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뷰어

2화





“어떻게 해 줄까요?”

영진이 밭은 숨을 뱉으며 낮게 물었다.

“그냥, 만져 줬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미리 말하는데 난 오럴은 안 해 줘요.”

입으로 하는 건 취미가 없다. 누구에게도 해 준 적이 없었고, 이 남자에게도 예외는 없다.

“상관없어요.”

남자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대신 최선을 다해 만져 주고 키스해 줄게요.”

충동적인 하룻밤은 처음이라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적어도 영진이 아는 한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은 아니었다.

영진은 남자와 겹쳐진 몸을 꼼지락거리며 작게 움직였다. 그리고 손을 펼쳐 그의 가슴에 가져갔다. 남자의 가슴을 먼저 쓸어내리고 옆구리와 허벅지 사이를 은근하게 훑었다.

영진을 둥지처럼 감싸고 있던 남자가 옆으로 누워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온전히 자신을 맡겼다.

영진은 남자의 가슴에 입을 맞추고, 젖꼭지를 가볍게 깨물었다가 허벅지를 살며시 벌려 그 안쪽의 민감한 살에도 잇자국을 냈다. 강여준이 원하는 대로 천천히, 느리게.

여준이 낮게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남자가 내는 소리가 이렇게 섹시한 줄 몰랐다.

영진은 고양이처럼 몸을 낮춰 여준이 했던 것처럼 목덜미와 쇄골에 입을 맞추고,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와 눈을 맞추며 서혜부를 만지다 잔뜩 솟아오른 몸을 거머쥐었다.

한 손으로 다 쥐기에 버거웠다. 영진의 손이 작은 탓도 있지만, 이 남자가 너무 큰 탓이다. 영진은 핏줄이 불거진 여준의 몸을 만지다가, 다리 사이가 더욱 젖어 들고 있음을 느꼈다.

작은 손으로 부드럽게 끄트머리를 쓰다듬으니 여준의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여준의 가슴이 크게 움직이더니, 그가 곧 영진을 옆으로 감싸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대로 들어오는가 싶었는데, 팔을 뻗어 콘돔을 집어 들었다. 은색 포장을 찢어 자기 몸에 씌우는 동안에도 남자의 눈은 영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미치도록 외설스러운 느낌에 귓불이 빨갛게 물들었다.

“무슨 생각 합니까?”

“말해도 돼요?”

원래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성미다. 영진은 의뭉스럽게 되물었다.

“여준 씨가 수음하는 것 같았어요, 방금.”

여준이 눈을 질끈 감으며 미치겠네, 라고 속삭이는데 그 목소리마저 영진을 흥분하게 했다.

“힘들면 말해요.”

영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 다리가 벌어지고 그의 몸이 영진에게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에 호흡이 가빠졌다.

“숨 쉬어요.”

숨을 쉬라더니 오히려 숨을 못 쉬게 그가 깊숙이 입을 맞추었다.

또 박하 향이 난다. 부드럽게 얽히는 혀가 너무 뜨겁다.

몸을 깊게 집어넣은 여준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영진이 골반을 움직여 재촉했지만,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 뿐이었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큰 쾌감이 밀려들었다. 영진은 숨을 들이마시며 여준을 꽉 끌어안았다.

“잠깐만요, 영진 씨.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요.”

“혹시, 지루는 아니죠?”

영진이 걱정스럽게 묻자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너무 간지럽다.

“에이즈에, 성병에, 이제는 지룹니까? 또 궁금한 거 없나 생각해 봐요, 기다려 줄 테니까.”

강여준은 인내심이 있어 기다려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제는 영진이 한계에 부닥쳤다. 남자가 움직여 줬으면 좋겠다. 영진은 다시 허리를 움직여 그와 닿아 있는 면을 문질렀다. 갑작스러운 마찰에 남자가 크게 신음했다.

그리고 이내 허리를 비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길게 뺐다가, 다시 길게 들어왔다. 가볍게 문질렀다가 몸이 크게 울리도록 세게 치받았다. 천천히 움직이는가 싶더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부딪쳐 왔다. 영진의 밭은 숨소리 사이로 눅진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준이 영진의 몸을 일으켜 앉게 했다. 영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그저 남자가 하는 대로 따랐다. 앉은 자세로 영진은 여준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영진의 체중을 그대로 떠안은 여준이 아래서부터 쳐올렸다. 남자의 어깨, 등, 허벅지 근육이 물결치는 것처럼 움직였다. 음낭이 다리 사이에서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영진은 참지 못하고 여준의 어깨를 깨물었다. 점점 절정이 다가오자 그마저도 참기 힘들어 절로 입술이 벌어졌다. 여준이 몸을 치댈 때마다 목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진은 남자의 허리를 다리로 세차게 휘감았다. 아랫도리가 수축하는 느낌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폭발했다. 미끈하게 흘러내린 체액이 허벅지 안쪽까지 잔뜩 적시고 있었다.

“힘들어요?”

힘이 풀린 몸을 기대고 있다가 문득 남자가 아직 사정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영진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30분이 넘도록 헐떡이고 있으니, 힘이 들지 않을 리가 없다.

“조금만 참아요.”

“힘들면 말하라면서요.”

“그래서 잠깐 쉬었잖아요.”

여준은 그대로 영진을 눕히더니 몸을 끌어안았다. 일단 눕긴 했는데, 앉아서 할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영진의 체중이 절반 이상 그에게 실리고 있었다.

“어디 안 가니까 그냥 놓고 하면 안 돼요? 힘센 거 알겠어요, 이제.”

편하게 해 줄 요량으로 말했건만, 여준은 키스로 입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크게 허리를 움직이더니 숨이 막히도록 치고 들어왔다. 조금 전의 절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들이치는 그의 몸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듣기 흉한 소리를 지르게 될 것 같아 영진을 이를 악물었다.

“소리 내요, 참지 말고.”

아까는 참으라더니. 영진은 고개를 저었다.

“소리 내 줘요.”

고개를 숙인 여준이 영진의 귓바퀴를 깨물었다. 그리고 손을 내려 민감하게 솟은 돌기를 문질렀다. 결국 영진은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신음인지,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한참 만에야 여준이 눌린 신음을 뱉으며 몸을 늘어뜨렸다.

심장이 무섭게 쿵쾅거렸다. 가슴이 아니라 양쪽 귀에 심장이 붙어 있는 것 같다. 귀뿐만이 아니라, 팔다리 온몸 곳곳이 격한 뜀박질을 한 것처럼 두근거리고 울렁거렸다.

“나 지금 너무 걱정되는 거 알아요?”

영진이 숨을 고르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여준이 몸을 움찔하더니 영진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걱정스럽게 내려다본다.

“왜요, 어디 안 좋아요?”

비록 말투는 타고난 것처럼 무뚝뚝하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정했다.

“아뇨. 숨이 좀 가쁘긴 한데, 멀쩡해요. 그런데 또 하면 내일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그제야 여준의 얼굴이 풀어졌다. 영진이 벗어나려고 몸을 꿈틀거리자 아직도 안에 들어가 있는 그의 몸 역시 꿈틀하며 부피를 키웠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여준이 콘돔을 벗겨 내고는 곧 새 콘돔을 뜯었다.

“그냥 내가 손으로 해 주면 안 될까요?”

영진이 애원했지만 여준은 어느새 다시 영진의 몸을 깊이 파고들어 왔다.



* * *



결국 밤사이 삽입 섹스를 세 번이나 했고, 강여준은 네 번 사정을 했다. 그리고 영진은 몇 번인지 모를 만큼의 절정을 느꼈다. 마지막은 도저히 버틸 여력이 없어, 정말 손으로 해 줬다. 영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낮게 신음하던 강여준은 정말 섹시했다.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몸을 겨우 움직여 같이 샤워를 하고 잠들 때까지는 몰랐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쑤셨다. 욕조에서 한 시간 넘게 앉아 있는데, 남자가 노크를 했다. 영진이 까무러친 건 아닌지 그는 15분 간격으로 문을 두드렸고, 영진은 기다리라는 말을 15분 간격으로 했다.

근육통이 잦아들고 몸이 노곤해질 즈음 영진은 욕실에서 나왔다. 배스타월로 몸을 둘둘 감고 나오는데 맛있는 냄새가 났다.

“와, 고기 냄새.”

공기 중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돌았다. 영진은 코를 킁킁거리며 탁자 위에 앉았다. 룸서비스 트레이 위에 두툼하고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베이컨이 있었다.

영진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오렌지 주스를 한 번에 마시고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여준이 흥미롭게 지켜보거나 말거나 베이컨 한 줄을 둘둘 말아 입속에 쏙 집어넣었다.

“여준 씨도 드세요. 원래 아침 안 먹어요?”

“이따 11시에 약속이 있어요. 지금 먹고 나가면 배부를 것 같아서.”

11시, 브런치. 남자와의 약속은 아닐 것이다. 하룻밤 사랑에 질척이기 싫어서 영진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사촌 동생들하고 만납니다. 요한이하고 요한이 여동생. 강서현이라고 서울에서 카페 하는데, 놀러 왔어요.”

궁금하다고 한 적 없는데 여준이 먼저 말해 준다. 그것도 여동생 이름과 직업까지 알려 줘 가면서. 이러다가 소개라도 해 주려는 모양이라고 영진은 장난스럽게 생각했다.

“별일 없으면 같이 갈래요?”

베이컨 한 줄을 다시 말고 있던 영진이 고개를 들었다. 진심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가늠해 보는데, 남자의 눈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무슨 원나잇 상대를 가족한테 소개씩이나. 말도 안 돼요.”

입장을 바꾼대도, 영진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이 남자를 절대 소개할 마음이 없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하룻밤 상대를 가족에게 소개하지 않는다.

“어제 하루 가지고 만족해요? 나는 영진 씨 만나고 싶어요, 미국에 있는 동안은.”

미국에 있는 동안이라. 발령받아 여기 시카고에 온 지 1년 됐으니, 앞으로 1년 남짓 더 남았다. 적어도 남은 1년은 몸과 마음이 외롭지 않을 수 있으니 괜찮을까 싶다가, 문득 봉투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봉투 들고 나타날 사람 있어요?”

“이 돈 먹고 떨어져라, 뭐 이런 사람들 말입니까?”

기특하게 남자가 잘 알아들었다.

“네, 그런 사람들이요, 무식한 사람들. 내가 그런 사람들을 아주 경멸하거든요. 한 번만 더 그런 일 당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탁자고 의자고 죄다 엎어 버릴 거라고 굳게 다짐하고, 하늘에 맹세도 했어요. 진짜 무식한 게 뭔지 보여 줘야 사람을 우습게 안 봐요.”

이 남자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울화가 끓어올라 남자에게 화풀이를 했다.

여준이 무슨 일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화를 풀어 주려는 듯 빗질을 하지 않아 잔뜩 엉켜 있는 영진의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려 주고 있었다. 분명히 수건을 머리에 감고 나왔는데 미친 사람처럼 분통을 터트리는 동안 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나 보다.

“여기서는 내가 뭘 하든, 나 건드리는 사람 없어요.”

“그럼 됐어요. 나도 하룻밤으로는 좀 아쉬울 것 같아요.”

영진은 식기를 내려놓고 남자의 몸에 머리를 기댔다. 금요일까지 비가 징그럽게 내리더니 오랜만에 햇빛이 비친다.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 낸 여준이 영진의 이마에 촉, 하고 키스를 했다.

“나는 사실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1년이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6개월 미만, 그리고 정말 운이 안 좋으면 내일 당장?”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 말의 요지는 결국, 그들의 관계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거다. 오늘 이 남자의 사촌 동생들을 만나서 같이 밥을 먹어도, 내일 완전히 헤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관계. 사람인지라 조금 서운하기는 하겠지만, 상관없다.

“뭐, 어차피 하룻밤만 지내고 말 거였는데, 괜찮아요.”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강요한이랑 강서현이 어느 집 자식인지 그런 거 말해 줄 수 없어요.”

영진은 남자에게 더욱 기대며 남자의 손끝을 잡았다.

이 사람은 자기가 무척이나 차가운 사람인 줄 알고 있나 본데, 사실 엄청 좋은 사람이다. 괜한 기대로 사람을 들뜨게 하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희망과 넘치는 사랑을 한껏 퍼 준 후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아 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서지 않을 사람이다.

“우리 둘이 있을 때 말고는 모르는 사이, 그러니까 완벽한 타인인 겁니다.”

“알았다고요. 강여준 씨 나이도 안 물어볼게요. 됐어요?”

완벽한 타인. 호기롭게 알았다 대답했지만, 이 약속이 후에 얼마나 뼈저린 아픔을 겪게 할지, 이때는 알지 못했다.

“고마워요.”

강여준이 이마에 키스를 하며 고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