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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쓰는 타이탄 1권(21화)
5장. 격랑의 물살(5)
“그렇지.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중심부의 엘레나트 코어, 미스릴과 은으로 타이탄 각 부위에 연결된 신경망, 각 관절부의 근육처럼 기능하는 엘레나트 머슬 전반을 가리킨다네. 후자의 경우는 마나 제네레이팅 시스템이라고 불리기도 하지.”
“그것이 출력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까?”
“허허. 자네, 안 본 사이에 꽤나 성급해졌군. 이건 알려지면 안 되지만, 자네의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믿고 말하는 거니 어디 가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게나.”
미하일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근본적으로 엘레나트가 가지고 있는 한계 집적량이라는 것이 있네. 현재의 슈바르츠 급 타이탄이 그 한계에 달했다고 여겨지는 시점이지. 그러나 거대한 타이탄이 기동하기 위해서 오로지 엘레나트에만 기대는 것은 아니라네.”
“마나 레스퍼레이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자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구만.”
“그저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카일은 쑥스럽다는 듯 살짝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젊은 학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타이탄의 거체를 전투에 맞을 정도로 기동하는 것은 기사 한 사람의 개인 마력만으로는 어렵지. 때문에 마나 제네레이터는 호흡기가 산소를 근육에 공급하듯이 외부 마나를 흡입해 구동계에 전달하는 기능 또한 하고 있다네. 타이탄의 등 전면, 그리고 관절부의 노출 부위에 펼쳐진 마나 레스퍼레이터…… 저기, 저 부분 말일세.”
미하일은 말을 하면서 움직이는 타이탄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이 닿는 곳에 원형의 검은 구멍이 보였다. 또한 그 가운데에는 방사선 모양의 차폐기가 존재해 외부로부터의 이물질이 흡입되는 것을 막아 주고 있었다. 그 내부는 은과 엘레나트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저기에서 타이탄 구동계의 움직임과 연계해 공기 중의 외부 마나를 제트기류처럼 빨아들여 오너의 마나 소모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네. 이번에 중점적으로 개량한 것이 바로 저 마나 레스퍼레이터지.”
“그렇군요. 같은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흡입되는 마나의 양이 다르다면 출력을 높일 수 있다. 어찌 보면 간단한 논리이지만, 쉬워 보일수록 어려운 법이지요.”
카일의 말에 미하일 후작이 껄껄 웃으며 와인을 들었다.
“역시 자네는 뭘 좀 아는 친구구만. 그렇지. 그렇게 쉽다면 누구라도 출력을 쉽게 올리지 않겠나? 마나 레스퍼레이터의 출력을 올리면 올릴수록 마나 제네레이터의 컨트롤이 힘들어지지. 자고로 통제되지 못하는 힘은 없느니만 못하는 바,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듬느냐가 바로 우리 제국 공학부의 기술력 아니겠는가.”
“노고에 치하드립니다.”
카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훈련 중인 타이탄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타이탄이라는 것은 탑승자와 동조해서 움직이는 것이죠?”
“그렇지.”
“그렇다면 만일 타이탄을 움직이는 것이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라면 마법을 쓸 수도 있는 것입니까?”
“하하하, 자네도 참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하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 대부분은 웃으면서 넘기기는 하지만, 자네처럼 박식한 친구가 물어보니 바보 취급할 수는 없지 않겠나.”
“이런,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니 너무 놀리지는 마십시오.”
카일이 부끄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 내 자네를 위해 특별히 설명을 해 주지. 사실 자네가 하는 말은 누구나 한 번씩 해 보는 생각이라네. 하지만 타이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대부분 그 생각은 잊어버리지. 바로 타이탄의 구동 원리 때문이라네.”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카일이 진지한 얼굴로 묻자 미하일이 기뻐하며 말을 이었다. 공학자란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법이다. 미하일은 뼛속까지 공학자였고, 카일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너와 타이탄 간에는 신경의 동조가 이루어지네. 그것으로 오너는 타이탄이 보는 것을 볼 수 있고, 타이탄의 움직임을 마치 자신의 움직임처럼 느낄 수가 있네. 자네는 이중 감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글쎄요. 동시에 두 가지 감각을 느낀다는 것인가요?”
“타이탄 탑승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이라네. 흐음, 우리끼리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곤 하지. 일반적으로 인간의 몸이란 똥과 오줌이 마려울 때, 그중에서 원하는 것만 골라서 배설할 수 있지 않은가?”
“하하하, 재미있는 비유로군요. 점잖은 보로미로프 경께서 그런 비유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카일이 유쾌한듯이 웃음을 터뜨리자 미하일 역시 웃음소리를 높였다.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면 어떤 비유라도 가리지 않게 된다네. 또 그만한 설명도 없지 않은가?”
“확실히 이해는 빠르군요. 즉, 동시에 타이탄의 감각과 자신의 육체의 감각을 느끼고, 또 양쪽을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지. 그러니 오너는 타이탄을 조작하면서 동시에 오퍼레이터와 대화를 하며 귀를 긁거나 코를 파거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여하튼 이 미묘한 이중 감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말일세, 웬만큼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네. 그것은 타이탄과 오너의 동조력에 따라서 생기는 미세한 지연 현상 때문이지.”
“지연 현상이요?”
“그렇지.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오너가 생각한 대로 타이탄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말일세. 거기에는 미세한 시간 차가 존재하지. 그 때문에 훈련받은 기사마저도 가끔 혼동을 일으키곤 하네. 그러니 생각해 보게나.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마법사에게 이 이중 감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이겠나.”
“하지만 그것 역시 훈련으로 극복 가능한 것 아닙니까?”
카일이 묻자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네. 사실 그것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지.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이 엘레나트 코어에 있다네.”
미하일의 설명이 이어졌다. 모르는 개념이 나올 때마다 묻고 되묻기를 반복하여 꽤나 긴 시간 동안 설명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긴 설명이 끝난 후 카일이 잠시 곱씹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엘레나트 코어와 신경계, 그리고 구동계에 이르는 마나 제네레이터 시스템 전체가 근본적으로 기사의 마나 운용 방식을 따라 설계되었다는 것이로군요. 때문에 마나의 운용 방식이 완전히 다른 마법사가 타이탄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으로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기사였던 사람이 갑자기 마법사의 지식을 얻는다고 해서 마법을 쓸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요.”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이 잔을 들어 다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어쩌면 마법사를 위한 타이탄을 개발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보로미로프 경의 말대로라면 마법사의 몸에 맞는 타이탄을 만든다면 마법사 역시 타이탄을 기동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말대로 앞의 두 가지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 가능하지. 즉, 지연 현상의 극복과 타이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면 마법사가 타이탄을 조작하는 것까지는 가능하게 할 수 있네. 하지만 마지막이자 치명적인 문제가 있지. 그것 때문에 타이탄을 이용해 마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네.”
“그것이 무엇입니까?”
카일의 질문에 미하일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바로 영혼의 부재(不在)라네.”
둘 사이에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영혼의 부재라…… 설마 안 본 사이에 신앙에 빠지신 건 아니겠죠?”
“그렇게 들리는 것도 당연하지. 이것은 아직도 그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사안이니 말일세.”
미하일은 잠시 웃더니 설명이 충분치 않다 여겼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타이탄은 마도 공학의 정수일세. 즉, 타이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마도에 관련된 지식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쌓아야 한다는 뜻이지. 그럴 때 공학자들이 가장 큰 벽에 부딪치는 것이 바로 이 영혼의 실체일세. 영혼이란 과연 무엇일까?”
“신학과 과학의 해묵은 논쟁을 이어 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렇긴 하지만, 필요한 논쟁이라네. 왜냐하면 영혼의 유무가 바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이지.”
“그것은 익히 알려진 바 아닙니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적 수준을 영위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니까요.”
“그렇다면 높은 지적 능력이 영혼의 존재를 증거하는가?”
“그것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유의미한 연관성은 있습니다.”
“그렇지. 대체로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종족들의 경우 영혼의 실체가 자주 관찰되지.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해 보지. 영혼이 부재하는 지적 생명체는 존재하는가?”
미하일의 질문에 카일은 기억을 더듬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곧바로 떠오르는 존재들이 있었다.
“호문클로스가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 그들에겐 영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익히 알려진 매직 유저 아닙니까?”
“얼핏 보면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네. 일찍이 뛰어난 마법사들은 인공 생명체인 호문클로스들에게 마법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지. 그러나 하나같이 실패했다네. 그래서 결국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마법 회로, 혹자는 마법진이라 부르는 방식을 이용한 것이라네.”
“그렇군요. 마법진이라면 마나를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마법이 구현된다. 그것을 이용하면 설령 영혼이 부재한다 하더라도 매직 유저가 될 수 있다, 그런 논리로군요.”
카일의 말에 미하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호문클로스를 본 적 있나?”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책에서 스쳐 가듯 본 기억은 있군요.”
“그들의 몸에는 수많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존재한다네. 그것은 무생물인 호문클로스가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마법 회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네. 즉, 다시 말하면 호문클로스의 마법은 반복 사용 가능한 스크롤이라고 할 수 있지. 오로지 몸에 새겨져 있는 마법 회로의 마법만이 사용 가능하며, 능력을 개발하거나 더 높은 수준에 이르거나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지.”
미하일은 잠시 와인을 들어 목을 축이더니 말을 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언데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네. 마법사였다가 좀비로 살아난 자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생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하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로우 레벨의 언데드에 한한 이야기일세. 하이 레벨의 언데드들은 썩은 육체에 영혼을 불러들인 존재들이니, 얼마든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그렇다면 대체 이유가 뭡니까? 어째서 영혼이 매직 유저의 필수적인 요건이 되는 것이죠?”
카일은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카일 군, 내가 방금전에 한 말을 잊은 건가?”
미하일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어렸다.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지요, 어째서 그것이 필수적인 요건이 되는지를.”
“그렇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원인에 따른 결과, 즉 현상일 뿐이라네. 자연은 아직 모든 것을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 자,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았나?”
“가장 중요한 걸 빠뜨리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어째서 타이탄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겁니까?”
“이런, 깜빡했군그래. 늙으면 기억력이 나빠진다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타이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공 생명체이기 때문이지. 근육과 관절, 신경, 그리고 심장이 존재하며,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는 마나로 충당하네. 최소한의 생명체로서의 기능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넓은 의미로 또 하나의 호문클로스라 할 수 있네. 그 안의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과 타이탄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이미 개념적으로 다른 문제야.”
“타이탄에 마법 회로를 그려 넣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호문클로스처럼 말이죠.”
“안 된다네.”
“왜죠?”
“너무 크니까.”
“그건 의외의 난점이로군요. 하긴, 이 정도 크기의 몸체에 마법 회로를 그려 넣는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겠다 하는 생각은 듭니다만…….”
마법 회로와 마법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마법 회로는 동적인 생명체에, 마법진은 고정된 지역에 새겨진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마나의 밀도가 높으며 일정하게 흐르는 지역에는 그만큼 커다란 마법진을 새기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변 환경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생명체의 경우에는 그 정도의 커다란 마법 회로를 그려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몸 크기만큼이라도 그릴 수 있다면, 시술자는 대단한 실력을 지닌 마법사라며 칭송받을 정도니, 그 한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정이 그렇다 보니, 타이탄이라는 괴력의 강철 기사에게 그런 마법 회로는 없느니만 못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도 공학의 산물인 타이탄에 그런 쓸데없는 기능을 덧붙이느니 차라리 조금의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서라도 빼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마법 회로에 대한 미하일의 설명이 끝나자 카일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거군요. 인간이 타이탄을 조종하는 것뿐이지, 타이탄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니까 검을 휘두르고 뛰고 구를 수는 있어도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타이탄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거칠게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길고 긴 설명 끝에 다다른 결론은 어쩌면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결국은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즉, 타이탄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바보 같은 문장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걸까?’
쿠웅!
생각에 잠긴 카일의 앞에서 거대한 타이탄 한 기가 발을 구르며 움직였다. 그는 전장에서 레스터의 타이탄이 마법을 쓰는 장면을 두눈으로 목격했다.
붉은색의 타이탄이 거대한 검을 내려치는 순간, 레스터가 탄 타이탄이 반투명한 막을 형성하는 모습.
그것은 틀림없는 매직 실드의 일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