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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쓰는 타이탄1권(16화)
4장. 의문의 습격(5)
“악!”
어영부영하는 사이 피아가 결국 머리채를 붙잡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바둥거렸다. 자신을 위협하는 칼날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그녀는 쓰러진 채 정신을 잃고 있는 마부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마부는 등에 칼을 찔린 채 피를 흘리고 있어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 위독해 보였다.
“이익! 이거 놔요! 저 사람 죽으면 어떡할 거예요!”
“시끄럽다. 넌 닥치고…… 아얏! 이년이!”
피아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산적의 손을 깨물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화가 난 부르뱅이 피아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힘없이 축 늘어진 피아를 품에 안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부르뱅.
레스터는 머리가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경거망동할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았다.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이 여자의 목숨은 없다!”
스윽, 하고 피아의 목에 칼이 스치자 피부가 베이며 피가 흘러나왔다. 율리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카일의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전투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인질이 잡힌 이상 굳이 싸움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을 지휘해야 할 산적들의 두목이 쓰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질극이 익숙치 않은 산적들이 어리둥절해하며 공격을 멈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기서 우르속이 정신을 차리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면 레스터 일행은 분명히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것이다.
“두목이 안 보이는데?”
부르뱅과 투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인질을 잡으라고 명령을 했으니 그 뒤의 일도 생각해 두었을 터, 하지만 정작 두목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너네들 두목이라면 저기 누워 있다.”
“헉!”
레스터의 말에 부르뱅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가슴에 화살을 꽂은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우르속을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이런 사태는 예상하지 못했던지 부르뱅과 투사는 급격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그때, 피아가 정신을 차린 듯 힘없이 입을 열었다.
“뭐냐, 꼬마.”
“……놓아주세요.”
“뭐?”
부르뱅이 어이없다는 듯 반문하자 피아는 힘없는 몸짓으로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목에 있는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방금 칼에 베인 상처였다.
우우우―
상처 부위에 올려놓은 피아의 손에서 황금빛의 아우라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산적, 부르뱅과 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 신성력?”
“노, 놀라지 말고!!”
“노, 놀라기는 누가 놀란다고! 그나저나 뭐, 신성력 있으면 어쩌라고? 그걸로 협박이라도 하는 거냐?”
부르뱅이 피아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늘어져 있던 피아가 입을 열었다.
“하아,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뭐?”
“저 놓아주면 두목 아저씨 고쳐 준다구요.”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부르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목에게로 그녀를 데리고 가려 하자, 피아가 갑자기 완강히 저항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마부 아저씨부터 치료해야 돼요.”
“시끄러워! 그딴 놈 알 게 뭐야!”
부르뱅의 일갈에도 피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전 안 할 거예요. 둘 다 죽게 내버려 두죠, 뭐.”
“안 하면 너도 죽을 텐데?”
“상관없어요. 내가 죽으면 산적 아저씨도 저기 뒤에 있는 아저씨들한테 다 죽을 거니까. 이참에 전부 다 같이 죽죠, 뭐.”
그 말은 묘하게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부르뱅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가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레스터를 보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조, 좋다. 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두목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르뱅의 팔에서 빠져나온 피아가 마부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자상으로 인한 출혈과다가 심해지면 쇼크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한시가 급했다.
파아앗!
뭐라뭐라 중얼거리던 피아의 손에서 조그마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상처 부위에 손을 올리자마자 출혈이 멎기 시작하더니, 이내 피가 완전히 멎었다. 응급처치에 불과했지만, 일단 위급한 순간은 넘긴 것이다. 피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목 아저씨는 어디 있죠?”
“정말 고쳐 주게? 윽!”
얼빠진 소리를 하는 투사의 뒤통수를 때린 부르뱅이 쓰러져 있는 두목을 가리켰다. 두 산적과 함께 쓰러져 있는 우르속에게 달려간 피아는 천천히 상처를 살폈다. 치명적인 관통상이지만, 다행히 심장을 비껴간 상태였다.
‘이 사람…… 가능성은 있어.’
연속으로 신성력을 사용했기 때문인지 피아의 얼굴이 다소 창백했다. 그녀는 한 번 크게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산적 두목의 가슴을 꿰뚫은 화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그대로 뽑아냈다.
“커헉!”
돌연 우르속이 검은 피를 토해 내며 상처 부위에서 엄청난 양의 출혈이 이어졌다. 쇼크로 즉사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니, 붕대를 감거나 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피아는 황급히 출혈 부위를 손으로 감쌌다. 두 손이 뿜어져 나오는 피로 붉게 물들고, 입에서는 기도가 흘러나왔다.
마부를 치료할 때와는 달리 아주 긴 기도가 이어졌다. 그만큼 상세가 중하다는 뜻이었다.
“태초의 하나이자, 성스러운 빛이자, 위대한 절대자이자, 만물의 근원이신 엘 사박디니 라 아헬다임이 가로되, 지금 사역된 이 땅에 잠시 머물러 염을 이루라 하옵시니, 살아 있는 심장과 살아 있는 폐와 살아 있는 간장을 모두 모아 새 생명을 엮으시어 유일한 기적의 힘으로 다시 한 번 눈을 뜨게 하옵시고 두 발로 대지를 딛게 하옵소서…….”
기도가 이어지자 그녀의 주위로 차근차근 빛의 입자가 모여들었다. 그 하나하나의 광자는 마치 의지를 지닌 듯 그녀의 주변에서 춤추었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모두가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 계집 년!”
후웅.
거칠게 휘두른 검이 피아의 머리를 스치며 땅에 박혔다. 그녀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서는 인상을 잔뜩 구겼다. 키가 조금만 더 컸다면 틀림없이 머리가 뎅겅 잘렸을 것이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이…….”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빽! 질렀다.
“가만히 있어요! 움직이면 상처가 덧난단 말이에요!”
“어엇?”
산적은 피아의 박력에 놀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스터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저 녀석,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내 산적의 상처 부위를 향한 피아의 손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신성력을 사용해 적을 치료하려는 것이다. 레스터는 머리를 감싸 쥐며 크게 외쳤다. 그 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너, 대체 어느 편인 거냐!”
“쉿! 조용히 해요! 환자가 놀라잖아요.”
그녀의 대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우르속을 치료한 다음 근처에 있던 다친 사람들, 그러니까 레스터나 율리아나 카일에게 당한 산적들에게 달려가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슥삭슥삭. 착착. 척척.
가벼운 상처는 소독 후 붕대 감기로, 극심한 상처는 신성력으로 치료했다.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린 건지 이제는 산적들도 그녀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율리아는 피아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매우 열성적으로 산적들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완전히 긴장감이 없는 모습. 이런 상황이라면 다시 싸우기도 힘든 노릇이었다.
‘이제 싸움은 끝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쌓여 왔던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것이 첫 번째 실전이었다.
“응?”
레스터는 등에 달라붙는 무언가의 감촉을 느꼈다. 그의 등에 기댄 율리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아, 어쨌든 아무도 안 죽어서 다행이다.”
레스터 일행도 그렇지만, 산적 일행 중에서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율리아나 피아를 생각해서 손속을 아낀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명도 죽지 않은 것은 순전히 산적들의 운이었다.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까지 여유를 두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신나서 달려 나갈 때는 언제고.”
“……사소한 건 잊지 좀?”
“윽.”
옆구리를 꼬집는 율리아를 향해 레스터는 몸을 돌렸다. 레스터는 손수건을 꺼내 들어 그녀의 뺨을 닦아 주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붉은 피가 점점이 묻어났다. 하얀 블라우스도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피가 아님에도, 레스터는 마치 그녀가 흘린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열심히 닦아 내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 사경을 헤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다. 기사라는 이름을 짊어진 이들이 걸어가게 되는, 너무나도 당연한 길.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런 모습 앞으로는 많이 보게 되겠지?”
“뭐야, 오라버니도 참…… 걱정할 거면 진즉에 말렸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막상 눈으로 보니 많이 다르네. 뭐,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이렇게 된 거, 이왕이면 강한 게 좋겠는데, 보아하니 걱정 안 해도 되겠는걸?”
“열심히 했으니까.”
율리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레스터의 손을 잡아 자신의 손을 겹쳤다. 레스터보다도 훨씬 단단한 그 손이 묵직하게 그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여자 손이 이래서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없겠지?”
“무슨 소리야? 우리 부대에서도 너 데리고 가려고 눈독 들이는 도둑놈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내가 그거 막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거짓말.”
“정말이야! 일단 내가 아는 녀석만 해도 이반, 토마스, 하인스, 보로딘, 막스…….”
“와아, 오라버니 친구들은 다 늙었잖아아. 게다가 그 막스라는 사람은 스승님 아냐? 완전 늙은이잖아! 변태 아냐? 아니, 그보다 먼저, 아직까지 결혼 안 했던 거야?”
“그러니까 말이지, 자긴 아직 솔로니까 자격이 있다고…… 하아, 내가 그 영감탱이 말리느라고 정말…….”
“어쩐지 날 보는 눈빛이 이상하더라니.”
율리아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피아의 치료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더 이상은 산적들도 싸울 의지를 잃은 듯 제멋대로 주저앉아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르속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듯했다. 어쨌든 두목이 쓰러진데다 상세를 알 수 없어 함부로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으윽…….”
잠시 후, 우르속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을 더듬던 그는 놀란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신성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