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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20화)
05. 가상 교전(4)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08 가상 교전 실습실
2670년 7월 7일 09:37
중앙 모니터로 적함대가 대형을 밀집 진형으로 변경하는 것을 확인한 고대영 중사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피어났다.
“작전대로다!”
함대의 피해가 적함대에 비해 큰 상황임에도 고대영 중사는 뭐가 좋은지 계속 웃었다.
적함대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고대영 중사의 함대 전투기들의 피해가 누적되었다.
―5, 6번함의 전투기 90%가 격추되었습니다. 적 전투기 세력의 약 45%, 본 함대를 목표로 접근 중.
―1번함부터 5번함까지의 소속 전투기들의 피해가 누적됩니다. 39%가 적함대의 공격에 격추되었습니다.
처절할 정도의 피해지만 고대영 중사의 얼굴은 절대 어두워지지 않았다.
“근접 병기 사용 자유! 적 전투기의 접근을 저지한다!”
―알겠습니다. 함대사령관님.
고대영 중사 함대의 5, 6번함 소속 전투기들은 적 전투기들을 상대했던 세력인데 워낙 전력의 차가 극심하다 보니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5, 6번함 소속 전투기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한 적 전투기들의 약 45%는 직접 고대영 중사의 함대를 타격하려 했고 고대영 중사의 함대 근접 방어 체계, 레이저포와 기관포들이 적 전투기를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함대! 최대 최전속으로!”
실실거리던 고대영 중사의 얼굴이 진지함으로 도배되었다. 이제 작전의 마지막 절차를 실행에 옮길 때였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04 가상 교전 실습실
7월 7일 09:44
적 전투기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있던 K―81 방어함대의 기함 중앙사령실에 적함대에 관한 보고가 들어왔다.
―적함대 최대 최전속으로 전속 항진 중, 거리 앞으로 90km!
“이제는 몸으로라도 들이받을 생각인가?!”
기함 우선 격침은 물론 전투기 전술이라는 카드까지 무용지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하는 것을 보며 김근식 대령은 끈기하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적함대와의 거리 앞으로 50km!
기함은 일반적으로 교전에서 숨지 않고 다른 전투함과 함께 전면에서 교전을 치른다. 그렇게 해야 다른 전투함들이 받는 빔 포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인데 지금 적함대는 기함을 애지중지 아끼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함 중심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기함에 뭔가 있다는 의미였고 김근식 대령은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이 상황이 몹시 짜증 났다.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적함대 기함을…….”
눈살을 찌푸리며 명령을 내리려던 김근식 대령은 중앙 모니터에 비춰진 적함대의 진형에 변화가 일어나자 말을 멈췄다.
적함대는 기함을 제외한 모든 전투함들이 급하게 속도를 줄이며 산개했고 기함만이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저, 적 기함을 우선 격침시켜!”
계속되는 이상한 전술에 휘말려 너무 안이했다라고 자책한 김근식 대령은 적 기함에 뭔가 있다고 생각하고 급히 적 기함을 우선 격침시키라고 명령했지만 늦었다.
―시간이 모자랍니다!
―적 전투기 대열, 본 함대 근접 거리에서 급속 이탈 중!
“설마 자살 공격인가!”
위험물을 가득 실은 적 기함이 자신의 함대에 자살 공격을 해 오는 것이라고 예측한 김근식 대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렀다. 어떻게든 저 자살 공격을 피해야 했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08 가상 교전 실습실
7월 7일 09:50
돌격하는 순양함에 고대영 중사는 타고 있지 않았다. 진짜 기함은 2번함이라 불리는 25만 톤급 순양함이었고 고대영 중사는 그곳에서 함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돌격하는 것은 1번함, 원래라면 기함이 되었어야 할 50만 톤급 순양함이었다.
“기함과 적함대의 거리는?”
―20km입니다.
―적함대 산개합니다!
중앙 모니터에는 적함대가 느릿느릿하게 산개하는 모습을 비춰 주고 있었는데 고대영 중사는 그것을 보며 혀를 찼다.
“늦었어.”
고대영 중사 일행이 준비해 온 전술은 전투기들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전술이 아니었다.
전투기를 적함대 전투함을 공격하게 하는 것처럼 속여 상대 함대가 전투기에 속아 함대 진형을 밀집 진형으로 변경하게 되면 고대영 중사 함대의 모든 대함미사일의 50%에서 분리해 낸 폭약들을 1번함에 가득 싣고 적함대 중앙에서 자폭시킬 생각이었다.
상대방이 전공법에만 매달렸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는데 처음, 적함대에 다수의 대함미사일을 발사한 이유는 단순히 고대영 중사의 장난이었다.
어차피 탄두가 빈 대함미사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적함대사령관을 놀래킬 생각으로 빈 대함미사일 대부분을 기함에 발사한 것이다. 그래서 적 기함에 대함미사일이 하나 명중했지만 적 기함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것이다.
―거리 500m!
“자침!”
고대영 중사의 말과 함께 1번함에 실려 있는 모든 폭약과 연계되어 있는 방어미사일들까지 모두 폭파되었고 그 충격파가 인근에 있는 적함대에게 피해를 주었다.
고대영 중사 함대의 1번함에서 발생한 밝은 빛은 상대편 기함과 4척에 이르는 전투함정들을 집어삼켰다.
그 공격으로 K―81 방어함대 전투함들은 함대 전력의 60% 이상을 잃었다.
―적함대 목표 1, 2, 3 침몰. 목표 4, 대파. 목표 5, 6 반파!
기분 좋은 소식에 고대영 중사는 승리를 확신하는 자신감 충만한 표정을 지으며 명령했다.
“함대! 각 함정별 각개 전투에 들어간다! 남은 적함들을 격파하고 왱왱대는 적 전투기 좀 처리해!”
고대영 중사의 회심의 일격으로 인해 적함대는 전력이 60%이상 깎여 나갔고 함대 40%의 전력만이 남은 적함대는 더 이상 고대영 중사에게 적수가 아니었다.
“쓸어버려!”
빔 공격에 상당히 오랫동안 노출되어 큰 피해를 입은 고대영 중사의 함대였지만 얼마 남지 않은 적함대를 처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남은 적함대의 전투함정들은 자신들의 전력에 2배에 가까운 적함대의 집중 포화에 전투함이 하나하나 침몰해 갔다.
삐삑! 삐삑!
중앙사령실에 이상한 호출음이 짧게 울려 퍼졌고 그것이 적함대의 항복 신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고대영 중사는 가상 교전을 성공리에 마무리 지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K―81 방어함대사령관 김근식 대령입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항복을 접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지 통신을 끊지 않고 있던 김근식 대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전술이었습니다.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김근식 대령의 칭찬에 멋쩍어진 고대영 중사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저야말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몇 분간 대화를 좀 더 나눈 고대영 중사는 통신을 끝내고 가상 교전을 종료했다.
이번 교전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김근식 대령의 함대는 이후 정공법에서 복합 전술로 전술 방향을 돌리고 대한민국 우주군 가상 교전 랭크 상위권으로 진입하게 된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08 가상 교전 실습실
7월 7일 10:28
―가상 교전 접속 종료까지 앞으로 10초.
10. 9. 8. 7. 6. 5. 4. 3. 2. 1. 0 가상 교전이 정상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가상 접속 보조기 출입구를 개방합니다.
가상 접속이 종료되었다는 말에 고대영 중사는 눈을 떴고 08 가상 교전 실습실 내부의 강한 조명에 눈을 찌푸렸다.
“으윽.”
눈을 게슴츠레 뜨고 시야가 안정되길 기다리던 고대영 중사는 눈 앞에 나타난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차장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손의 주인이 이민채 하사인 것을 알아챈 고대영 중사는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으로 어떻게든 이민채 하사의 얼굴을 보려고 노력했다.
“눈이 오지게 따갑네. 니들은 괜찮냐?”
승리에 들뜬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일행들은 약간 허무함을 느꼈지만 그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고대영 님이 상대 함대사령관 분하고 대화 나누고 계실 때 저희는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희연 하사의 말에 납득한 고대영 중사는 마치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목을 벅벅 긁었다.
“상대 함대사령관하고 대화를 해서 확실히 이긴 건 알겠는데… 여전히 실감이 안 된다. 진짜 이겼냐?”
“예! 이겼습니다!”
들뜬 목소리로 답해 주는 전이석 일병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고대영 중사의 입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흐. 흐흐. 하. 하하하!”
웃음이란 전염력이 강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고대영 중사의 웃음이 주변 일행들에게 전염되었고 08 가상 교전 실습실에는 고대영 중사와 일행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이겼다! 이겼어!”
모두가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을 때 김대국 일병이 헹가래를 하자고 제안했고 그 제물로 고대영 중사가 선택되었다.
읏샤!
“어어!”
몸이 공중에 붕 뜬 느낌에 고대영 중사가 괴상한 소리를 입에서 흘렸다. 비교적 천장이 높은 08 가상 교전 실습실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 고대영 중사는 지금 상황을 충분히 만끽하기로 했다.
“축하하네.”
하늘로 띄워진 숫자가 10번째가 되었을 때 문대진 대장이 다가와 축하의 말을 전했고 작전사령관의 등장에 모두가 경례를 하느라 하늘에 붕 띄워진 고대영 중사를 아무도 받지 못했다.
퍽!
“아악!”
얼굴부터 바닥에 착지한 덕분에 코피를 내뿜던 고대영 중사는 애써 자세를 바로하고 다른 일행들처럼 경례를 했다.
“필승!”
“쉬어도 좋네. 그런데 자, 자네 아프지 않나?”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히죽거리는 고대영 중사를 보며 걱정스런 마음이 든 문대진 대장이 물었지만 고대영 중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하하!”
고대영 중사 일행에게 미소를 지어 주던 문대진 대장은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이길 줄은 몰랐네. 아니, 그런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이길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지.”
코에서 흐르는 피를 전희연 하사가 건네준 휴지로 대충 지혈하던 고대영 중사는 문대진 대장의 말에 가상 교전 내용을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실전에서는 사용 불가능한 전술입니다. 가상 교전이었기에 가능했던 전술이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정공법을 우선시하지 않았다면 허무하게 패배했을지도 모릅니다.”
가상 교전 중에 고대영 중사의 함대가 위험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대함미사일 방어를 모두 마쳤을 때 6:7로 고대영 중사의 함대가 지고 있었고 보조기관을 사용하지 못해 적 포화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때도 있었다.
만약 적함대사령관이 고대영 중사의 전략을 눈치챘다면? 폭발물을 가득 실은 1번함에 대함미사일이 명중하거나 빔 피격의 피해로 1번함이 이상을 일으켜 폭발했다면? 고대영 중사의 함대는 전략을 수정할 틈도 없이 적함대에게 궤멸당했을 것이다.
“하하! 여튼 정말 수고 많이 해 주었네. 구경하는 입장에서 무척 재미있기도 했고 말이야.”
수고했다는 듯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준 문대진 대장은 몸을 돌려 의자에 걸쳐 둔 정복 상의를 집어 들었다.
“자네들은 내일이나 모래 중으로 대한민국함 지휘부로 발령 날 거야. 오후 5시쯤에 그와 관련해서 군인 하나 보내 줄 테니 그때 이야기 잘 들어 두게. 그럼 난 이제부터 회의에 참석해야 하니 먼저 가 보겠네.”
“필승!”
문대진 대장은 웃는 얼굴로 답례를 해 주고는 빠른 걸음으로 08 가상 교전 실습실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08 가상 교전 실습실에 볼일이 없어진 고대영 중사 일행들은 들뜬 분위기로 군 숙소를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