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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9화)
04. 일주일간의 휴가 그리고 다짐(3)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 301호
4월 4일 23:52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아담하게 들어차 있는 군 숙소 301호실의 침대 위에는 고대영 중사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
“하아.”
고대영 중사의 한숨 소리가 301호실의 적막을 깨뜨렸다. 작전사령관 앞에서는 군인으로써 당당한 모습을 보인 그였지만 그 역시 사람이었고 심정이 굉장히 복잡했다.
침대위에 大 자로 누워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시선을 돌려 방 안을 훑어보았다. 처음 이 방 안에 와서 그가 느낀 것은 모든 것이 새롭다, 신기하다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낯설 뿐이었다.
‘27세기인가……?’
미래로 왔다는 것을 자각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당황스러웠다.
비록 작전사령관에게는 부하들과 논의한 이야기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고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마음만 그러할 뿐이지 정작 실행에 옮기려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그런 앞으로의 이야기보다 가장 무겁게 고대영 중사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것은 과거로 돌아 갈 수 없다던 어떤 군인의 보고 때문이었다.
‘돌아갈 수 없다고 했지?’
군 숙소로 걸어 들어온 어떤 군인이 보고하듯 “과거로 다시 돌려 보내드릴 방법이 전무합니다.”라고 이야기해 줬던 것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동안 조사를 받고 설명을 듣느라 너무 바빠 실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혼자 있게 되자 비로소 실감이 되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조차 다신 볼 수 없다. 앞으로 영원히.
“하아.”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해 낸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직 차가운 4월의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몰래 카메라 같은 것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동안 모든 것이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라고 말해도 고대영 중사는 화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고맙다고까지 말할 것 같았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잡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니 떠오른 사람을 죽였다는 기억 등이 뒤죽박죽 섞여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은 고대영 중사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예전에 있었던 어머니와의 논쟁이 문득 떠올랐다.
서로 응원하는 야구팀이 달라 시작된 논쟁은 1시간이 넘어서야 끝이 났는데 끝난 이유는 단순히 진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그런 논쟁조차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왜 자신이 미래로 왔는지 너무 억울했다.
미래로 끌고 가려면 미래로 가고 싶어 하는 작자들이나 끌고 갈 것이지 왜 하필 나야? 라고 생각하던 고대영 중사는 이대로 계속 잡생각을 계속하다가는 잠은 커녕 밤을 새겠다고 투덜거리며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외투를 대충 걸치고 3층 통로로 걸어 나왔다.
그는 군 숙소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몸이 피곤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잠이 잘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걷기로 했다.
뚜벅 뚜벅.
모두가 잠든 시각이라 그런지 통로에는 고대영 중사가 내는 발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무작정 앞만 보고 걷던 그는 군 숙소 1층 중앙 홀로 이어지는 통로에 들어섰고 중앙홀로 향하기 위해 발을 내디디려던 순간 어떤 말소리가 들려 와 멈춰 섰다.
“정, 정말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겁니까?”
“그래.”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전이석 일병이 물었고 김대국 상병이 전이석 일병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다신 부모님도 제 친구들도 볼 수 없는 겁니까?”
“그래.”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다른 군인들도 하고 있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된 고대영 중사는 통로에 등을 기댔다.
“어머니는 제 휴가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는데… 저희 어머니, 어떻게 합니까…….”
기어코 울음을 터뜨린 전이석 일병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러 댔고 김대국 상병은 그저 말없이 전이석 일병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김대국 상병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위로를 해 줘야 할지 몰랐기도 했고 자기 자신조차도 전이석 일병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던 터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그가 전이석 일병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등을 토닥여 주는 것뿐이었다. 모여 있을 때는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무척 혼란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끼어들어 위로하는 것보다 그 두 명이 잠깐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가라 앉히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사실 그들이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고대영 중사의 핑계일 뿐이었다. 지금 전이석 일병 곁에 갔다가는 참고 있는 여러 불안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에 작게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삑!
301호 현관문이 열리고 대충 신발을 벗어던진 고대영 중사는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앞으로 어떻게 일행들을 이끌고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데에서 찾아온 불안감 등이 새벽 내내 고대영 중사를 괴롭혔고 결국 고대영 중사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 301호
4월 5일 10:00

새벽 늦게 잠이 들었지만 일찍 일어나는 것이 기본 생활 패턴이었던 고대영 중사는 새벽 6시에 칼 기상을 했다가 오늘부터 휴가라는 것을 깨닫고 행복한 기분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약 4시간이 흐르고 고대영 중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무렵 누군가가 301호 초인종을 눌렀다.
“으어어?”
잠꼬대 비슷한 말을 입 밖으로 흘려보낸 고대영 중사는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상체만 일으켰다.
“어떤 새끼가…….”
부하 군인 중 한 명이 초인종을 누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짜증 날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현관문이 열리도록 조작 버튼을 눌렀다.
“아, 안녕하십니까?”
현관문 건너편에는 아름다운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깔끔한 제복 차림으로 서 있었고 고대영 중사는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버튼을 눌러 문을 다시 닫았다.
‘응? 날 찾는 여자가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는데?’
허상을 본 것이라고 확신하던 고대영 중사는 현관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기…….”
다시 현관문 개방 버튼을 누른 고대영 중사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을 보고 버릇이 들었는지 다시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았다.
“저, 문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고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상대방이 우주군 여 제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고대영 중사는 다시 현관문을 열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문을 닫을까 봐 버튼에서 아예 손을 뗐다.
“무슨 일이십니까?”
항상 반팔 반바지는 입고 자는 것이 생활화된 덕분에 속옷 차림을 여성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한 고대영 중사가 물었고 현관문 건너편에 서 있던 여성은 구두를 벗고 301호실 안으로 걸어 들어와 껴안고 있던 유리판에 몇 가지 조작을 가했다.
“편의상 고대영 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흠흠, 일주일 휴가 동안 고대영 님의 담당관이 된 정보부 하사 전희연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 바, 반갑습니다.”
경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고대영 중사는 오랜만에 사제인이 하는 인사법, 고개를 숙이는 방법으로 인사를 했는데 오랜만에 그런 인사를 해서 그런지 꽤나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게…….”
두 사람 사이에 상당히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끔찍할 정도로 길게 느껴지는 1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자신을 우주군 정보부 소속 하사라 밝힌 전희연 하사는 더듬거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군, 군에 와서 소심한 성격이 좀 고쳐지긴 했습니다만 아직 좀 남아서 그러니 이, 이해해 주세요.”
“아, 예.”
다시 이어지는 정적. 서로 처음 보는 남녀가 한 방에 같이 있게 되면 당연히 어색해지게 마련인데 전희연 하사가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니 군 숙소 301호실 안에는 어색한 분위기를 뛰어넘어 마치 장례식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소심함을 떨치려고 하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전희연 하사를 보며 꽤나 귀엽다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험험!”
조금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린 전희연 하사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흠! 일주일 휴가 동안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은 숙소 밖으로 나가실 때 제가 항상 동행해야 합니다. 동행 목적은 27세기에 대한 설명 및 교육, 혹시 모를 일에 대해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조작을 끝낸 유리판 정확히 말하자면 소형 컴퓨터를 전희연 하사가 건넸고 그것을 건네받은 고대영 중사는 유리판 표면에 투영된 글자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동행에 대한 내용과 추가 행동 요령으로 이루어진 그 글들은 의외로 분량이 적었다. 글을 모두 읽은 고대영 중사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잠깐, 동행이라고 하셨습니까?! 7일 동안 휴가라 하셨잖습니까?! 이러면 휴가가 아니지 말입니다!”
“그, 그게…….”
자기도 모르게 낸 짜증 섞인 목소리에 다시 소심증이 재발한 전희연 하사를 어르고 달래느라 식은땀을 줄줄 흘린 고대영 중사는 부지내로 바람이라도 쐴 생각으로 외출을 결심했다.
“아, 외출 시에는 이걸 입으시면 됩니다.”
복도로 나가 가방 하나를 들고 들어온 전희연 하사는 가방에서 검정색 정장을 꺼내 고대영 중사에게 넘겨주었다.
“응? 여기 이 삼각형 마크는 뭡니까? 사단 마크?”
정장 상의를 살피던 고대영 중사가 전투복으로 치자면 팔과 어깨 사이에 붙어 있는 사단 마크 모양의 삼각 마크를 가르키며 물었다.
“우주군 수도 정보부 마크입니다. 삼각 마크 가운데 새겨진 무궁화는 영관급 장교라는 의미입니다.”
“헉? 전 수도 정보부가 아니고 그렇다고 영관급 장교도 아니지 말입니다?!”
잘못 가져온 것 아니냐는 뉘앙스에 전희연 하사는 처음으로 고대영 중사 앞에서 살짝 웃었다.
“고대영 님은 우주군에 임시 배속되셨습니다만 모든 것이 기밀로 되어 있는 만큼 손써 둘 게 많았습니다. 고대영 님 일행을 전산상으로나마 어딘가에 배속시켜 두어야 했고 군내부에서조차 구성 인원과 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부대 중 하나인 정보부가 고대영 님 일행을 임시 배속시키기 가장 좋은 곳이라 정보부에서 직접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관급 장교로 배속해 둔 이유는 영관급 장교는 작전사령부 부지를 출입할 때 가장 검문이 적은 계급이고 일주일간 여러분의 출입 권한이 영관급 장교 정도로 부여되었기에 출입 관리 군인에게 일일이 증명서와 상부 허가를 받게 하는 것보다는 제복의 마크와 고대영 님의 홍채를 스캔하는 것으로 검문을 간소화하는 것이 고대영 님 일행에게 편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하, 그렇다는 것은…….”
설명을 들은 고대영 중사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자 오랜만에 긴 말을 더듬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말한 것에 만족하고 있던 전희연 하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우주군 작전사령부에서 배려해 드린 겁니다.”
우주군 정보부라 해도 우주군 소속이므로 우주군 정복이나 전투복을 입는 것이 보통이지만 근무일 이외에 부대를 출입할 때는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정장 스타일의 제복을 입기도 했다. 고대영 중사가 받은 옷이 바로 그 제복이다.
“다른 놈들도 입고 나갔으려나. 그런데 다른 녀석들은 아직 군 숙소에 있습니까?”
“아침 일찍 3명 모두 외출했습니다.”
어제 밤 우느라 눈이 퉁퉁 부은 전이석 일병은 부은 눈 그대로 외출했으려나? 라고 생각하며 실실거리던 고대영 중사는 옷을 들고 전희연 하사를 쳐다보았다.
“씻고 옷 좀 갈아입게 나가 주시겠습니까?”
옷 갈아 입을 테니 나가 달라는 눈빛으로 10초 이상 전희연 하사를 쳐다봤음에도 아무것도 이해 못하고 그저 웃음만 짓는 전희연 하사에게 답답해진 고대영 중사가 직접 입으로 말했다.
말을 듣고 나서야 눈빛의 의미를 알아챈 전희연 하사는 가방을 들고 급히 문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사람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고대영 중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착한 건지 어리바리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