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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2화)
01. 아프간 교전(2)
아프가니스탄 카불 북쪽 56km 오쉬노 부대 인근
2011년 5월 27일 15:50
외국군 주둔지에 간헐적인 공격만 해 오던 무장 세력들은 세력이 거대해짐에 따라 점차 공격 횟수를 늘려 갔고 군인들마저 가세하자 테러 식 공격에서 전면 공세로 공격 방법을 바꿨다.
그 공세의 초반 표적이 된 외국군 주둔 부대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수도와 가까운 지역에 위치해 있는 오쉬노 부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씁!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아프간 곳곳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고대영 중사였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교전에 참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약 10분 전 오쉬노 부대로 접근하던 군 보급 차량 대열은 시가지 곳곳에 숨어 있던 무장 세력의 습격을 받았다. 도저히 군 보급 차량 대열의 군 병력으로는 적 세력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현장 지휘관은 곧바로 오쉬노 부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군과 민간인이 50대 50 비율로 섞여 있는 보급 차량 대열을 구원하기 위해 오쉬노 부대의 주요 전투 병력들은 급히 출동했다.
그런데 아프간 군인들과 무장 저항 세력들로 이루어진 적 세력의 규모는 한국군이 기존에 예상하고 있던 규모보다 3배 이상은 될 정도로 훨씬 큰 대규모 병력들이었고 적의 대공세를 막아 내기 위해 비공개적으로 파병된 K1A1 전차들마저 어쩔 수 없이 교전에 투입되었다.
“12시 30분 방향! RPG7!”
“쏴! 쏴!”
K1A1 전차의 포탑에 탑재된 동축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K1A1 전차를 향해 RPG7을 발사하려던 아프간인 한 명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넘어지며 방아쇠를 잡아당긴 탓에 굉음을 동반하며 발사된 RPG7의 탄두는 인근 건물 1층 벽면에 작렬했고 건물 일부가 폭음과 함께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저 빌어먹을 알라의 요술봉! 특전사님들은 손가락만 빠냐! 확실히 엄호해 달라고 해!”
“사방에 모든 것이 적입니다!”
“알아! 안다고!”
보급 대열에 있던 민간인과 군인들 중에는 적의 습격에 부상을 입은 인원이 많았고 그 부상자들을 급히 오쉬노 부대까지 옮기는데 일부 특전사 병력이 동원된 만큼 적의 공세를 막기 위한 병력들이 상대적으로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K1A1 전차 1개 소대와 부상자 후송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전투 병력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부상자와 그 후송 병력들이 부대에 안전하게 당도할 때까지 현 지점을 고수해야 했다.
―소댐이다! 이하 소대 단차들에게 알린다. 5분만 현 지점을 고수하고 이후 주둔지로 이탈한다. 5분만 버텨라!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마당에 5분이라니? 고대영 중사는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들을 믿고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군인들을 위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3호 차 접수!”
전차 소대 소대장의 통신에 응답한 고대영 중사는 전차장 조준경으로 주변을 훑다가 기갑 차량을 목격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11시 20분 방향에 적 전차!”
그저 무장이 빈약한 병력들이라 판단했던 고대영 중사는 생각지도 못했던 전차라는 존재의 출현에 잔뜩 긴장했다.
우르릉!
적 T―62 전차는 1층 건물을 마치 종잇장 구기듯 거침없이 파괴하며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일반적으로 중동 국가에서 사용하는 전차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로 러시아제 T 시리즈 전차로 그 시리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T―72 전차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은 산악 지형이 많아 포각이 형편없는 T―72 전차를 사용하지 않고 포각이 T―72 전차에 비해 큰 T―62 전차를 사용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되는 T―62 전차는 차체 전면에 증가 장갑을 장착하고 사이드 스커트를 도입한 형태를 보이는데 이 개조 모델을 서방측에서는 T―62E라 부른다.
“근처에 적 전차 없다면서!”
“숨어 있었던 놈인가 봅니다!”
미군의 정찰 정보에 의하면 인근에 위협 대상으로 분류되는 적 기갑 차량의 움직임은 없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한참 전부터 건물 안에 숨어 있었던 녀석인 것 같았다.
적 전차와의 거리는 불과 500m. 2세대 T―62 계열의 전차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3세대 전차인 K1A1 전차는 근접 거리에서 발사되는 T―62 전차의 포탄을 전면 장갑으로 막아 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격파당할지도 몰랐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전차의 세대 차이를 떠나 일단 먼저 쏘는 편이 유리했다.
“야! 날탄!”
K1A1 전차는 3세대 전차로 헌터 킬러 시스템을 탑재하여 포수와 전차장이 서로 독립된 관측 장비를 사용,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반면 T―62 전차는 2세대급 구형 전차로 관측 시야 범위가 매우 좁은 탓에 아직 K1A1 전차를 발견하지 못했다.
고대영 중사 일행으로써는 절호의 기회였다.
“장전 완료!”
“쏴!”
뻐엉! 하는 포성과 함께 K1A1 전차에서 쏘아져 나간 날탄, 즉, 날개 안정식 분리 철갑탄은 아직도 적을 찾아 헤매고 있는 T―62 전차의 측면을 파고들었고 T―62 전차는 러시아제 T 시리즈 전차가 모두 가지고 있는 특징, 포탑 사출 시스템이라 일컬어지는 포탑 이탈 현상을 일으키며 격파되었다.
격파되며 유폭마저 발생해 T―62 전차 인근은 지옥불이 들끓는 것 같은 참혹한 모습으로 변질되었다.
“9시 10분 적 이동 전차! 날탄 장전!”
추가 위협 요소를 관측하기 위해 전차장 조준기를 바쁘게 움직이던 고대영 중사는 추가로 접근하는 적 전차를 발견했다 .
전차장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포탑을 9시 방향으로 돌린 이민채 하사는 이제 막 골목 안에 진입해 멈춰 서고 있는 T―62 전차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데 T―62 전차는 격파된 T―62 전차로부터 적 전차를 어느 지점에서 발견했다는 무전을 미리 받았는지 멈춰 선 지 3초도 되지 않아 포탄을 발사했고 고대영 중사와 이민채 하사는 T―62 전차의 포구에서 밝은 섬광이 이는 것을 목격했다.
깡!
강력한 충격이 K1A1 전차를 휩쓸었고 안면을 전차장 조준경에 부딪친 고대영 중사는 얼굴의 고통보다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으아아아! 이 거리에서 맞고도 살았어! 우아아!”
“장전 완료!”
피격 충격에도 공황에 빠지지 않고 차분하게 포탄을 장전한 전이석 일병이 큰 목소리로 버럭 외쳤고 고대영 중사는 곧바로 사격 명령을 내렸다.
“쏴!”
근접 거리에서 쏴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적 전차가 격파되지 않자 겁을 집어 먹은 T―62 전차는 급히 후진을 했지만 K1A1 전차에서 발사된 포탄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전면 장갑을 얻어맞은 T―62 전차는 K1A1 전차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하고 포탄이 전차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적 전차 전면 장갑을 뚫는데 성공한 K1A1 전차의 포탄 즉, 날탄은 T―62 전차 내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T―62 전차 곳곳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확인한 고대영 중사가 남은 시간을 확인하려던 순간 아까보다는 약간 작은 충격이 K1A1 전차 포탑 전면을 중심으로 전차 전체에 전해졌다.
“저, 저 새끼 쏴! 대탄 장전!”
연기 항적을 따라 인근 건물 옥상에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고대영 중사는 이민채 하사에게 적이 있는 위치를 알려 주었고 이민채 하사는 적이 더 이상 RPG7을 발사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기 위해 동축 기관총 사격을 실시했다.
두두두두두둑!
K1A1 전차의 동축 기관총이 다시 불을 뿜었고 발사된 기관총탄들은 건물 위에서 새로운 RPG7을 꺼내 들어 K1A1 전차를 조준하고 있던 군인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걸레짝으로 변한 동료의 모습에 놀랐는지 주변 군인들은 급히 몸을 숙였지만 K1A1 전차의 표적이 된 이상 무사하긴 힘들었다.
“장전 완료!”
“쏴!”
K1A1 전차에서 발사된 대탄, 대전차 고폭탄은 적 병력 일부가 숨어 있는 인근 건물 옥상의 약간 아랫부분에 명중했는데 건물이 낡았는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붕괴되어 버렸다.
“후우.”
아무리 강력한 K1A1 전차라지만 비교적 얇은 상부 장갑에 RPG7을 맞는다면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포탑 전면에 RPG7이 맞은 것은 어떻게 보면 행운이 아니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던 고대영 중사는 AK 소총으로 K1A1 전차를 향해 무의미한 사격을 가해 오는 무장 저항 세력들을 동축 기관총으로 제압시키도록 명령하며 새로 나타날지도 모를 적 기갑 세력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K1A1 전차 정면 방향에 위치한 돌담을 무너뜨리며 나타난 T―62 전차 2대가 K1A1 전차의 전면을 향해 쇄도했다.
관측 장비로 적 전차의 포구를 직접 보게 된 고대영 중사는 문득 살고 싶다. 이 혼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다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 바람이 포격으로 인해 불안정해진 미확인 에너지 파장에 닿았는지 미확인 에너지 파장의 진폭이 격렬해졌고 인근에 있던 고대영 중사의 K1A1 전차를 뒤덮었다.
마치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는 것 같은 강렬한 빛이 주변 시가지를 환하게 비추고 K1A1 전차는 그 빛과 함께 증발되듯 사라졌다.
K1A1 전차를 향해 돌격하던 2대의 T―62 전차 포구에서 쏘아져 나온 포탄들은 K1A1 전차가 멈춰서 있던 빈 땅만 허무하게 헤집었다.
02. 산속의 우주 전함(1)
대한민국 경기도 산속
2673년 4월 3일 14:01
숲이 울창한 산속에는 푸른 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막색 도색을 한 K1A1 전차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움직임이 전혀 없던 K1A1 전차의 전차장 해치가 갑작스럽게 열리며 한 군인이 우뚝 솟아나왔고 그 군인은 반쯤 실성한 목소리로 악을 썼다.
“여긴 어디야!”
반쯤 실성한 목소리로 악을 쓴 군인, 고대영 중사의 목소리가 산 곳곳에 메아리쳤고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새들은 시끄러운 소음을 동반한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디냐 여긴?”
다시 전차 내로 기어들어 온 고대영 중사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K1A1 전차가 광채에 휩싸이자 고대영 중사는 적 전차에게 피격당한 줄 알았다. 약간 덜덜거리는 진동이 있은 후 전차장 조준기에 비춰진 것은 차리카 인근 지역의 시가지나 맹렬하게 달려들던 T―62 전차의 모습이 아니라 새가 평화롭게 지저귀고 있는 푸른 산속이었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볼 살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꼬집어 보던 고대영 중사는 꿈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설마 저승인가? 하고 기겁했다.
“흠.”
치열한 교전에서 급격히 치솟았던 아드레날린이 빠르게 식어 가자 4명의 군인들은 모두 진이 빠져 버렸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 전차 내부에는 잠시 동안 고요가 찾아왔는데 그 고요의 시간을 깨뜨린 것은 고대영 중사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이민채 하사였다.
“워프 아니겠습니까? 소설이나 만화 보시면…….”
“좀 닥치…….”
나불거리는 이민채 하사의 입을 꿰매 버릴지 아니면 주먹으로 터뜨려 버릴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고대영 중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 말이 무조건 틀리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하던 말을 도중에 멈췄다.
“3호 차입니다. 부댐, 부소댐 응답 바람.”
가장 먼저 통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전을 날렸지만 소대 통신망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자 고대영 중사는 파병 덕분에 단차 별로 얻을 수 있었던 GPS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GPS도 먹통이었다.
무전기와 GPS를 확인하느라 머릿속에 찾아온 혼란을 잠재 울 수 있었던 고대영 중사는 무전은 물론 GPS로 현재 위치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없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이것저것 뒤섞여 난잡해진 머릿속에 휴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상황 정리에 나섰다.
“자, 상황을 정리해 보자고. 우리는 분명 아프간 시가지에서 적과 교전 중이었는데 섬광과 함께 눈을 떠 보니 울창한 산림 속이다?”
자기가 말해도 어이가 없는지 의문형으로 말을 끝낸 고대영 중사는 더 이상 정리할 게 없었는지 입을 잠시 다물었고 그 덕분에 다시 찾아든 고요를 고대영 중사가 승무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침묵한 것이라 착각한 다른 군인들은 생각에 잠겼다.
몇 분의 시간이 흘러 본격적으로 입을 연 그들은 아프간에서 있었던 일은 제쳐 두고 지금 이곳이 어딘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펼쳤지만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조차 없는 그들이 정확한 결과를 도출 시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나무, 나무, 나무, 나무밖에 안 보입니다.”
“뭔가 한국의 스멜이 나지 않냐?”
멍하니 주변을 관찰하던 이민채 하사와 고대영 중사는 조준경에 잡히는 것이 나무밖에 없자 짜증이 치솟았다.
고대영 중사는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다시 전차장 해치를 열어 상체를 해치 밖으로 꺼냈다.
“응?”
전차 후방으로 고개를 돌린 고대영 중사는 내리막 길 끝자락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