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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11화)
04. 일주일간의 휴가 그리고 다짐(5)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 1층 식당
4월 6일 12:51
군 숙소 내부에 배치되어 있는 식당의 풍경은 21세기 식당의 풍경과 사뭇 달랐다. 앉아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은 있지만 배식소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테이블에 앉아 공중에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조합해 컴퓨터에 부탁하면 식당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조리 기계가 순식간에 음식을 조리해 수박처럼 생긴 공중 이동 로봇에게 음식을 넘겨주고, 그 음식이 담긴 접시를 4개의 로봇팔로 안정적이게 붙잡은 공중 이동 로봇이 주문한 군인에게 가져다주어 직접 가져다 먹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오늘은 외출할 겁니다!”
식사를 끝마친 정보부 제복 차림의 고대영 중사는 테이블 위에 있는 재생 휴지를 뽑아 입을 닦고는 기세 좋게 일어났다. 그런데 잠을 설친 덕분인지 안색은 무척 어두웠다.
“고대영 님, 그런데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이미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전희연 하사가 고대영 중사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어제 오랜만에 작업했더니 몸이 좀 쑤셔서 그게 얼굴에 드러난 모양입니다.”
애써 둘러대는 고대영 중사를 보며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한 전희연 하사는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통신기와 인식 카드 챙기셨습니까?”
통신기는 21세기의 핸드폰과 같은 용도의 기기고 인식 카드는 현금, 주민증, 신상 및 자격증 기록 조회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체 수단이다.
“예! 자, 이제 나가 봅시다!”
이미 하루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어서 그런지 둘 사이에 어색함은 없었다. 그리고 그 어색함이 없어진 덕분인지 전희연 하사가 소심해지는 경우도 많이 줄었다.
“으아! 이 해방감!”
검문소 군인의 경례를 받으며 부지 밖으로 걸어나온 고대영 중사는 공기를 잔뜩 마셨다. 공기 자체는 영내나 영외나 다를 게 없었지만 외출을 만끽하고 있다는 고대영 중사 나름의 표현 중 하나였다.
“근데 작전사령부 부지를 나왔는데도 계속 작전사령부 부지인 것 같은 이 기분은 뭡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의미냐 묻는 전희연 하사에게 고대영 중사는 길 건너편의 공원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아, 우주군 공원 말입니까?”
“우주군 공원? 차가 다 날아다니네… 신호등도 홀로그램?”
간단히 길을 건너면서도 온갖 것에 신기해하는 고대영 중사에게 전희연 하사가 우주군 공원에 대해 설명했다.
“일반인이 쉽고 간단하게 우주군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우주군 공원입니다. 대한민국 우주군의 역사부터 규모, 장비에 대해 군 기밀 사항을 제외하고 외부에 알려진 내용에 한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처음 놀이공원에 온 아이처럼 감탄사를 잔뜩 연발하던 고대영 중사는 자신이 우주군 정보부 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우주군 용어 설명?”
우주군에서 쓰이는 용어와 그 용어의 유래 등이 외부에 알려진 내용에 한해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는 커다란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고대영 중사는 글들을 대충 읽어 나갔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함에서 궁금했던 용어 중 하나가 홀로그램에 등록되어 있어 고대영 중사는 그 내용을 유심히 읽어 나갔다.
하지만 너무 간결하게 적혀 있어 자세히 파악하기 힘들었고 고대영 중사가 “우주군의 배수량 표시”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을 눈치챈 전희연 하사는 고대영 중사에게 우주군 배수량의 유래와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세대급 우주 전투함들이 우주에서 지구로 복귀할 때 착륙한 곳이 바로 바다입니다. 바다에 착륙한 우주 전투함은 해군처럼 항구에 보관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우주 전투함의 규모를 설명할 때 배수량이 적용되었습니다. 그게 유래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배수량이라는 것 자체가 배의 무게로 인해 밀려난 물로 해당 배의 톤수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니 규모 설명에도 알맞지요.”
묻지도 않은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자 고대영 중사는 깜짝 놀랐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군 용어 설명 부분에 대해 몇 가지 더 읽어 나가던 고대영 중사는 흥미를 잃었는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희연 하사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공원을 거닐던 고대영 중사가 다시 멈춰선 곳은 우주군과 우주 진출 역사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과 영상, 홀로그램들이 전개된 곳이었다.
하늘에서 지상 쪽으로 향하도록 영상과 홀로그램들이 펼쳐져 고개만 들어도 모든 것을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저거 다 보려면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전문가님께서 직접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우주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기초 지식을 알아 두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배수량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줬던 전희연 하사의 설명 능력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전문가라 불린 전희연 하사는 자신이 아는 지식에 한해 설명을 시작했다.
“21세기에 오셔서 잘 아시겠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항공 우주군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주 항공 기술이 당시 강대국들에 비해 한참 모자랐죠.”
“그렇습니다.”
27세기로 넘어오기 전, 21세기의 우주 기술 강국 미국과 러시아를 당시 한국에 비교하던 고대영 중사는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이후 21세기 중후반부터 우주 기술 강국을 제외하고 경제력이 좀 뒷받침되는 국가들은 우주 기술과 항공 우주 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련 기술, 우주 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중에는 통일 후 국가가 안정기에 접어든 우리 대한민국도 있었습니다. 혹시 이야기가 재미없습니까?”
이야기를 경청하는 고대영 중사의 얼굴에 흥미로워하는 빛이 없자 왠지 자신감을 잃은 전희연 하사가 이야기를 하던 도중 머뭇거리며 물었고 고대영 중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응? 아닙니다. 이거 은근히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인이 자기가 모르는 미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재미없어 할 만한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전희연 하사가 중요한 부분만 짚어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기에 지겨울 부분도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고대영 중사의 얼굴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이유는 그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때 생기는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럼 계속 설명할까요?”
“설명을 무척 잘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습니다. 계속 들려주십쇼.”
근처 벤치에 앉아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는 모습을 보이자 자신감이 샘솟은 전희연 하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대영 중사의 옆에 살짝 떨어져 앉은 전희연 하사는 치마에 진 주름을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당겨 펴면서 우주군 역사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20세기 후반에 항공 우주군에 대한 중요도를 인식하고 21세기 들어 ‘공중과 우주 그리고 정보 영역을 이용하며 대한민국의 국익과 안보를 보장하는 항공 우주군 육성’이라 비전을 내세운 대한민국 공군은 21세기 후반, 항공 우주군, 우주군을 단순히 공군의 하위 개념이나 확대 개념으로 인식하던 국가들이 공군을 통째로 항공 우주군, 우주군으로 이름을 교체하기 시작했을 무렵 그 변화의 대열에 합류하여 대한민국 공군의 명칭을 대한민국 우주군으로 변경합니다. 우주를 향한 꿈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이기에 크게 공군과 달라진 것은 없었고 공군 심볼 마크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심볼 마크 자체가 우주를 향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공군의 심볼 마크는 좌우로 예리한 날개가 펼쳐져 있고 중앙에 별이 그려진 모양인데 좌우로 펼치진 날개는 공군의 4대 핵심 가치와 강하고 첨단적인 군의 인상, 항공기의 첨단 소재 등을 의미하며 중앙의 별은 군을 상징, 국토 방위의 막중한 책임감에 지휘부의 명예와 권위, 우주를 향한 공군의 의지 등을 함축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말로만 항공 우주군의 기반을 다지고 지향한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심볼 마크에서도 드러나 있는 대한민국 공군이었는데, 애당초 우주군에 대한 반영도 되어 있던 심볼 마크였기에 대한민국 우주군은 대한민국 공군이 사용하던 심볼 마크를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고개를 돌려 공원 중앙에 설치된 우주군 심볼 마크 조형물을 가볍게 훑어보던 고대영 중사는 지나가던 아이스크림 제조 로봇에게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구매한 전희연 하사가 그중 하나를 자신에게 주자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약간 날씨도 더워진 것이 아이스크림 먹기에 적당한 날씨인 것 같습니다.”
“가끔 묘하게 날씨가 더워져서요.”
혀를 낼름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 전희연 하사에게 고대영 중사는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학생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우주 시대가 개막된 것은 21세기 말부터입니까?”
설명하는데 재미가 들린 모양인지 전희연 하사는 본격적으로 손목에 차고 있는 다목적 컴퓨터로 홀로그램까지 생성시키며 설명에 열중했다.
“정확히는 22세기 초부터입니다. 22세기 초반부터 대부분의 국가들이 우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22세기 중반부터는 고속 항로가 구축되어 태양계 내로 한정되긴 했지만 빠른 우주 이동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우주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계기는 2267년 있었던 제1차 우주대전 덕분이었습니다.”
“제1차 우주대전?”
우주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고대영 중사가 반문하자 전희연 하사는 23세기 제1차 우주대전에 대한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띄워 주었다.
“화성에서 분쟁을 일으킨 2개국에 의해 처음 발발된 제1차 우주대전은 이후 전 세계의 60%에 가까운 많은 국가들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우리 대한민국도 껴 있었습니다. 전쟁은 주로 러시아, 미국파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지금도 극히 일부 사람만 아는 이야기입니다만, 그 교전은 뒷 공작을 펼치던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 시작된 전쟁입니다.”
극히 일부만 아는 이야기라고 하자 고대영 중사는 전희연 하사가 상당히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군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며칠 뒤 다른 군인에게 고대영 중사는 전희연 하사의 정보력이 거의 영관급 최대 장성급에 준할 정도로 정보에 관해서는 해박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강대국 등쌀에 시작된 전쟁 같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의 과학 문명은 전쟁 중에 급속도로 발달한다는 말처럼 그 전쟁으로 우주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게 되었고 지금은 모든 군함, 민간 우주선에 장착된 반중력 장치도 그때 발명되었습니다.”
반 중력 장치란 말 그대로 중력을 반하는 장치로 함선들이 지구 같은 행성의 중력을 이겨 낼 수 있게 제작된 장치다. 보통 어떤 비행체든지 가진 무게만큼 중력에 영향을 받아 쉽게 날아오르지 못하는데 반 중력 장치를 사용하게 되면 비행체가 행성의 중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작은 출력으로도 중력권 내에서 비행이 가능해진다.
“24년간 진행되었던 1차 우주대전이 종전되고 우주 기술력이 발달한 인류는 차근차근 태양계 외부로 진출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식민지 쟁탈전이 시작되었죠. 그런 식민지 쟁탈전이 심화되어 제2차 우주대전이 발발하게 되는데 그때가 24세기 중반, 2358년이었습니다.”
“그놈의 전쟁은 어떻게 끝날 생각을 안 합니까?”
비록 자신이 그 전쟁을 위한 군인이긴 했지만 고대영 중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나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터였다.
“그때도 비록 한국이 승전국에 껴 있었습니다만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하지만 그 전쟁이 계기가 되어 정체되어 있던 우주 기술이 다시 한 번 크게 발달하게 됩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그렇게 큰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고 2598년에는 우리 은하의 약 70%에 우리 인류가 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고대영 중사는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고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런데 은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우리 은하는 그중 하나 아닙니까? 아직 인간이 갈 길은 먼 것 같습니다. 아, 다 드시고 말씀하십쇼. 흐릅니다.”
전희연 하사의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이 줄줄 흘러내리자 고대영 중사가 자신의 제복 주머니에 들어 있던 손수건을 건넸고 잔뜩 당황한 전희연 하사가 허겁지겁 아이스크림을 먹어치웠다.
“감, 감사합니다.”
전희연 하사가 고대영 중사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 손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 내고, 손수건을 세탁해 다시 돌려드리겠다고 말하는 전희연 하사와 그냥 주머니에 구겨 넣으면 된다는 고대영 중사의 실랑이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