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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23화)
Chapter 07.(1)
‘도대체 마그누스의 연구일지는 어디에 숨겨져 있는 걸까?’
윈스턴이란 이름으로 이곳에 위장 잠입한 미하엘이란 사내는 요즘 몹시 초초해졌다. 무려 한 달이 지나도록 마그누스의 연구일지를 찾기는커녕 단서조차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하엘의 정체는 아퀘리에스 학파의 주도 아래 제거된 것으로 알려진 뇌전 학파의 마법사였다.
뇌전 학파의 천재 마도학자인 마그누스가 제거된 후 대부분의 뇌전 마법사들은 은밀히 척결되었지만 일부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들은 험준한 카뮨게테스 산맥 깊숙이 도망친 후, 마그누스의 동료였던 카르멩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마그누스의 뇌전 마법을 복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지난 30여 년 세월 동안 그들은 마그누스의 마법을 일부 복원하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아직 원수인 아퀘리에스 학파와 기존의 마법 학파들과 당당히 맞서 싸울 만큼 강력한 위력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마그누스에게 숨겨진 개인 실험실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내게 되었고, 결국 실험실의 위치는 연구일지 진본에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마그누스의 개인 실험실에는 그가 개발했던 획기적인 뇌전 마법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그것을 모두 익히게 된다면 뇌전 마법사들은 오랜 은둔 생활을 끝내고 당당히 아퀘리에스 학파와 맞서 싸울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아퀘리에스의 총단에 은밀히 요원들을 보내 연구일지의 진본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수많은 요원들을 희생시킨 끝에 마그누스의 연구일지가 이미 비밀 실험실에 보내졌다는 것을 가까스로 알아냈을 뿐이다.
요원들을 비밀 연구소로 보냈을 때는 이미 실험실이 철저히 파괴되어 있었다.
이미 테넨로베프 제국의 기사들이 비밀 연구소를 습격하고 난 뒤였던 것이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들은 마그누스의 연구일지가 아말락기흄 황자의 진영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직 연구일지에 마그누스의 비밀 연구실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연구일지만 찾아낸다면 기회는 있었다.
이후 수많은 요원들이 파견되었고, 미하엘도 파견된 요원들 중 하나였다.
미하엘은 마그누스의 연구일지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번번이 좌절만 겪었다. 하지만 마그누스의 연구일지에 뇌전 학파의 미래가 달려 있었기 때문에 포기란 있을 수 없었다.
삶이란 원래 놀라운 일의 연속이다.
검술 사범 문제로 골치를 썩이다가 새벽녘 즈음에 겨우 잠이 든 울리히에게 달갑지 않은 손님이 불쑥 찾아왔다.
“읍!”
단잠을 자고 있던 울리히는 누군가가 입을 거칠게 틀어막는 바람에 화들짝 깨어났다. 눈을 떠 보니 날카로운 칼날이 시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복면을 쓴 사내는 살벌한 목소리로 그를 협박했다.
“조용히 해! 저항하면 가차 없이 목을 그어 버리겠어.”
‘젠장! 이건 또 뭐야?’
울리히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얌전히 누워 있었다. 괜스레 자극해 봤자 허무하게 죽게 될 뿐이니까.
대신 그는 침착하게 사내를 살폈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 무기는 단검뿐인 것 같았지만 옷소매 등에 치명적인 암기를 숨겨 뒀을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암살이 목적인 것 같지는 않군. 그렇다면 깨울 필요도 없이 목을 베었을 테니까.’
협박한다는 것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의미다. 예상대로 사내는 곧바로 입을 열어 용건을 말했다.
“너는 방에 돌아오면 항상 물을 한 잔 마시는 습관이 있지? 그동안 주전자에 효과 좋은 만성중독을 일으키는 약을 조금씩 넣어 뒀다. 지금쯤 아마도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을 텐데? 자각하지 못했나?”
충격적인 말에 울리히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요즘 들어 머리가 자주 어지럽고 아랫배가 아파서 깊이 잠들지 못했는데, 그럼 그게 단순한 피로감 때문이 아니라 중독 현상이었나?’
사내는 계속해서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처음엔 단순히 머리와 배가 조금 아픈 정도겠지만,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 결국 뇌와 창자가 모조리 녹아내릴 것이다! 하지만 더 심해지기 전에 해독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말끔히 해독할 수 있다.”
끔찍하게 죽게 된다는 협박에 잔뜩 긴장한 울리히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원하는 게 뭡니까?”
사내는 왼손을 품속에 집어넣어 향수가 든 병을 꺼내 보였다. 보아하니 단순히 향이 좋은 향수는 아니니라.
“황자가 곧 너에게 검술서의 해석을 부탁해 올 것이다. 우리가 은밀히 수작을 부려 둔 검술서라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할 엉터리 내용이 적혀 있다. 너는 그것을 완전히 해석한 척하면서 해설서에 이 향수를 살짝 뿌려 황자에게 건네주기만 하면 된다.”
사내의 말을 들은 울리히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설마…… 황자를 암살하려는 건가?’
울리히는 황자 암살에 결코 얽혀 들고 싶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하필 저에게 부탁하는 겁니까?”
사내는 침착한 어조로 설명했다.
“항상 철통같이 경계를 서고 있어서 황자에게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다. 황자가 먹고 마시는 음식 역시 미리 맛보는 자들이 있어서 수작을 부려 놓는 것 역시 불가능해.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라 우리들끼리 결론을 내렸다.”
순간 울리히는 사내가 말하는 우리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이제 보니 처형당한 엠브란트 교수처럼 체브멘티온 왕실의 첩자들이었구나!’
엠브란트 교수가 참혹하게 처형당한 이후 한동안 다른 첩자들이 접근해 오지 않았다. 때문에 울리히는 첩자들에 대해서 거의 잊고 있었다. 또한 체브멘티온 왕국은 이미 패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무슨 첩보 활동을 하랴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울리히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도리어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수록 더욱 독해지는 자들도 있다.
여하튼 울리히는 그들의 처지나 심경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해독제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손으로 황자를 암살하다니! 그랬다간 추격자들이 벌떼처럼 달라붙겠지? 그런 미친 짓은 절대 할 수 없어. 무슨 수를 쓰든 이자를 설득해 해독제를 손에 넣어야 한다!’
고심하던 울리히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듣고 보니 저도 엄연히 체브멘티온 왕실의 백성이라는 걸 잊으신 듯해서 섭섭합니다. 위기에 처한 왕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면 더 없는 기쁨이자 영광인데, 제가 기꺼이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제게 만성독까지 먹여 가며 강요하듯 말하십니까? 저를 조금도 믿지 않는 듯해서 섭섭하군요!”
울리히의 말을 들은 사내가 말투까지 바꿔 가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의 충심이 이렇듯 깊은지 미처 몰랐군! 고개 숙여 사과하겠네. 사실은 엠브란트 교수만 혼자 죽게 된 것이 수상쩍었다네. 또한 자네를 찬찬히 살펴보니 왕실의 일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여 그리 오해를 하게 되었네.”
사내의 말에 울리히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오히려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제 행동이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곳곳에 있는 감시의 눈길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위기에 처한 왕실을 도우고 싶었지만, 결국 자신의 무능함을 절망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서 해독약이나 달란 말이야!’
울리히는 내뱉은 말과는 달리 오직 해독약을 간절히 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얕은 수에 쉽게 속아 넘어가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오해였다니 미안하군! 하지만 공교롭게도 해독약을 가져오지 않았네. 3일 후에 찾아올 때는 반드시 해독약을 가져오겠네. 참! 자네는 늦어도 3일 안에 1차적으로 해독해야 하네.”
“만약 시기가 늦어진다면 어떻게 됩니까?”
교활하게도 사내는 울리히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으로 협박을 했다.
“뇌가 조금씩 녹아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멍청해지게 되겠지. 자네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천재성을 잃고 싶지 않다면 3일 뒤엔 반드시 이 일을 말끔히 끝마친 상황이길 바라겠네! 그땐 자네에 대한 의심을 모두 버리고 완전한 동지로 받아들이겠네.”
결국 울리히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일을 끝마친 후에는 절 의심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사내는 울리히의 대답에 만족한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 황자를 제거한 영웅을 어찌 감히 의심하겠는가?”
울리히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해독약을 챙겨 오는 것이나 잊지 마십시오.”
“잊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
사내는 울리히의 대답에 만족하고 조용히 떠나갔다.
하지만 울리히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은 것은 그저 사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을 뿐, 결코 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를 생각은 없었다.
‘3일이라! 시간이 별로 없어. 3일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해독제를 만들어 내야 해!’
울리히는 자신의 천재적인 두뇌를 믿었다.
황자를 암살하는 미친 짓을 할 수도 없었고, 해독제를 가져오겠다는 사내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해독제를 줄 생각이 없을 수도 있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도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꼬리를 자르려면 자신을 죽여 없애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다.
‘녀석의 말은 하나도 믿어서는 안 돼!’
다짜고짜 독을 먹인 것 자체가 자신을 동지가 아닌 소모품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울리히는 서둘러 주전자와 찻잔을 찾았다. 주전자와 찻잔에는 사내가 넣어 둔 독이 아직 남아 있을 테니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
커튼을 살짝 걷어 올리고 창밖을 내다보니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고 있었다.
‘약리 연금술에 정통한 학자를 찾아가야 해!’
울리히는 대인 관계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 편이었지만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렉티오 판 차페크!
울리히는 예전에 엠브란트 교수의 소개로 렉티오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후로도 몇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엠브란트 교수가 첩자로 발각되어 처형된 이후 서로 가까이하지 않게 되었다.
‘렉티오 교수라면 약리 연금술 분야에서 꽤 알아주는 사람이지! 아무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하는 것보단 그를 찾아가는 것이 낫겠지.’
앞으로 시간은 단 3일뿐!
마음이 조급해진 울리히는 곧바로 렉티오 교수의 거처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쾅! 쾅!
다짜고짜 문을 두드리자 입구 근처에 매여 있던 개가 미친 듯이 짖어 댔다. 목줄이 매여 있지 않았다면 당장 달려들어 물어뜯기라도 할 기세였다.
하지만 개 짖는 소리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 댔다.
잠시 후에 안쪽에서 누군가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밖에 누구요!”
“안녕하세요! 렉티오 교수님. 울리히 디 쥐세페입니다.”
다행히 렉티오 교수는 단번에 그를 기억해 냈다.
“아……. 울리히 님이셨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런데 새벽부터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일단 안에 들어가서 말씀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새벽바람이 몹시 차갑군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이 아직 덜 깨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갑자기 찾아온 제 결례가 더 크지요.”
급히 겉옷을 걸친 렉티오 교수는 재빨리 문을 열어 주었다. 거실로 들어온 울리히는 레몬즙과 계피를 섞어 따뜻하게 데운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건 알지만 교수님께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울리히 학자님같이 명성이 자자한 분이 제게 부탁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게 사실은…….”
울리히는 렉티오 교수에게 약리 연금학을 가르쳐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렉티오 교수는 의아한 듯 다시 물었다.
“정말 그걸 부탁하려고 찾아오신 겁니까? 그런 부탁이라면 새벽부터 찾아오지 않아도 되셨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매우 급한 사정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게 약리 연금술을 가르치시는 건 가급적이면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뭔가 분명치 않은 태도에 꺼림칙함을 느낀 듯 렉티오 교수는 슬쩍 발을 빼려 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울리히 학자님의 부탁이라 가급적 들어 드리고 싶지만, 제가 최근에 힘을 쏟는 연구가 있어서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울 듯합니다.”
완곡히 거절하려는 교수의 태도에 울리히는 급한 마음에 귀가 솔깃한 만한 조건을 내걸기로 마음먹었다.
“바쁘신 건 알겠지만……. 이번에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저 역시 성의 표시 정도는 하겠습니다.”
“성의 표시라니, 무슨 말입니까?”
렉티오 교수가 조금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울리히는 서둘러 조건을 제시했다.
“아말락기흄 황자님께 청을 넣어 약리 연금학 연구비를 대폭 지원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분야이건 심층적인 연구를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연구비 지원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과 동시에 황자와의 친분을 과시하자 렉티오 교수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잠시 고심하던 렉티오 교수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