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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쓰는 타이탄1권(15화)
4장. 의문의 습격(4)
“이 짜식들아, 똑바로 안 해! 계집 하나 가지고 뭐 하는 짓이야!”
우르속은 허리춤에서 도끼를 빼 들고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계집이 칼을 꺼내 들 때만 해도 애들 장난이겠거니 생각했다. 먼저 달려든 부하들이 무기를 놓쳤을 때까지만 해도 방심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더 이상 웃어넘길 수 없는 지경이었다.
“히야앗!”
“우와앙?”
허둥지둥하며 물러서기 바쁜 쪽이 자신의 부하들이다. 오랫동안 산적질을 해 오면서 먹은 칼밥만 십 년이 넘는다. 부하들의 실력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뛰어나지는 않다 해도 이런 어린 계집에게 당할 정도로 녹록하진 않았다.
그렇다 해서 방심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도 눈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푹!
“윽!”
어깨를 찔리고 물러서는 부하. 그는 방금 전 율리아를 궁지로 몰아넣을 뻔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쪽 뿐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그녀의 사각지대로 검을 밀어 넣었었고, 그 공격은 두목인 자신이라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피했다.
그냥 피한 것도 아니라, 회피와 공격이 일체가 된 깔끔한 동작으로 부하의 어깨에 자상을 입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선금 일만 마르크라네. 성공하면 나머지를 주지.”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 마차 하나를 습격하는 조건으로 십만 마르크를 제의했다. 제국의 마차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전리품은 가져도 좋다는 말에 흔쾌히 수락했다. 게다가 십만 마르크라면 이 지역을 떠서 다른 곳에 정착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슬슬 이름이 너무 알려져 여기를 뜰까 생각하던 와중에 솔깃한 제안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습격이었다. 혹시나 싶어 모든 패거리를 이끌고 나왔는데, 예상외로 마차를 호위하는 병력은 없었다. 싸울 만한 남자라고 해 봐야 마부를 포함한 셋, 그나마 마부는 뒤쪽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일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풀린다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단숨에 끝낼 요량으로 덤벼들었다. 혹시라도 근처에 순찰 병력이라도 있다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찰 병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콰앙!
“으힉!”
마법의 반동으로 뜨거운 열기가 확 퍼졌다. 자기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은 우르속은 황급히 떨어뜨린 도끼를 집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부하들은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위안이 될 수는 없었다. 기상천외한 검술을 사용하는 계집도 그렇지만, 마법사까지 가세하니 상대하기가 너무나도 까다로웠다.
‘허,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린다 했다.’
입맛이 썼다. 그가 마법사를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왜 사람들이 마법사를 무서워하는지 그는 지금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는 눈앞을 굴러다니는 부하들을 무시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무언가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때, 적진 뒤편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마부와 멍청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옳거니!
그래, 항상 방법은 있는 법이다. 우르속은 자신의 천재적인 머리를 칭찬하며 부하들을 불렀다.
“부르뱅! 투사! 너희는 뒤로 돌아서 저년을 잡아라! 남자는 죽여도 상관없다!”
“네?”
부르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흑곰 우르속의 산적단은 인질극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정정당당하게 물건을 빼앗아 왔고 그것을 자신들만의 자랑으로 생각해 왔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웃을지라도 그것이 지금껏 지켜 온 산적으로서의 프라이드였다.
그러나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까라면 까, 이 새끼야!”
부르뱅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우르속은 투덜대며 숲 속으로 숨어드는 두 사람을 보고는 다시 다른 부하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전원 돌격해! 이 새끼들아! 몇 대 처맞았다고 엄살 부리는 새끼는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와아아!
우르속의 호령에 기세가 떨어져 있던 산적들이 일거에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만은 꽤나 장관이어서, 직접 상대하던 레스터 일행도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
부하들이 돌격하는 것을 보며 우르속은 큰소리로 웃어 제꼈다. 그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부하들은 더욱 사기가 올라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응?”
한참을 큰 소리로 웃어 제끼던 우르속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따가울 정도로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틀고, 그곳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카일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섬뜩한 기운이 척추에서부터 찌릿하게 타고 올라왔다. 우르속의 머릿속에서 경고성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런 빌어먹을 것을 봤나!’
그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조금 늦었을까.
소리보다 먼저, 화살이 우르속의 몸을 꿰뚫었다.
―와아아아!
산적 패거리들이 밀려 들어온다. 단숨에 밀고 내려오는 수십의 산적들을 율리아 혼자서 막기는 역부족이다. 레스터는 잠시 주저하더니 품에서 꺼내 든 붉은색 보석을 휙휙 내던졌다.
얼핏 보기에 루비로 착각할 수도 있는 붉은색의 보석. 가넷(Garnet)이라 불리는 고굴절성의 보석이었다. 평상시에는 술자의 마력을 담아 두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위급 상황에서는 저장된 마력을 일거에 터뜨려 폭발시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불타는 보석’.
콰앙! 쾅!
보석이 떨어지는 자리마다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레스터를 향해 달려들던 도적 떼가 황망히 물러섰다. 위력보다는 소음이 큰 편이지만, 그렇다고 맨몸으로 맞아서 무사할 정도는 아니었다. 몇 개의 보석을 더 던지면서 견제를 하자 저돌적으로 덤비던 산적들도 쉽사리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런, 한동안은 굶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레스터는 반쯤은 울상이 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스스로 마력을 뿜어내는 마력석에 비해서 싸다고는 해도 가넷 역시 일단은 귀금속이다. 게다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세공 과정을 필수로 거치기 때문에 레스터의 기준에서는 절대 저렴하지 않았다.
어쨌든 덕분에 산적과 레스터 사이에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마법사에게 있어 공간은 곧 시간. 그 잠시의 시간이 레스터와 산적들의 우열을 가를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보석을 무더기로 써 버리고 만든 비싼 기회다. 허투루 날릴 생각은 결코 없었다.
레스터의 손이 허공에 원을 그렸다.
마치 공간을 찍어누르듯 움직이는 그의 손은,
고오오―
천천히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 레스터의 손끝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마력 발현 고유의 낮은 진동음과 함께 보랏빛의 자국이 남았다. 마치 공간을 긁어내어 그림을 그리는 듯한 착각.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산적들마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정도였다.
‘복잡한 식을 구현할 시간은 없으니까…….’
레스터는 평시에 비해 몇 배나 더 집중하며 계산식을 만들어 나갔다. 그의 손끝은 마치 가속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생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손의 속도도 빨라져만 갔다.
“응집, 플러스된 마력을 구성, 연쇄에 이은 순환…….”
레스터의 입에서 보통의 마술 주문과는 다른 체계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이미지를 구현화하는 발화 마법과는 달리 진을 이용한 마법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개념 언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마술보다는 자연과학에 가까운 테크닉이었다.
결국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하려는 것은 매크로 폴더라 불리는 단순한 명령을 반복 수행시키는 순환진. 거기에 공격 마법 중 가장 구현하기 쉬운 ‘마력 탄환’을 얹어 발현하려는 것이었다.
“마력 탄환, 리차지(Re―Charge)!”
철컥.
완성된 원형의 마법진이 레스터의 손 앞에서 은은한 보랏빛을 발했다. 제아무리 빠르게 한다 해도 수분, 심혈을 기울인다면 수십 분은 걸려야 할 마법진 구성을 단 몇 십 초 만에 끝내 버린 레스터가 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르르르!
마법진으로부터 짐승의 포효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력을 응집해 만들어 낸 타원형의 투사체가 반복적으로 뿜어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잠시 마법진이 뜨겁게 달아오르나 싶더니,
타앙!
주위를 뒤흔드는 초탄의 굉음. 곧 검정색 마력 덩어리가 줄지어 산적들을 향해 쏟아졌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주먹으로 세게 얻어맞은 정도. 한두 번이면 버틸 만하나 쏘아지는 마력덩어리들은 수십 발.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벅!
“컥!”
“허억!”
단숨에 얼굴과 가슴 등을 몇 발씩 얻어맞은 산적들이 바닥을 굴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산적들이 대부분 쓰러지자 레스터의 시선은 산적들에 둘러싸인 율리아를 향했다.
그는 아직 충분히 남은 마력을 끌어모아 이번에는 율리아를 노리는 산적들을 향해 마력탄을 내뿜었다.
연속적으로 날아가는 마력탄에 산적들이 짚단처럼 쓰러져 나갔다. 그 탄막의 한가운데 있던 율리아가 포위망을 빠져나오며 크게 외쳤다.
“바보 오라버니! 맞을 뻔했잖아!”
“니가 천방지축처럼 날뛰니까 그렇지!”
마법이라는 것은 술사의 정신력이 허용하는 만큼 사용 가능한 것. 마력 탄환류의 비교적 단순한 주문은 레스터의 정신력에 그리 큰 부하를 걸지 않는다. 하지만 순환진을 통해 빠르게 마력을 쏟아붓는 바람에 레스터는 의식 한 곳이 뻥 뚫린 듯한 공허감과 함께 상당한 피로를 느꼈다.
그렇다 해도 당장 멈추기에는 적의 숫자가 많았다. 레스터는 일단은 산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목적으로 마력탄을 계속 쏟아부었다.
그때, 적진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목!”
레스터는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는 적 두목.
다시 시선을 뒤쪽으로 옮기자, 두 번째 화살의 시위를 걸고 있는 카일이 보였다.
‘이런 난전에서 지휘관을 맞추다니, 저 인간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게다가 조금의 동요도 없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날리는 침착함은 거의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경박하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평소의 행동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참모로서 경험이 많기에 가능한 것일까?
레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10년 가까이 전장을 굴러다닌 자신도 칼과 칼이 맞붙는 전장에서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하물며 가장 안전한 후방 부대에서 머무르는 참모가 이런 싸움의 한복판에서 이 정도의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험과 연륜? 굳이 따지지만 레스터 쪽이 훨씬 경험이 많다.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도 장기판의 말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어째서인지 문득 피아를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하늘이 참 푸르네요. 죽기 좋은 날이죠?”
레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피아와 달리 카일의 경우는 엄밀히 말해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배제한다는 편이 옳았다.
스스로를 제3자로서 바라보며 전장에서 활약한다. 그러한 극단적인 객관화는 다시 말해 언제든지 자기 자신마저도 도구로서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자신의 죽음마저도 어떤 커다란 목적을 위한 절차로 생각한다는 뜻.
그것이 카일이라는 인간이 가진 무서움일 것이다.
지나친 감은 있다. 그러나 카일이라는 남자가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레스터는 자꾸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는 생각을 털어내고는 전장에 집중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씨이잉―!
“윽!”
화살 한 발에 하나씩.
카일의 화살은 치명상 혹은 전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상태로 착실히 적들을 몰아갔다.
적들의 공격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의 흉흉한 기세는 사라지고, 조금씩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승리는 확실했다.
율리아, 카일, 레스터. 단 세 명이 수십의 산적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손쉽게 이길 수 있겠어.’
레스터 일행에게는 희망이, 산적일행에게는 절망이 찾아들 무렵,
“으아악!”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뒤이어 피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마부 아저씨!”
레스터는 그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느라 미처 뒤쪽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레스터는 눈앞의 적들에게 한차례 마력탄을 쏟아붓고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쓰러진 마부와 피아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고 있는 두 명의 산적이 보였다.
‘이 자식들!’
레스터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눈앞에도 산적들이 있다. 마력 탄환의 방향을 돌렸다가는 전면에서 오는 적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피아를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