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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3화)
02. 산속의 우주 전함(2)
중국 베이징 암시장
2673년 4월 2일 23:59
본격적인 우주 시대가 도래한 지 5세기가 지난 27세기. 겉으로 보기에 세계는 평화로운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비밀리에 불법 무기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특정 무기를 소유할 수 없는 국가, 단체, 반군, 해적 등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개적인 루트로 무기를 구매할 수 없다.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이 암시장. 그곳은 나사부터 시작해 전투기지까지 거래 안 하는 것이 없는 불법 세력들의 천국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암시장은 불법 무기를 거래하기 위해 암시장으로 찾아온 인원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뒤섞여 북적거렸고 그러던 도중 70만 톤급 최신형 우주 전함이 거래 목록에 올라왔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10명의 우주 해적에게 둘러싸인 승합차 안에는 꿰뚫는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두 남성이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한 중년의 남자가 길에서 마주치면 10초도 안 되 잊어버릴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에게 커다란 가방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흠, 전함 거래 계약금이오.”
그 가방을 건네받은 젊은 남자는 가방 내용물을 슬쩍 살펴본 뒤 희미하게 웃었다.
“후후, 확실합니다. 이래서 당신네들이 좋습니다.”
흡족하다는 평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던 중년의 남자는 시간이 아까운지 오히려 짜증 내는 말투로 본론에 들어갔다.
“거래 장소나 말하시오.”
“장소는 대한민국 경기도 산골입니다. 여기 쪽지에 자세한 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넓은 우주를 놔두고 굳이 좁은 지구를 암거래 상인이 거래 장소로 결정한 이유는 최근 불법 무기 거래에 대해 많은 강대국들이 의견을 조율하였고 정보기관들과 인터폴은 그동안 감시하던 우주 구역을 3배 가까이 늘려 버린 탓이다.
3배 가까이 감시 구역을 늘리자 암거래를 할 거래 장소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그러던 차에 등장 밑이 어둡다는 생각에 거래 장소가 지구로 정해졌다.
거래 행성은 정해졌지만 딱히 거래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암거래 상인은 예전에 지구에 복무 중인 어떤 미 우주군 장성에게 뒷돈을 많이 먹였던 사실을 떠올리고 그를 기반으로 하여 거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암거래 상인은 한국이 제3국에게 침공을 받게 될 경우 한미방위조약에 의거, 미 우주군이 한국에 전투함을 파견해 지원하는 도중 생길 수 있는 상황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미 우주군의 전투함을 한국 경기도에 파견하고 경기도 일부 구역을 훈련 장소로 정한다는 시나리오를 작성해 뇌물이라면 좋아 죽는 미 우주군의 어느 높은 장성에게 돈과 함께 시나리오를 넘겼다.
3일 뒤 미 우주군 장성으로부터 암거래 상인의 시나리오대로 훈련 일정이 정해졌다는 통보가 왔다. 중요한 것은 훈련구역으로 정해진 곳에는 거래될 최신형 우주 전함이 배달될 것이고 경기도에 위치한 구역에 훈련을 명목으로 대한민국 영공에 진입할 미 우주군 전투함정들은 껍데기만 미군인 우주 해적들의 전투함정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젊은 남자는 품속에서 작은 쪽지를 중년의 남자에게 건넸다.
“표시된 좌표에 전함을 배달하겠습니다. 14:00에 전함을 배달하고 10분 내로 모든 인원을 철수시키겠습니다. 14:10부터 15:30까지가 함장 맞이 모드 작동 시간입니다. 이점 유의하십시오.”
함장 맞이 모드는 전함에 존재하는 5가지 함장 결정 시스템 중 하나로 불법 거래 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드다.
아무도 없는 전투함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자가 함의 지휘권자, 즉, 함장이 된다는 모드인데 이번에 거래될 전함에는 일반적인 함장 맞이 모드에 구매자의 요구가 추가로 수용되어 일반적인 함장 모드와는 많이 달라졌다.
구매자 측인 해적의 요구는 간단했다. 함장이 결정되면 함이 폐기될 때까지 한 명의 함장만 인식할 것. 충성과는 거리가 먼 해적들은 적어도 기계만은 자신들에게 충성하길 바랐다.
“알았네.”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젊은 남자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사정이 생겨 전함을 가져가지 못하실 경우에는 저희가 다른 장소를 재물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좋은 거래가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두 남자는 서로 가식 섞인 미소를 지으며 악수했다.
대한민국 경기도 산속
2673년 4월 3일 14:16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고 있는 경기도 산속에서 숲과는 이질적인 색채가 강하게 풍겨 오는 사막색 전차가 나무들을 박살 내 버릴 듯,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무들을 간간이 박살 내며 내달리고 있었다.
기존의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전차는 얼마 안 가 멈춰 섰다.
“저건 또 뭐냐?”
전차장 고대영 중사는 조준경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차장 해치를 열고 나왔다. 그런 그의 눈에 비춰진 것은 생뚱맞게도 거대한 우주 전함이었다.
SF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거대한 우주 전함의 위용에 모두가 넋이 나갔고 K1A1 전차 승무원 네 명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권총을 챙겨 전차에서 내려왔다.
한동안 전함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들은 처음에는 아프간에서 교전을 치루고 다음에는 빛과 함께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하더니 마지막에는 뜬금없이 우주 전함이 나타나자 안 그래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저게 뭐냐고!”
고대영 중사의 외침에 또 다시 많은 수의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하.”
거대한 자태를 뽐내는 우주 전함을 보며 고대영 중사가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를 냈고 드디어 전차장이 맛이 갔어! 라고 마음속으로 외친 이민채 하사는 불안한지 바들바들 떨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 전차장님?”
“닥치고 저게 뭐냐고.”
친절하게 고대영 중사가 묻자 잠시 머리를 굴려 보던 이민채 하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평소에는 저건 우주 전함이라능! 취향 존중해 달라능! 이라고 장난이라도 쳤겠습니다만 저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입니다.”
애니메이션과 장르 소설 매니아이기도 한 이민채 하사가 덧붙여 판타지나 SF의 세계로 차원 이동이라도 한 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라고 말을 덧붙여 볼까 했다가 괜히 뒤통수라도 한 대 맞으면 자기만 손해였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왜 우리가 이 산속에 있는지 만이라도 누가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근데 진짜 저게 뭐냐? 전함? 건물? 외계인의 우주선?”
되는 대로 나불거리다 갑자기 떠오른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자 고대영 중사는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말을 멈췄다.
뒤에서 멍 때리고 있던 조종수 김대국 상병과 장전수 전이석 일병 중 전이석 일병이 앞에 있는 물체에 대한 호기심을 단숨에 해소시켜 줄 수도 있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들어가 보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대영 중사가 이죽거렸다.
“그래? 그렇다면 의견 낸 사람이 앞장서야겠지?”
예상 못했던 받아치기에 전이석 일병은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두 사내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민채 하사는 뭔가 재미난 이야기라도 떠올랐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전차장님, 전차장님이 이럴 때는 이렇게 한다! 하시면서 멋지게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개새…….”
왠지 앞장섰다가 피똥을 쌀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 전이석 일병은 이민채 하사의 의견에 절대적인 찬성 의지를 표출했다.
“찬성이지 말입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가만히 있던 김대국 상병마저 잽싸게 이민채 하사 편을 들자 고대영 중사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새끼들 천잰데? 그래 알았다. 그런데 이럴 때만 너희들의 합동 전술이 빛을 발하는구나. 개새끼들아.”
장난으로 던진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오자 툴툴대며 특정 상황에서만 합동 전술이 뛰어난 강아지들을 꼬리에 달고 앞장서 걷던 고대영 중사는 우주 전함에서 분리되어 지상에 내려온 안착 다리 중 입구로 예상되는 뭔가가 위치해 있는 다리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 보려 했다.
“근데 손잡이가 어디에 있냐?”
삐삑!
고대영 중사의 말을 인식한 출입구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렸고 예고도 없이 열린 출입문에 약간 움찔한 고대영 중사는 움찔한 것이 민망해 고개를 돌려 특정 상황에만 합동 전술이 뛰어난 강아지들 중 이민채 하사를 강하게 노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문 내부로 펼쳐진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처럼 다른 일행들도 고대영 중사를 따라 통로로 들어왔다.
삐잉―! 삐잉―!
“헙!”
잔뜩 긴장한 채로 통로를 걷고 있던 고대영 중사는 갑자기 울린 사이렌 소리에 빠르게 총구를 높이 들어 사주경계를 실시했고 나머지 3명은 그 틈을 타 최선을 다해 통로 밖으로 도망쳤다.
“이 자식들이! 특히 이민채 너 이 개새끼!”
“왜 하필 “특히” 접니까? 전차장님도 따라 나오실 줄 알았습…….”
이민채 하사는 시키는 것은 잘하지만 약간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덕분에 평소 고대영 중사에게 많이 갈굼을 받았고 고대영 중사는 제 버릇 남 못 주는지 자기도 모르게 이민채 하사를 갈굼의 대상으로 버럭 소리쳤다.
이를 바득바득 갈긴 했지만 더 이상 이민채 하사를 갈구지는 않던 고대영 중사는 적색등으로 밝혀진 통로 내부를 쭉 훑어보았다.
그런데 시끄럽게 울리던 사이렌 소리가 갑자기 울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무런 예고 없이 사이렌 소리와 적색등이 한꺼번에 꺼지고 환한 백색 조명이 통로를 비추었다.
군인들의 시야에 적색등으로 인한 붉은 기운이 없어지고 조명의 하얀 기운만이 그들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무렵 통로 사방에서 기계음으로 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본 함은 K―20 모델로 27세기 우주 전함의 동급 기관 중 가장 강력한 기관과 최신형 무기를 탑재한…….
“음?”
뜬금없이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고대영 중사는 통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의 11세대, 전함으로 분류되는 대형 우주 전투함입니다. 설정에 따라 처음 본 함과 접촉하신 귀하께서는 현 시간부로 함 내 최고 명령권자, 함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함 명을 정해 주십시오.
함 명을 정해 달라는 말이 끝난 직후 고대영 중사를 중심으로 전함의 제원과 각종 정보가 빼곡하게 홀로그램으로 펼쳐졌다.
무슨 개소리세요? 라고 반문하려던 고대영 중사는 방대한 양의 홀로그램에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엄청난 양의 홀로그램이 이렇게 깔끔하게 공중에 재생되는 과학 기술력을 고대영 중사는 21세기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
홀로그램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훑어보던 그는 복잡했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간에서의 빛.”
‘아프가니스탄에 우리가 파병된 이유는 미확인 에너지 파장 때문. 미확인 에너지 파장은 충격과 진동에 약해 쉽게 불안정해진다. 우리가 아프간에서 적과 교전을 치를 때 생긴 충격과 진동으로 에너지 파장은 극히 불안정해졌고 그 에너지 파장에 이상 현상이 발생해 K1A1 전차를 덮쳤다?’
“워프.”
‘이민채 하사는 농담으로 아프간에서 이곳으로 워프된 것이 아니냐고 했는데 우주 전함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27세기. 그 빛으로 인해 우리가 단순히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시간 이동”을 했다면?’
“우주 전함.”
‘우주 전함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우주 전함이 실존하는 미래로 왔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기는 하는데, 흠.’
고대영 중사는 이민채 하사만큼은 아니지만 심심할 때 대여점에서 여러 장르의 소설을 빌려 보기도 했던 터라 그렇게 고지식하거나 꽉 막힌 사고방식을 지닌 군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