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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웃어 줘, 울어 줘?







놀란 입을 채 다물지도 못한 채 마주한 차분한 검은 눈동자에 서하가 금세 미간을 모으자, 성운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수건걸이에 수건을 걸었다.

“안쪽에 수건이 없길래.”

“야!”

“노크는 미안.”

홀연히 자취를 감춰 버린 뒤통수에 서하가 씩씩거리며 양치를 이어 갔다. 사과를 받았는데도 영 찜찜하단 말이야.

심지어, 하교 후 마주한 성운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입꼬리가 굳게 얼어붙어 영원히 닫혀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손을 탁탁, 털며 집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요했다. 아빠의 귀가가 늦어지는 평소와 같은 적막함이었다.

설거지까지 끝내 놓고 방에 들어간 성운을 쫓아 닦달할까 하다가 그가 잠시 지내고 있는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내가 비록 너 때문에 추위까지 잊고 분노에 떨고, 양칫물을 삼켰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보다 더한 걸 느낀 건 아니었으니까.

“……봐줄게.”

서하가 길게 곡선이진 눈매를 살짝 찡그리며 돌아섰다. 탐탁지 않았지만 아픈 애를 괴롭힐 만큼 못되진 않았다.

결국 홀로 감정을 추스르며 잠들었더랬다.



새벽녘, 유난히 달빛이 밝아 검게 물든 하늘이 특히나 밝은 날이었다. 곤히 잠들어 있던 서하가 몸을 뒤척이며 목을 긁적거렸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몸을 벌떡 일으켜 이끌리듯 주방으로 향했다.

잠이 든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를 수면의 경계에서 겨우 걸음을 내디뎠다. 하품을 하며 머리를 쓸어넘기던 중 귓가에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박혀 들었다.

“흐읍.”

물컵을 입술에 가져다 댄 채 멈춰 버린 서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소리의 주체를 찾았다.

정신을 흐려 놓던 잠이 어느새 달아나 머릿속이 말끔히 비었다.

흡사 우는 소리와 같은 것이 이명처럼 귓가에 진동했다.

서하의 시선이 멈춘 곳은 성운이 지내고 있는 방이었다.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방문을 조심스레 잡았다.

달칵 소리도 나지 않고 열린 문틈으로 선명하게 퍼져 오는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닿았다.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몸을 떨며 울고 있는 그 모습이 창문 밖에서 밀려드는 밝은 달빛에 또렷하게 보였다.

“너…… 울어?”

그대로 돌아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서하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떨어졌다.



* * *



차가운 눈이 내리던 날, 성운은 엄마를 잃었다.

그날의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도로 위에 차갑게 누워 있는 엄마를 허망하게 바라봤던 것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여린 손이 추위에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데도, 엄마가 누워 있는 주변의 눈이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에 시선은 빼앗겼다.

하늘에선 몽글거리는 함박눈이 쏟아졌다. 그 눈들이 피부 위를 차갑게 스칠 때마다, 미비하게 움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던 성운이 잠에서 깨어났다.

물속에 갇힌 듯 막혔던 숨을, 답답함을 한꺼번에 쏟아 내자, 눈가에 뜨거운 열기가 몰리기 시작했다.

달빛이 고요하게 창밖을 서성이는 밤, 미어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불 속에 제 몸을 보호하듯 숨어들어 자꾸만, 떠오르는 엄마를 애써 지워 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성운의 귓가에 마음을 한가득 쓰고 있는 조심스러운 음성이 다가왔다.

“너…… 울어?”

깜짝 놀라, 숨조차 멈춰 버렸던 성운의 속눈썹이 눈물이 한가득 엉긴 채로 깜빡거렸다. 이불 속에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 단호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미세하게 요동치던 이불이 움직임을 멈춘 채 단호한 음성만 내뱉자, 서하는 곧바로 대답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우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는가.

문 앞에 멈췄던 발걸음을 슬쩍 떼어내 성운에게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난 그냥 너한테 감정이 결여된 사람이고 싶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무턱대고 성운에게 향하던 서하가 멈칫거렸다. 바로 오늘 아침에 서하가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감정이 결여된 게 아니냐고.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서하가 입술을 매만지며 그 자리에 우뚝 굳어 버렸다. 그 사이, 성운의 이불이 들어 올려졌다.

갑갑한 곳에서 나와 양반다리를 하고 침대 위에 앉은 그는 고요한 적막을 가볍게 깨냈다.

“아직 안 나갔네.”

“…….”

“나가 줘.”

향해 오는 냉랭한 시선과 이어 보이는 짙은 눈물 자국이 서하를 움찔거리게 했다.

거실에서 새어 들어오는 낮은 조명만으로도 성운의 눈을 살피기에 충분했다.

방 안의 어둠을 다 집어삼킨 듯 심도 있는 검은 눈동자는 내내 봐왔던 그의 속없는 웃음과는 정반대였다.

그제야 그간 봐왔던 성운의 웃음이 슬픔을 감추기 위한 도구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슬픈 사람에게 울지 않냐 묻다니. 마음이 다친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냐 묻다니.

진짜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안해.”

“뭐가?”

시선을 기울이는 성운의 얼굴에서 자꾸만 슬픈 웃음을 짓던 얼굴이 겹쳐졌다.

촉촉하게 젖어 우수에 찬 눈, 뚜렷한 콧등, 선이 짙은 입술선이 앳된 티가 났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옅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명확하게 슬픔과 우울이 공존하는 얼굴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네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정말, 울었다면 난 네게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넬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남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내 고집에 슬프지 않냐는 질문을 던져 버리다니.

“할 말 없으면, 나가.”

선한 인상에 드리운 슬픔 위로 엷게 미소가 그려졌다.

가면을 쓴 듯 두 눈을 살포시 접어 웃는 성운의 얼굴과 차디찬 음성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 웃음은 여전히 슬퍼 보였다.

“미, 미안해. 정말로!”

쾅, 성운의 방문이 닫혔다.

급하게 사과를 건네고 방 밖으로 나온 서하가 볼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떼며, 지금의 이 묘한 기분을 곰곰이 되짚었다.

그러니까 엄청 아픈 사람한테 아픈 척 안 한다고, 내가 화를 낸 거네?

진짜 바보다. 심지어 아깐 소리도 질렀어. 와, 낯짝 한번 두껍다.

서하는 무거운 발걸음을 제 방문 쪽으로 옮기면서도 몇 번이나 고개를 기울였다.

감정이 없는 건 성운이 아닌,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몇 번이나 놀라면서.



* * *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킨 성운은 헝클어진 머리를 차분하게 손으로 빗어 내리며 퉁퉁 부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새벽의 기운과 비슷한 기분.

미지근한 기분으로 양 볼을 쭉, 밀어 올려 싱긋 웃어 보았다.

동시에,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독이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눈물을 쏟아낼지 모르기에 성운은 처참하게 가라앉았던 지난밤의 감정을 추스르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나서기 전, 바로 옆에 있는 책상 위에 하얀 종이가 놓여 있었다.

어젯밤엔 없었던 존재라 시선을 빼앗겨 걸음을 옮겼다.

“……?”

A4사이즈에 한가득 담긴 웃는 얼굴.

검정 펜으로 그렸는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그림체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성운이 고개를 기울인 건 이 그림 속 인물이 아무리 봐도 저 같아서.

찬란하게 빛나는 웃음이 담긴 그림은 성운의 얼굴을 똑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귀엽고 동글동글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네가, 이렇게 웃기를.



마음이 상해 있던 건 사실이었다. 얹혀사는 주제에 바보 같게도, 그 여자애가 미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던 내 마음을 몰라 줘서.

며칠밖에 지내지 않았지만, 샤워를 하는 도중 수건이 어디에 있느냐 물어보려 문을 살짝 열었을 때 서하와 설준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목격했었다.

그래, 그걸 안다고 하니. 그냥 알아줄 것만 같았다.

감정의 깊이를, 기분의 높낮이를.

워낙, 친근하게 대하지 못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어제 차갑게 말했던 게 내심 마음에 걸려서인지, 서하가 건넸던 두 번의 사과 중 하나는 받을 마음이 생겨 났다.

성운의 시선이 그림 위에 한결같이 머물렀다.

종이를 팔랑이며 얼굴 옆에 댔다. 방에 있는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그림이 더 낫네.”

종이를 살포시 책상 위에 올려 둔 성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방을 나섰다. 방문이 달칵, 열리자마자 하품을 하며 거실에 나오던 서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서하가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잤어?”

떠름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서하의 얼굴에 눈동자를 멈췄다.

고요한 분위기를 내던 흑갈색 머리칼은 잠결에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고 짙은 쌍꺼풀에, 눈꼬리는 약간 올라간 커다란 눈이 가득 시야에 담겼다.

서하가 볼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빠르게 정리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성운은 웃지 않았다.

그녀의 사과를 받아 주기로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표정을 굳혔다.

복수심이라도 생겨난 걸까, 유치하게도.

“오늘은 내가 어떻게 해 줄까.”

“어?”

서하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해졌다.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그린 그림을 준 것도 잘못되었던 걸까. 긴장한 상태로 성운의 눈을 응시했다.

“어제는 울라더니. 오늘은 웃으라고 하네.”

“…….”

“재밌다, 너.”

평이하고, 차분한 말투. 심지어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듯 감미로운 미성이었다.

그런데 시선이 차갑다.

“어떻게 해 줄까. 웃어 줘, 울어 줘?”

그리고 여전히 이상한 남자애였다. 아무래도 잘못 건드린 모양이다.

그림을 그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의 말에 은근히 가시가 돋아 있다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직 심기가 많이 불편하다는 것도.

그래서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입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말대로 하겠단 소리야?”

서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이 뚝, 그쳐 버린 것처럼 멈춰 버린 두 사람의 사이에 픽, 하는 웃음소리가 비집고 들어섰다.

“감정이 결여됐으니 하라는 대로 해야지, 뭐.”

성운은 뒤끝 있는 웃음과 말을 끝으로 서하의 앞에 쓱 다가갔다. 한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닿을 거리에 멈춰서 서하에게 올곧은 시선을 보냈다.

“그림 잘 그렸더라.”

행여, 다른 말을 하지 않을까. 화를 내지 않을까.

숨조차 느리게 쉬며 성운의 입술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이상한 남자애는 한마디를 툭 내뱉어 버리곤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 났다는 거야, 괜찮다는 거야?”

서하는 안방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긴가민가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양 볼에서 괜한 열감을 느꼈다.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넣어 양 볼을 제 손으로 감싸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씻고 나온 후, 집안을 둘러 보니. 성운은 아빠가 차려 놓은 아침밥엔 손도 데지 않은 채 집을 나선 후였다.

이상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