상태에서도 해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이다.

―훗날 이 일지를 누군가 보게 된다면 내게 무슨 갑작스런 재앙이 닥쳤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갑작스럽게 불운한 일이 닥친다면? 죽음과 함께 그간 지속해 오던 내 연구가 암흑 속에 묻혀 버리는 건 범국가적인 손실이 되리라. 무릇 학자라면, 희박한 확률이라 하여도 간과하면 안 되는 법! 모든 상황에 대비할 줄 알아야 하리라.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끔직한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면, 자네는 나의 개인 연구실을 찾아가서 내가 하던 연구를 계속해 주길 부탁하네. 내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연구 자료를 넘겨서라도 완성해 주길 간곡히 부탁하겠네. 연구실의 위치는 일지에 그려진 일곱 장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네. 일지에 숨겨 둔 문장을 해석해 낸 자네라면 틀림없이 그림에 숨겨진 단서를 조합해 연구실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겠지.―

숨겨진 문장을 전부 해독한 울리히는 다소 당황했다.
‘일곱 장의 그림이라고? 내가 본 필사본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울리히가 읽은 마그누스의 연구일지는 진본이 아니라 필사본이었다. 그런데 일지에 있는 그림까지 배겨 그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울리히는 사실 마그누스가 개인적으로 하던 연구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마그누스 같은 천재가 하던 연구라면 틀림없이 평범하지 않은 것이리라.
또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이렇듯 간곡한 부탁까지 남겨둔 것을 보면 상당히 중요한 연구임에 틀림없으리라.
‘아퀘리에스의 비밀 연구실에 연구일지의 진본도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진본은 지금 어디에 있을…….’
울리히의 생각은 거기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인튜이션―리프 상태가 갑작스럽게 풀리며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으으…….”
이번엔 인튜이션―리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후유증도 꽤 컸다. 울리히는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혼절해 버렸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었다.

철썩! 철썩!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무언가 맹렬히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것이 누군가 자신의 뺨을 후려치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 둘이 근처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이래도 정신을 못 찾는 걸 보면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 버린 게 아닐까요?”
“호른 심문관님이 데려오라 했으니 어떻게든 깨워야 한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울리히는 문득 의문을 느꼈다.
‘호른 심문관이라니 그건 또 누굴까?’
하지만 아직 시력을 물론 대부분의 감각이 제대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제일 먼저 되살아난 것은 청각이었다.
“손가락을 부러뜨렸는데도 깨어나지 않는 걸 보면 혼절한 척 연기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손가락이 부러졌다는 말에 울리히는 돌연 격렬한 통증을 자각했다.
“크아아악!”
자신도 모르게 목청껏 비명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몸의 감각이 대부분 되살아났다.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는 것은 부러진 손가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톱 밑을 파고든 날카로운 바늘.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진 허벅지의 상처.
강제로 탈골시킨 어깨와 팔의 뼈.
이 모든 것에서 유발된 통증이 칵테일처럼 한데 뒤섞이며, 그 충격으로 심장이 덜컥 멎어 버릴 것 같은 끔직한 통증을 자아냈다.
그때 고문 기술자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울리히의 얼굴을 향해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시끄러!”
부우웅― 빠각!
충격으로 턱뼈가 일부 부서지며 아래턱이 덜컥 빠져 버렸다. 숨이 콱 막힐 정도로 아파서 저절로 비명이 멎어 버렸다.
그런데 그때 같은 고문 기술자로 보이는 사내가 동료를 책망하듯 외쳤다.
“지금 제정신이야? 곧 심문관님과 대면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턱을 망가뜨려 놓으면 심문은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엉?”
“뭘 그렇게 열을 내고 그러십니까? 포션이 있으니 치료해 주면 될 거 아닙니까?”
“이 자식이! 포션이 어디 썩어 나는 줄 알아? 네 돈으로 샀냐? 그리고 선배가 충고해 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어디서 도리어 큰소리야? 새까맣게 어린놈이……. 이 업계(?)엔 위아래도 없는 줄 아냐?”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데 그만 진정하시고 화 푸시죠.”
“뭐? 이 자식, 말하는 것 좀 봐라! 별것도 아닌데? 지금 내가 별거 아닌 일로 트집 잡는 걸로 보여?”
“자꾸 이 자식 저 자식 하지 마십시오. 듣는 자식 짜증 납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는 동안 울리히는 얼른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직도 몸의 감각이 완전히 되돌아오지 않았다.
지독한 고통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을 뿐! 몸은 여전히 물을 먹인 솜마냥 축축 늘어졌고, 주위의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쉴 새 없이 일렁거렸다.
‘곧 심문관을 만난다! 그를 납득시키는 것에 내 운명이 달렸으니 어떻게든 온전한 정신을 되찾아야 해.’
참혹한 고통 때문에 무턱대고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들었지만 어차피 지금은 실행 불가능했다. 룬―스톤을 모두 은밀한 곳에 보관해 두었기 때문이다.
하긴, 몸에 지니고 있었다면 잡히는 순간 모조리 빼앗겼을 테니 은밀하게 숨겨 둔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그사이 한차례 말다툼을 끝낸 고문 기술자들이 다가와 상처에 포션을 뿌렸다.
치이익―!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며 상처에서 기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으으…….”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에 울리히는 신음을 흘렸다.
“시끄러! 이대로 뒈지고 싶지 않으면 엄살 피우지 마.”
숙련된 고문 기술자의 살벌한 엄포에 울리히는 숨소리까지 죽였다. 그때 젊은 사내가 다가서며 그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빠져 버린 관절은 끼워 맞춰 줘야겠죠?”
“그러게 턱관절까지 왜 빼 버린 거야? 번거롭게 일만 더 늘어났잖아?”
“헤헤! 형님. 그 이야긴 이제 그만하기로 하셨잖습니까?”
“네가 저지른 일이니 턱뼈는 네가 직접 맞춰!”
“알겠습니다! 형님.”
젊은 고문 기술자는 씩씩하게 대답한 후 주저 없이 울리히의 턱을 잡았다. 턱뼈의 부서진 부분은 포션의 효능으로 인해 말끔히 재생되어 있었다.
우두둑!
사내는 순식간에 턱뼈를 맞춰 줬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정작 심하게 아픈 것은 탈골시킨 어깨와 팔뼈를 다시 맞추는 일이었다.
신경조직과 힘줄 등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그런지, 관절을 끼워 맞추는 순간 아찔할 만큼 통증이 일어났다. 하지만 고문 기술자들의 흉포성을 자극할까 두려워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 냈다.
억지로 참았기 때문인지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네놈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겠다! 오늘의 이 고통은 반드시 받은 그대로 되돌려 주리라. 심판의 그날이 늦게 온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늦으면 늦을수록 갚아야 할 이자가 불어날 테니까.’
울리히는 마음속으로 조용하지만 확실히 독기를 키워 나갔다.
그렇게 무사히 치료를 마쳤을 때, 누군가 고문실의 문을 두드렸다.
쾅! 쾅!
“누구요?”
“호른 심문관님의 명령으로 울리히 디 쥐세페를 데리러 왔습니다.”
“와서 서류를 확인하고 데려가게!”
“알겠습니다.”
고문실로 들어온 병사들이 양쪽에서 울리히의 팔을 하나씩 잡았다.
울리히는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데다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었는데, 쇠사슬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빨리 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결코 느긋하게 기다려 주지 않았다.
사정없이 팔을 잡아끌었을 뿐 아니라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려 하면 날카로운 쇠붙이가 주렁주렁 달린 채찍으로 후려쳤다.
쉐에에엑― 파악!
“크악!”
그때마다 밭고랑처럼 살이 움푹 파이며 피가 왈칵 쏟아져 내렸다.
울리히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걸음걸음마다 붉은 피로 만들어진 선명한 발도장이 찍혔다.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인데도 병사들은 그를 두고 태연하게 지껄였다.
“역시 죄수와 가축은 미련해서 때려야 말을 듣는단 말이야!”
“하긴 듣기 좋은 말로 권하면 항상 꾀부리고 엄살을 피운단 말이야. 짐승 취급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지. 큭! 큭!”
울리히는 지금의 고통과 원한을 묵묵히 가슴에 새겼다.
‘너희들의 얼굴도 결코 잊지 않도록 하지! 언젠가 반드시 하나하나 찾아내서 톡톡히 값을 치르게 해 주겠다.’
도저히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계단이 끝나고, 길게 뻗은 복도를 통과하자 드디어 목적지인 심문실 앞에 멈춰 설 수 있었다.
“호른 심문관님! 울리히를 데려왔습니다.”
“들여보내라.”
문이 열리자 울리히는 병사들에게 떠밀리듯 심문실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몹시 어두웠는데, 오직 희미한 등잔불 하나로 밝히고 있었다. 심문관 역시 검은 로브를 입고 두건을 깊숙이 눌러쓰고 있어서 두 손과 아래턱만 조금 보였다.
‘심하게 분위기 잡는군!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려는 수작이겠지.’
그사이 울리히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심문관의 어떤 말에도 동요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은 것이다.
여기서 단 한 순간이라도 빈틈을 보여 꼬투리를 잡힌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무슨 말을 할지는 충분히 준비해 두었다! 심문받는 것이 처음도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말자.’
항상 그렇듯 심문은 이름을 묻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이름은?”
“울리히 디 쥐세페입니다.”
이름, 나이, 출신 등 순서대로 심문하던 호른 심문관은 그에게 기습적인 질문을 던졌다.
“훈련 교관들에게 검술을 가르친 이유는 뭐지? 그들에게 기사들을 죽이라고 지시를 내렸나?”
심문받는 것이 처음이라면 몹시 당황할 만한 상황! 하지만 울리히는 이미 여러 차례 심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실 울리히는 지독할 정도로 세밀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동안 심문 과정을 머릿속으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하여 질문의 유형을 철저히 분석해 두었다.
‘이런 식의 황당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순전히 내 반응을 떠보려는 거겠지?’
이 정도의 심문 수법은 예상 범위 안에 있었기에 아직 여유가 넘쳤다. 울리히는 적당히 당황한 척 연기하면서도 결코 말실수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대답으로 위기를 넘기자 호른 심문관은 드디어 진짜 본론을 꺼냈다.
“윈프레겐이 이상한 말을 하더군! 자네에게 배운 검술 때문에 기사들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말이야. 자네의 검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쓰러지는 쪽은 오히려 자신일 테니, 결코 기사들을 해치지 않았을 거라고 하던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심문관의 말에 울리히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비열한 윈프레겐이 살아남기 위해 내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구나!’
한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분이 더러워지며 가슴속에서 뭔가 욱 치밀어 오르는 건 감정을 가진 사람인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 터뜨릴 때가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해야 할 순간이었다.
울리히는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칼을 가지고 놀다가 아들이 다쳤다는 이유로 대장장이가 칼을 만들지 않는다면, 전쟁은 어찌 치르겠습니까? 칼을 만드는 것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죄가 생깁니다. 따라서 윈프레겐 님의 말은 어디까지나 억지에 불과합니다.”
수작이 통하지 않자 심문관은 곧바로 말을 바꿨다.
“검술의 출처를 알고 싶네.”
드디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