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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12화)
04. 일주일간의 휴가 그리고 다짐(6)
결국 손수건을 세탁하겠다는 전희연 하사가 그 실랑이에서 이기고 고대영 중사는 멋쩍은지 뒤통수를 긁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주 전투함? 우주선? 뭡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전희연 하사와 느긋하게 공원을 걷던 고대영 중사가 우주군 심볼 마크 조형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각종 홀로그램 앞에 멈춰 섰다.
“1세대 주력 전투함부터 지금 사용하고 있는 11세대 전투함까지의 발전 모습입니다.”
“1세대? 뭐 전차처럼 2세대, 3세대 그런 식으로 나뉘는 겁니까?”
1세대라 설명이 붙어 있는 21세기 우주 왕복선 비슷한 우주선에 눈이 멈춰선 고대영 중사가 물었고 전희연 하사는 다시 설명 모드로 들어갔다.
“그렇습니다. 1세대부터 3세대까지는 순전히 출력으로 대기권을 벗어나야 했던 우주 전투함들을 가리킵니다. 2023년부터 2278년 사이에 사용되었습니다만 1세대부터 3세대까지는 무장와 외형으로 쉽게 구분이 가능합니다.”
“무장과 외형?”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우주 전투함을 나타낸 홀로그램 영상을 훑어본 고대영 중사는 그 차이점을 쉽게 찾아냈다.
“날개가 작아지고 무장은 포탄을 사용하는 함포 같은 것에서 빔을 사용하는 함포와 비슷하게 생긴 걸로 바뀐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전희연 하사는 1세대 전투함부터 3세대 전투함까지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차이점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줬다.
“1세대는 포탄을 사용하는 함포나 구식 대함미사일을 사용했습니다만 2세대부터는 구식 함포를 레일건으로 교체했고 지구에서 우주로 나갈 때 연료가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이유로 대함미사일은 포기했습니다.”
무게가 늘어나는 만큼 지상에서 발사되는 발사체의 연료 소비가 늘어나므로 우주로 어떤 물체를 쏘아 올릴 때는 불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한다. 대함미사일은 그 무게가 상당히 많이 나가는 무기 종류 중 하나였기에 연료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당시 우주군은 대함미사일을 포기해 연료비를 절감했다.
“3세대 전투함은 레일건 대신 레이저포를 탑재하였습니다. 파괴력도 레이저포가 나았고 육중한 레일건보다는 훨씬 가벼웠으니까요.”
“응? 4세대부터 6세대까지는 3세대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대영 중사는 4세대부터 6세대까지의 전투함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아까 1차 우주대전에서 반 중력 장치가 개발되었다 말씀 드린 것 기억하십니까? 4세대부터는 반 중력 장치와 함 내 중력 장치가 탑재되었습니다.”
“함 내 중력 장치? 전투함 내에 중력을 발생시키는 겁니까?”
반 중력 장치는 이미 설명을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함 내 중력 장치라는 생소한 단어를 듣자 고대영 중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1세대부터 3세대까지는 함 내 중력 장치가 없어 전투함 승조원들의 체력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우주에 오래 있게 되면 뼈의 강도가 무척 약해지고 근육도 급격히 저하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문제도 발생합니다.”
우주에서 오랜 생활을 하게 되면 뼈의 강도가 분필처럼 약해진다는 내용을 방영해 주던 어떤 TV 프로그램을 기억해 낸 고대영 중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 내 중력 장치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함 내 중력 장치는 단어 그대로 함 내에 지구와 동일한 중력을 발생시켜 전투함 승조원들의 체력을 보호하는 용도로 개발되었습니다. 반 중력 장치와 동일한 설계가 많아 동시에 개발되었죠.”
“무장상 차이는 어떻습니까?”
“무장은 기존의 레이저포를 강화시키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보다 출력을 높혀 적이 입을 데미지를 최대한 높였습니다.”
전희연 하사의 설명을 들으며 7세대 전투함 쪽으로 시선을 돌린 고대영 중사는 1세대에 달려 있던 대함미사일 발사 구획과 비슷한 것이 7세대에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대함미사일 아닙니까?”
“대함미사일이 맞습니다. 1차 우주대전 중에 있었던 B―94 교전 이후 시간이 좀 많이 흐른 뒤이긴 하지만 모든 국가가 대함미사일을 재도입했습니다.”
“B―94 교전?”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전희연 하사는 B―94 교전과 관련한 영상을 재생시켜 주었다.
“대한민국 우주군과 신생 독립국 네르시아 우주군 간의 교전이 있었던 전투가 B―94 교전입니다. 그런데 이 전투는 워낙 유명해서 전 세계의 우주군 사관학교에서 이 전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합니다.”
“해군 사관학교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같은 전술에 대해 가르켜주는 것처럼 말입니까?”
예전에 친구들끼리 가진 술자리에서 해군에 들어간 친구가 술에 취한 상태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린 고대영 중사가 묻자 전희연 하사는 그에 대해서 자신 없어졌는지 약간 소심해졌다.
“제가 21세기 해군 교육에 대해서는 무지해서…….”
“제가 27세기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괜히 미안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재미난 설명 계속 듣고 싶습니다만?”
고대영 중사의 말에 용기를 얻은 전희연 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시 교전에 참여한 대한민국 우주군 화성 식민지 보호 함대사령관 이종욱 준장은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상태로 교전에 임했고 당시 한국군 함대보다 2배는 많은 적함대를 대함미사일로 치명타를 입힌 뒤 이어진 함포전에서 적을 모두 섬멸함으로써 완벽하게 승리했습니다. 대함미사일과 하전 입자포 즉, 빔 함포를 조합한 현대의 교전 전술 “기본 교전 절차”의 모태가 바로 B―94 교전에 참전한 한국군에게서 나온 겁니다. 그 교전에서 실시되었던 전술이 전 세계적으로 우수함을 인정받아 기본 우주 전투함전 전술이 되어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겁니다.”
“기본 교전 절차는 뭡니까?”
하나부터 끝까지 전혀 모르는 내용만 나오자 질릴 법도 했는데 고대영 중사가 제법 학구열이 있는 모양이라 진지하게 물었다.
“현대 우주 전함전은 사거리 별로 하나씩 교전 절차가 진행됩니다. 500km부터는 모든 무장 사용 준비에 들어가고 400km부터는 대함미사일과 함포사격을 실시하죠, 이후 적 대함미사일을 요격, 함포전을 지속하다가 적함대와의 거리가 200km가 되면 전투기를 출격시켜 적 전투기의 아군 함대 접근을 저지하거나 적함대로 접근시켜 적함대의 전투함에 공격을 가하는 것이 기본 교전 절차입니다.”
설명을 들었는데 오히려 궁금증이 더 늘어나자 고대영 중사는 답답했는지 고개를 위로 올려 숨을 내뱉었다.
“으어, 전투기? 아아 얼마전에 대한민국함에게 듣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전투기를 많이 씁니까? 무인기겠습니다?”
우주 해적과의 교전 당시 대한민국함의 슈퍼컴퓨터에게 우주 교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얼핏 들었던 내용을 아직 고대영 중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모두 유인기입니다. 초창기에는 무인 전투기로 교전을 치렀었습니다만 1차 우주대전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어 유인으로 다시 변경되었습니다.”
치명적인 문제점에 고대영 중사가 물어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전희연 하사는 치명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치명적인 문제점이란 방해 전파와 해킹 두 가지입니다. 그 당시 전투기 교전은 전투기들을 각 전투함에서 직접 지휘하는 방법을 썼는데 적함대의 방해 전파에 전투기와 전투함의 링크가 끊기게 되면 전투기는 아무것도 못하는 우주 쓰레기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에 대비해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해 적 위협 세력을 관측해 자동으로 교전하는 방법도 있긴 했습니다만 적함대에게 전투기가 해킹당하게 될 경우 오히려 전투기는 아군이 아니라 적군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다시 조종사가 투입되는 방향으로 전투기 조작 방법이 변경되었습니다.”
“으아, 이런 것을 다 알고 있는 전희연님이 더 신기합니다. 그런데 7세대부터 11세대까지도 크게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만.”
좀 더 미래 공학적으로 바뀐 것 말고는 별다른 차이점을 이번에도 찾지 못한 고대영 중사가 묻자 전희연 하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8세대부터는 하전입자포, 쉽게 빔포라 불리는 무장이 장착되었고 그 이후에는 기존 장비의 개량, 발전 정도로 크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오호.”
그런데 모든 설명을 들으며 고대영 중사는 한 가지 의문점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까지 들은 설명을 종합해 볼 때 우리 은하의 대부분 구역에 진출했다는 말은 우주 전투함들의 기동력이 상당히 우수하다는 말인데 고대영 중사가 경기도 교전에서 직접 겪은 바로는 우주 전투함들이 우리 은하 내부 즉, 그 넓은 구역에 진출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경기도에서 봤던 그 느린 기동력으로 어떻게 우리 은하의 70%가 넘는 구역에 직접 도달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비대한 덩치에 비해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광속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 속도였다. 고대영 중사는 궁금해졌다.
“그럼 묻는 김에 하나 더 묻겠습니다. 우주 전투함의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은데 어떻게 은하 내부라 해도 그런 먼 거리의 행성 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수면 비행 뭐 그런 겁니까?”
“우주 전투함은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닙니다. 게다가 초 광속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나절이 넘게 걸리는 계산 작업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은하 곳곳에는 초광속 이동 지원기라는 것이 거미줄처럼 세밀하게 설치되어 일정 구간 우주 전투함의 항로 계산 및 동력 없이도 곧바로 초광속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에 비유하자면 고속도로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아, 그리고 저번에 보고서를 봤었습니다만 지구 내에서의 전투함전 같은 경우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지구 내와 우주 공간은 차이가 많으니까요.”
이후 우주군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눈 덕분에 고대영 중사의 머릿속에는 27세기 우주군에 대한 많은 지식이 들어찼지만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27세기 미래 도시를 구경하지 못한 것에 절규했다.
도시 구경은 글렀다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전희연 하사와 21세기 이야기나 27세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군 숙소로 복귀했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 1층 식당
4월 7일 12:59
하루 종일 많은 대화를 나눈 덕분에 잡생각을 조금이나마 떨쳐 낼 수 있었던 고대영 중사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은 기필코 외출할 겁니다!”
숙면을 취해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고대영 중사의 얼굴을 보며 어제도 들었던 것 같은 말에 전희연 하사는 데쟈뷰를 느꼈다.
분명 어제 검문소를 나갔으니 외출은 맞았지만 고대영 중사는 우주군 공원이 작전사령부 부지 안과 그리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오늘은 꼭 도시를!”
굳은 결심을 하는 그를 보며 전희연 하사는 왠지 오늘도 제대로 된 외출은 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괜히 고대영 중사의 기분에 초를 칠 생각은 없었기에 군 숙소를 나서는 고대영 중사의 뒤를 아무 말 없이 따랐다.
두 부사관은 군 숙소를 나선 뒤 작전사령부 부지 외곽의 검문소까지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웠는데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던 고대영 중사가 갑자기 멈춰 섰다.
“라고 해서 외부로 나가실 경… 읍!”
컴퓨터로 자료를 알아보며 걷던 전희연 하사는 멈춰선 고대영 중사를 보지 못했고 고대영 중사의 등에 부딪쳤다.
“죄, 죄송합니다.”
멍청한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 전희연 하사와는 달리 고대영 중사는 검문소 인근의 연병장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거 축구하는 것 맞습니까?”
연병장에는 우주군 군인들로 이루어진 양 팀이 격렬하게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고 연병장 주변 스탠드에는 의외로 많은 군인들이 관람과 응원을 하고 있었다.
“예, 축구하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고대영 중사도 그것이 축구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들이 하고 있는 축구는 고대영 중사가 잘 알고 있는 축구와는 좀 달랐다.
“제가 보기에는 축구라기보다 뭐라고 할까… 음, 격투기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27세기에는 축구를 싸움 대용으로 쓰나 봅니다? 하긴 제가 살던 때에도 축구는 축구가 아니라 패싸움이었습니다. 암 그렇고 말고.”
연병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축구 경기는 고대영 중사가 평한 것처럼 축구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주먹질과 발길질을 서슴치 않고 피가 사방으로 튀기는 스포츠를 우리는 축구라 하지 않는다.
학원 폭력물도 저렇게 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던 고대영 중사는 경기에 참가하고 있던 두 팀 중 한 팀의 군인들이 왠지 낯이 익었다.
“저 군인들을 어디서 봤더라?”
턱을 매만지며 낯익은 군인들에 대해 떠올리려 애쓰는 고대영 중사에게 전희연 하사는 두 팀 중 우측 골대를 사용하는 팀과 우측 골대 인근의 스탠드에 앉아 있는 군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식목일. 그러니까 이틀 전에 같이 나무 심기 작업하신 분들 같지 말입니다.”
“아!”
그제야 그들이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던 고대영 중사는 그들에게 간단히 인사라도 할 겸 우측 골대 스탠드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응원하는 건지, 욕설을 퍼붓는 건지 알 수 없는 군인들의 모습 중에 가장 큰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는 한 군인을 발견했다.
“안녕하십니까?”
“새끼가! 헉! 필승!”
욕을 바가지로 하던 모지윤 대위는 고대영 중사를 보고 깜짝 놀라 경례를 붙였고 고대영 중사는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답례했다.
“필승.”
“고대영 소령님, 3연병장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틀 전에 고대영 중사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모지윤 대위가 자세한 소속을 묻자 정보부 소속 소령이라고 대충 둘러댔던 적이 있다. 그래서 모지윤 대위는 고대영 중사를 정보부 소령으로 알고 있었다.
참고로 작전사령부에는 작전사령부 소속 군인과 함대 소속 군인들을 비롯해 많은 군인들이 근무하고 있어 운동이나 체력 훈련을 할 수 있는 연병장이 작전사령부 부지 곳곳에 총 5개가 있다. 그중 모지윤 대위의 중대 선수들과 상대방 선수들이 격렬한 경기를 벌이고 있는 곳은 작전사령부 외곽의 검문소 인근의 제3연병장이었다.
“오늘은 업무가 좀 빨리 끝나서 일찍 외출하는 길에 낯익은 얼굴들이 있어 들렀습니다. 그런데 이거 축구라고 보기에는 좀 그런 경기 같습니다?”
그들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도 양팀 선수들은 서로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날리며 선혈이 가득 튀기는 경기를 치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