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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3화
<1> (3)
“담배 피워도 되지?”
“마음대로 해.”
권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한율은 담배를 꺼내 물곤 불을 붙였다. 비흡연자인 권우와 달리 한율은 담배를 피웠다. 외모만 보자면, 권우는 하루에 한 갑은 피울 것 같았다. 소문에서도 그랬다. 꼴초라고 했다. 주머니에 휴대폰만 넣고 걸어도 담배라며 사진이 돌아다녔으나 모두 헛소문이었다.
한율은 스무 살이 막 됐을 무렵, 이런저런 술자리에 끌려다녀 담배를 배웠다. 술을 마시며 선배들 비위 맞추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어느덧 본인이 끊지 못하게 됐다. 그러다 문득 한 달 전쯤 금연 캠페인이라며 촬영했던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금연합시다’라는 가판을 들고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그때도 권우는 영화 촬영을 이유로 오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후에, 권우가 입을 열었다.
“어제 말이야.”
“응.”
“생각보다 잘 맞는 것 같아서.”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당분간 이렇게 지내자고.”
“무슨 말인지, 잘…….”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담배 연기가 흩어져 나갔다. 한율은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당분간 이렇게 지내자는 건 계속 관계를 맺자는 건가? 굳이 나랑? 한율이 눈을 멀뚱히 뜨고, 그를 바라봤다. 권우는 인상을 구겼다.
“말귀 못 알아들어?”
“아, 아니. 왜 나랑…….”
“왜 너랑만 하는 거라고 생각해.”
“응, 그렇지…….”
“그래도 같은 멤버가 낫지 않겠냐고. 집 데려갈 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율이 고개를 주억이자, 권우는 혀를 쯧 찼다. 이해가 부족한 저에게 짜증이 치밀은 모양이었다. 한율은 입술을 안쪽으로 물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어.”
“…….”
“나는 쌓인 거 풀고, 소문 잠잠해지고.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자고, 내 탈퇴 막고.”
안 그래? 권우가 덧붙였다. 샵 문을 열고 자하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시선은 마당 안쪽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향했다.
“권우 형! 와서 준비하래.”
“생각해 봐.”
권우는 한율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담배 좀 끊고.”
스쳐 지나가듯이 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한율은 손가락 사이에 껴 있는 담배를 바라봤다. 제대로 피우지도 않은 담배의 불씨가 바람에 흩날려 죽어 가고 있었다.
***
스튜디오로 가는 차 안은 적막했다. 창문 너머에서는 서서히 자동차들이 몰렸다. ‘일찍 준비한다고 해도 이러네.’ ‘그러게요.’ 상엽과 성제가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한율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자고 있었다. 잠을 거의 못 잤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술을 마시고 권우의 집에서 몇 시간이나마 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불규칙한 생활에 몸이 적응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현서는 목 베개를 받쳐 놓았지만, 자꾸만 고개가 앞으로 쏠렸다. 저러다 또 담 걸렸다고 힘들어할 텐데. 한율은 손을 뻗어 현서의 이마를 조심스레 뒤로 밀었다. 동시에 고개를 젖힌 현서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한율의 앞에는 권우가 자고 있었다. 사실 얼굴을 볼 수 없어 자는지 안 자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왁스를 치덕치덕 바른 머리카락이 굳어 있다. 뒤에서 볼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생각해 봐.’
권우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귓가에서 들려왔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정답은 하나뿐이었다. 권우도 그걸 알기 때문에 한율에게 말한 거였다. 비록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정사의 과정은 모두 기억이 났다. 지나치게 솔직해진 몸이 권우를 끌어안고, 자신의 안을 바쁘게 오가는 성기를 매만졌다.
또한, 최근 권우에게 기자들이 유독 많이 달라붙었다. 연애 관련 인터뷰만 하면 꽤나 세세하게 말했기 때문에 건수를 물은 것이다. 흑발에 마른 체구에 큰 키라. 모델이라도 사귀는 걸까.
권우는 이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을 만나 왔다. 그중에서 남자는 단연코 없었다. 연예계는 흔히 뒷골목이라고 했다. 자신을 숨겨야 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드러내기 위해 몰리곤 했다. 성소수자는 만연하게 보였다. 이쪽 세계에서는 쉬쉬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권우를 짝사랑하는 한율 자신만 해도 그랬다.
만약 권우가 남자도 만났더라면, 지금보다는 조금 달라졌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율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모르게 행복 회로를 돌릴 뻔했다. 권우가 남자도 만난다고 해서 저를 선택할 일은 없었다. 더 잘생기고, 몸 좋고, 매력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당장 멤버들만 하더라도.
낮은 자존감은 한율의 두 다리를 늪에 처박아 놓곤 했다. 그럼 서서히 몸이 빠졌다. 깊숙이, 더 깊숙이. 그냥 그만 생각하자. 계속 우울한 생각 하면 팬들 앞에서도 티 날 거야. 입술을 물던 한율은 눈을 감았다. 차라리 자는 걸 선택했다.
***
대기실은 분주했다.
권우, 자하, 현서는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있었다. 사전 녹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팬들은 전날 밤부터 번호표를 받았다고 했다. 무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권우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도 들렸지만 그는 무시했다. 덕분에 다른 멤버들이 진땀을 뺐다.
대기실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권우는 말없이 눈을 감은 채 메이크업을 고치는 데에 집중했다. 선후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생방송으로 나갈 앨범 소개에 대한 대본을 연습했다.
“이번 신곡 미저리(Misery)는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에게 집착하는 내용을, 남자의 시점에서……. 아, 왜 이렇게 대사가 꼬이냐. 성제 형, 이거 꼭 내가 해야 돼?”
“너 아니면 할 사람도 없다. 현서는 긴장만 하면 말 꼬이고, 자하는 무대만 올라가면 백지 되는 놈인데?”
“왜. 율이 있잖아. 유리야, 리던데 대신해 주면 안 되냐?”
“나?”
한율이 손가락을 제 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 오늘따라 더럽게 안 풀리네.”
선후는 노래 연습을 하는 것처럼 입을 쭉쭉 뻗고, 아아아아아- 하며 목소리를 조절했다.
“아, 형. 시끄러워.”
잠이 덜 깬 현서가 까칠하게 반응했다. 순한 현서는 피곤하면 평소와 달리 제법 예민했다. 그건 선후도 알고 있었기에 ‘미안.’ 입을 다물었다.
대기실 한가운데 서 있던 한율이 선후의 옆에 앉아 대본을 함께 보았다. 형광펜으로 밑줄이 죽죽 그어져 있는 곳에는 ‘선후(코스원)’이라고 표시까지 되어 있었다.
“너 정 못하겠으면 줘. 내가 할게.”
“됐다, 율아. 그냥 선후 하게 둬. 저게 말로는 툴툴거려도 사실은 지 밥그릇 지가 챙겨 먹는 놈이잖아.”
성제의 말뜻에는 저건 선후 역할이니 네가 끼어들 군번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코스원의 객관적인 인기순은 ‘권우-선후-현서-자하-한율’이었다. 개인 사진을 표지로 장식한 앨범 판매량만 보아도 그랬다. 콘서트에서의 함성 소리라든가, 개인 굿즈의 집계량을 모두 따져도 저 순서는 꽤 정확했다.
한율은 왜 자신이 인기가 없는 건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서운하기도 했다. 연습생 생활도 가장 오래 했고, 멤버들이 고민 있을 때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정확했다. 그럴수록 기가 죽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했다. 그저 코스원의 멤버로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권우는 아예 배우 노선을 탔으니, 앨범 소개 같은 건 안 어울리겠지. 그렇다면 그 순서는 바로 선후에게로 갔다. 선후가 잘 못 한다면, 그래도 현서에게로 갈 게 분명했다. 한율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거울 속의 권우와 눈이 마주쳤다. 자는 거 아니었나. 한율은 시선을 피하고,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만약 지금 표정을 본다면 열등감에 절어 꼴값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율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양옆으로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계단 다녀올게요.”
“어, 이상한 애들 상대해 주지 말고.”
“네, 알겠어요.”
한율은 소파 앞 테이블에 놓아둔 담배를 집어 들었다. 빨리 전자 담배로 바꾸든가 해야 할 텐데, 입 안에 쌉쌀한 맛이 맴도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한율이 복도로 나가자 대기하던 신인 아이돌들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안녕하십니까!’ 호탕하게 인사했다. 한율도 간단히 목례한 후, 복도를 헤집고 가장 구석에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두꺼운 철문을 밀고 나가자, 이미 누가 한 대 피웠는지 작게 불씨가 붙은 담배꽁초가 남아 있었다. 한율은 그걸 발로 꾹 누른 후, 조금 옆으로 비켜서서 담배를 물었다.
방송국에서 극명한 빛과 어둠을 보여 준다면, 아마 무대와 지금 한율이 서 있는 이 계단일 것이다. 중앙 계단과 비상구가 따로 있어, 복도 끝에 있는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았다. 조명도 갈지 않아 바깥 건물의 빛에 의존해야만 했다.
커다란 창문이 있지만, 갖가지 팬들이 붙여 놓은 연예인의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버려진 곳이었다. 그나마 한율처럼 대기실에서 담배를 태우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종종 들르곤 했다.
한율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을 때, 끼이익-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등 뒤로 숨겼다. 들어온 건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권우였다.
“피울게.”
권우는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 말았다. 한율은 힐끔힐끔 권우의 눈치를 봤다. 그는 이곳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담배 연기도 싫어하지 않았나. 상엽 전에 있던 매니저는 꼴초였는데, 권우가 하도 뭐라고 하고 사무실에도 압력을 넣어 결국 신인 배우에게로 넘어갔다. 그랬던 애가 지금은 그저 한율의 담배 연기를 맡고 있었다.
“네가 했던 말 생각해 봤는데.”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있나?”
“네 말이 맞아. 생각하고 말고…… 할 거 없어.”
“잘 생각했어.”
권우는 한율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뺏어 들었다. 그러곤 벽에 꽁초를 비볐다. 치익, 담배가 벽에 짓이겨지고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율의 앞에 선 권우는 제법 위협적이었다. 많이도 컸네.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땐, 분명 자신보다 작았던 것 같은데.
권우는 한율의 턱을 틀어쥐고,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담배 냄새가 날까 싶어, 한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입 벌려.”
권우의 말과 동시에 두 입술이 섞였다. 이곳이 어딘지나 아는 걸까.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권우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한율의 마른 등을 감싸 안고 제 쪽으로 몸을 붙였다. 한참 입술을 빨다가 혀를 밀어 넣었다. 뜨겁고 축축한 혀가 한율의 혀를 감싸 안았다. 뿌리 뽑을 듯 거세게 빨다가 입천장을 핥았다.
한율은 밀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권우는 얇은 손목을 붙잡아 아래로 내리고 몰아세웠다. 한율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한율은 으음, 음, 앓는 소리를 내며 권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반항하면 더 거세졌다. 입술에 상처라도 낼 것처럼 이를 세워 물던 권우가 천천히 물러났다.
“하아……. 지, 지금 뭐 하는…….”
“씹.”
권우가 욕을 곱씹었다. 지금까지 몰아세운 건 자신이면서, 후회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모습에 이유 없이 비참해진 한율은 시선을 내렸다. 권우의 검정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스케줄 뭐 있냐?”
“……선후랑 8시에 라디오 생방.”
“그것뿐인가?”
“일단은.”
“그럼 오늘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
“어?”
“말 못 들었어? 합의했잖아, 방금.”
말을 마친 권우는 문고리를 틀어쥐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복도의 빛이 쏟아졌다. 한율은 잠시 미간을 구겼다가 그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에게 인사하는 신인 아이돌을 뚫고 가는 와중 시선이 느껴졌다. 한율은 그쪽을 바라봤으나, 방금 전의 끈적했던 시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착각인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앞서가던 권우가 뒤돌았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대기실에 먼저 들어선 건 권우였고, 그 뒤를 이어 한율이 들어왔다.
뭐 하다가 지금 왔냐는 성제의 말에 잠시 통화를 했다고 했다.
“빨리 앉아. 메이크업 받아야지.”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하루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질문은 음, ‘율 오빠랑 선후 오빠가 아직까지 숙소 생활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두 사람은 성격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라고 0049님께서 보내 주셨습니다. 자, 본론부터 말하죠.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다른 분들과 사는 건 별로 다르지 않아요.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개인 공간은 따로 존재하고요.”
“에이, 그런 거 말고요. 선후 씨가 말씀해 주세요. 율 씨랑 같이 사는 거 어떻습니까?”
“귀찮아 죽겠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 줘야 돼요. 어제는 밤에 하도 안 들어오길래 소파에서 기다리기까지 했다니까요?”
하하하, 선후가 입을 열면 스튜디오는 금방 웃음이 차올랐다. 방송하다 보면 멤버를 괴롭힐 때도 있어야 하지만 한율에겐 쉽지 않았다. 어떤 포인트에서 툭 던지고 받아쳐야 상대방의 기분도 나쁘지 않은 건지, 초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율 씨?”
“……네?”
“어제 왜 늦으셨나요? 지금 게시판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 늦게 다니는 거냐고, 팬분들이 걱정이 많으시네요.”
“아…… 어제는 권우네 집에 갔었어요.”
“오, 정말요?”
DJ의 눈에 조명이 켜졌다. 권우의 이야기가 나올 거라 예상 못 한 눈치였다. 오히려 한율보다 권우 쪽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라디오 게시판에 권우랑 뭘 했냐는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냥 간단하게 술도 마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역시 열정 가득한 청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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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권우 씹새끼. 코스원 탈퇴하고 자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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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하나가 한율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른 메시지에 묻혀 금방 사라졌지만 숨이 막혔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못 본 듯했다. 선후는 깔깔거리며 율이가 이렇게 보여도 술을 잘 못 마신다고 덧붙였다. 분위기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권우 씨도 나오면 좋겠는데. 청취율이 엄청 뛸 거예요.”
“에이, 저희만으로 충분하죠. 뭘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
“하하, 그렇죠. 코스원,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탁구공 같았다. 탁구채로 공을 치면 바닥에 통 부딪쳤다가 상대방에게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는 건 한율뿐이었다. 한율은 소리 없이 숨을 푹 내쉬었다. 그사이 3부를 마치는 노래와 광고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DJ가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선후가 물을 들이켰다.
“봤어?”
“뭘?”
“권우 욕하는 거. 띄엄띄엄 올라오는데 신경 쓰여 죽는 줄 알았네.”
나만 본 건 아니구나. 한율이 본 건 고작 한 개뿐인데 계속해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게시판에서 한 번 싸움도 났다고 했다. 설명하는 선후의 표정이 굳었다. 보이는 라디오였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한 것뿐이었다. 두 사람이 아무리 티격태격한다고 해도 어렸을 때부터 봐 온 한 그룹이었다. 힘들 때도 기쁠 때도 함께했다. 다른 사람이 내뱉는 욕에 불쾌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
“잡지 기사 뜬 후로 더 심해. 아예 권우를 뺀 네 명만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도 꽤 늘었어.”
“…….”
할 말이 없었다. 아이돌은 상품이었다. 코스원도 마찬가지였다. 소비자인 팬들이 보기에 권우는 가치가 떨어진 상품인 걸까. 아니면 괜한 반항 심리인 걸까. 권우는 팬이 많은 만큼 안티도 많았다. ‘코스원’이라는 그룹 자체가 마찬가지였지만.
<1> (3)
“담배 피워도 되지?”
“마음대로 해.”
권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한율은 담배를 꺼내 물곤 불을 붙였다. 비흡연자인 권우와 달리 한율은 담배를 피웠다. 외모만 보자면, 권우는 하루에 한 갑은 피울 것 같았다. 소문에서도 그랬다. 꼴초라고 했다. 주머니에 휴대폰만 넣고 걸어도 담배라며 사진이 돌아다녔으나 모두 헛소문이었다.
한율은 스무 살이 막 됐을 무렵, 이런저런 술자리에 끌려다녀 담배를 배웠다. 술을 마시며 선배들 비위 맞추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어느덧 본인이 끊지 못하게 됐다. 그러다 문득 한 달 전쯤 금연 캠페인이라며 촬영했던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금연합시다’라는 가판을 들고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그때도 권우는 영화 촬영을 이유로 오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후에, 권우가 입을 열었다.
“어제 말이야.”
“응.”
“생각보다 잘 맞는 것 같아서.”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당분간 이렇게 지내자고.”
“무슨 말인지, 잘…….”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담배 연기가 흩어져 나갔다. 한율은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당분간 이렇게 지내자는 건 계속 관계를 맺자는 건가? 굳이 나랑? 한율이 눈을 멀뚱히 뜨고, 그를 바라봤다. 권우는 인상을 구겼다.
“말귀 못 알아들어?”
“아, 아니. 왜 나랑…….”
“왜 너랑만 하는 거라고 생각해.”
“응, 그렇지…….”
“그래도 같은 멤버가 낫지 않겠냐고. 집 데려갈 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율이 고개를 주억이자, 권우는 혀를 쯧 찼다. 이해가 부족한 저에게 짜증이 치밀은 모양이었다. 한율은 입술을 안쪽으로 물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어.”
“…….”
“나는 쌓인 거 풀고, 소문 잠잠해지고.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자고, 내 탈퇴 막고.”
안 그래? 권우가 덧붙였다. 샵 문을 열고 자하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시선은 마당 안쪽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향했다.
“권우 형! 와서 준비하래.”
“생각해 봐.”
권우는 한율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담배 좀 끊고.”
스쳐 지나가듯이 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한율은 손가락 사이에 껴 있는 담배를 바라봤다. 제대로 피우지도 않은 담배의 불씨가 바람에 흩날려 죽어 가고 있었다.
***
스튜디오로 가는 차 안은 적막했다. 창문 너머에서는 서서히 자동차들이 몰렸다. ‘일찍 준비한다고 해도 이러네.’ ‘그러게요.’ 상엽과 성제가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한율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자고 있었다. 잠을 거의 못 잤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술을 마시고 권우의 집에서 몇 시간이나마 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불규칙한 생활에 몸이 적응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현서는 목 베개를 받쳐 놓았지만, 자꾸만 고개가 앞으로 쏠렸다. 저러다 또 담 걸렸다고 힘들어할 텐데. 한율은 손을 뻗어 현서의 이마를 조심스레 뒤로 밀었다. 동시에 고개를 젖힌 현서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한율의 앞에는 권우가 자고 있었다. 사실 얼굴을 볼 수 없어 자는지 안 자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왁스를 치덕치덕 바른 머리카락이 굳어 있다. 뒤에서 볼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생각해 봐.’
권우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귓가에서 들려왔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정답은 하나뿐이었다. 권우도 그걸 알기 때문에 한율에게 말한 거였다. 비록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정사의 과정은 모두 기억이 났다. 지나치게 솔직해진 몸이 권우를 끌어안고, 자신의 안을 바쁘게 오가는 성기를 매만졌다.
또한, 최근 권우에게 기자들이 유독 많이 달라붙었다. 연애 관련 인터뷰만 하면 꽤나 세세하게 말했기 때문에 건수를 물은 것이다. 흑발에 마른 체구에 큰 키라. 모델이라도 사귀는 걸까.
권우는 이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을 만나 왔다. 그중에서 남자는 단연코 없었다. 연예계는 흔히 뒷골목이라고 했다. 자신을 숨겨야 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드러내기 위해 몰리곤 했다. 성소수자는 만연하게 보였다. 이쪽 세계에서는 쉬쉬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권우를 짝사랑하는 한율 자신만 해도 그랬다.
만약 권우가 남자도 만났더라면, 지금보다는 조금 달라졌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율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모르게 행복 회로를 돌릴 뻔했다. 권우가 남자도 만난다고 해서 저를 선택할 일은 없었다. 더 잘생기고, 몸 좋고, 매력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당장 멤버들만 하더라도.
낮은 자존감은 한율의 두 다리를 늪에 처박아 놓곤 했다. 그럼 서서히 몸이 빠졌다. 깊숙이, 더 깊숙이. 그냥 그만 생각하자. 계속 우울한 생각 하면 팬들 앞에서도 티 날 거야. 입술을 물던 한율은 눈을 감았다. 차라리 자는 걸 선택했다.
***
대기실은 분주했다.
권우, 자하, 현서는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있었다. 사전 녹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팬들은 전날 밤부터 번호표를 받았다고 했다. 무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권우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도 들렸지만 그는 무시했다. 덕분에 다른 멤버들이 진땀을 뺐다.
대기실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권우는 말없이 눈을 감은 채 메이크업을 고치는 데에 집중했다. 선후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생방송으로 나갈 앨범 소개에 대한 대본을 연습했다.
“이번 신곡 미저리(Misery)는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에게 집착하는 내용을, 남자의 시점에서……. 아, 왜 이렇게 대사가 꼬이냐. 성제 형, 이거 꼭 내가 해야 돼?”
“너 아니면 할 사람도 없다. 현서는 긴장만 하면 말 꼬이고, 자하는 무대만 올라가면 백지 되는 놈인데?”
“왜. 율이 있잖아. 유리야, 리던데 대신해 주면 안 되냐?”
“나?”
한율이 손가락을 제 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 오늘따라 더럽게 안 풀리네.”
선후는 노래 연습을 하는 것처럼 입을 쭉쭉 뻗고, 아아아아아- 하며 목소리를 조절했다.
“아, 형. 시끄러워.”
잠이 덜 깬 현서가 까칠하게 반응했다. 순한 현서는 피곤하면 평소와 달리 제법 예민했다. 그건 선후도 알고 있었기에 ‘미안.’ 입을 다물었다.
대기실 한가운데 서 있던 한율이 선후의 옆에 앉아 대본을 함께 보았다. 형광펜으로 밑줄이 죽죽 그어져 있는 곳에는 ‘선후(코스원)’이라고 표시까지 되어 있었다.
“너 정 못하겠으면 줘. 내가 할게.”
“됐다, 율아. 그냥 선후 하게 둬. 저게 말로는 툴툴거려도 사실은 지 밥그릇 지가 챙겨 먹는 놈이잖아.”
성제의 말뜻에는 저건 선후 역할이니 네가 끼어들 군번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코스원의 객관적인 인기순은 ‘권우-선후-현서-자하-한율’이었다. 개인 사진을 표지로 장식한 앨범 판매량만 보아도 그랬다. 콘서트에서의 함성 소리라든가, 개인 굿즈의 집계량을 모두 따져도 저 순서는 꽤 정확했다.
한율은 왜 자신이 인기가 없는 건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서운하기도 했다. 연습생 생활도 가장 오래 했고, 멤버들이 고민 있을 때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정확했다. 그럴수록 기가 죽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했다. 그저 코스원의 멤버로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권우는 아예 배우 노선을 탔으니, 앨범 소개 같은 건 안 어울리겠지. 그렇다면 그 순서는 바로 선후에게로 갔다. 선후가 잘 못 한다면, 그래도 현서에게로 갈 게 분명했다. 한율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거울 속의 권우와 눈이 마주쳤다. 자는 거 아니었나. 한율은 시선을 피하고,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만약 지금 표정을 본다면 열등감에 절어 꼴값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율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양옆으로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계단 다녀올게요.”
“어, 이상한 애들 상대해 주지 말고.”
“네, 알겠어요.”
한율은 소파 앞 테이블에 놓아둔 담배를 집어 들었다. 빨리 전자 담배로 바꾸든가 해야 할 텐데, 입 안에 쌉쌀한 맛이 맴도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한율이 복도로 나가자 대기하던 신인 아이돌들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안녕하십니까!’ 호탕하게 인사했다. 한율도 간단히 목례한 후, 복도를 헤집고 가장 구석에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두꺼운 철문을 밀고 나가자, 이미 누가 한 대 피웠는지 작게 불씨가 붙은 담배꽁초가 남아 있었다. 한율은 그걸 발로 꾹 누른 후, 조금 옆으로 비켜서서 담배를 물었다.
방송국에서 극명한 빛과 어둠을 보여 준다면, 아마 무대와 지금 한율이 서 있는 이 계단일 것이다. 중앙 계단과 비상구가 따로 있어, 복도 끝에 있는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았다. 조명도 갈지 않아 바깥 건물의 빛에 의존해야만 했다.
커다란 창문이 있지만, 갖가지 팬들이 붙여 놓은 연예인의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버려진 곳이었다. 그나마 한율처럼 대기실에서 담배를 태우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종종 들르곤 했다.
한율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을 때, 끼이익-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등 뒤로 숨겼다. 들어온 건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권우였다.
“피울게.”
권우는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 말았다. 한율은 힐끔힐끔 권우의 눈치를 봤다. 그는 이곳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담배 연기도 싫어하지 않았나. 상엽 전에 있던 매니저는 꼴초였는데, 권우가 하도 뭐라고 하고 사무실에도 압력을 넣어 결국 신인 배우에게로 넘어갔다. 그랬던 애가 지금은 그저 한율의 담배 연기를 맡고 있었다.
“네가 했던 말 생각해 봤는데.”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있나?”
“네 말이 맞아. 생각하고 말고…… 할 거 없어.”
“잘 생각했어.”
권우는 한율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뺏어 들었다. 그러곤 벽에 꽁초를 비볐다. 치익, 담배가 벽에 짓이겨지고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율의 앞에 선 권우는 제법 위협적이었다. 많이도 컸네.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땐, 분명 자신보다 작았던 것 같은데.
권우는 한율의 턱을 틀어쥐고,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담배 냄새가 날까 싶어, 한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입 벌려.”
권우의 말과 동시에 두 입술이 섞였다. 이곳이 어딘지나 아는 걸까.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권우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한율의 마른 등을 감싸 안고 제 쪽으로 몸을 붙였다. 한참 입술을 빨다가 혀를 밀어 넣었다. 뜨겁고 축축한 혀가 한율의 혀를 감싸 안았다. 뿌리 뽑을 듯 거세게 빨다가 입천장을 핥았다.
한율은 밀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권우는 얇은 손목을 붙잡아 아래로 내리고 몰아세웠다. 한율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한율은 으음, 음, 앓는 소리를 내며 권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반항하면 더 거세졌다. 입술에 상처라도 낼 것처럼 이를 세워 물던 권우가 천천히 물러났다.
“하아……. 지, 지금 뭐 하는…….”
“씹.”
권우가 욕을 곱씹었다. 지금까지 몰아세운 건 자신이면서, 후회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모습에 이유 없이 비참해진 한율은 시선을 내렸다. 권우의 검정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스케줄 뭐 있냐?”
“……선후랑 8시에 라디오 생방.”
“그것뿐인가?”
“일단은.”
“그럼 오늘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
“어?”
“말 못 들었어? 합의했잖아, 방금.”
말을 마친 권우는 문고리를 틀어쥐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복도의 빛이 쏟아졌다. 한율은 잠시 미간을 구겼다가 그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에게 인사하는 신인 아이돌을 뚫고 가는 와중 시선이 느껴졌다. 한율은 그쪽을 바라봤으나, 방금 전의 끈적했던 시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착각인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앞서가던 권우가 뒤돌았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대기실에 먼저 들어선 건 권우였고, 그 뒤를 이어 한율이 들어왔다.
뭐 하다가 지금 왔냐는 성제의 말에 잠시 통화를 했다고 했다.
“빨리 앉아. 메이크업 받아야지.”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하루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질문은 음, ‘율 오빠랑 선후 오빠가 아직까지 숙소 생활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두 사람은 성격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라고 0049님께서 보내 주셨습니다. 자, 본론부터 말하죠.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다른 분들과 사는 건 별로 다르지 않아요.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개인 공간은 따로 존재하고요.”
“에이, 그런 거 말고요. 선후 씨가 말씀해 주세요. 율 씨랑 같이 사는 거 어떻습니까?”
“귀찮아 죽겠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 줘야 돼요. 어제는 밤에 하도 안 들어오길래 소파에서 기다리기까지 했다니까요?”
하하하, 선후가 입을 열면 스튜디오는 금방 웃음이 차올랐다. 방송하다 보면 멤버를 괴롭힐 때도 있어야 하지만 한율에겐 쉽지 않았다. 어떤 포인트에서 툭 던지고 받아쳐야 상대방의 기분도 나쁘지 않은 건지, 초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율 씨?”
“……네?”
“어제 왜 늦으셨나요? 지금 게시판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 늦게 다니는 거냐고, 팬분들이 걱정이 많으시네요.”
“아…… 어제는 권우네 집에 갔었어요.”
“오, 정말요?”
DJ의 눈에 조명이 켜졌다. 권우의 이야기가 나올 거라 예상 못 한 눈치였다. 오히려 한율보다 권우 쪽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라디오 게시판에 권우랑 뭘 했냐는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냥 간단하게 술도 마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역시 열정 가득한 청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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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권우 씹새끼. 코스원 탈퇴하고 자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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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하나가 한율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른 메시지에 묻혀 금방 사라졌지만 숨이 막혔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못 본 듯했다. 선후는 깔깔거리며 율이가 이렇게 보여도 술을 잘 못 마신다고 덧붙였다. 분위기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권우 씨도 나오면 좋겠는데. 청취율이 엄청 뛸 거예요.”
“에이, 저희만으로 충분하죠. 뭘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
“하하, 그렇죠. 코스원,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탁구공 같았다. 탁구채로 공을 치면 바닥에 통 부딪쳤다가 상대방에게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는 건 한율뿐이었다. 한율은 소리 없이 숨을 푹 내쉬었다. 그사이 3부를 마치는 노래와 광고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DJ가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선후가 물을 들이켰다.
“봤어?”
“뭘?”
“권우 욕하는 거. 띄엄띄엄 올라오는데 신경 쓰여 죽는 줄 알았네.”
나만 본 건 아니구나. 한율이 본 건 고작 한 개뿐인데 계속해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게시판에서 한 번 싸움도 났다고 했다. 설명하는 선후의 표정이 굳었다. 보이는 라디오였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한 것뿐이었다. 두 사람이 아무리 티격태격한다고 해도 어렸을 때부터 봐 온 한 그룹이었다. 힘들 때도 기쁠 때도 함께했다. 다른 사람이 내뱉는 욕에 불쾌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
“잡지 기사 뜬 후로 더 심해. 아예 권우를 뺀 네 명만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도 꽤 늘었어.”
“…….”
할 말이 없었다. 아이돌은 상품이었다. 코스원도 마찬가지였다. 소비자인 팬들이 보기에 권우는 가치가 떨어진 상품인 걸까. 아니면 괜한 반항 심리인 걸까. 권우는 팬이 많은 만큼 안티도 많았다. ‘코스원’이라는 그룹 자체가 마찬가지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