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그너스 레퀴엠 1권(17화)
04. 일주일간의 휴가 그리고 다짐(11)
그래서 작전사령관이 딱 잘라 거절해도 할 말이 없다고 한 것인데 아직 고대영 중사의 말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가상 교전에서 저희가 이긴다는 것은 도박에 가깝습니다. 작전사령관님께서 일주일쯤 전에 도박은 판돈이 커질수록 재미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운 좋게 이기면 저희 일행이야 복권 당첨된 거고 이기지 못하면 저희는 소위로 시작, 전희연 하사의 경우에는 부사관에서 사관 시험 쳐서 소위로 새로 임관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경우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처음 고대영 중사의 건의 때 냈던 것과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한참을 웃던 문대진 대장은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으려 노력하다 진이 다 빠진 채로 입을 열었다.
“이건 배짱이 두둑한 걸 넘어서 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왔구만? 재미있는 녀석일세. 그래. 솔직하고 대담해서 아주 좋아. 자네 말대로 함세.”
“헉! 잘못 들었지 말입니다?”
작전사령관이 이번에도 너무 쉽게 수락하자 고대영 중사는 오히려 얼이 빠졌다.
“만약 자네들이 가상 교전에서 이겨 고급 지휘부로 대한민국함에 가게 될 경우 참모진을 추가로 한 명 배속시켜야 하는데 자네들에 대한 속사정을 모를 테니 이걸 설명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골이 아팠지. 자네들에 대해 잘 알고 참모로써 재능도 있는 전희연 하사를 앉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보네. 4명을 특진시키나 5명을 특진시키나 별 차이도 없고 말이야. 게다가 어차피 낮은 승률의 도박이니 다른 녀석들도 다들 수락할 걸세.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버틴다면 실력이 검증된 것이니 할 말도 없겠지.”
“아, 감사합니다. 작전사령관님만 뵈면 어린애처럼 땡깡만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전사령관의 말에 안심한 고대영 중사는 그제야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웃음 짓던 문대진 대장은 책상에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버튼 중 하나를 눌렀다.
“전희연 하사, 들어오도록.”
―아, 알겠습니다!
작전사령관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헐레벌떡 들어온 전희연 하사는 고대영 중사 옆에 똑바로 서 거수경례를 했다.
“수도 정보부 하사 전희연!”
분위기를 보아하니 전희연 하사는 전혀 모르는 내용인 것 같았고 문대진 대장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쉬게, 자네 단기 하사를 끝마치고 어떻게 할 생각인가?”
“시험 쳐서 장교로 임관할까 생각 중입니다.”
“그럼 고대영 중사 말대로 해도 되겠구만, 안 그래?”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벙 쩌 있는 전희연 하사에게 문대진 대장은 고대영 중사와의 이야기를 축약해 건네주었고 잠시 고민하던 전희연 하사는 고대영 중사가 내건 조건대로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조건을 내거셨습니까?”
작전사령관실을 빠져나온 전희연 하사가 궁금한지 물었고 고대영 중사는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 어차피 지겹고 힘든 직장 일하느니 이제는 적응되고 보람도 느껴지는 군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데 단기로 바꾸는 바람에 3개월 뒤에 제대하게 생겼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장교로 임관해 보겠다고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말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뜬 전희연 하사에게 고대영 중사는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로 계속 말했다.
“당연하지 말입니다. 무엇보다 군 생활은 친한 사람과 해야 즐거운 법입니다. 친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하! 그런가요?”
27세기에 도착한 이후 고대영 중사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다. 백조 무리에 끼어 있는 한 마리의 오리가 된 느낌. 함께 미래로 넘어온 다른 일행과 이야기를 할 때면 그나마 소외감이 조금이라도 줄었지만 알 수 없는 고독감은 여전했다.
그런 씁쓸한 기분을 항상 느끼고 있을 때 곁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 전희연 하사였다. 그렇게 자신감을 복돋아 준 은인 같은 사람을 가족과 영영 헤어진 것처럼 허무하게 잃기 싫었다.
작전사령관과 추가 조건을 내건 것은 단순히 그 작은 마음에서 비롯된 똥고집일 뿐이었다.
그렇게 고대영 중사 일행은 고대영 중사를 포함해 4명이었던 숫자가 전희연 하사를 포함해 5명으로 늘어 버렸다.
05. 가상 교전(1)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 1층 세미나실
7월 5일 14:58
11일 작전사령관과 이야기를 모두 확정 지은 고대영 중사 일행은 다음 날인 4월 12일부터 우주군 사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기밀인 만큼 우주군 사관학교에서 공개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고 군 숙소 세니마실로 교관들이 와서 고대영 중사 일행에게 우주군 사관 교육을 실시하는 쪽으로 교육 문제는 해결되었다.
교육은 우주 및 중력권 내 항해술, 우주 기상론, 함정 무기 체계, 우주군 종합 전술, 지상 상륙 전술, 지휘법, 체력 육성, 정훈 교육 등 우주군 사관학교에서 실시되는 모든 교육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대영 중사 일행은 받게 되었는데 27세기 적응 훈련도 추가로 받는 탓에 모두가 죽을 맛이었다.
일행 중 가장 여유로운 사람은 27세기 적응 교육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었고 우주군에 대해 지식도 풍부한 전희연 하사밖에 없었다.
전희연 하사를 제외한 나머지 군인들은 식사 및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육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고대영 중사는 교육 전에 전희연 하사에게 우주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가장 진도 빼기가 수월했는데 나머지 3인방은 우주군 기초 정보도 부족해 쩔쩔 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각자 특징이 교육에서 나타났다. 고대영 중사는 이전에 간부였고 전차 승무원들을 통솔하는 전차장을 수행해서 그런지 지휘에 탁월했고 이민채 하사는 전술, 김대국 상병은 우주군 정보 암기에, 전이석 일병은 우주군 기계, 정비 계통에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두각을 나타낸다고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었고 근 3개월에 가까운 지옥과도 같은 교육과 훈련을 끝마친 그들 일행은 아슬아슬하게 퇴소 점수 상공을 비행하는 이민채 하사를 제외하고 모두 무난하게 우주군 사관생도 교육 과정을 수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작전사령관 문대진 대장과 이야기 했던 “조건”의 시간이 가까워져 갔다.
“아이고, 골이야.”
작전사령부 전면에 위치한 공원 벤치에서 고대영 중사는 벤치에 몸을 파묻은 상태로 중얼거렸다.
1년 동안 받을 우주군 사관 교육을 근 3개월만에 모두 마친 것도 모자라 남는 시간 틈틈이 가상 교전을 대비해 정보를 모으고 있었던 터라 잠시도 머리를 쉬게 할 틈이 없어 고대영 중사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삐삑!
제복 안주머니에서 호출음이 들리자 고대영 중사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군 숙소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회의 시간이었다.
“다들 준비됐습니까?”
군 숙소 세미나실에 들어선 고대영 중사는 세미나실에 일행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세미나실 한 켠, 일행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대충 아무 의자나 잡아끌어 앉았다.
“회의 시작합니다. 먼저 각자 모은 정보부터 확인해 봅시다. 전희연 님?”
자기 이름이 불리자 전희연 하사는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를 꺼내 실행 버튼을 눌렀고 둥글게로 모여 있는 고대영 중사 일행 한가운데 커다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이번 가상 교전에서 적함대로 참여할 현직 함대사령관과 함장 목록입니다. 정보부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얻었습니다.”
고개를 위아래로 작게 끄덕이는 고대영 중사를 본 전희연 하사는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일부분을 확대시켰다.
“이번 교전에서 적함대 지휘부로 참여하게 될 현직 함장들은 K―81 방어함대의 지휘부들로 가상 교전 랭크는 우주군 총 랭크 중위권입니다. 말이 중위권이지 그 많은 함대들 중에 중위권이라면 실력이 상당하다는 의미입니다.”
홀로그램을 조목조목 훑어보던 고대영 중사의 입에서 신음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끙, 작전사령관님인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작정하시고 상대를 골라 주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자 고대영 중사는 애써 밝게 웃으며 일행들을 다독여 주었다.
“오? 참여 군인들 성향까지 조사해 왔습니까? 역시 전희연 님! 수고하셨습니다.”
쑥스러워하는 전희연 하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 고대영 중사는 전희연 하사가 조사해 온 내용을 조금도 빠짐없이 꼼꼼히 읽었다. 함께 있는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흠, 그동안 참여했던 가상 교전 내용들을 보니 철저한 정공법 위주 같습니다?”
고대영 중사가 가상 교전 내용 몇 가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묻자 전희연 하사는 따로 조사해 온 내용을 홀로그램에 추가로 도입시켰다.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기존의 교전 수칙대로 교전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주군 입장에서 보자면 모범답안 같은 분들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정공법으로 나간다면 패배는 기정사실이겠습니다?”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전희연 하사의 얼굴에는 이번 가상 교전에서 이길 승산이 없다고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정공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유효할 만한 독특한 전술을 찾아보면 됩니다. 역사에서도 알 수 있으시다시피 유명한 전술이나 전략은 정공법이 아닌 색다른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하긴 B―94 교전처럼 말이지?”
이민채 하사의 말에 고대영 중사는 중지와 엄지를 부딪쳐 딱! 소리를 내며 맞장구쳐 주었다.
예전에 우주군 공원에서 전희연 하사에게 우주군 역사를 들은 이후, 우주군 사관 교재에도 그와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자 고대영 중사는 B―94 교전이 유명하긴 하구나라고 하면서 유심히 내용을 읽었던 것을 떠올렸다.
“제가 조사해 온 것들은…….”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이민채 하사는 자신이 가져온 홀로그램기를 작동시켰고 전희연 하사가 작동시킨 홀로그램 영상이 새로 출력되는 홀로그램 영상에 밀려 옆으로 빠졌다.
“그간 실전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던 전술들을 모아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SF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전술들도 제법 포함시켜 봤는데 대부분이 기존 전술과는 거리가 멀어 정공법으로만 교전에 참여하는 상대 함대 지휘부가 이 전술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전술과 소설, 애니메이션에서 끌어온 전술들이 50대 50 비율로 평행을 이루었는데 홀로그램에 비춰진 깨알 같은 글씨들을 보아하니 자료가 엄청 많은 것 같았다.
“오호? 수고했어. 이중에 괜찮은 전술이 있나 이따가 다같이 찾아보자고.”
우리 오덕이 달라졌어요! 라고 말하며 괜스레 장난치는 고대영 중사에게 이민채 하사가 툴툴대는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던 김대국 상병은 자기 차례라고 생각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전 이번 가상 교전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김대국 상병 역시 자기가 조사해 온 자료를 홀로그램으로 출력했고 전희연 하사와 이민채 하사가 조사해 온 자료들이 새로 재생된 홀로그램에 의해 좌우로 크게 밀려났다.
“이번 가상 교전은 기존 가상 교전 규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들 계실 걸로 알고 자세한 규정 부분은 생략하고 가상 교전 진행 절차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홀로그램 생성기에 달린 버튼을 김대국 상병이 살짝 누르자 영상이 바뀌었다. 얼핏 보면 격납고 내부 같은 영상이었다.
“본격적인 가상 교전에 앞서 각 함대는 전투함의 무장이나 대열, 설정들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가상 교전 시스템은 실제 함대 모습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퀄리티를 자랑하고 실제 함대에서 조율할 수 있는 것, 없는 것들 모두 나사 하나까지 세밀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실제 함대에서 조율 불가능한 것은 하지 못하고 가능한 것은 조율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김대국 상병은 다시 버튼을 눌러 영상을 넘겼다. 광활한 우주 구역에 놓인 두 함대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조율이 모두 끝나면 본격적인 우주 교전이 개시됩니다. 격납고에서 우주로 이동된 두 함대의 거리는 700km. 두 함대가 우주 공간으로 옮겨짐과 동시에 교전이 시작됩니다. 교전 제한 시간은 5시간으로 5시간이 모두 지날 때까지 교전이 끝나지 않을 경우 생존 전투함 숫자 혹은 병력으로 승패를 구분합니다.”
“5시간 버틴다 치더라도 우리 피해가 더 많으면 지는 거 아냐? 막막하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 고대영 중사에게 전이석 일병이 마지막으로 발표했다.
“전 이번 가상 교전에 투입되는 전투함들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중앙 의자에 모여 있는 3개의 홀로그램 생성기에 전이석 일병은 자신의 홀로그램 생성기를 추가로 올려놓고 실행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