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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스터는 사기꾼 1권 18화
저항은 발전을 만든다 (3)
단번에 하늘이 어수선해졌다.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며 먹구름들이 빠르게 흩어졌다가 다시 몰려들길 반복했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금세 굵직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갈라진 땅 사이로 흘러 들어간 빗물이 용암을 뒤덮자, 수증기로 광장 전체가 뿌옇게 변했다.
“드, 드래곤이 날씨를 바꾼다!”
혼비백산한 유저들이 요란법석을 떨어댔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마법에 능한 아란탈이라면 모를까, 호르핌들로서는 이런 고등 마법을 부릴 수 없었다. 이렇게 마나를 많이 소모하는 대규모의 마법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거 내가 아까 쓰려던 마법이잖아.’
게임 스킬로 따지면 ‘라이트닝 퍼니쉬먼트’와 ‘템페스트’라는, 매지션 성향의 고위 마법이었다. 아까 아즈칸을 협박하고 있을 때 중첩시켜 외우다 취소시킨 그것이었다.
콰르르릉! 콰앙!
온 사방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서른 갈래도 넘는 벼락들이 머리 위로 쇄도했다.
내려친 번개는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은 땅을 박살 내며 유저들과 몬스터 무리를 태우기 시작했다.
콰르릉! 콰르르릉!
“끄아아아아악!”
한두 번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연이어 계속 떨어지는 벼락에 곳곳에서 수많은 유저들과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콰아아아아!
설상가상으로 솟아나듯이 생겨난 일곱 개의 대형 허리케인이 광장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허리케인에 휩쓸린 이들이 허공에서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맘이시리네도 있었다.
“이게 미친, 무슨 일이야.”
삐익! 삐익!
팔목에 찬 감지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지만, 미처 확인할 새도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
허리케인은 서로 뒤엉켜 수도 전체를 집어삼킬 듯 커졌다. 허리케인에 휩쓸렸던 이들은 성벽 바깥까지 튕겨 나가 즉사했다.
마을 주민들이 수도 밖으로 허겁지겁 대피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미친.”
서둘러 손을 공중에 내저으며 역주문을 외웠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마법을 되돌리려 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에이 씨! 뭔진 모르겠지만!”
황급히 허리케인의 영역에서 몸을 피했다.
오더코르트인들이야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 유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 죽는다고 해도 저승에서 다시 부활할 테니까.
문제는 나다. 여기서 죽으면 나는 진짜로 죽는다.
“나파카아지오테 바 타우 즈크지!”
재빨리 이동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어째선지 마나가 모이질 않았다.
“어라?”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워봤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그때, 마치 구덩이에 빠지는 것처럼 밑으로 훅 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줄곧 사용하고 있던 부유 마법이 풀려 버린 것이다.
“으아아악!”
바람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마르디노 카림!(마르디노 님!)”
아즈칸이 날아와 재빠르게 내 옷자락을 입에 물었다.
“이나 난칼 오루 아파따나 비사얌 폰라.(여긴 위험하니 일단 빠져나가겠습니다.)”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펴지자, 날갯짓 한 번만으로 금세 먹구름 위까지 올라왔다. 발 아래로 번개가 쉴 새 없이 번뜩거리고 있는 시꺼먼 구름들이 보였다.
공중에 멈춘 아즈칸이 입에 물고 있던 나를 등 위로 휙 던져 올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몰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상황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었다. 애매한 상황에서 일이 터졌으니, 유저들은 모두 아즈칸이 벌인 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방어전은 실패했다고 하면 된다.
그래, 오히려 이게 더 잘된 걸지도.
“일단 회사로 좀 가줄래? 지금 마법이 안 먹히는 거 같아.”
“옙.”
아즈칸은 날개를 펄럭이며 북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위에 누운 채로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유저들과 함께 새로운 던전 개막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은밀하게 열린 강연에서 누군가에게 선동을 당한 몬스터 노동자들이 유저들을 습격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몬스터 노조 파라마스타 지부장인 아즈칸이 있었다. 그리고 아즈칸은 분명 ‘투쟁’이라고 말했다.
‘투쟁이라.’
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해선 아즈칸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래, 우리 아까 대화로 풀기로 했었지?”
“…….”
아즈칸은 침묵으로 답했다.
“너 아까 투쟁이라 그랬지. 구체적으로 무슨 투쟁인데?”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생존권이라고?”
생존권이라니, 지금까지 나는 오더코르트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그때, 문득 머릿속에 퍼롱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선 무슨, 새로운 것들을 모두 부숴 버려야 한다고. 암튼 뭐 그런 말들을 했어요.”
새로운 것들이라.
“어째서 새 던전들이 너희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거지?”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던전이라니, 잘릴 위기에 처했는데 어떤 노동자들이 그것을 달갑게 여기겠습니까.”
“…….”
“새 던전에 대한 반응이 좋을수록 저희들의 입지가 좁아지겠지요.”
“하이고, 걱정도 팔자다. 야, 어떤 게임에서 새 던전이 생긴다고 유저들이 몬스터 사냥을 내팽개치냐? 그리고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그런 거 하나 생각 못했겠냐? 나 이 게임 GM 겸 기획자 겸 제작자거든? 밸런스는 내가 알아서 다 맞춰.”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던전은 몬스터 노조를 견제하기 위해 기획된 게 아닙니까! 마르디노 님이 일부러 그러셨을 거라곤 생각 안 합니다. 하지만 혹시 누군가가 마르디노 님을 이용해서…….”
“얼씨구? 놀고들 있네. 니들 무슨 말을 듣고 와서 이러는진 모르겠는데, 하나만 물어보자. 그런 소리들은 대체 어디서 듣고 온 거야? 응?”
“그, 그건…….”
아즈칸이 크게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것만큼은 끝까지 대답 못 하겠다 이건가.
“에휴, 됐다, 됐어. 멍청한 것들한테 내가 무슨 기대를 하겠냐. 그냥 이거 하나만 알아둬라. 니들 그 새끼한테 속은 거야, 알아? 완전히 속은 거라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전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요! 분명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기획안이었단 말입니다!”
“그게 어째서 너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거야. 여기서 실직한다고 해서 그게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할 수 있냐? 다른 일도 많잖아. 굳이 여기서 죽어가면서 일 안 해도 된다고.”
그 말에 아즈칸은 격하게 움찔거렸다.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저희들에게 이 직장은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 식으로 쉽게 말씀하지 마세요.”
“…….”
그래서 ‘투쟁’이라고 한 건가.
내가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추가 던전을 기획한 건 순전히 몬스터로 고용된 호르핌들을 위해서였다.
장애물이나 맵을 돌파하고, 유저들끼리 경쟁하는 방식의 새로운 던전을 만들었다. 기존의 사냥 방식은 모두 호르핌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부상과 죽음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사라 죽는 순간 새로 태어난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다시 태어나도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나기까지의 기간이 필요한데, 보험 계약서를 확인해 본 결과 그 기간은 모두 무급 휴가처럼 처리되고 있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고 장땡이 아니니까.’
다쳐서 치료를 받으면 치료비라도 나오지만, 죽으면 그런 것도 없었다. 레이자냐가 그 고생을 하면서도 안 죽고 계속 치료를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호르핌들이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 던전을 만들려고 일부러 기획한 건데, 정작 본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 이건 멸망을 막기 위해서였지.’
자신의 희생으로 이 행성을 구원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서 너도 나도 죽음을 무릅쓰고 일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호르핌 노동자들의 의지를 간과한 나의 판단 착오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제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사실 이 새 던전은 너희들 조금이라도 덜 죽으라고 만든 거였어’라고 뒤늦게 말해봤자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들 스스로가 죽음을 불사하면서 뛰어들고 있는데,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인가.
“그냥 그 사람이 퍼뜨린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애들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반 친구들이 모두 그 전학생을 좋아하도록 만들면, 자연스럽게 따돌림시키려 했던 사람이 도리어 망신을 당하지 않겠어요? 굳이 누군지 찾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저라면 그런 시나리오로 갈 것 같은데요.”
퍼롱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이거야.”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 예. 마르디노 님,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엑스 어스 본사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작은 공터였다.
나는 아르칸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보안 해제.”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보안 레벨 확인 중.]
삐빅.
푸른 빛이 몇 초간 내 몸을 훑고 사라졌다.
[보안이 해제되었습니다.]
[권한 : 게임마스터]
[X―EARTH의 보안 설정을 해제합니다.]
[아노 방가르 마르디노 님, 승인되었습니다.]
공간이 비틀리며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엑스 어스의 입구가 나타났다.
“수고했다, 그리고 아까 구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좀 전엔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다. 미안.”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깐 저도 욱해서 그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르디노 님은 지구인이시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올, 역시 지부장은 지부장이네. 너그러운 새끼.”
그러자 아즈칸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 하나만 하자. 지금 몬스터 노조 파라마스타 지부 애들 대강당으로 집합시켜 줘. 노사 협의 시작할 거라고 말해주고.”
“노, 노사 협의요?”
“다 왔냐?”
엑스 어스 사의 1층 대강당.
아즈칸의 주도하에 모인 파라마스타 지부의 몬스터 노조원들이 쭉 앉아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게 다야?’ 싶은 수였다.
깰룩이의 말에 따르면, 파라알 광장에서 있던 일로 인해 오늘 근무를 나온 호르핌들의 절반 정도가 사망했다고 했다. 그래서 노사 협의에 참석할 수 있었던 이들 대부분은 그 와중에 살아남은 고위급 몬스터들과 노조 간부들이었다.
“왜 불렀는진 말 안 해도 잘 알지? 다 니들 땜에 이 지경이 된 거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조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이것들아. 조용히 해.”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자, 강당은 다시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뭘 잘했다고 떠들어? 다 징계 먹고 싶냐?”
살짝 겁을 줬을 뿐이건만, 호르핌들은 전부 하얗게 질려서 굳어 있었다.
“투쟁 어쩌고 하더니. 깰룩아, 화면 좀 켜줘라.”
옆에서 지켜보던 깰룩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강당 곳곳에 디스플레이 화면이 떠올랐다.
“너, 오롱이.”
오징어와 물뱀이 합쳐진 것 같은 오르테가가 화들짝 놀랐다.
“니가 대답해 봐. 저게 뭐 같냐?”
“오, 오늘 열리기로 했던 추가 던전의 기획안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줄에 뭐라고 써 있냐?
“‘이하 추가 던전 네 곳에 아래와 같은 몬스터를 배치한다’라고…….”
노조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몬스터 안 나오는 던전이라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이상하다.”
모두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참나, 어이가 없네. 몬스터가 없어? 누가 그러는데? 이게 몬스터가 없는 던전이냐?”
노조원들은 모두 유구무언이었다.
“대답 안 해?”
“아, 아닙니다!”
물론 방금 전에 급조한 가짜 기획안이었다.
“내가 니들이 여기 왜 다니는지도 모르고 있다 생각하냐? 일부러 니들 실업자 만들려고 몬스터도 안 나오는 던전을 만들 것 같아?”
“아닙니다.”
“아니야? 그럼 왜 그랬어?”
“…….”
“또 대답 안 하지?”
“죄, 죄송합니다.”
“후, 진짜 큰일이다, 큰일. 애들도 아니고, 웬 놈 말 한마디에 그렇게 쉽게 욱해가지고. 그리고 설사 그게 사실이었어도 그렇지, 이벤트하는데 난입해서 유저들 죽이고, 맵 부수고. 이거 복구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 그걸 누가 하겠어? 너희가 할 거야?”
“죄송합니다!”
서운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아아.”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
“…….”
슬쩍 눈을 떠 앞을 흘겨보니, 모두 죄책감과 두려움이 점철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아.”
“죄, 죄송합니다…….”
“마음 같아선 니들 싹 다 해고시키고 다신 취직 못하게 만들고 싶은데, 내가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고.”
곳곳에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담부턴 잘해라. 이번뿐이야. 다음에도 또 이랬다간 작살날 줄 알아.”
연맹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가 좀 이상한데 싶으면 와서 물어보라고, 나한테. 내가 입 없어서 대답 못해주겠냐, 손 없어서 해결 못해주겠냐? 말을 해, 말을. 괜히 멀쩡히 잘 돌아가는 게임에 깽판 놓지 말고.”
“예!”
“그래, 해산.”
“수, 수고하셨습니다!”
노조원들은 엉덩이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순식간에 모두 강당에서 빠져나갔다.
이걸로 호르핌들은 처리됐고, 이제 유저들은…….
쿵!
“저기 있군!”
그때, 강당의 문을 열고 들이닥친 카킹들과 이사회 간부들이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냐, 갑자기? 니들이 여기까진 웬일이야?”
“마르디노, 자넬 징계 위원회에 회부토록 하겠네.”
하르코스탄이 다짜고짜 통보했다.
“뭐? 날 왜?”
“그냥 흘려들어, 마르디노. 어차피 이사회에서 통과시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포센투냐가 막아섰지만, 하르코스탄이 비웃듯 쏘아붙였다.
“웃기는 소리. 포센투냐 당신의 결정 따윈 필요 없소. 이미 드라비라가 승인한 일이오.”
“뭔 개소리야? 배불뚝이가 어째?”
“사긱 군, 너무 열 내지 말게나. 그저 본보기일 뿐이니까. 형식적인 일이지.”
배불뚝이가 하르코스탄 뒤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비라, 이번 사건은 마르디노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야. 마르디노가 왜 책임을 져야 하지?”
티렝이가 거대한 뿔을 드라비라에게 들이밀며 쏘아붙였다.
“관계가 없다라. 그럼 이건 뭐지?”
배불뚝이가 음흉한 얼굴로 강당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 치우지 않은 몬스터 노조의 현수막과 디스플레이로 띄워놓은 기획안이 남아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깰룩이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마, 마르디노 님.”
“넌 또 뭐야.”
“운영 팀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깰룩.”
“근데 왜.”
“그게, 파라알 광장에 마나가 폭주하고 있답니다.”
“…….”
깰룩이는 주변의 반응을 슬쩍 확인해 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지금 완전 난리 났다는데 어떡할까요, 깰룩?”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란탈 이사회와 카킹들이 웅성거렸다. 밥맛이 싹 달아나 버리는 순간이었다.
저항은 발전을 만든다 (3)
단번에 하늘이 어수선해졌다.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며 먹구름들이 빠르게 흩어졌다가 다시 몰려들길 반복했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금세 굵직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갈라진 땅 사이로 흘러 들어간 빗물이 용암을 뒤덮자, 수증기로 광장 전체가 뿌옇게 변했다.
“드, 드래곤이 날씨를 바꾼다!”
혼비백산한 유저들이 요란법석을 떨어댔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마법에 능한 아란탈이라면 모를까, 호르핌들로서는 이런 고등 마법을 부릴 수 없었다. 이렇게 마나를 많이 소모하는 대규모의 마법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거 내가 아까 쓰려던 마법이잖아.’
게임 스킬로 따지면 ‘라이트닝 퍼니쉬먼트’와 ‘템페스트’라는, 매지션 성향의 고위 마법이었다. 아까 아즈칸을 협박하고 있을 때 중첩시켜 외우다 취소시킨 그것이었다.
콰르르릉! 콰앙!
온 사방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서른 갈래도 넘는 벼락들이 머리 위로 쇄도했다.
내려친 번개는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은 땅을 박살 내며 유저들과 몬스터 무리를 태우기 시작했다.
콰르릉! 콰르르릉!
“끄아아아아악!”
한두 번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연이어 계속 떨어지는 벼락에 곳곳에서 수많은 유저들과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콰아아아아!
설상가상으로 솟아나듯이 생겨난 일곱 개의 대형 허리케인이 광장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허리케인에 휩쓸린 이들이 허공에서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맘이시리네도 있었다.
“이게 미친, 무슨 일이야.”
삐익! 삐익!
팔목에 찬 감지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지만, 미처 확인할 새도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
허리케인은 서로 뒤엉켜 수도 전체를 집어삼킬 듯 커졌다. 허리케인에 휩쓸렸던 이들은 성벽 바깥까지 튕겨 나가 즉사했다.
마을 주민들이 수도 밖으로 허겁지겁 대피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미친.”
서둘러 손을 공중에 내저으며 역주문을 외웠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마법을 되돌리려 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에이 씨! 뭔진 모르겠지만!”
황급히 허리케인의 영역에서 몸을 피했다.
오더코르트인들이야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 유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 죽는다고 해도 저승에서 다시 부활할 테니까.
문제는 나다. 여기서 죽으면 나는 진짜로 죽는다.
“나파카아지오테 바 타우 즈크지!”
재빨리 이동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어째선지 마나가 모이질 않았다.
“어라?”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워봤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그때, 마치 구덩이에 빠지는 것처럼 밑으로 훅 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줄곧 사용하고 있던 부유 마법이 풀려 버린 것이다.
“으아아악!”
바람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마르디노 카림!(마르디노 님!)”
아즈칸이 날아와 재빠르게 내 옷자락을 입에 물었다.
“이나 난칼 오루 아파따나 비사얌 폰라.(여긴 위험하니 일단 빠져나가겠습니다.)”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펴지자, 날갯짓 한 번만으로 금세 먹구름 위까지 올라왔다. 발 아래로 번개가 쉴 새 없이 번뜩거리고 있는 시꺼먼 구름들이 보였다.
공중에 멈춘 아즈칸이 입에 물고 있던 나를 등 위로 휙 던져 올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몰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상황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었다. 애매한 상황에서 일이 터졌으니, 유저들은 모두 아즈칸이 벌인 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방어전은 실패했다고 하면 된다.
그래, 오히려 이게 더 잘된 걸지도.
“일단 회사로 좀 가줄래? 지금 마법이 안 먹히는 거 같아.”
“옙.”
아즈칸은 날개를 펄럭이며 북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위에 누운 채로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유저들과 함께 새로운 던전 개막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은밀하게 열린 강연에서 누군가에게 선동을 당한 몬스터 노동자들이 유저들을 습격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몬스터 노조 파라마스타 지부장인 아즈칸이 있었다. 그리고 아즈칸은 분명 ‘투쟁’이라고 말했다.
‘투쟁이라.’
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해선 아즈칸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래, 우리 아까 대화로 풀기로 했었지?”
“…….”
아즈칸은 침묵으로 답했다.
“너 아까 투쟁이라 그랬지. 구체적으로 무슨 투쟁인데?”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생존권이라고?”
생존권이라니, 지금까지 나는 오더코르트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그때, 문득 머릿속에 퍼롱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선 무슨, 새로운 것들을 모두 부숴 버려야 한다고. 암튼 뭐 그런 말들을 했어요.”
새로운 것들이라.
“어째서 새 던전들이 너희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거지?”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던전이라니, 잘릴 위기에 처했는데 어떤 노동자들이 그것을 달갑게 여기겠습니까.”
“…….”
“새 던전에 대한 반응이 좋을수록 저희들의 입지가 좁아지겠지요.”
“하이고, 걱정도 팔자다. 야, 어떤 게임에서 새 던전이 생긴다고 유저들이 몬스터 사냥을 내팽개치냐? 그리고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그런 거 하나 생각 못했겠냐? 나 이 게임 GM 겸 기획자 겸 제작자거든? 밸런스는 내가 알아서 다 맞춰.”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던전은 몬스터 노조를 견제하기 위해 기획된 게 아닙니까! 마르디노 님이 일부러 그러셨을 거라곤 생각 안 합니다. 하지만 혹시 누군가가 마르디노 님을 이용해서…….”
“얼씨구? 놀고들 있네. 니들 무슨 말을 듣고 와서 이러는진 모르겠는데, 하나만 물어보자. 그런 소리들은 대체 어디서 듣고 온 거야? 응?”
“그, 그건…….”
아즈칸이 크게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것만큼은 끝까지 대답 못 하겠다 이건가.
“에휴, 됐다, 됐어. 멍청한 것들한테 내가 무슨 기대를 하겠냐. 그냥 이거 하나만 알아둬라. 니들 그 새끼한테 속은 거야, 알아? 완전히 속은 거라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전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요! 분명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기획안이었단 말입니다!”
“그게 어째서 너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거야. 여기서 실직한다고 해서 그게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할 수 있냐? 다른 일도 많잖아. 굳이 여기서 죽어가면서 일 안 해도 된다고.”
그 말에 아즈칸은 격하게 움찔거렸다.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저희들에게 이 직장은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 식으로 쉽게 말씀하지 마세요.”
“…….”
그래서 ‘투쟁’이라고 한 건가.
내가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추가 던전을 기획한 건 순전히 몬스터로 고용된 호르핌들을 위해서였다.
장애물이나 맵을 돌파하고, 유저들끼리 경쟁하는 방식의 새로운 던전을 만들었다. 기존의 사냥 방식은 모두 호르핌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부상과 죽음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사라 죽는 순간 새로 태어난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다시 태어나도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나기까지의 기간이 필요한데, 보험 계약서를 확인해 본 결과 그 기간은 모두 무급 휴가처럼 처리되고 있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고 장땡이 아니니까.’
다쳐서 치료를 받으면 치료비라도 나오지만, 죽으면 그런 것도 없었다. 레이자냐가 그 고생을 하면서도 안 죽고 계속 치료를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호르핌들이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 던전을 만들려고 일부러 기획한 건데, 정작 본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 이건 멸망을 막기 위해서였지.’
자신의 희생으로 이 행성을 구원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서 너도 나도 죽음을 무릅쓰고 일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호르핌 노동자들의 의지를 간과한 나의 판단 착오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제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사실 이 새 던전은 너희들 조금이라도 덜 죽으라고 만든 거였어’라고 뒤늦게 말해봤자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들 스스로가 죽음을 불사하면서 뛰어들고 있는데,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인가.
“그냥 그 사람이 퍼뜨린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애들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반 친구들이 모두 그 전학생을 좋아하도록 만들면, 자연스럽게 따돌림시키려 했던 사람이 도리어 망신을 당하지 않겠어요? 굳이 누군지 찾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저라면 그런 시나리오로 갈 것 같은데요.”
퍼롱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이거야.”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 예. 마르디노 님,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엑스 어스 본사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작은 공터였다.
나는 아르칸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보안 해제.”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보안 레벨 확인 중.]
삐빅.
푸른 빛이 몇 초간 내 몸을 훑고 사라졌다.
[보안이 해제되었습니다.]
[권한 : 게임마스터]
[X―EARTH의 보안 설정을 해제합니다.]
[아노 방가르 마르디노 님, 승인되었습니다.]
공간이 비틀리며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엑스 어스의 입구가 나타났다.
“수고했다, 그리고 아까 구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좀 전엔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다. 미안.”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깐 저도 욱해서 그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르디노 님은 지구인이시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올, 역시 지부장은 지부장이네. 너그러운 새끼.”
그러자 아즈칸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 하나만 하자. 지금 몬스터 노조 파라마스타 지부 애들 대강당으로 집합시켜 줘. 노사 협의 시작할 거라고 말해주고.”
“노, 노사 협의요?”
“다 왔냐?”
엑스 어스 사의 1층 대강당.
아즈칸의 주도하에 모인 파라마스타 지부의 몬스터 노조원들이 쭉 앉아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게 다야?’ 싶은 수였다.
깰룩이의 말에 따르면, 파라알 광장에서 있던 일로 인해 오늘 근무를 나온 호르핌들의 절반 정도가 사망했다고 했다. 그래서 노사 협의에 참석할 수 있었던 이들 대부분은 그 와중에 살아남은 고위급 몬스터들과 노조 간부들이었다.
“왜 불렀는진 말 안 해도 잘 알지? 다 니들 땜에 이 지경이 된 거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조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이것들아. 조용히 해.”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자, 강당은 다시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뭘 잘했다고 떠들어? 다 징계 먹고 싶냐?”
살짝 겁을 줬을 뿐이건만, 호르핌들은 전부 하얗게 질려서 굳어 있었다.
“투쟁 어쩌고 하더니. 깰룩아, 화면 좀 켜줘라.”
옆에서 지켜보던 깰룩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강당 곳곳에 디스플레이 화면이 떠올랐다.
“너, 오롱이.”
오징어와 물뱀이 합쳐진 것 같은 오르테가가 화들짝 놀랐다.
“니가 대답해 봐. 저게 뭐 같냐?”
“오, 오늘 열리기로 했던 추가 던전의 기획안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줄에 뭐라고 써 있냐?
“‘이하 추가 던전 네 곳에 아래와 같은 몬스터를 배치한다’라고…….”
노조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몬스터 안 나오는 던전이라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이상하다.”
모두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참나, 어이가 없네. 몬스터가 없어? 누가 그러는데? 이게 몬스터가 없는 던전이냐?”
노조원들은 모두 유구무언이었다.
“대답 안 해?”
“아, 아닙니다!”
물론 방금 전에 급조한 가짜 기획안이었다.
“내가 니들이 여기 왜 다니는지도 모르고 있다 생각하냐? 일부러 니들 실업자 만들려고 몬스터도 안 나오는 던전을 만들 것 같아?”
“아닙니다.”
“아니야? 그럼 왜 그랬어?”
“…….”
“또 대답 안 하지?”
“죄, 죄송합니다.”
“후, 진짜 큰일이다, 큰일. 애들도 아니고, 웬 놈 말 한마디에 그렇게 쉽게 욱해가지고. 그리고 설사 그게 사실이었어도 그렇지, 이벤트하는데 난입해서 유저들 죽이고, 맵 부수고. 이거 복구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 그걸 누가 하겠어? 너희가 할 거야?”
“죄송합니다!”
서운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아아.”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
“…….”
슬쩍 눈을 떠 앞을 흘겨보니, 모두 죄책감과 두려움이 점철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아.”
“죄, 죄송합니다…….”
“마음 같아선 니들 싹 다 해고시키고 다신 취직 못하게 만들고 싶은데, 내가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고.”
곳곳에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담부턴 잘해라. 이번뿐이야. 다음에도 또 이랬다간 작살날 줄 알아.”
연맹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가 좀 이상한데 싶으면 와서 물어보라고, 나한테. 내가 입 없어서 대답 못해주겠냐, 손 없어서 해결 못해주겠냐? 말을 해, 말을. 괜히 멀쩡히 잘 돌아가는 게임에 깽판 놓지 말고.”
“예!”
“그래, 해산.”
“수, 수고하셨습니다!”
노조원들은 엉덩이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순식간에 모두 강당에서 빠져나갔다.
이걸로 호르핌들은 처리됐고, 이제 유저들은…….
쿵!
“저기 있군!”
그때, 강당의 문을 열고 들이닥친 카킹들과 이사회 간부들이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냐, 갑자기? 니들이 여기까진 웬일이야?”
“마르디노, 자넬 징계 위원회에 회부토록 하겠네.”
하르코스탄이 다짜고짜 통보했다.
“뭐? 날 왜?”
“그냥 흘려들어, 마르디노. 어차피 이사회에서 통과시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포센투냐가 막아섰지만, 하르코스탄이 비웃듯 쏘아붙였다.
“웃기는 소리. 포센투냐 당신의 결정 따윈 필요 없소. 이미 드라비라가 승인한 일이오.”
“뭔 개소리야? 배불뚝이가 어째?”
“사긱 군, 너무 열 내지 말게나. 그저 본보기일 뿐이니까. 형식적인 일이지.”
배불뚝이가 하르코스탄 뒤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비라, 이번 사건은 마르디노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야. 마르디노가 왜 책임을 져야 하지?”
티렝이가 거대한 뿔을 드라비라에게 들이밀며 쏘아붙였다.
“관계가 없다라. 그럼 이건 뭐지?”
배불뚝이가 음흉한 얼굴로 강당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 치우지 않은 몬스터 노조의 현수막과 디스플레이로 띄워놓은 기획안이 남아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깰룩이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마, 마르디노 님.”
“넌 또 뭐야.”
“운영 팀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깰룩.”
“근데 왜.”
“그게, 파라알 광장에 마나가 폭주하고 있답니다.”
“…….”
깰룩이는 주변의 반응을 슬쩍 확인해 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지금 완전 난리 났다는데 어떡할까요, 깰룩?”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란탈 이사회와 카킹들이 웅성거렸다. 밥맛이 싹 달아나 버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