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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5화
<1> (5)
“씨발, 뭘 처울어. 좋잖아. 어? 그렇게 쑤셔 넣고 싶었잖아.”
“후읍, 콜록……! 읍!”
권우가 한율의 입에 사정하고 제 성기를 뽑아냈다. 입 안 가득 뿜어낸 정액의 비릿함에 한율은 비위가 상해 헛구역질을 했다. 권우는 한율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말했다.
“삼켜.”
“욱……!”
“삼키라고, 씨발.”
한율은 눈을 꾹 감고 정액을 삼켜 냈다. 흐으……. 볼을 타고 눈물이 툭 떨어졌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내자, 권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율의 몸을 돌려 다리를 벌렸다. 허리를 감싸 안고 한율의 등에 가슴에 가져다 댔다. 허벅지가 겹치고, 발기한 성기를 한율의 구멍에 밀어 넣었다.
“악!”
권우는 소리를 내지르는 한율의 허벅지를 붙잡아 벌렸다. 성기는 만지지 않았다. 키스도 하지 않았다. 어깨를 이로 짓이기며, 몸 안쪽을 꿰뚫었다.
“아악! 아, 아! 아파, 아파!”
“씹, 존나 조여. 힘 좀 빼.”
한율은 시트를 세게 쥐었다. 성기가 몸 안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하아. 권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한율의 등을 손으로 눌렀다. 한율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권우는 그의 마른 허리를 붙잡고, 몸을 쳐올렸다. 퍽, 퍽. 두꺼운 성기가 구멍을 치고 빠졌다.
“하으, 으, 아파, 아, 파, 권, 우야.”
“후으…… 좋아해야지. 왜 아프다고 해, 차한율.”
“아파, 아파…… 흐윽…… 아파, 권우야.”
한율의 눈물로 시트에 자국이 남았다. 권우는 그저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밀어 넣고 빼내는 데에 집중했다. 푹푹 안쪽을 찍어 눌렀다. 구멍 속으로 불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같았다. 한율은 혀를 빼 내밀고, 제 손가락을 물었다. 쾌락이고 뭐고 아플 뿐이었다.
“좋아하잖아, 어? 내 이름 부르면서 후, 자위했으면. 좋아해야지.”
몸을 숙인 권우가 한율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뜨거운 숨이 불어 넣어졌다. 아래는 무자비했다. 둥근 귀두가 내벽 이곳저곳을 파헤치며 다녔다. 한율은 발기한 성기에서 정액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모른 채 몸을 움직였다.
“으으, 응! 아!”
권우가 한율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씨발.’ 권우는 욕을 내뱉으며 고개를 젖힌 한율의 입술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이 뒤엉켜 뚝뚝 떨어졌다. 혀를 빠는 힘은 거셌고, 한율의 입 속을 파헤치는 권우의 혀는 제멋대로였다.
“우움, 욱……! 하아, 하아.”
권우의 성기가 한율의 깊은 안쪽에 사정했다. 콘돔을 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행위를 가졌다. 침대 위에 흩어진 콘돔이 무색할 정도였다. 권우가 성기를 빼내자 한율은 땀으로 엉망인 몸을 침대에 묻었다.
“씹.”
권우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괜히 욕을 내뱉었다. 왜 저러지? 한율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봤다. 권우는 몸을 일으키곤 침대 옆에 서서 한율을 빤히 응시하다가 몸을 돌렸다.
“씻고 가라.”
“……어?”
“씻고 집 가라고. 나갔다 올 거니까.”
그러더니 침실에 딸린 욕실로 휑하니 들어가 버렸다. 한율은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성기에 쓸린 엉덩이가 따가웠다. 엉망인 침대 시트를 빼내고, 이불을 방구석에 말아 놓았다. 던져진 러브젤과 콘돔을 챙겨 협탁 서랍에 넣으려 허리를 숙이자, 구멍에서 권우가 싼 정액이 흘러내렸다.
“아아…….”
한율은 걸음을 재촉해 거실로 나갔다.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정액을 손으로 닦아 내며, 욕실로 향했다. 샤워 부스로 들어가 벽에 손을 기댔다. 수도를 틀자 머리 위에서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한율은 눈을 질끈 감고,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내벽을 긁었다. 권우의 정액이 물과 함께 후두둑 떨어졌다. 몸의 열기는 빠지지 않았다. 한율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애초에 이런 관계가 되기로 했다. 권우에겐 단순한 성욕 해소였다. 화장실에서 볼일만 보면 되듯이, 한율의 안에 배출하고 나면 끝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괴로운 거지. 왜 이렇게 비참한 걸까. 앞으로 이런 날은 무수히 많을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힘들어할 건가? 감정을 다잡기가 어려웠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땐, 집에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침실의 문을 열었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권우도 없었다. 조명은 꺼져 있었다.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인 없는 집에 혼자 남기도 뭐해, 한율은 머리만 대충 턴 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집 안의 조명은 모두 꺼져 있었다. 선후는 잠들었는지 공기마저 고요했다.
한율은 침대에 누웠다. 권우의 침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매트리스에 스프링 소리가 삐거덕거리는 제 침대가 더 좋았다. 답답한 마음에 휴대 전화를 보자 모르는 이름으로 수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정말 한율 오빠예요?]
[번호 사칭당하셧어요 ㅠ]
한율은 그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내일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멤버들과 성제, 상엽이 함께 들어가 있는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다. 다행히 생방송은 없었다. 대신 새롭게 론칭할 코스원의 단독 예능 프로그램 회의가 있었다. 이른 아침에 사무실에서 타이틀곡과 후속곡 연습, 그 후 모 잡지 인터뷰와 화보 촬영, 그리고 늦은 저녁엔 회의가 잡혀 있었다. 회의 이후에는 선후, 권우만 따로 대표님께 가는 걸로 체크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둘이 따로 뭐라도 하는 건가 싶어 생각을 그만두었다. 다른 멤버들과 비교를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의 늪에 빠졌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지금에 만족하는 게 나았다. 만족하는 게 맞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어렸을 적엔 단순히 인기 많은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과 장난삼아 만든 밴드부 공연이 끝나고 지금의 회사에서 캐스팅이 왔다. 그 후로 수많은 그룹이 만들어졌다가 무산됐다. 그 당시 함께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이 연예계 생활을 접거나 나락으로 빠졌다.
만족하는 게 좋아.
누군가는 나에게 배부른 소리 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어.
한율은 마음을 바로잡았다.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피곤한 하루였다.
***
잡지사 건물 지하의 사진 스튜디오는 꽤 어두컴컴한 분위기지만, 바쁘게 오고 가는 스태프들과 멤버들로 인해 북적북적했다.
“형, 눈 아파?”
눈을 깜빡이자, 옆에 서 있던 현서가 물었다. 한율은 오랜만에 렌즈를 꼈다. 회색빛이 감도는 렌즈였다. 어차피 흑백으로 사진을 보정할 계획이라면서, 굳이 렌즈까지 낄 필요가 있나 싶었다. 동공의 크기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화보의 주제는 ‘남성’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사진작가와 콘티를 낸 에디터가 와 한 단어로 말하면 그렇지만 실제 잡지에는 그런 단어가 쓰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모두 평소보다는 조금 더 짙고, 어두운 빛이 감도는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중에서 원체 이목구비가 뚜렷한 권우는 단연 돋보였다.
권우는 성제를 만나자마자 잔소리를 들었다. 밤에 뭘 했으면 또 목격담이 올라왔냐고 했다. 권우는 한율을 슬쩍 보더니, 짜증 섞인 얼굴로 처신만 잘하면 됐지 밤에 뭘 하고 돌아다니는 것까지 형에게 말하고 다니냐고 따졌다.
“율이 씨는 눈매가 날카로워서 오늘 화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인터뷰부터 진행할까요? 다른 분들부터 촬영하고요.”
“네, 상관없어요.”
에디터가 ‘인터뷰컷 찍을게요.’라고 하자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던 사진작가 중 한 명이 한율에게 붙었다. 선후는 이미 촬영 중이었다. ‘와, 좋아요.’ ‘역시 코스원은 다르네요.’ 그냥 포즈를 취할 뿐인데, 사진작가는 꼭 한마디씩 코멘트를 붙였다. 한율은 플래시가 빵빵 터지는 쪽을 보다가 에디터에게 집중했다.
“이번 신곡의 콘셉트는 집착이라고 들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거나, 아니면 어떤 대상에 집착해 본 적이 있나요?”
집착이라. 한율은 손등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집착. 연습생 때는 데뷔를 하기 위해 집착했다. 그 집착을 미처 놓기도 전에 성공은 눈에 띄게 빠르게 이루어졌다.
“조금만 생각할 수 있게 시간 좀 주시겠어요?”
“하하, 네. 그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첫사랑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잡지에는 안 실릴 거예요.”
“아…… 첫사랑이요?”
“네. 첫사랑은 보통 실패한다고 하잖아요. 아니면, 혹시 현재 진행 중?”
한율이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매니저인지, 멤버인지, 촬영 스태프인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말조심을 해야 했다. 언제 어디에서 뜯겨져 기사로 쓰일지 알 수 없었다.
“첫사랑은…… 연습생 때였는데, 되게 불안정했어요. 저는 사랑보다는 데뷔가 우선이었거든요.”
“나쁜 남자시네요.”
“하하, 아니에요. 고백도 못 했어요.”
나쁜 남자가 아니라 겁이 많았을 뿐이었다.
어떻게 사랑을 고백할 수가 있겠는가. 추운 겨울, 연습실에 문을 열고 들어온 중학생에게 반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 아이가 쑥쑥 커 가면서, 자신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데 어떻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한율은 침울해졌다.
“저는 오히려 집착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 새로운 관점이네요.”
“원래 있던 연습생 선배들이 대거 그만둔 일이 있었거든요. 저는 완전 생 막내였는데, 갑자기 선배가 된 거예요. 그때가 연습생 생활하고, 3개월? 정도 됐을 땐데. 그 찰나에 멤버 선후가 들어왔어요. 저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위에서는 선배라고 잘 챙겨 주라고 했거든요.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잘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감정을 최소화하기로 한 거죠.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금도 그러시나요? 음, 율이 씨는, 뭔가 코스원에서도 방방 뛰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멤버들도 팬분들도, 같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태프분들도 모두 소중해요. 그분들과의 관계 교류도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한율은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아마 한율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농담 삼아 내뱉은 말이 찌라시에 오르내렸다. 대기실이나 사람들의 눈이 닿는 곳에서 감정을 표현하면, 그냥 그런 사람이 됐다. 부당한 일이 있어 화를 내면 ‘성격이 안 좋은 누구’ 이런 수식어가 달렸다.
“율이 씨에게 있어서 첫 번째로 중요한 건, 그저 성공인가요?”
“…….”
“아,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율이 씨가 했던 말을 정리해 보면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마치자마자 선후가 튀어나왔다. ‘렌즈 뺄래. 눈 아파.’ 코디를 붙잡고 징징거렸다. 한율도 눈두덩이를 매만졌다. 순서는 빠르게 진행됐다. 인터뷰까지 마친 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다음 차례는 권우였다. 권우는 촬영을 마치고 잠시 홍보 대사로 있는 한 사기업의 행사에 들렀다 와야 한다고 했다. 어차피 회의는 늦은 밤에 시작하니까 크게 상관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화보 촬영이 진행됐다. 그는 사진작가의 요구에 맞춰 모든 걸 척척 해냈다. 한율은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잘생겼어.
고운 얼굴선과 달리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하얀 백지장 같았다. 어떤 메이크업을 받든, 역할을 맡든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오늘은 머리에 검정 스프레이까지 뿌렸다. 마치 연예인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권우의 촬영은 한 번에 막힘없이 끝났다.
“율 씨, 촬영 들어갈게요.”
한율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건조한 눈에서 갑작스레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 잠시만요.”
코디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코디는 보이지 않았다. 급한 대로 자하를 붙잡고 묻자 코디는 잠시 뭘 찾으러 주차장에 갔다고 했다.
“형, 눈 아파?”
자하가 물었고, 대답하기도 전에 어깨가 붙잡아 돌려졌다. 권우였다.
“정현이가 있어.”
“뭘?”
“인공 눈물.”
정현은 권우의 개인 매니저였다. 다른 멤버에 비해 월등하게 개인 스케줄이 많은 그는 따로 매니저가 있었다. 권우는 정현에게서 일회용 인공 눈물을 받아 왔다.
“넣어.”
그러고는 성의 없게 건네줬다.
“고마워.”
벌게진 눈으로 대답했지만 뒤따라오는 말은 없었다.
한율은 받은 인공 눈물을 눈에 최대한 가까이 붙였다. 튜브를 꾹 눌렀지만 손이 떨리는 탓에 물방울은 눈 주변으로 떨어졌다.
“형 너무 웃겨. 어디로 넣는 거야. 거기 애교살이야.”
인공 눈물을 넣는 한율을 보며 자하가 배를 잡고 웃었다.
“웃지 말고 도와주면 되잖아.”
울상을 지으며 말하자, 자하가 슬금슬금 다가오다가 권우에 의해 저지됐다.
“비켜. 내가 할 거니까.”
“형이?”
“어.”
권우는 한율을 근처 의자에 앉히고 턱을 붙잡아 고개를 젖혔다. 눈 밑 살을 조심스레 잡아 내리자 눈이 마주쳤다. 한율은 부끄러워 눈동자를 돌렸다. 이내 눈 속으로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무뚝뚝한 표정과 달리 손은 조심스러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 나빠 보였는데, 지금은 괜찮은 건가?
권우는 정사를 마치자마자 기분 나쁘다는 듯이 욕을 내뱉으며 떨어졌다. 생각의 꼬리를 물자, 한율은 왠지 자신이 잘 못 했기 때문에 권우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못하는 걸로도 기분이 나쁠 수가 있구나. 저도 모르게 단정 지었다.
그사이 눈에 인공 눈물을 다 넣고 권우가 건조하게 말했다.
“눈 감아.”
눈을 꾹 감았다. 왠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고마워.”
고마움을 전했지만 권우의 건조한 반응은 같았다.
한율의 성적은 늘 B였다. 이번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의 실수 이후, 적응이 되자 순탄하게 넘어갔다. 촬영에 사진 확인까지 마친 후, 스튜디오에 딸린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당기는 피부를 매만지며 밖으로 나왔다.
권우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권우가 대답을 하면 에디터는 꺄르르- 웃었다. 분위기는 꽤 좋았다. 리더니까 근처까지는 가도 괜찮겠지. 예전과 달리 한 번 정사를 한 이후에는 예전처럼 죽일 듯이 노려보진 않았다. 더군다나 아까는 인공 눈물까지 넣어 주었으니까.
“하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바로 일을 때려치울 거라니. 권우 씨는 되게 로맨틱하시네요. 율이 씨랑은 정반대인 것 같아요.”
권우는 한율에게는 절대 보여 주지 않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에디터의 말에 대꾸했다.
“율이 형은 뭐라고 했는데요?”
“사랑보다는 일과 성공이 우선이라고 하셨어요.”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권우의 표정이 굳었다. 경직된 눈이 한율을 보았다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끔 에디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정말 나쁜 남자네요.”
권우는 인터뷰를 마치고, 정현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스튜디오를 찾은 광고주 몇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누던 멤버들 틈에서, 한율은 상엽에게서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기업 사장님이래요. 저분이 찍으면 그쪽 CF는 무조건 다 받는대요. 형님한테 인사 왔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가 보세요.”
한율은 고개를 주억이곤,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고급스러운 검정 세단이 서 있었다.
이 차에 타면 되는 건가?
한율은 그 앞에서 기다렸다. 운전석에서 기사가 나오더니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타시죠.”
“감사합니다.”
한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차에 올라탔다. 기사는 들어오지 않고 자동차 앞에 서 있었다. 차 안에는 A기업의 사장이라고 하기엔 꽤 젊은 중년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 젊은 편이라고는 해도 오십 대 초반 정도였다. 깔끔한 검정 정장과 단정하게 넘긴 머리카락, 넥타이에 꽂아 놓은 금색 넥타이핀까지 값비싸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코스원의 율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웬만하면 스튜디오로 찾아뵈려고 했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요.”
한율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눈치를 봤다.
혹시…… 스폰서 이런 건가……?
<1> (5)
“씨발, 뭘 처울어. 좋잖아. 어? 그렇게 쑤셔 넣고 싶었잖아.”
“후읍, 콜록……! 읍!”
권우가 한율의 입에 사정하고 제 성기를 뽑아냈다. 입 안 가득 뿜어낸 정액의 비릿함에 한율은 비위가 상해 헛구역질을 했다. 권우는 한율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말했다.
“삼켜.”
“욱……!”
“삼키라고, 씨발.”
한율은 눈을 꾹 감고 정액을 삼켜 냈다. 흐으……. 볼을 타고 눈물이 툭 떨어졌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내자, 권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율의 몸을 돌려 다리를 벌렸다. 허리를 감싸 안고 한율의 등에 가슴에 가져다 댔다. 허벅지가 겹치고, 발기한 성기를 한율의 구멍에 밀어 넣었다.
“악!”
권우는 소리를 내지르는 한율의 허벅지를 붙잡아 벌렸다. 성기는 만지지 않았다. 키스도 하지 않았다. 어깨를 이로 짓이기며, 몸 안쪽을 꿰뚫었다.
“아악! 아, 아! 아파, 아파!”
“씹, 존나 조여. 힘 좀 빼.”
한율은 시트를 세게 쥐었다. 성기가 몸 안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하아. 권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한율의 등을 손으로 눌렀다. 한율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권우는 그의 마른 허리를 붙잡고, 몸을 쳐올렸다. 퍽, 퍽. 두꺼운 성기가 구멍을 치고 빠졌다.
“하으, 으, 아파, 아, 파, 권, 우야.”
“후으…… 좋아해야지. 왜 아프다고 해, 차한율.”
“아파, 아파…… 흐윽…… 아파, 권우야.”
한율의 눈물로 시트에 자국이 남았다. 권우는 그저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밀어 넣고 빼내는 데에 집중했다. 푹푹 안쪽을 찍어 눌렀다. 구멍 속으로 불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같았다. 한율은 혀를 빼 내밀고, 제 손가락을 물었다. 쾌락이고 뭐고 아플 뿐이었다.
“좋아하잖아, 어? 내 이름 부르면서 후, 자위했으면. 좋아해야지.”
몸을 숙인 권우가 한율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뜨거운 숨이 불어 넣어졌다. 아래는 무자비했다. 둥근 귀두가 내벽 이곳저곳을 파헤치며 다녔다. 한율은 발기한 성기에서 정액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모른 채 몸을 움직였다.
“으으, 응! 아!”
권우가 한율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씨발.’ 권우는 욕을 내뱉으며 고개를 젖힌 한율의 입술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이 뒤엉켜 뚝뚝 떨어졌다. 혀를 빠는 힘은 거셌고, 한율의 입 속을 파헤치는 권우의 혀는 제멋대로였다.
“우움, 욱……! 하아, 하아.”
권우의 성기가 한율의 깊은 안쪽에 사정했다. 콘돔을 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행위를 가졌다. 침대 위에 흩어진 콘돔이 무색할 정도였다. 권우가 성기를 빼내자 한율은 땀으로 엉망인 몸을 침대에 묻었다.
“씹.”
권우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괜히 욕을 내뱉었다. 왜 저러지? 한율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봤다. 권우는 몸을 일으키곤 침대 옆에 서서 한율을 빤히 응시하다가 몸을 돌렸다.
“씻고 가라.”
“……어?”
“씻고 집 가라고. 나갔다 올 거니까.”
그러더니 침실에 딸린 욕실로 휑하니 들어가 버렸다. 한율은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성기에 쓸린 엉덩이가 따가웠다. 엉망인 침대 시트를 빼내고, 이불을 방구석에 말아 놓았다. 던져진 러브젤과 콘돔을 챙겨 협탁 서랍에 넣으려 허리를 숙이자, 구멍에서 권우가 싼 정액이 흘러내렸다.
“아아…….”
한율은 걸음을 재촉해 거실로 나갔다.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정액을 손으로 닦아 내며, 욕실로 향했다. 샤워 부스로 들어가 벽에 손을 기댔다. 수도를 틀자 머리 위에서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한율은 눈을 질끈 감고,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내벽을 긁었다. 권우의 정액이 물과 함께 후두둑 떨어졌다. 몸의 열기는 빠지지 않았다. 한율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애초에 이런 관계가 되기로 했다. 권우에겐 단순한 성욕 해소였다. 화장실에서 볼일만 보면 되듯이, 한율의 안에 배출하고 나면 끝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괴로운 거지. 왜 이렇게 비참한 걸까. 앞으로 이런 날은 무수히 많을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힘들어할 건가? 감정을 다잡기가 어려웠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땐, 집에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침실의 문을 열었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권우도 없었다. 조명은 꺼져 있었다.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인 없는 집에 혼자 남기도 뭐해, 한율은 머리만 대충 턴 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집 안의 조명은 모두 꺼져 있었다. 선후는 잠들었는지 공기마저 고요했다.
한율은 침대에 누웠다. 권우의 침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매트리스에 스프링 소리가 삐거덕거리는 제 침대가 더 좋았다. 답답한 마음에 휴대 전화를 보자 모르는 이름으로 수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정말 한율 오빠예요?]
[번호 사칭당하셧어요 ㅠ]
한율은 그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내일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멤버들과 성제, 상엽이 함께 들어가 있는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다. 다행히 생방송은 없었다. 대신 새롭게 론칭할 코스원의 단독 예능 프로그램 회의가 있었다. 이른 아침에 사무실에서 타이틀곡과 후속곡 연습, 그 후 모 잡지 인터뷰와 화보 촬영, 그리고 늦은 저녁엔 회의가 잡혀 있었다. 회의 이후에는 선후, 권우만 따로 대표님께 가는 걸로 체크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둘이 따로 뭐라도 하는 건가 싶어 생각을 그만두었다. 다른 멤버들과 비교를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의 늪에 빠졌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지금에 만족하는 게 나았다. 만족하는 게 맞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어렸을 적엔 단순히 인기 많은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과 장난삼아 만든 밴드부 공연이 끝나고 지금의 회사에서 캐스팅이 왔다. 그 후로 수많은 그룹이 만들어졌다가 무산됐다. 그 당시 함께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이 연예계 생활을 접거나 나락으로 빠졌다.
만족하는 게 좋아.
누군가는 나에게 배부른 소리 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어.
한율은 마음을 바로잡았다.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피곤한 하루였다.
***
잡지사 건물 지하의 사진 스튜디오는 꽤 어두컴컴한 분위기지만, 바쁘게 오고 가는 스태프들과 멤버들로 인해 북적북적했다.
“형, 눈 아파?”
눈을 깜빡이자, 옆에 서 있던 현서가 물었다. 한율은 오랜만에 렌즈를 꼈다. 회색빛이 감도는 렌즈였다. 어차피 흑백으로 사진을 보정할 계획이라면서, 굳이 렌즈까지 낄 필요가 있나 싶었다. 동공의 크기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화보의 주제는 ‘남성’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사진작가와 콘티를 낸 에디터가 와 한 단어로 말하면 그렇지만 실제 잡지에는 그런 단어가 쓰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모두 평소보다는 조금 더 짙고, 어두운 빛이 감도는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중에서 원체 이목구비가 뚜렷한 권우는 단연 돋보였다.
권우는 성제를 만나자마자 잔소리를 들었다. 밤에 뭘 했으면 또 목격담이 올라왔냐고 했다. 권우는 한율을 슬쩍 보더니, 짜증 섞인 얼굴로 처신만 잘하면 됐지 밤에 뭘 하고 돌아다니는 것까지 형에게 말하고 다니냐고 따졌다.
“율이 씨는 눈매가 날카로워서 오늘 화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인터뷰부터 진행할까요? 다른 분들부터 촬영하고요.”
“네, 상관없어요.”
에디터가 ‘인터뷰컷 찍을게요.’라고 하자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던 사진작가 중 한 명이 한율에게 붙었다. 선후는 이미 촬영 중이었다. ‘와, 좋아요.’ ‘역시 코스원은 다르네요.’ 그냥 포즈를 취할 뿐인데, 사진작가는 꼭 한마디씩 코멘트를 붙였다. 한율은 플래시가 빵빵 터지는 쪽을 보다가 에디터에게 집중했다.
“이번 신곡의 콘셉트는 집착이라고 들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거나, 아니면 어떤 대상에 집착해 본 적이 있나요?”
집착이라. 한율은 손등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집착. 연습생 때는 데뷔를 하기 위해 집착했다. 그 집착을 미처 놓기도 전에 성공은 눈에 띄게 빠르게 이루어졌다.
“조금만 생각할 수 있게 시간 좀 주시겠어요?”
“하하, 네. 그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첫사랑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잡지에는 안 실릴 거예요.”
“아…… 첫사랑이요?”
“네. 첫사랑은 보통 실패한다고 하잖아요. 아니면, 혹시 현재 진행 중?”
한율이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매니저인지, 멤버인지, 촬영 스태프인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말조심을 해야 했다. 언제 어디에서 뜯겨져 기사로 쓰일지 알 수 없었다.
“첫사랑은…… 연습생 때였는데, 되게 불안정했어요. 저는 사랑보다는 데뷔가 우선이었거든요.”
“나쁜 남자시네요.”
“하하, 아니에요. 고백도 못 했어요.”
나쁜 남자가 아니라 겁이 많았을 뿐이었다.
어떻게 사랑을 고백할 수가 있겠는가. 추운 겨울, 연습실에 문을 열고 들어온 중학생에게 반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 아이가 쑥쑥 커 가면서, 자신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데 어떻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한율은 침울해졌다.
“저는 오히려 집착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 새로운 관점이네요.”
“원래 있던 연습생 선배들이 대거 그만둔 일이 있었거든요. 저는 완전 생 막내였는데, 갑자기 선배가 된 거예요. 그때가 연습생 생활하고, 3개월? 정도 됐을 땐데. 그 찰나에 멤버 선후가 들어왔어요. 저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위에서는 선배라고 잘 챙겨 주라고 했거든요.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잘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감정을 최소화하기로 한 거죠.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금도 그러시나요? 음, 율이 씨는, 뭔가 코스원에서도 방방 뛰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멤버들도 팬분들도, 같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태프분들도 모두 소중해요. 그분들과의 관계 교류도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한율은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아마 한율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농담 삼아 내뱉은 말이 찌라시에 오르내렸다. 대기실이나 사람들의 눈이 닿는 곳에서 감정을 표현하면, 그냥 그런 사람이 됐다. 부당한 일이 있어 화를 내면 ‘성격이 안 좋은 누구’ 이런 수식어가 달렸다.
“율이 씨에게 있어서 첫 번째로 중요한 건, 그저 성공인가요?”
“…….”
“아,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율이 씨가 했던 말을 정리해 보면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마치자마자 선후가 튀어나왔다. ‘렌즈 뺄래. 눈 아파.’ 코디를 붙잡고 징징거렸다. 한율도 눈두덩이를 매만졌다. 순서는 빠르게 진행됐다. 인터뷰까지 마친 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다음 차례는 권우였다. 권우는 촬영을 마치고 잠시 홍보 대사로 있는 한 사기업의 행사에 들렀다 와야 한다고 했다. 어차피 회의는 늦은 밤에 시작하니까 크게 상관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화보 촬영이 진행됐다. 그는 사진작가의 요구에 맞춰 모든 걸 척척 해냈다. 한율은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잘생겼어.
고운 얼굴선과 달리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하얀 백지장 같았다. 어떤 메이크업을 받든, 역할을 맡든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오늘은 머리에 검정 스프레이까지 뿌렸다. 마치 연예인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권우의 촬영은 한 번에 막힘없이 끝났다.
“율 씨, 촬영 들어갈게요.”
한율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건조한 눈에서 갑작스레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 잠시만요.”
코디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코디는 보이지 않았다. 급한 대로 자하를 붙잡고 묻자 코디는 잠시 뭘 찾으러 주차장에 갔다고 했다.
“형, 눈 아파?”
자하가 물었고, 대답하기도 전에 어깨가 붙잡아 돌려졌다. 권우였다.
“정현이가 있어.”
“뭘?”
“인공 눈물.”
정현은 권우의 개인 매니저였다. 다른 멤버에 비해 월등하게 개인 스케줄이 많은 그는 따로 매니저가 있었다. 권우는 정현에게서 일회용 인공 눈물을 받아 왔다.
“넣어.”
그러고는 성의 없게 건네줬다.
“고마워.”
벌게진 눈으로 대답했지만 뒤따라오는 말은 없었다.
한율은 받은 인공 눈물을 눈에 최대한 가까이 붙였다. 튜브를 꾹 눌렀지만 손이 떨리는 탓에 물방울은 눈 주변으로 떨어졌다.
“형 너무 웃겨. 어디로 넣는 거야. 거기 애교살이야.”
인공 눈물을 넣는 한율을 보며 자하가 배를 잡고 웃었다.
“웃지 말고 도와주면 되잖아.”
울상을 지으며 말하자, 자하가 슬금슬금 다가오다가 권우에 의해 저지됐다.
“비켜. 내가 할 거니까.”
“형이?”
“어.”
권우는 한율을 근처 의자에 앉히고 턱을 붙잡아 고개를 젖혔다. 눈 밑 살을 조심스레 잡아 내리자 눈이 마주쳤다. 한율은 부끄러워 눈동자를 돌렸다. 이내 눈 속으로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무뚝뚝한 표정과 달리 손은 조심스러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 나빠 보였는데, 지금은 괜찮은 건가?
권우는 정사를 마치자마자 기분 나쁘다는 듯이 욕을 내뱉으며 떨어졌다. 생각의 꼬리를 물자, 한율은 왠지 자신이 잘 못 했기 때문에 권우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못하는 걸로도 기분이 나쁠 수가 있구나. 저도 모르게 단정 지었다.
그사이 눈에 인공 눈물을 다 넣고 권우가 건조하게 말했다.
“눈 감아.”
눈을 꾹 감았다. 왠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고마워.”
고마움을 전했지만 권우의 건조한 반응은 같았다.
한율의 성적은 늘 B였다. 이번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의 실수 이후, 적응이 되자 순탄하게 넘어갔다. 촬영에 사진 확인까지 마친 후, 스튜디오에 딸린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당기는 피부를 매만지며 밖으로 나왔다.
권우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권우가 대답을 하면 에디터는 꺄르르- 웃었다. 분위기는 꽤 좋았다. 리더니까 근처까지는 가도 괜찮겠지. 예전과 달리 한 번 정사를 한 이후에는 예전처럼 죽일 듯이 노려보진 않았다. 더군다나 아까는 인공 눈물까지 넣어 주었으니까.
“하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바로 일을 때려치울 거라니. 권우 씨는 되게 로맨틱하시네요. 율이 씨랑은 정반대인 것 같아요.”
권우는 한율에게는 절대 보여 주지 않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에디터의 말에 대꾸했다.
“율이 형은 뭐라고 했는데요?”
“사랑보다는 일과 성공이 우선이라고 하셨어요.”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권우의 표정이 굳었다. 경직된 눈이 한율을 보았다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끔 에디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정말 나쁜 남자네요.”
권우는 인터뷰를 마치고, 정현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스튜디오를 찾은 광고주 몇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누던 멤버들 틈에서, 한율은 상엽에게서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기업 사장님이래요. 저분이 찍으면 그쪽 CF는 무조건 다 받는대요. 형님한테 인사 왔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가 보세요.”
한율은 고개를 주억이곤,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고급스러운 검정 세단이 서 있었다.
이 차에 타면 되는 건가?
한율은 그 앞에서 기다렸다. 운전석에서 기사가 나오더니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타시죠.”
“감사합니다.”
한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차에 올라탔다. 기사는 들어오지 않고 자동차 앞에 서 있었다. 차 안에는 A기업의 사장이라고 하기엔 꽤 젊은 중년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 젊은 편이라고는 해도 오십 대 초반 정도였다. 깔끔한 검정 정장과 단정하게 넘긴 머리카락, 넥타이에 꽂아 놓은 금색 넥타이핀까지 값비싸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코스원의 율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웬만하면 스튜디오로 찾아뵈려고 했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요.”
한율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눈치를 봤다.
혹시…… 스폰서 이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