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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6화

<1> (6)





코스원의 사무실인 소년 엔터테인먼트는 코스원의 성공 이후, 어느 정도 자리 잡았기에 스폰을 아예 차단시켰다. 그렇지만, 차단한다 해도 공공연한 게 이 바닥이었다. 대중에게도 뒷돈 거래 없기로 유명한 소속사 출신 선배도 스폰을 뛰어 광고를 몇 개 땄다고 했다. 원래 인기는 중하 정도였는데,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스타가 되었다.

“저…… 그런데 무슨 일로…….”

“아, 하하, 오해하셨겠네. 별건 아닙니다. 저희 아들이 워낙 율 씨를 좋아해서요.”

“아…… 네…….”

“밀레니어라고 아시나요?”

밀레니어는 이제 막 데뷔 2년 차인 신인 아이돌 그룹이었다. 코스원만큼은 아니어도 꽤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었다. 멤버들 모두 워낙 활발하고 성격도 싹싹해 한율도 좋게 보고 있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거기 호준이라는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

아아. 호준은 권우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눈에 띌 정도로 잘생겼다. 다만 그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밀레니어에서도 유독 껄렁거렸고, 어쩌다 마주칠 때면 한율을 쓱쓱 위아래로 훑기 바빴다. 한율이 먼저 인사를 하면 대충 고개만 주억거리고 사라졌다.

“……잘 지내라는 뜻인가요?”

한율은 조심스레 물었다. 이것도 스폰의 개념인가? 굳이 불러서 말할 정도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주시면 고맙죠. 제 아들이 워낙 팬이라서, 율이 씨 보고 가수를 꿈꿨거든요.”

“네?”

저도 모르게 당황해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한율이 본 호준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제멋대로에, 한율을 무시하기 바빴다. 선배라는 개념도 없어 보였고, 노려보고, 훑고, 비웃었다. 그런 애가 뭐? 날 보고 가수를 꿈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음에 함께 식사나 하죠. 셋이. 아이가 정말 좋아할 겁니다.”

“아아…… 네……. 대기실에서 만나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단은 매니저에게 제 연락처를 주긴 했는데. 제가 먼저 연락할 수 있도록 휴대폰 번호를 주시겠습니까?”

남자는 말을 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한율은 휴대폰 번호를 꾹꾹 누르고, 남자에게 내밀었다. 혹시 까먹었을까 싶어 ‘코스원의 율입니다.’ 다시 한번 덧붙였다. 남자는 웃으며,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시대에 뒤처지진 않았다고 했다. 머쓱해진 한율은 죄송합니다, 말을 덧붙였다.



***



음악 전문 방송국 M사 7층 회의실.

디귿(ㄷ) 자형의 테이블 위에 한쪽에는 코스원의 다섯 멤버가 앉아서 프로그램의 플롯을 보고 있었다. 매니저와 작가, PD는 자유롭게 뒤섞여 앉아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메인 작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프로그램 가제는 ‘코스원, 남자들의 집’이에요. 웬만해서는 이쪽으로 가려고 해요. 혹시 더 좋은 거 나올 수도 있으니까, 일단 제목은 가제로 했어요. 다른 거는 나누어 드린 종이에 적어 놓긴 했는데,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막내 자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3일 동안 숙박한다고 나와 있잖아요. 만약 이때 개인 스케줄 잡히면 어떻게 하나요?”

“일단 최대한 회사 쪽에서 빼 주신다고 했어요. 정말 급한 경우에는, 음, 어쩔 수 없죠. 리얼리티니까요.”

“네엡. 감사합니다.”

한율의 눈에도 거슬리는 게 있었다. 제목은 남자들의 집이었지만, 이튿날 M사 소속 음악 레이블의 연습생들이 홍보 겸 찾아와 미팅하는 대목이었다. 이러면 팬들 또 난리 날 텐데. 한율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아, 네. 말씀하세요.”

“여성분들이랑 같이 나오면 팬들이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

“빼 달라는 뜻인가요?”

“그래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죄송한데, 흔히 짝짓기 프로그램이라고 하죠. 이것들이 해외에서 인기가 엄청 많아요. 그리고 지금, 여기 나와 있는 연습생들. 내년 데뷔예요. 사실상 이 친구들 초읽기 개념일 수 있어요. 홍보국장님 지시예요.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근 방송국에서는 국내 팬들의 심기를 건드리더라도, 최대한 해외 유입을 늘리려고 했다. 국내 시상식을 해외에서까지 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팅’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당장 촬영은 나와 있는 대로 2주 후예요. 편안하게 휴식을 즐긴다고 생각해 주세요.”

미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선후는 배가 고프다며 주린 배를 붙잡았다. 현서도 동조했다. ‘밥이나 먹을까?’ 뒤따라오던 한율을 보며 물었다. 그걸 제지한 건 성제였다.

“선후, 권우는 사무실 가야 돼.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할래. 연습하다가 갈래, 아니면 각자 집으로 갈래?”

“저는 집이요.”

저도. 현서와 자하가 말했다. 한율은 연습실에 가겠다고 했다. 숙소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연습도 할 겸 사무실에 들렀다가 선후와 함께 집에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징징- 진동이 울렸다. 한율은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둘째 여동생인 지율이었다.

“어, 지율아.”

-오빠, 요즘 너무 연락 없어서 전화했어!

한율과 달리 두 동생은 성격이 쾌활하고 활발했다. 감정 표현도 잘했다. 웃고 싶으면 웃었고, 화가 나면 미간을 구겼다.

“아, 미안. 요즘 바빴어.”

-엄마도 걱정 많이 하셔. 아, 그거 알아? 오늘 서율 언니 남자 친구 왔다 갔어.

“진짜? 어땠어? 나도 보고 싶은데.”

통화를 이어 가는 사이 대기하고 있던 상엽의 카니발에 자하와 현서가 올라탔다. ‘낼 봐용.’ 자하가 낮은 목소리로 애교 넘치는 말을 했다. 현서는 대충 손을 흔들곤 차에 구비해 놓은 안대를 뒤집어썼다. 한율은 통화를 이어 가며 밴 쪽으로 향했다.

-엄청 잘생겼어. 집에 돈도 많대. 결혼하고 싶다나 봐.

“결혼……?”

앞서 걷던 선후가 뒤를 돌았다. 권우 역시 힐끔거리다가 이내 다시 갈 길을 갔다. 한율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말했다.

“안 돼. 무슨 결혼이야. 이제 스무 살이.”

-근데 엄마, 아빠도 다 좋아하셔. 언니한테도 진짜 잘해.

“안 돼. 나는 반대야. 대학생이잖아, 아직.”

-오빠가 아무리 그래도 언니랑 형부가 좋다는데……!

“형부라고 하지 마. 안 돼. 내가 이번 주말에 청주 내려가서 말할게.”

-으, 진짜. 오빠 완전 꼰대야.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아직 대학생이잖아.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 힘들어.”

결혼해 본 사람처럼 말한다? 지율이 의심 섞인 말을 내뱉었다. 통화를 정리하고 차에 오르자, 선후가 몸을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서율이 결혼한대?”

“아니야. 그런 거.”

“아, 옛날에는 선후 오빠랑 결혼한다고 엄청 쫓아다녔는데. 결혼이라니.”

“아니라니까.”

“왜, 왜. 여동생 보내는 거 싫어?”

“……너무 어리잖아. 나는 별로야. 사회생활도 못하고 가족에 얽매이는 거 싫어.”

“남자애가 잘하겠지. 서율이도 똑똑하니까, 잘할 거야.”

모르겠어. 한율은 꺼진 휴대폰의 액정을 매만졌다.



***



“하아, 하…….”

한율은 땀이 떨어져 번진 눈두덩이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요즈음에는 혼자 연습하는 일이 없었다. 개인 스케줄이 많은 권우는 따로 안무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다 함께 연습하곤 했다. 연습생 때나 밤새도록 남아서 개인 연습을 했는데, 오랜만에 하니 왠지 그것마저 어색했다.

한율은 바닥에 주저앉아 벽 하나를 가득 채운 유리 속에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검은색 티셔츠에 검정 트레이닝복 바지, 검정 운동화, 바닥에 벗어 둔 검정 모자와 마스크. 어둠 속에 있으면 묻히고도 남았다.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자, 머리카락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흩어졌다.

“아, 죽겠다.”

한율은 뒤로 넘어가 천장을 바라봤다. 백열등에 눈이 부셨다. 지하의 특유의 꿉꿉한 곰팡내가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늦은 밤이라 연습생들도 이미 집에 가거나 숙소로 돌아가고 없었다. 지하에 있는 연습실은 연습생 때랑 데뷔 초에나 사용하던 곳이었다. 선후가 벽에 해 놓은 낙서들이 아직까지도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데뷔니, 열정이니, 꿈이니 추상적인 단어만 늘어놓던 때였다. 한율이 그 낙서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유리, 추억팔이 중?”

선후가 안으로 들어왔다. 한율은 활짝 웃으며, 그쪽을 보다가 뒤따라 들어오는 권우를 보고 표정을 굳혔다.

별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오던 권우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한율은 애써 표정을 감추곤 말했다.

“전화하지. 그럼 올라갔을 텐데.”

“대표님이 술 한잔하재. 내일은 사무실 출근하는 거 말고 스케줄 없으니까.”

2시였다. 지금부터 술을 마시면 적어도 아침까지는 마셔야 될 텐데. 한율은 술도 잘 못 마셨다. 분위기를 띄우는 농담도 할 줄 몰랐다. 한율이 망설이는 사이 선후가 팔짱을 끼고 끌어당겼다.

“대충 분위기만 띄우다 오자. 내가 다 할게. 걱정하지 마.”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기까지 했다. 한율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고급 술집에 있는 룸이었다. 방음도 잘되고,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기도 어려웠다. 각자 옆에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한율은 최대한 떨어져 앉았다. ‘술 따라 줄까요?’ 물어보면 손을 내저었다. 이런 자리는 늘 그렇듯 어색하고 불편했다.

한율은 맞은편의 남자를 봤다. 오늘 낮에 만난 남자의 아들, 밀레니어의 호준이었다. 호준의 옆에는 중년의 남자들이 삐질삐질 땀을 닦으며 앉아 있었다. 아닌 밤중에 끌려 나온 거겠지. 호준은 사람 한 명 죽일 듯이 살기를 띤 눈빛으로 한율을 쏘아보았다. 아, 또 저래. 한율은 그와 눈을 마주했다가 앞에 놓인 잔을 매만졌다. 호박색 양주가 넘칠 것처럼 잔 입구에 맞춰져 있었다.

선후가 호준을 힐끗거리다가 대표를 보고 물었다.

“대표님, 호준이는 왜.”

“이번에 소년이랑 A기업이랑 뭐 엮었거든.”

“그런데요?”

“호준 군이 그쪽이랑 좀 밀접한 관계라. 그쪽에서 호준 군 좀 잘 챙겨 달라고 했어.”

아아. 그 한마디로 정리가 됐다. 그러곤 곧 아부가 섞인 말들이 오갔다. 선후는 술을 마시다가 담배를 태웠다가, 또다시 술을 마셨다. 한 번에 몇 명씩 담배를 태워 금방 너구리 굴처럼 연기가 차올랐다. 술을 억지로 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한율은 술잔을 매만졌다가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답답했다. 그냥 한 입 정도는 마실까 생각하던 찰나, 주변을 살피니 권우가 말없이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권우의 옆에 앉은 여자가 잔이 빌라치면 채워 주기를 반복했다. 허벅지 안쪽으로 화려한 손톱을 가진 손이 오갔다.

“오빠, 진짜 진권우야?”

“…….”

“무뚝뚝하네. 원래 이래요?”

한율을 보고 물었다.

“아…… 네.”

권우는 가만히 있었다. 연거푸 술만 마실 뿐이었다. 한율은 그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정면에서는 호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술잔을 입에 대고 꿀꺽꿀꺽 넘겼다.

“으……. 써.”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옆에 있던 여자가 물었다. 몸에 짝 달라붙은 옷을 입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귀여워. 술 안 좋아해?”

“네, 잘 못 마셔서요.”

말을 마친 한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 좀 피우고 오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나오자마자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괜히 왔다. 모든 게 다 불편했다. 여자와 직접 함께 있는 권우의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거 제대로 삐뚤어지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고, 그때부터는 말도 잘 섞지 않았다.

한율은 복도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 뚜껑을 여니 불꽃이 올라왔다. 숨을 빨아들이며 불을 붙이고, 길게 뱉어냈다. 그때, 룸의 문이 열렸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호준이었다.

“얘기 좀 해요. 선배.”

호준은 그대로 한율을 데리고 복도의 가장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담배 끌까?’ 한율의 말에 호준은 괜찮다고 했다. 호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눈알을 굴리던 한율에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서, 선배.”

“어, 어.”

졸지에 한율까지 말을 더듬었다. 눈을 크게 뜨고 꿈뻑거리자, 어둠 속에서도 호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친하게 지내도 돼요?”

“……어?”

“저, 그러니까. ……선배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그래서 아버지께 따로 말씀드렸어요…….”

호준은 말끝을 흐렸다. 한율은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호준의 어깨를 도닥여 줬다. ‘어, 그러자.’ 호준은 그 말에 씨익 웃었다. 한율은 잠시 호준과 권우를 저도 모르게 비교했다. 권우의 얼굴이 예쁘장한 편이라면, 호준은 그와 반대였다.

각자의 외모대로 매력이 있었다. 한율은 호준과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 친해지자는 말을 보통 이렇게 따로 자리를 옮겨서 하나 싶었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호준은 꽤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귀엽네. 한율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룸으로 들어갔다. 권우랑 그와 함께 있던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권우는?”

“아, 나갔어.”

“어?”

“옆에 있던 애랑 나갔다고.”

술을 그렇게 마시더니 결국엔 나간 건가.

한율의 얼굴에 우울이 차올랐다.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뭐라고 우울해하는 거야.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한율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징- 징- 한율은 번호를 확인했다. 권우였다.

[밖으로 나와]

짧은 문자 메시지였다. 밖? 한율은 몸을 일으켜 다시 복도로 나갔다. 권우는 밖에 서 있었다. 그에게서는 짙은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났다. 한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권우는 피식, 피식 웃더니 한율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호준과 함께 서 있던 곳으로 걸어갔다. 어둠으로 들어가자마자 권우는 한율을 잡아먹을 것처럼 키스했다. 물어뜯는 입술은 거칠었고, 밀어 넣는 혀는 거셌다. 거친 숨소리와 한율의 등을 감싸 안아 자신의 쪽으로 밀착한 힘은 강했다. 혀에서는 쓰디쓴 술맛이 났다. 입술에서는 인공적인 립스틱 맛이 느껴졌다. 그걸 알아채자마자 한율은 권우의 어깨를 밀었다.

한 걸음 밀려난 권우가 입술을 매만졌다.

“……더러워.”

한율의 말에 권우가 하하, 소리 내 웃었다.

“더러워?”

“그래, 더러워.”

“네 후장에 좆 박아 주는 건 깨끗하고?”

“…….”

“키스한 입술로 혀 섞는 건 더러워?”

“…….”

“일이라고 생각해. 사랑보다 일이 먼저잖아. 이 바닥에서 더러운 거 하루 이틀 봐? 탈퇴 막아야지.”







<2> (1)





데뷔 3년 차일 때였다.

12월의 마지막 날엔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가 있기 마련이었다. 겨울의 바람은 칼부림처럼 매서웠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는 손이 새파랗게 질려 급한 대로 핫팩을 몇 개씩 감싸고 있어야 했다.

멤버 모두가 발목부터 목 끝까지 채워 주는 패딩을 올려 입었다. 한율은 소파에 앉아 지퍼를 붙잡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이거, 왜 안 되지. 아무리 잡아당겨도 올라가지 않았다.

‘코스원, 곧 마지막 무대 대기해 주세요.’

현서는 목을 풀며, 미리 받은 노래의 가사를 외우고 있었다. 코스원의 메인 보컬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수십 명의 가수들이 나오는데, 맨 앞에 서서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한율은 결국 패딩을 잠그지 못한 채 무대 위로 올라갔다. 형형색색의 야광봉이 있었지만, 그중 단연 튀는 건 하얀 빛을 내는 코스원의 응원봉이었다. 한율은 풀어진 앞을 여미고 손을 흔들었다. 무대 옆으로 보이는 화면에 한율의 얼굴이 찼다.

‘형!’

한율은 그 모습에 뒤로 돌았다. 분명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뒤에 서 있던 권우가 옆에 와 있었다.

‘왜 앞에 안 잠그고 있어. 안 추워?’

걱정 섞인 목소리에 한율은 자신의 지퍼를 가리켰다. ‘이것 때문에 안 돼.’ 권우는 애매하게 걸려 있는 지퍼를 응시하다가 손을 뻗었다. 그러곤 한율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퍼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권우의 힘은 강했고, 결국 지퍼의 쇠가 퉁 하고 무대 아래로 떨어졌다.

‘아.’

‘야.’

‘……미안.’

대신 이렇게 하자. 권우는 한율의 패딩 소매 부분을 들었다.

‘팔 몸 안쪽으로 집어넣어.’

그 말에 한율은 몸을 꿈틀거리며 두 팔을 빼냈다. 패딩은 몸과 비교하면 한참 커 빼내는 데에는 수월했다. 그나마 팔과 몸이 맞닿으니 추위가 덜한 것 같긴 했다. 차렷 자세로 애벌레 같아진 한율은 권우를 보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권우는 뭘 웃냐며, 한율의 콧잔등을 툭 쳤다.

팬들은 권우와 자하 보고 막내온탑, 하극상이라고 했다. 그런 모습은 모두 방송용이었고 자하는 지극히 순했다. 실제로 현서나 선후, 권우에게 놀림받는 일이 더 많았다. 그와 반대로 권우는 애초에 태어나길 거만한 것처럼 형들을 가지고 좌지우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