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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8화)
04. 일주일간의 휴가 그리고 다짐(2)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작전사령관실
4월 4일 18:30

작전사령부 최상층, 중앙에 위치한 작전사령관실의 출입문이 위아래로 열리고 21세기 대한민국 육군 전투복을 입고 기갑 베레모를 쓴 중사 계급의 한 군인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작전사령관실에 들어섰다.
“충성! 중사 고대영!”
육군과 우주군은 서로 다른 군이지만 우주군에 임시로 배속되어 있는 만큼 고대영에게 작전사령관은 상관을 넘어 신과 같은 존재였고 조금이라도 실수할까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왔나? 거기 편하게 앉게.”
책상 의자에 편히 앉아 있던 문대진 대장은 왼손으로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를 가르켰고 고대영 중사는 군말 없이 따랐다.
“내용은 대강 보고받았지?”
“확실히 보고받았습니다!”
경기도에서 한차례 교전을 치른 고대영 중사 일행은 이후 대한민국 우주군 작전사령부 건물에 옮겨져 조사 및 신원 확인을 위한 절차를 모두 끝마친 뒤 작전사령부에 붙어 있는 군 숙소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 중 고대영 중사 일행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써는 전무하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해 있을 때 작전사령관의 호출이 있었고 그들의 대장격인 고대영 중사가 호출에 응했다.
“그렇게 얼어 있지 않아도 되네, 편히 있어.”
“예!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였고 표정도 딱 군인의 포스가 풍겼지만 작전사령관은 고대영 중사의 표정에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슬픈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자네들이 과거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에 유감을 표하네. 힘내도록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지금 직면한 중요한 문제겠지?”
“그렇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작전사령관은 따라 일어서려는 고대영 중사에게 일어서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는 상당히 느린 걸음걸이로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지를 노려보듯 바라보던 작전사령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27세기라네. 전산상으로 자네들의 복무 기간은 모두 끝났네. 몇 주간 27세기 적응 교육을 받고 군에서 떠나도 좋네. 물론 정착 지원금은 지급해 줄 생각이야. 그런데 반대로 계속 군에 있는다는 방법도 있지.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이미 그에 대해 다른 군인들과 상의를 끝마친 상황이었기에 고대영 중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적응 교육을 받고 사제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그 교육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표면적인 내용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에서도 그랬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녹록하게 볼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군 생활을 계속하면서 차근차근 정해 나갈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문제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는 분위기가 풍겨 오는 고대영 중사의 말에 문대진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계속 군 복무를 하겠다는 것이군. 자네들을 먼저 발견했고 이번 일을 모두 담당하게 된 우리 우주군 입장에서는 자네들이 우주군에 배속되었으면 한다네. 자네들이라면 육군 출신이니 육군으로 배속되었으면 하겠지만 21세기 육군과 27세기 육군은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 다르네.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모든 기밀 사항을 알고 그에 배려해 주는 우주군이 편하지 않겠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자동으로 육군에 배속될 줄 알았던 고대영 중사는 우주군으로 오라는 문대진 대장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자네들이 가져온 전함 덕분에 일이 좀 더 복잡해졌어. 평생 자네만을 함장으로 섬기겠다는 전함의 슈퍼컴퓨터 때문에 바로 전력화가 불가능하고 암거래 상인들이 메인 컴퓨터에 심하게 장난을 쳐 둔 판이라 뜯어 고칠 수도 없어 폐기 처분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작업에는 돈이 많이 드네.”
“그렇습니까?”
동화책 다음 내용을 빨리 읽어 달라는 어린이의 표정이 고대영 중사의 얼굴에 떠오르자 문대진 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그런데 전함 규모의 전투함정을 잃는 것은 우주군 입장에서는 큰 손해라네. 그래서 자네를 대령이나 준장 정도로 임명하고 함장에 앉힐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라 당황했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함장이라는 위치에서 대우받으며 군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기에 고대영 중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야 함장이 된다고 치면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민채 하사, 김대국 상병, 전이석 일병을 떠올린 고대영 중사는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되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자네가 함장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말해 주겠네. 우주군 사관학교의 모든 과정을 수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수료 직후 자네는 가상 랭크 중위권의 현직 함장과 가상 교전을 치러 이겨야만 한다네. 만약 가상 교전에서 진다면 소위로 임관할 뿐이고 전함도 해체할 예정이지.”
“현직 함장들이라면… 제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10년을 넘게 우주군 생활을 해 온 현직 함장들일세. 자네도 이해해 줄 거라 믿네. 자네의 실력을 검증하지도 않고 함장에 앉히는 것은 반발도 반발이지만 너무 위험한 모험이지 않겠나?”
사회뿐만 아니라 27세기의 군 생활도 그리 녹록지 않구나. 라고 생각하던 고대영 중사는 갑자기 재미난 생각이 났는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흠, 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조건 같습니다. 될 가능성이 낮으니, 함장이 된다는 것 이외에 추가 혜택을 넣어도 되겠습니까?”
배짱 가득한 발언에 문대진 대장은 미소를 넘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래 일단 들어나 보도록 하지. 추가 혜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저와 이민채 하사, 김대국 상병, 전이석 일병은 21세기에서 함께 미래로 거슬러 온 군 식구들입니다. 마지막 남은 가족 같은 녀석들인데 뿔뿔이 흩어지면 앞으로 27세기에 적응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왠만하면 모두 함께 모여 있었으면 합니다.”
단순히 함께 복무하게 해 달라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문대진 대장이 헛기침을 하고는 고대영 중사의 두 눈을 직시했다.
“그래서?”
“가상 교전에서 승리할 경우 전 대한민국함의 함장으로, 이민채 하사는 부함장으로, 김대국 상병과 전이석 일병은 각각 참모진으로 임명시켜 주십시오.”
“하하하!”
한참을 웃던 문대진 대장이 창가에서 다시 의자로 걸어와 앉았다.
“좋아, 도박이라는 것이 판돈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흥미진진해지는 법이지. 자네 말대로 하려면 그 녀석들의 실력도 검증해 봐야 하니 가상 교전은 자네뿐만 아니라 그 녀석들도 모두 참여하는 것으로 하겠네.”
어차피 한 전투함정에 그들을 몰아 배속하려고 했고 애당초 현직 함장들을 이기라는 것은 도박 수준의 조건이니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한 문대진 대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정, 정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재미난 녀석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 문대진 대장은 무척 즐거웠다.
“그래도 자네 혼자의 의견일 뿐이니 다른 애들하고 상의하고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게. 그때도 지금 같은 조건이라면 무조건 수락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27세기에 대해 적응할 수 있게끔 일주일간 휴가를 내주겠네. 그동안 열심히 상의하고 다시 보도록 하지.”
“아!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하다고 굽신거리는 고대영 중사와 10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눈 문대진 대장은 이제 물러가도 좋다고 말했고 다시 군기 잡힌 걸음걸이로 작전사령관실을 빠져나가는 고대영 중사를 보며 그들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동정심이 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재미난 것 좀 구경하게 생겼다고 문대진 대장은 얼굴에 서린 웃음기를 거두지 못했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 1층 중앙 홀
4월 4일 20:18

우주군 작전사령부에 붙어 있는 건물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건물이 바로 외국군 군인들이 작전사령부에 와서 머무르는 군 숙소다.
자국 군인이 아닌 타국의 높은 군인들이 사용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군 숙소이니 만큼 다른 숙소들에 비해 고급스러운 편이었고 세미나실이나 회의 시설 및 각종 편의 시설들이 존재해 생활하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건물이 작다 보니 방문하는 외국 군인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려웠고 3월 1일 부로 이 군 숙소는 폐쇄되고 부지 내에 새로 건설된 건물이 군 숙소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아무런 용도로도 활용되지 않던 이 숙소는 4월 3일부로 모든 군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금지 구역이 되었다.
과거에서 온 고대영 중사 일행에 대한 모든 것이 기밀로 처리되어 일반 군인들이 그들과 접촉해서는 안 되었기에 고대영 중사 일행이 머무는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는 접근 가능한 극히 일부 군인들만이 출입할 수 있게 되었고 군 숙소 인근에는 엄중한 감시가 이루어졌다.
그 군 숙소 1층 중앙 홀에는 고대영 중사를 포함한 4명의 군인이 중앙 홀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희들이야 모두 좋습니다. 가상 교전에 지더라도 모두 장교로 임관하는 것 아닙니까?”
이미 모두가 군에 잔류하기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던 만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도박에서 이기면 오히려 특진 코스를 밟는다는 것에 모두가 오히려 기뻐했다.
“근데 그 가상 교전에서 패배한다면 모두 소위로 임관하는 것 아닙니까? 후후, 그때 되면 전차장님하고 서로 동기지 말입니다.”
깐족거리는 말투로 이민채 하사가 말하자 고대영 중사는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 그 이야기도 해 봤는데 21세기에 복무했던 군 생활만큼을 반영해서 각자 호봉 수 올려 주겠다고 하셨다. 그에 맞춰 기수도 바뀌니 내가 제일 선배란다 얘야. 아, 그리고 가상 교전에서 못 버텨도 일단 모두 한 전투함정에 몰아서 배속시켜 준다고 하셨으니 난 여전히 네 상관이다.”
장교로 임관해도 여전히 갈굼의 대상이 된다는 말에 부르르 떨던 이민채 하사는 만사 포기한 표정으로 되는 대로 나불거렸다.
“그러고 보니 역으로 전차장님이 조건을 거신 것 말입니다. 전차장님 가끔 보면 그쪽으로만 머리가 비상하신 것 같지 말입니다.”
갑작스런 칭찬에 고대영 중사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다 말을 곱씹어 보고는 이를 갈았다.
“그쪽으로만?”
“헙!”
팍!
21세기에서는 자주 뒤통수를 맞았지만 27세기에 도착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뒤통수를 맞지 않았던 이민채 하사는 오랜만에 느끼는 반가운 고통에 뒤통수를 잡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전차장님이 작전사령실로 가시고 난 뒤에 담당관이라는 군인이 와서 휴가 증명서와 몇 가지 서류를 주고 갔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김대국 상병이 건네는 것은 27세기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종이 재질의 서류 뭉치였다. 21세기에서 온 고대영 중사 일행에게 작은 것 하나하나 배려해 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그 종이 뭉치들에는 일주일 휴가 증명서와 27세기 사회 및 군부지 내의 행동 요령 몇 가지 제한에 대해 적혀 있었다. 말만 휴가인 줄 알았는데 영외로 외출도 가능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자 고대영 중사가 들떴다.
“오오, 이거 훈훈한데? 내일 니들은 뭐할 거냐?”
일단은 하루 정도는 숙소에서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종이 뭉치들을 자세히 읽지 않고 대충 테이블 위에 던져 놓고는 부하 군인들에게 휴가 첫 날을 어떻게 보낼 건지 물어보았다.
아직 뒤통수를 덮친 고통이 가시지 않은 듯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문지르던 이민채 하사가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곳보다 전 먼저 서점에 가 볼 생각입니다. 제가 보던 만화나 소설 중에는 아직 완결나지 않았던 것들이 많은데 지금은 다 완결 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그 작가들이 이후 차기작도 많이 써 두었을 거고 말입니다. 지금까지도 그게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없다면 컴퓨터나 하나 사서 관련 자료를 실컷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밀린 애니도 실컷 보고.”
“그, 그러냐? 그래라.”
넌 정말 골수까지도 완전 오덕이구나라는 듯 인상을 찡그린 고대영 중사는 그 옆에 앉아 있던 전이석 일병을 쳐다보았고 전이석 일병은 자기가 대답할 차례라는 것을 눈치챘다.
“저 역시 서점에 가 볼 생각입니다. 몇 세기나 지난 미래이니 만큼 과학 기술이 상당히 진보해 있을 것이고 관련 서적이 서점에는 즐비하지 않겠습니까? 후후.”
“아, 넌 기계 오덕이었지. 평범한 말을 기대한 내가 병신이다. 그래 김 상병은 뭐하려고?”
고대영 중사가 내려놓은 서류 뭉치를 다시 정돈하던 김대국 상병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음, 하루라도 쉬게 되면 예전 감각을 잊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운동이나 훈련 같은 것을 해 볼까 합니다. 생활 리듬이 깨지면 나중에 임관해서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넌 정말 훈훈한 군인의 표상이다.”
다른 두 녀석은 그렇다 치고 김대국 상병만은 정말 군인다운 녀석이라고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감동받은 고대영 중사는 김대국 상병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같이 식사하러 가자.”
“엇! 같이 가시지 말입니다!”
두 명의 군인이 일어서자 따라 일어서려는 이민채 하사에게 고대영 중사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오덕 콤비는 그냥 거기서 뒈지든 썩던 하렴.”
“취,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십쇼!”
퍽!
한 대 더 뒤통수를 맞은 이민채 하사는 자신의 입이 방정이라고 아무 말 안 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전이석 일병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앉아 있는 전이석 일병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들은 식당으로 향하는 고대영 중사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