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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4화)
02. 산속의 우주 전함(3)
하지만 그 역시 일반 상식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보통 사람인만큼 미래로 왔다는 것을 이성은 반대, 감성은 찬성하고 있어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세 가지 퍼즐을 끼워 맞춘 것에 일정 부분 만족한 그는 지금 생각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전함에게 물어보면 해결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뭐 이건 그냥 가설 정도겠지만… 흠. 일단 질문 좀 할게.”
―알겠습니다. 함장님.
가장 먼저 지금이 몇 년도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물어본 고대영 중사는 이후 이것저것 많은 대화를 슈퍼컴퓨터와 나누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살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군.”
대화 도중 자신을 슈퍼컴퓨터라 소개한 전함의 메인 컴퓨터는 반쯤 넋이 나간 고대영 중사에게 확신을 심어 주는 결정타를 날렸다.
―그렇습니다. 함장님.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나 괴로워해야 하나 고민하던 고대영 중사는 지금이 2673년이고 그가 서 있는 장소가 대한민국의 경기도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혹시 우리에 대한 실종 기록 같은 것도 알아볼 수 있나?”
고대영 중사는 우주 전함이 만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높은 정보 수집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어봤는데 의외로 슈퍼컴퓨터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정보를 알아냈다.
―군 내부 기록에 의하면 2011년 5월 2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북동쪽 56km 파르완 주의 오쉬노 부대 인근 시가지에서 전 대한민국 육군 XX 기갑 여단 2대대 1중대 1소대 소속, 당시 오쉬노 부대 비공개 레벨 4의 추가 파병군 병력 소속 기갑 1소대 3호 차량이 승차 인원과 함께 실종 처리되었습니다.
“실종 처리되었군. 이후 오쉬노 부대는 어떻게 됐어?”
시무룩해진 고대영 중사의 물음에 이번에도 슈퍼컴퓨터는 친절하게 답했다.
―16:10에 도착한 미군의 지원 병력과 합세해 적의 공세를 막아 낸 오쉬노 부대는 17:00에 파르완 주에서 전원 철수했습니다. 당시 한국군 피해자는 전사자 0명, 실종자 4명, 중상자 17명, 경상자 56명…….
아무도 죽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한 고대영 중사는 천장을 보며 약간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런 정보들은 어디서 구하냐?”
―함의 해킹 능력은 함의 슈퍼컴퓨터 성능에 영향을 받습니다. 현재 본 함의 슈퍼컴퓨터는 상당히 우수한 편이기는 합니다만 대한민국 국방부 중앙 서버를 해킹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보안 대상이 낮은 폐기 처분 전의 자료들은 3정보 수준의 해킹 프로그램으로도 충분히 정보 습득을 위한…….
“그래.”
슈퍼컴퓨터의 설명에 대답하는 고대영 중사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고대영 중사와 슈퍼컴퓨터 간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나머지 3명의 군인들은 그간 대화를 깔끔하게 머릿속에 정리한 고대영 중사가 예상했고 결국에는 적중한 것 같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일행들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직접 그 이야기를 듣게 되니 와 닿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정리해 보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03. 27세기에서의 첫 교전(1)
대한민국 경기도 산속
우주 전함 착륙 제2구역
2673년 4월 3일 14:40
모든 것이 철제로 이루어진 차디찬 통로 안에는 고대영 중사의 일행들이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삐잉―! 빠잉―!
통로에 또 다시 시끄러운 경고음과 적색등이 켜졌고 그 광경이 이제는 신물이 나는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대영 중사가 슈퍼컴퓨터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또 뭐냐?”
―반경 90km 내에 우주 순양함 2척이 본 함을 향해 접근 중입니다. 두 표적에 목표 1, 목표 2를 부여합니다.
새로운 전투함의 출현에 고대영 중사는 한국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얼굴이 약간 펴졌다.
“어디 순양함들이야?”
―미등록 전투함정입니다.
“미등록?”
시끄럽게 울리던 경고음이 증폭되었고 적색등의 점멸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뭔가 일이 꼬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고대영 중사는 일단 지금 일을 처리하고 이후에 대해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우선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그럼 질문을 바꾸지. 아군이야 적군이야? 난 여기 상황을 잘 모른다고.”
―미등록 전투함정 2척입니다. 대한민국 영공 통제 서버에서는 미 우주군 순양함 2척이라 표시되어 있습니다만 단독 관측 결과 미등록 불법 무기가 대량으로 장착되어 있는 불법 전투함으로 판단됩니다.
“불법 전투함정?”
27세기에 대해서는 현지 유치원생보다도 지식이 모자란 고대영 중사는 설명을 들으며 모르는 부분에 대해 물었고 슈퍼컴퓨터는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불법 전투함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도난 전투함정 및 국제 함선 등록 센터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불법 건조 전투함을 일컫습니다. 목표 1, 목표 2의 함선 구조 패턴을 데이터 베이스에 조회한 결과 현재 우주군에 사용되지 않는 불법 무기를 비롯, 불법 전투함정 특유의 불안정한 함체 패턴과 71.2%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종합 관측 결과로는 우주 해적 전투함정일 가능성이 77.4%…….
“우주 해적?”
―약탈 및 불법 침략 등 국제 법을 위반하는 불법 군대, 단체 등을 일컫습니다.
“그렇다면…….”
슈퍼컴퓨터의 설명을 들으며 고대영 중사는 쉬고 있던 두뇌를 활성화시켰다.
전함에 들어올 때까지의 기억, 전함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있었던 기억에 대해 정리해 보기 위해 고대영 중사는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슈퍼컴퓨터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자, 일단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보자면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날아왔고 우연히 이 전함을 만났다. 그런데 이 전함에는 주인이 없었고 가장 처음 이 전함에 들어온 내가 함장 뭐시기 모드인가 뭔가로 인해 이 전함의 함장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적절하게 맞장구 쳐주는 슈퍼컴퓨터에게 씁쓸한 듯한 표정을 지은 고대영 중사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함장이 된 이후 미 우주군 전투함정으로 위장한 해적 순양함 두 척이 접근한다? 몹시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통계상 제3국가를 속여 암거래를 행하는 불법 단체들은 불법 단체의 약 30%가량으로 흔합니다. 지금도 같은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복잡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슈퍼컴퓨터와 대화를 나누던 고대영 중사는 지금까지 습득한 정보로 종합적인 결론에 도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불길한 예감이 정확하게 적중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흠.”
갑자기 미래로 왔다는 것에 눈 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막막해진 고대영 중사였지만 그렇다고 우주 해적에게 잡혀 몹쓸 짓을 당해도 괜찮다고 만사 포기한 상태는 아니었다.
살고 봐야 과거로 돌아가든 아니면 다른 대책을 강구하든 발악이라도 할 수 있었기에 일단 지금은 살길부터 모색하기로 했다.
“똥 됐지 싶어. 우리는 암거래를 방해했고, 옛날 마피아 영화 스토리 대로라면 난 이마에 총알 구멍 나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려나? 이민채!”
“옙!”
자신들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라고 생각될 정도로 오랫동안 슈퍼컴퓨터와 단둘이 대화를 하고 있던 고대영 중사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중 하나인 이민채 하사는 화들짝 놀랐다.
“니들 머리에 똥만 찬 게 아니라면 대강 상황 파악되지? 죽기 싫으면 순양함인가 뭔가 두 마리가 뭔 짓 꾸미기 전에 우리가 먼저 수를 써야 한다. 먼저 우리 전차부터 전함에 수용해.”
“잘못 들었…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잔말 말고 뛰어!”
대답하며 잠시 뜸을 들이던 이민채 하사는 어깨 위에 얹어 놓은 것이 단순히 돌이 아니라 머리라는 것을 증명하듯 고대영 중사의 말을 이해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이민채 하사는 김대국 상병, 전이석 일병을 데리고 통로 밖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통로를 빠져나가는 부하 군인 3명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고대영 중사는 시선을 통로 천장으로 옮겼다.
“난 이 시대 사람이 아니니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거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봐. 전차부터.”
―함장의 권한을 확정 및 발효하기 위해서는 함 명을 명명해 주셔야 합니다.
전함에 함 명을 지어 주는 것은 계약서에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이었기에 슈퍼컴퓨터는 좀 뜬금없었지만 그 중요한 일에 대해 짚고 넘어갔다.
긴박한 상황에서 함 명 따위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전함의 이름을 몇 초 생각하지도 않고 내뱉었다.
“대한민국으로 해 둬. 그보다 전차를 수용할 수 있는 장소는?”
전함 외부에 있는 K1A1 전차와 부하들을 수용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가 묻자 슈퍼컴퓨터는 메인 메모리에 대한민국이라는 함 명을 새겨 넣느라 몇 초간 대답을 지체했다.
―함명 기록 완료. 제1격납고 출입구는 추가 조작 없이 메인 컴퓨터의 명령으로 자동 개방이 가능합니다. 함 내 승조원이 없어 “전차”의 기동 없이는 자동 수용이 불가능합니다만 “전차”라는 물체가 자력 기동이 가능하다면 격납고 내부로 진입시켜 수용하면 됩니다.
“알았어. 밖에 있는 녀석들에게 수용 방법에 대해 설명이 가능한가?”
수용 방법도 알려 주지 않고 부하들을 다짜고짜 쫓아낸 것이 조금 찝찝해진 고대영 중사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함외 방송을 통해 설명이 가능합니다. 원활한 함 지휘를 위해 중앙사령실로 이동해 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중앙사령실?”
슈퍼컴퓨터는 고대영 중사의 질문에 중앙사령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중앙사령실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본 함은 함장님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현 상황에서 목표 1과 목표 2는 함장님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라 함장님은 목표 1, 목표 2에 대해 무력 대응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권고합니다. 본 함은 국가에 함 내 모든 권한이 귀속된 전투함정이 아니므로 교전권 부여 및 함 내 무기 사용 절차는 모두 생략됩…….
“선방부터 갈기고 보라는 말이냐?”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때 함장님이 살해될 가능성은 99.1% 살해 동기는 불법 거래 방해입니다.
“내가 죽는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단다. 아이고.”
골치 아프다는 듯 쓰고 있던 베레모를 벗어 머리를 벅벅 긁던 고대영 중사는 슈퍼컴퓨터가 함장을 중앙사령실로 인도해 주기 위해 생성한 붉은 선을 따라 뛰었다.
고대영 중사는 27세기 교전 지식이 전무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많은 교전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중앙사령실로 뛰면서도 슈퍼컴퓨터에게 계속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대한민국 경기도 산속
대한민국함 제1격납고 인근
2673년, 4월 3일 14:50
구우웅!
“뭐가 뭔지 복잡해 죽겠네!”
이민채 하사의 말이 인터폰을 통해 들려 왔지만 김대국 상병은 대꾸하지 않고 전이석 일병의 손짓에 맞춰 제1격납고 내부로 전차를 진입시키는 일에 열중했다.
2분 전 함 외부 방송으로 제1격납고의 위치와 수용 방법에 대해 전해 들었던 터라 고대영 중사의 명령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본 함은 30초 후 이륙합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본 함 “대한민국” 함은 20초 후 이륙합니다.
다시 들려온 방송, 정확히 말하자면 이륙에 관한 경고 방송을 듣게 된 이민채 하사 일행은 서둘러 K1A1 전차를 제1격납고 내부로 수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