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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5화)
03. 27세기에서의 첫 교전(2)
대한민국 경기도 산속
우주 해적 전함 패든함 중앙사령실
2673년, 4월 3일 14:51
“저것이 최신형 전함인… 후후.”
대한민국함에서 우주 해적의 전투함정으로 판명 났던 두 척의 동급 순양함 중, 후방에서 기동 중이던 50만 톤급 순양함 패든함의 함장 제니퍼 넬슨 함장은 중앙 모니터를 통해 이번에 거래가 성사된 최신형 함의 자태를 보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는 이번에 새로 해적 전력에 추가될 전함의 화력을 상상하며 흡족해 있는 상태였는데 지상에 착지 되어 있는 우주 전함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에 최신형 전함이 이륙하는 장면이 포착되자 제니퍼 넬슨 함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무슨 일이냐!”
“이번에 인수할 우주 전함이 기동을 개시! 주 함포, 부 함포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놀란 것은 제니퍼 넬슨 함장만이 아니었다. 부하들 역시 이번에 거래하기로 한 전함이 갑작스레 이륙하자 깜짝 놀랐다.
“뭐라고?!”
“우주 전함의 활성화된 모든 함포가 힐턴함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고합니다! 우주 전… 적의 목표는 힐턴함!”
“전투배치! 힐턴함에!”
힐턴함 역시 50만 톤급 순양함으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데리고 왔던 두 척의 순양함 규모의 우주 전투함 중 한 척이다.
부하의 말을 풀어 놓자면 순양함 힐턴함이 현재 인수하기로 되어 있는 최신형 전함의 모든 주 함포와 부 함포에 조준되어 있다는 말인데 간단하게 말해 최신형 함이 힐턴함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니퍼 넬슨 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신형 함의 좌현과 함 상부에 장착된 3개의 부 함포 그리고 최신형 함 상부에 장착된 가장 큰 함포인 주 함포에서 밝은 빛줄기들이 쏘아져 나가 힐턴함의 주 기관 구역에 작렬했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고 힐턴함이 대한민국함에게 함 하부를 모두 드러내고 있었기에 쏘아진 빛줄기들은 최신형 전함이 원하는 목표인 주 기관 구역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 공격으로 주 기관을 잃고 추진 및 반 중력 장치에 수월한 에너지 공급을 못하게 된 힐턴함은 지상으로 곤두박질쳤고 지상과 충돌하며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힐턴함은 무지막지한 빛과 함께 함 전체가 주 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연쇄 폭발에 휘말려 버렸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함장은 이번에 우주 전함을 거래했던 암거래 상인이 자신이 속한 우주 해적과는 적대되는 다른 해적이나 세력에 연루되었다고 의심했고 잠시 후 그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적 해적의 음모에 빠져 버렸다고 생각한 제니퍼 넬슨 함장은 잔뜩 화를 내며 명령했다.
“모든 병기 사용을 허가! 반격하라!”
“한국 측에 보낸 훈련 일정 중에는 함포사격 일정이 없었습니다! 한국이 움직이기 전에 도망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 영공 통제 센터에서 함포사격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멍청한 놈! 도망가다 빔 맞아 죽으면? 그리고 도망간다고 한국군이 못 따라올 것 같나? 차라리 적함을 격침시키고 나서 한국에는 대충 둘러대고 튀는 게 나아! 영공에 진입할 때 뭐라고 하지 않았으니 나갈 때도 붙잡지는 않겠지. 함포사격 개시!”
제니퍼 넬슨 함장은 그렇게 화난 목소리로 명령하며 대함미사일을 챙겨 오지 않은 것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
암거래 상인은 한국 측에 보낸 훈련 일정 중에는 실 사격 훈련이 없기 때문에 대함미사일을 장착하고 가지 말라고 권고했다.
대함미사일을 탑재하게 되면 한국군이 의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제니퍼 넬슨 함장은 암거래 상인의 권고대로 대함미사일을 장착해 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제니퍼 넬슨 함장은 이번에 인수하려 했던 전함에도 대함미사일이 장착되지 않은 듯, 대함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직접 함포사격으로 공격해 오는 것을 보며 묘한 안도감에 휩싸였다.
“적은 최신형 전함이다! 장거리 포격으로는 승산 없어! 바닥에 바짝 붙어 돌격해!”
순양함 하부를 적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순양함을 지상에 가까이 붙인 제니퍼 넬슨 함장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외쳤다.
“돌격해서 적함과의 접촉 부위에 강제 도킹을 실시해! 한 번 빼앗아 보자 이거야!”
함장의 외침에 다른 부하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갔다.
대한민국 경기도 산속
대한민국함 중앙사령실
2673년 4월 3일 14:55
광활하다 싶을 정도로 넒은 규모를 자랑하는 중앙사령실에는 승조원들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가 한 곳을 제외하고 텅 비어 있었다. 유일하게 사람이 앉아 있는 곳은 중앙사령실 중앙에 위치한 함장석뿐이었다.
함장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현재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정확히 정면에 위치해 있는 초대형 모니터, 즉, 중앙 모니터를 바라보며 침을 소리 내어 삼키고 있었다.
삐잉―! 삐잉―!
―목표 2가 본 함을 향해 모든 함포를 조준했습니다.
―목표 2의 모든 함포가 활성화! 사격 준비 중!
―함포사격을 위한 예비 에너지가 없습니다. 주 기관과 연동하여 재충전에 들어갑니다.
슈퍼컴퓨터가 실시간으로 알려 주는 정보에 고대영 중사는 슈퍼컴퓨터에게 고막이 있다면 그 고막을 터뜨려 버릴 기세로 외쳤다.
“젠장! 함수는 왜 이렇게 느리게 돌아가는 거야? 빨리 이동해!”
고대영 중사는 중앙사령실에 도착하자마자 목표 1이라는 적 순양함을 목표로 사격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단 한 번의 포격으로 적 순양함이 격침시켜 그 순양함에 탑승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였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마치 현실 같은 퀄리티의 우주 전쟁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지만 고대영 중사가 그렇다고 사람을 죽였다는 것 자체를 자각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대영 중사는 21세기에서 적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고된 훈련을 받아 왔던 군인으로써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 봤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아프가니스탄 교전에서 직접 사람을 죽여 본 적도 있었기에 사람을 죽인다는 감각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인권 보호에 열을 올리는 운동가가 아닌 것은 물론 성인군자도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자신도 그에 똑같이 대응한다. 라는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이다. 자신의 생명만 소중한 줄 알지 상대방의 생명은 우습게 보는 적에게 크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고대영 중사는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그 어떠한 것으로도 정당화시킬 수 없다.
죽임당한 존재가 아무리 질 나쁘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존재라 하더라도 사람의 목숨이란 귀중한 것이고 그런 생명을 빼앗았다는 것에 고대영 중사의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진 것은 군인이기 이전에 고대영 중사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살기 위해서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고대영 중사에 의해 “대한민국”이라 명명된 우주 전함 대한민국함은 사각에 가려 적함을 공격할 수 없었던 부 함포들까지 직접 공격에 참여시키기 위해 공중에서 함체를 돌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27세기의 모든 전투함정들은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어 최소의 인원으로도 작전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21세기 거대한 전투함정 중 하나인 약 10만 톤급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5,680명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는데 반해 27세기의 10만 톤급 우주 전투함의 경우 500명 미만의 인원으로 운용된다.
최신형 우주 전투함정의 경우 함장 같은 주요 지휘부만 탑승해도 단순 기동 및 단순 공격 정도는 수행 가능한데 물론 그렇게 되면 효율적인 전투 작전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실전에는 투입할 수 없다.
여기서 ‘항공모함은 전투기를 탑재하기 때문에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27세기의 우주 전투함정들 역시 항공모함과 마찬가지로 그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 전투기를 탑재한다.
우주 전투함의 크기에 따라 탑재 전투기의 수만 차이가 있을 뿐 항모처럼 전투기를 운용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어 있는 27세기의 우주 전투함이라 해도 사람의 손을 직접 닿아야 제대로 작동하는 부분이 존재하고 효율적인 전투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승조원이 탑승해야 제대로 된 전투함정의 운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대한민국함은 승조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제대로 된 기술적인 조율을 받지 못한데다 지구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던 터라 거대한 몸체의 대한민국함은 함수를 돌리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함포 에너지 충전 소요 시간은 앞으로 30초! 목표 2, 본 함을 목표로 사격을 개시합니다!
적함을 촬영하여 투영하고 있던 중앙사령실의 중앙 모니터가 적함에서 발사된 이상한 빛에 초점을 잃었고 초점을 잃은 순간 대한민국함은 거센 충격에 휘말렸다. 파괴음을 동반한 엄청난 충격파가 대한민국함을 한차례 쓸고 지나간 직후 중앙 모니터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함체 파손율 5.7% 좌현 F―04 구역부터 I―10구역까지의 모든 제1장갑이 대파! 부 함포 1기 반파!
―적함 지속 접근 중!
―함포 에너지 충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복잡한 보고 중 자신이 원한 보고를 듣게 된 고대영 중사는 빠른 목소리로 짤막하게 명령했다.
“사격 실시! 쏴!”
―발사합니다.
중앙 모니터에는 대한민국함의 주 함포와 부 함포들에서 발사된 빔들이 작렬하는 적함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고 있었는데 그렇게 빔에 많이 얻어맞고도 적함은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가속하며 대한민국함으로 접근해 왔다.
―적함과의 거리 3km! 본 함과 충돌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고대영 중사는 중앙 모니터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적함은 대한민국함이 좌측으로 회두하려 하자 대한민국함의 우현에 위치한 부 함포들에게 사격을 받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함이 회두하는 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함체를 틀어 접근하고 있었다.
―충격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적함의 함수와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구역은 제1격납고 구역입니다.
“잠깐! 악! 안 돼! 당장 애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켜!”
―시간이 부족…….
쿠우우우우!
물리적 충돌로 인해 대한민국함은 찢겨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요동쳤고 고대영 중사는 거센 충격에 몸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부하 3명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런지 강력한 충격파에도 정신만은 멀쩡했다.
“윽!”
―치치칙! 제1격납고 출입구 파손. 제1격납고 외부 제1장갑이 대파되었습니다. 적함과의 충돌로 인한 고도 변경을 막기 위해 함의 기동을 강제로 정지합니다.
―화재 구역 발생! 제1격납…….
적함과의 충돌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고 그 때문인지 슈퍼컴퓨터의 목소리에는 아주 조금 잡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고대영 중사는 함의 상태보다 부하들의 안전이 더 급했다.
“내 부하들은 어떻게 됐어! 당장 말해!”
고대영 중사는 그렇게 울부짖으며 우주 전함 방향으로 전차를 이끌고 온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로써는 대한민국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동안 자신의 속을 많이 썩였던 부하들이었지만 고대영 중사에게는 자식만큼 소중한 부하들이었다.
―제1격납고의 에너지 공급이 모두 차단되어 제1격납고 시설의 91%가 사용 불가능해졌습니다. 현재 제1격납고의 에너지 공급 수치는 9.09%미만. 제1격납고의 추가 피해 상황은 내부 주요 회선이 모두 단선되어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전차”가 제1격납고 내부 구역인 Z―01 구역에 수용되었기 때문에 3명의 생존 가능성은 79.11%로 높다고 판단됩니다.
“산 거야 죽은 거야! 넌 함의 통제 컴퓨터라며? 어떻게든 알아봐!”
부하들의 걱정에 얼굴이 뒤틀릴 대로 뒤틀어진 고대영 중사에게 슈퍼컴퓨터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불가능합니다. 함장님. 더 이상 자세한 정보 수집이 불가능합니다.
“썅! 도대체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주먹을 꽉 주고 격정에 부들부들 떨던 고대영 중사에게 슈퍼컴퓨터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보고했다.
―음성 방송 시스템은 정상 작동하고 있습니다. 제1격납고 내부로 방송이 가능합니다. 종합 피해 확인 결과 제1격납고의 함 내부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를 비롯하여 제1격납고 출입구 사용이 불가능, 제1격납고 내부의 조명 시설, 생명 유지 시스템, 중력…….
“방송이 가능하다고?”
―예, 그렇습니다. 함장님. 적함에서 강제 도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목표 도킹 구역은 제1격납고입니다. 적의 침투 부대가 제1격납고로 향하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의 말에 고대영 중사는 일단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살아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 상황을 빨리 전해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방송은 어떻게 해?!”
―제1격납고 함 내 방송 시작합니다. 말씀하시면 됩니다.
“전차장이다! 함의 상태 때문에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있을 것으로 믿고 전달한다! 우주 해적 침투 부대가 니들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하니 다 쓸어 버려! 그리고 반드시 살아라! 죽지 마라!”
―수신을 끝냈습니다. 소화 시스템 작동이 불가능한 구역은 진공 소화법으로 소화를 개시합니다.
“으으!”
함장석의 손잡이를 주먹으로 내려치던 고대영 중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