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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상하게도 이 댁 앞을 지날 때 갑자기 보름쯤 굶은 것처럼 심한 허기를 느꼈습니다. 몹시 고통스러웠지요.”
“그럼 배가 고파서 그리 서럽게 울었다는 것인가?”
“송구하게도 그러하옵니다.”
“그런 이유로 울었다니 차라리 다행일세. 그런 것이라면 내가 쉽게 도울 수 있네.”
“이런 적이 처음이라 소인도 당황스럽습니다. 민망하옵게도 이 댁의 밥을 한 숟갈이라도 얻어먹지 못하면 소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몹시 겁이 납니다. 부디, 소인이 마님 댁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알았네. 자네에게 밥을 줄 것이네. 그러면 안 좋은 일도 안 생기지 않겠는가? 이제 울지 말게.”
“고맙습니다, 마님.”
뭐야? 왜 이래?
시시해진 상황에 김이 팍 샜다. 배고파서 울었다는 맹인과 밥을 줄 테니 울지 말라는 착한 어머니라니.
어릴 적 즐겨 읽던 전래 동화의 한 장면처럼 훈훈하긴 했다. 하지만 흥미로움을 느낄 만한 부분이 한 곳도 없지 않은가?
만효는 맹인이 젊고 훤칠한 데다가 옷도 머리도 깔끔하여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아름답다 소문난 마님을 마음의 눈으로밖에 볼 수 없어 아쉽다고, 너무 속이 상해 울었다고 말한다거나?
그런데 뭐? 배고파서 울었다고? 그뿐이라고?
허탈해진 만효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한숨 쉬었다.
“뜨끈한 밥을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나.”
어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 짓더니 맹인 곁에 있던 남자 종을 불러 몇 마디 했다. 아마 맹인에게 상을 차려 주라고 했을 터. 그러곤 만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만효야, 우린 이만 들어가자꾸나.”
“네. 어머니.”
혹시나 하는 반전을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맹인을 좀 더 지켜보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르시니 따라 들어갈 수밖에.
만효는 뒤를 돌아보며 맹인을 향해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는 어차피 못 볼 테지만 최대한 귀여운 척하며 허공에 손을 마구 휘저었다.
모시는 웃전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남자 종이 표정을 싹 바꿨다. 남종은 맹인을 못마땅한 얼굴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국밥을 내올 것이니, 들어와서 기다리게나.”
“예, 신세 좀 지겠습니다.”
“자네, 오늘 운이 아주 좋네. 우리 마님이 안 계셨으면 물벼락을 맞았을 것이야. 내 자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는 남의 집 앞에서 울지 말게. 재수 없다고 다들 싫어할걸세.”
“예,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만효가 다시 나타났다. 만효는 맹인에게 짜증 내는 남자 종을 나무랐다. 사회적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질색이었다.
더구나 맹인은 배고프다고 울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당 떨어졌을 때 싫은 소리 들으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녀는 남종에게 웃전으로서 한마디 했다.
“그만 좀 해. 이자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울었겠어?”
“아, 예, 아씨.”
“원래 본능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감정이 더 격해진다고.”
“예? 아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야. 못 알아들었으면 됐어. 흘려들어.”
만효는 어른처럼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차 싶었다.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맹인을 응시했다.
점치는 맹인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나였을 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집, 저 집 다니며 점까지 봐 주는 맹인은 처음이라 흥미로웠다.
잠시 뒤, 여종이 작은 상을 들고 와 맹인 앞에 놓았다. 뜨끈한 국밥과 무장아찌뿐인 단출한 상이었지만, 그는 음식 냄새가 마음에 드는지 코를 킁킁거리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냄새가 정말 좋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만효는 근처에서 딴청을 피우면서 맹인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앞으로 가서 질문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체면을 생각해 참는 것이었다.
맹인은 앞에 놓인 국밥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단정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식사 태도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아까 밥을 먹었다는 말은 거짓인지도 모른다. 그는 배가 몹시 고파 보였으니까.
맹인은 밥을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숟가락을 내려놓고 만효가 있는 방향을 보며 말했다.
“아씨, 잠시만 가까이 와 주시겠습니까? 소인이 밥값을 하게 해 주시지요.”
“밥값?”
만효는 겁을 내기는커녕 이때다 싶었다.
한나로 살았을 때도 별자리 운세나 타로 점, 토정비결에 관심이 많아 자주 보곤 했었다. 그런 그녀가 점치는 맹인을 만났으니 얼마나 궁금한 게 많겠는가?
하지만 어머니께서 아시면 기겁을 하실 테니 참는 게 좋겠지?
“아씨.”
“미안하지만, 그냥 거기서 말하게. 우리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셔서 말이야.”
맹인은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만, 효. 김만효라……. 아씨 이름을 참 잘 지으셨습니다. 명(命)이 아주 긴 이름이군요. 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만효는 서른세 살 어른답게 겁이 없지만, 여섯 살 어린이처럼 호기심이 많았다. 더구나 이곳은 그녀의 집 안이 아닌가? 걱정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효가 눈을 반짝이며 친근한 어조로 물었다.
“내 이름이 그렇게 좋아? 잘 지은 거 맞아? 아, 맞다. 자네는 앞이 안 보이잖아. 근데 내가 있는 방향을 어떻게 알았어?”
“느껴진답니다.”
“난 소리도 안 내고 조용히 있었는데? 자네, 아까 어머니께 귀하신 분의 냄새가 난다고 했잖아. 나한테도 귀한 냄새가 나?”
“흐음…….”
“아님 자네에게 점괘를 알려 주는 귀신이 내가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알려 줘?”
“흐음…….”
“어허! 내가 어리다고 대답도 안 하고 무시하는 거야?”
거듭되는 재촉에 맹인은 마치 만효의 얼굴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만효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는 마치 만효의 속사정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씨께는 특별한 냄새가 난답니다.”
“진짜?”
“아씨, 소인이 확인해 볼 게 있사오니 잠시만 손 좀 만지게 해 주시겠습니까? 아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려 드려야 소인의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맹인은 허공으로 팔을 뻗었고, 만효는 씩 웃었다. 곁을 지키던 여종은 몹시 당황스러워하며 만효의 앞을 막아섰다.
“아씨, 안 됩니다. 가까이 가지 마셔요.”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나한테 확인해 볼 게 있다잖아? 여긴 우리 집인데 어때. 걱정할 거 없어.”
만효는 해맑게 웃으며 태연히 말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잡힐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섯 살은 껍데기일 뿐이고, 그녀는 서른셋이니까.
하지만 여종이 그런 만효의 속을 알 리 없을 터. 손을 만지게 하는 건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흠……. 내가 어떻게 느껴졌을까? 궁금한데?”
만효는 시치미를 떼며 맹인을 놀리듯 말했다. 그가 무얼 하려는지 궁금하긴 했다.
“혹시 신발에서 냄새나나?”
만효는 중얼거리듯 크게 혼잣말했다. 이건 어제 처음 신은 새 신발이라 냄새가 날 리 없었다. 발을 감싼 가죽 꽃신을 내려다보니 예쁘다는 생각만 들었다.
‘대체 뭔데 향기도 아니고 냄새래?’
맹인이 침묵할수록 만효는 어떤 냄새가 나기에 저러는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점 보는 자가 하는 말이라 더 그런 것 같았다.
‘발 냄새도 아니고. 음식 냄새가 날 리도 없는데? 향유를 발랐으니 머리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만효는 제 손바닥을 코에 갖다 대고 킁킁거리며 다시 말했다.
“난 정말 아무 냄새도 안 나거든? 자네는 후각이 대단한가 봐?”
그때, 맹인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만효가 피할 틈도 없이 성큼 다가왔다. 맹인의 커다란 손이 만효의 작고 하얀 손을 낚아챘다.
여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었다. 감히, 병조 판서 딸의 몸에 손을 대다니.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상황이었다.
“왜, 왜 이래? 이 손 놔!”
맹인은 미소만 지으며 만효의 손을 제 다른 손으로 감쌌다. 그가 만효의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씨에게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뭐, 뭐라고?”
“아씨는 아씨만의 맛을 내실 겁니다. 맛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손끝만 스쳐도 침이 흐를 정도의 경지에 오르시겠군요. 그 생각을 하니 소인도 허기지고 침이 고입니다. 아, 얼마나 맛이 좋을까요?”
만효는 너무 당황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손을 홱 빼자 맹인이 움찔했다. 만효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맹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맹인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손맛이 아주 좋으시겠습니다. 그 누구라도 아씨의 손맛에 반할 수밖에 없겠군요. 덕분에 아씨께서는 뜻하시는 바를 전부 다 이루실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댁 앞을 지날 때 갑자기 보름쯤 굶은 것처럼 심한 허기를 느꼈습니다. 몹시 고통스러웠지요.”
“그럼 배가 고파서 그리 서럽게 울었다는 것인가?”
“송구하게도 그러하옵니다.”
“그런 이유로 울었다니 차라리 다행일세. 그런 것이라면 내가 쉽게 도울 수 있네.”
“이런 적이 처음이라 소인도 당황스럽습니다. 민망하옵게도 이 댁의 밥을 한 숟갈이라도 얻어먹지 못하면 소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몹시 겁이 납니다. 부디, 소인이 마님 댁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알았네. 자네에게 밥을 줄 것이네. 그러면 안 좋은 일도 안 생기지 않겠는가? 이제 울지 말게.”
“고맙습니다, 마님.”
뭐야? 왜 이래?
시시해진 상황에 김이 팍 샜다. 배고파서 울었다는 맹인과 밥을 줄 테니 울지 말라는 착한 어머니라니.
어릴 적 즐겨 읽던 전래 동화의 한 장면처럼 훈훈하긴 했다. 하지만 흥미로움을 느낄 만한 부분이 한 곳도 없지 않은가?
만효는 맹인이 젊고 훤칠한 데다가 옷도 머리도 깔끔하여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아름답다 소문난 마님을 마음의 눈으로밖에 볼 수 없어 아쉽다고, 너무 속이 상해 울었다고 말한다거나?
그런데 뭐? 배고파서 울었다고? 그뿐이라고?
허탈해진 만효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한숨 쉬었다.
“뜨끈한 밥을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나.”
어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 짓더니 맹인 곁에 있던 남자 종을 불러 몇 마디 했다. 아마 맹인에게 상을 차려 주라고 했을 터. 그러곤 만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만효야, 우린 이만 들어가자꾸나.”
“네. 어머니.”
혹시나 하는 반전을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맹인을 좀 더 지켜보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르시니 따라 들어갈 수밖에.
만효는 뒤를 돌아보며 맹인을 향해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는 어차피 못 볼 테지만 최대한 귀여운 척하며 허공에 손을 마구 휘저었다.
모시는 웃전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남자 종이 표정을 싹 바꿨다. 남종은 맹인을 못마땅한 얼굴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국밥을 내올 것이니, 들어와서 기다리게나.”
“예, 신세 좀 지겠습니다.”
“자네, 오늘 운이 아주 좋네. 우리 마님이 안 계셨으면 물벼락을 맞았을 것이야. 내 자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는 남의 집 앞에서 울지 말게. 재수 없다고 다들 싫어할걸세.”
“예,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만효가 다시 나타났다. 만효는 맹인에게 짜증 내는 남자 종을 나무랐다. 사회적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질색이었다.
더구나 맹인은 배고프다고 울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당 떨어졌을 때 싫은 소리 들으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녀는 남종에게 웃전으로서 한마디 했다.
“그만 좀 해. 이자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울었겠어?”
“아, 예, 아씨.”
“원래 본능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감정이 더 격해진다고.”
“예? 아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야. 못 알아들었으면 됐어. 흘려들어.”
만효는 어른처럼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차 싶었다.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맹인을 응시했다.
점치는 맹인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나였을 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집, 저 집 다니며 점까지 봐 주는 맹인은 처음이라 흥미로웠다.
잠시 뒤, 여종이 작은 상을 들고 와 맹인 앞에 놓았다. 뜨끈한 국밥과 무장아찌뿐인 단출한 상이었지만, 그는 음식 냄새가 마음에 드는지 코를 킁킁거리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냄새가 정말 좋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만효는 근처에서 딴청을 피우면서 맹인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앞으로 가서 질문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체면을 생각해 참는 것이었다.
맹인은 앞에 놓인 국밥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단정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식사 태도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아까 밥을 먹었다는 말은 거짓인지도 모른다. 그는 배가 몹시 고파 보였으니까.
맹인은 밥을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숟가락을 내려놓고 만효가 있는 방향을 보며 말했다.
“아씨, 잠시만 가까이 와 주시겠습니까? 소인이 밥값을 하게 해 주시지요.”
“밥값?”
만효는 겁을 내기는커녕 이때다 싶었다.
한나로 살았을 때도 별자리 운세나 타로 점, 토정비결에 관심이 많아 자주 보곤 했었다. 그런 그녀가 점치는 맹인을 만났으니 얼마나 궁금한 게 많겠는가?
하지만 어머니께서 아시면 기겁을 하실 테니 참는 게 좋겠지?
“아씨.”
“미안하지만, 그냥 거기서 말하게. 우리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셔서 말이야.”
맹인은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만, 효. 김만효라……. 아씨 이름을 참 잘 지으셨습니다. 명(命)이 아주 긴 이름이군요. 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만효는 서른세 살 어른답게 겁이 없지만, 여섯 살 어린이처럼 호기심이 많았다. 더구나 이곳은 그녀의 집 안이 아닌가? 걱정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효가 눈을 반짝이며 친근한 어조로 물었다.
“내 이름이 그렇게 좋아? 잘 지은 거 맞아? 아, 맞다. 자네는 앞이 안 보이잖아. 근데 내가 있는 방향을 어떻게 알았어?”
“느껴진답니다.”
“난 소리도 안 내고 조용히 있었는데? 자네, 아까 어머니께 귀하신 분의 냄새가 난다고 했잖아. 나한테도 귀한 냄새가 나?”
“흐음…….”
“아님 자네에게 점괘를 알려 주는 귀신이 내가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알려 줘?”
“흐음…….”
“어허! 내가 어리다고 대답도 안 하고 무시하는 거야?”
거듭되는 재촉에 맹인은 마치 만효의 얼굴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만효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는 마치 만효의 속사정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씨께는 특별한 냄새가 난답니다.”
“진짜?”
“아씨, 소인이 확인해 볼 게 있사오니 잠시만 손 좀 만지게 해 주시겠습니까? 아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려 드려야 소인의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맹인은 허공으로 팔을 뻗었고, 만효는 씩 웃었다. 곁을 지키던 여종은 몹시 당황스러워하며 만효의 앞을 막아섰다.
“아씨, 안 됩니다. 가까이 가지 마셔요.”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나한테 확인해 볼 게 있다잖아? 여긴 우리 집인데 어때. 걱정할 거 없어.”
만효는 해맑게 웃으며 태연히 말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잡힐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섯 살은 껍데기일 뿐이고, 그녀는 서른셋이니까.
하지만 여종이 그런 만효의 속을 알 리 없을 터. 손을 만지게 하는 건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흠……. 내가 어떻게 느껴졌을까? 궁금한데?”
만효는 시치미를 떼며 맹인을 놀리듯 말했다. 그가 무얼 하려는지 궁금하긴 했다.
“혹시 신발에서 냄새나나?”
만효는 중얼거리듯 크게 혼잣말했다. 이건 어제 처음 신은 새 신발이라 냄새가 날 리 없었다. 발을 감싼 가죽 꽃신을 내려다보니 예쁘다는 생각만 들었다.
‘대체 뭔데 향기도 아니고 냄새래?’
맹인이 침묵할수록 만효는 어떤 냄새가 나기에 저러는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점 보는 자가 하는 말이라 더 그런 것 같았다.
‘발 냄새도 아니고. 음식 냄새가 날 리도 없는데? 향유를 발랐으니 머리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만효는 제 손바닥을 코에 갖다 대고 킁킁거리며 다시 말했다.
“난 정말 아무 냄새도 안 나거든? 자네는 후각이 대단한가 봐?”
그때, 맹인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만효가 피할 틈도 없이 성큼 다가왔다. 맹인의 커다란 손이 만효의 작고 하얀 손을 낚아챘다.
여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었다. 감히, 병조 판서 딸의 몸에 손을 대다니.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상황이었다.
“왜, 왜 이래? 이 손 놔!”
맹인은 미소만 지으며 만효의 손을 제 다른 손으로 감쌌다. 그가 만효의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씨에게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뭐, 뭐라고?”
“아씨는 아씨만의 맛을 내실 겁니다. 맛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손끝만 스쳐도 침이 흐를 정도의 경지에 오르시겠군요. 그 생각을 하니 소인도 허기지고 침이 고입니다. 아, 얼마나 맛이 좋을까요?”
만효는 너무 당황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손을 홱 빼자 맹인이 움찔했다. 만효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맹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맹인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손맛이 아주 좋으시겠습니다. 그 누구라도 아씨의 손맛에 반할 수밖에 없겠군요. 덕분에 아씨께서는 뜻하시는 바를 전부 다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