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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13화)
04. 일주일간의 휴가 그리고 다짐(7)
공은 가만히 있고 그 공에 접근하기 위해 서로가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넋이 빠진 채로 바라보고 있던 고대영 중사는 심판이 폭력이나 반칙에 대해 만류하거나 경고를 줘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며 시선을 연병장 곳곳으로 돌려보았다. 그런데 심판은 커녕 심판 비슷한 존재조차도 연병장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솔직히 이건 축구라기 보다는… 아! 자존심 대결 같은 겁니다.”
“자존심 대결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 경기와 관련한 내용을 전혀 모르는 고대영 중사가 질문을 하며 모지윤 대위를 쳐다봤는데 모지윤 대위의 얼굴은 성난 모습을 넘어 악마의 재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흉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틀 전 식사 시간 때 저희가 어디 소속인지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십니까?”
이틀 전 식사 시간을 회상하던 고대영 중사는 당시 모지윤 대위가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대기 13중대라고 말씀하셨던 같은데 말입니다. 맞습니까?”
대기 중대는 우주 전투함이나 부대에 배치되기 전에 일정 시간 대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새로운 구성의 중대를 말한다.
아직 중대장이 된 지 얼마 안 된 모지윤 대위의 중대가 바로 그 대기 중대였는데 새 전투함에 배치되기 위해 모지윤 대위의 중대는 작전사령부 내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 중대원들은 신입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기존의 작전사령부 소속이나 전투함 소속의 병력들에게 무시받기 일쑤입니다. 이번 연병장 정리도…….”
연병장은 한 부대의 전유물이 아닌 관계로 여러 부대의 병력들이 번갈아 가며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연병장이 두 개 이상의 부대가 동시에 훈련을 해도 될 정도로 넓기 때문에 보통 2개의 서로 다른 부대가 동시에 훈련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모지윤 대위의 중대와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가 함께 훈련을 했는데 전날에 이미 모지윤 대위의 중대가 연병장을 정리했었기 때문에 오늘은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가 연병장 정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연병장이 넓다는 이유로 모지윤 대위의 중대가 함께 청소하지 않으면 자기들도 청소하지 않겠다고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장이 억지를 부렸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신입들에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는 것이 너무 티가 났다. 자세한 이야기를 모지윤 대위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털어놓자 고대영 중사는 눈을 치켜떴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억지 부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벌써 오늘로 5번째입니다! 4번은 그냥 싸우느니 좀 힘들고 말지하고 대충 넘어가 줬는데 이젠 못 참겠습니다! 그럼 평소 이 넓은 연병장을 열심히 청소한 우리 중대는 뭐가 됩니까? 우리만 바보였던 겁니까?”
이전에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청소해 줬던 전례가 있는지 모지윤 대위는 노발대발했다. 이번 경기에서 진 팀은 이긴 팀의 말에 토달지 않기로 했다고 모지윤 대위가 고대영 중사에게 덧붙여 말해 줬다.
“사회도 아니고 군에서 그딴 꼬장을 부린다는 겁니까? 거참, 아주 고문관 새끼들 아닙니까?”
마치 자기 중대의 일이라는 듯 씩씩거리던 고대영 중사의 귓가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악! 내 다리! 악!”
연병장 한가운데에는 상대방에게 군홧발로 강하게 걷어차인 이현재 소위가 쓰러진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리 각도가 이상하게 뒤틀려 있는 것을 보니 부러진 것 같았는데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원들은 이현재 소위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생쇼를 부린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저, 저 개새끼들이!”
그 모습을 보며 가장 먼저 욕설을 내 뱉은 것은 대기 13중대 중대원들이나 모지윤 대위가 아닌 고대영 중사였다.
함께 한 시간이라고 해 봤자 작업 몇 시간과 밥 한 끼 함께 먹은 것이 고작이었지만 미래로 와서 처음 사귄 친구 같은 군인들이었기에 고대영 중사는 자기가 모욕 당한 것같은 기분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지윤 대위! 이현재 소위 대신 저를 공격수로 투입해 주십쇼!”
갑작스러운 참전 요청에 모지윤 대위는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번 식목일 작업 때 고대영 중사가 보여 준 체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그 체력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기에서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모지윤 대위는 고대영 중사의 참전 요청을 승낙했다.
“좋습니다! 갑시다!”
이현재 소위 말고도 연병장에 쓰러져 있는 군인이 하나 더 있었기에 모지윤 대위는 고대영 중사를 이현재 소위 대신, 그리고 자신은 쓰러져 있는 다른 군인 대신 경기에 참가하기로 했다.
“전희연 님. 제 제복 좀 잠시 맡아 주십쇼.”
제복 상의를 벗어 전희연 하사에게 넘겨준 고대영 중사는 모지윤 대위와 함께 연병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묵묵히 연병장 한가운데로 걸어가고 있는 도중에도 그들 주변에서는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팀과 모지윤 대위의 중대팀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이건 완전 전쟁 한가운데 같네요.”
고대영 중사의 제복을 품에 안고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두 군인을 보던 전희연 하사는 그렇게 짧막한 말을 내뱉으며 흘리는 식은땀을 닦았다.
이런 일에 휘말렸으니 오늘도 제대로 된 외출은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전희연 하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타이이이임!”
심판이 없어 대신 소리 지르는 모지윤 대위의 목소리에 양 팀은 잠시 경기를 멈추고 각각 자기 팀 골대 쪽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죽어 나갈지도 모르는 경기였기에 연병장 바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무병들은 경기가 중단되자 급히 연병장 안으로 들어와 경기 진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선수들을 들것에 실었다.
그 들것에 실린 군인 중에는 이현재 소위도 있었다.
“괜찮습니까?”
고대영 중사는 들것에 실려 벨트로 몸이 고정되고 있는 이현재 소위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
“쿠, 쿨럭! 고 소령님! 우, 우리가 져선 안 됩니…….”
격통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중상이었지만 이현재 소위는 자신의 건강보다 중대를 걱정했고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해진 고대영 중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마십쇼. 이현재 소위! 제가 모지윤 대위의 중대에 승리를 가져다 주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전장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진 군인간의 전우애가 담긴 대화라 착각 할 법한 진지한 대화가 끝이 나고 실려 가는 군인 두 명을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던 고대영 중사는 모지윤 대위의 중대 소속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일단 경기 현황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팀 대기 13중대가 12점, 적팀이 15점으로 저희 중대가 3점 뒤쳐져 있습니다. 경기 종료까지는 21분 정도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군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한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가 경기를 리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축구 경기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기가 축구와는 많이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고대영 중사가 모지윤 대위에게 물었다.
“축구 경기라고 보긴 좀 그런 경기 같은데… 골만 넣으면 이기는 겁니까?”
“예, 우주군에서는 이 룰 없는 축구 경기를 그냥 전투 축구라 부릅니다. 이 경기에서는 어떤 폭력 행위를 해도 반칙이 아닙니다. 기존의 축구 룰도 모두 무시됩니다. 기존의 축구 룰과 같은 것은 단 세 가지. 경기 시간과 투입 가능한 선수 숫자 그리고 경기 시간 내에 골을 많이 넣으면 이긴다는 것 뿐 입니다.”
전투 축구가 생겨난 것은 2500년대 중반, 서로 앙숙이던 두 부대가 서로의 주간치 월급을 걸고 룰 없는 축구 경기를 벌이고 난 뒤부터다. 그 이후 서로 앙숙인 부대끼리는 자존심 대결로 이 축구 대결을 실시했다.
군인들이 서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로 사용했었고 1년에 치러지는 전투 축구 경기라고 해 봤자 2∼3번이 고작이었기에 우주군 지휘부는 이 전투 경기에 대해 노 터치하기로 했다.
“헐. 전투 축구 말고 살인 축구로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상대방을 두들겨 패는 것이 아닌 보다 효율적인 작전입니다.”
이미 지고 있는 경기, 아무런 작전 없이 계속 진행할 경우 질 것이 뻔했기에 고대영 중사는 작전을 제시했다. 5분간 이뤄진 작전 설명이 끝이 나고 군인들이 제 위치로 돌아가기 직전에 고대영 중사가 모지윤 대위의 대기 13중대팀 선수들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싸움이 아닌 신속한 진격이다!”
“오오오!”
고대영 중사가 외친 말은 어떤 장군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8년. 독일 총통이 된 히틀러는 구데리안에게 오스트리아 수도를 72시간 내로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힘 있는 국민들은 독일과 합병해 강력했던 예전의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독일 내에서도 오스트리아와 합병하자는 여론이 거셌다.
하지만 이 합병을 당시 주변 국가인 프랑스와 소련이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독일이 오랜 시간을 들여 오스트리아와의 합병을 시도할 경우 프랑스와 소련이 그 과정에 어떤 훼방을 놓을지 알 수 없었기에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고민에 휩싸였다.
프랑스와 소련을 피해 안전하게 오스트리아와 합병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훼방을 놓기 전에 재빠르게 합병을 해 버리는 방법밖에 없었고 이럴 때를 대비해 길러 둔 기동력이 우수한 기갑 부대를 투입해 순식간에 오스트리아의 수도를 점령한 후 합병을 선언한다. 라는 전략 카드를 히틀러가 꺼내 들었다.
히틀러 총통의 명령을 받든 구데리안은 기갑 부대들에게 오스트리아 수도를 72시간 내로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구데리안이 했던 말 중 하나가 고대영 중사가 외쳤던 말이다.
이후 구데리안의 기갑 부대들은 우수한 기동력을 내세워 바로 다음 날 오스트리아의 수도를 모두 장악하고 장악 다음 날 히틀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선언하게 된다.
“돌격 앞으로!”
전차 부대원들이나 외칠 법한 구호를 내뱉은 고대영 중사가 전면으로 치고 나오자 모지윤 대위의 대기 13중대팀 선수들은 고대영 중사가 작전에서 설명했던 대로 대열을 갖췄다.
고대영 중사를 선두로 좌우로 덩치가 큰 모지윤 대위와 군인 세 명이 약간 뒤쪽으로 포진하고 그 뒤로는 작은 삼각형을 형성한 군인 세명 정중앙에 덩치가 작은 군인 한 명이 자리를 잡았다. 나머지 두 명은 골대를 지켰다.
“작전 개시!”
고대영 중사의 외침과 함께 대기 13중대팀 선수들과 고대영 중사로 이루어진 화살표 대열은 공을 가지고 있는 상대팀 선수 쪽으로 맹렬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대기 13중대팀 선수들의 돌격을 막기 위해 상대팀 선수들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으나 고대영 중사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덩치 좋은 돌격조 5명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27세기 군인들은 비교적 체력 훈련이 적어 육체 단련이 잘되어 있지 않았고 21세기 기갑 부대 출신인 고대영 중사는 질리도록 체력 훈련을 해 왔던 터라 27세기 군인들에 비해 2∼3배에 가까운 높은 체력을 자랑했다. 덕분에 고대영 중사의 주먹을 버틸 만한 군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앞을 막아서는 상대편 선수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 쓰러뜨린 고대영 중사는 공을 빼앗는데 성공했고 획득한 공을 후방 대열, 삼각형 진형을 한 군인들 중앙에 위치한 덩치 작은 군인에게 패스하고 그대로 돌격했다.
그런데 전투를 하는 것은 대열 전방의 5명뿐, 다른 군인들은 상대편의 공격에 맞서기 보다는 최대한 피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 덕분에 대열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무리 없이 돌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골대까지 직행하는데 성공했고 삼각 진형 속에 보호되고 있던 덩치 작은 군인이 축구공을 힘껏 걷어차 골대 안에 축구공을 넣는데 성공했다.
“오오오오오오!”
순식간에 1점을 획득하자 대기 13중대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고대영 중사가 사용한 전술이 바로 오스트리아를 점령할 때 구데리안이 썼던 기갑 기동 전술이다.
물론 대형이나 구성 방식은 아예 달랐지만 싸움보다는 신속한 진격을 우선시하여 점수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많은 것이 구데리안의 오스트리아 점령 방법과 닮아 있었다.
그런데 적 팀은 그냥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고대영 중사의 팀이 기갑 사단이라 친다면 적 팀은 우주 함대였다.
“비켜! 새끼들아!”
대기 13중대가 머리를 쓰자 두들겨 패면 된다로 일관하던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팀도 작전을 구사했다.
제천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팀 줄여 보급 중대팀은 2겹의 횡렬진으로 고대영 중사의 기갑 사단을 막아섰는데 밀집형 대열을 쓰고 있는 고대영 중사 팀이 횡렬진 중앙을 파고들려 하자 횡렬진 좌우 끝의 선수들이 고대영 중사의 기갑 사단을 감싸듯 덮쳐 왔다.
하지만 보급 중대팀은 여전히 고대영 중사의 육체적 능력을 망각하고 있었다.
퍽! 팍! 퍼퍽!
둔중한 횡렬 진형은 고대영 중사를 내세운 강력한 파워와 밀집 대형으로 인해 생성되는 돌파력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대기 13중대팀의 기동 전술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없었다.
결국 경기는 17:15로 모지윤 대위의 대기 13중대팀이 승리했다.
“으, 으어. 오늘도 밖에 나가긴 글른 것 같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된 고대영 중사는 환호하는 대기 13중대원들에 의해 반 강제적인 헹가래를 당해 더 피곤한 기색이 되어 전희연 하사가 앉아 있는 자리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