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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4번째 2018년 3월 10일







“아아아아악!”

죽었어!

죽었다!

죽은 거야!

B의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허리에서 목 끝까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전신이 서늘하게 식어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붉게 충혈된 두 눈동자가 침대 맞은편에 달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겁에 잔뜩 질린 한 쌍의 검은 눈동자가 B를 응시했다.

B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둥글게 말고 벌벌 떨었다. 배가 화끈거리며 통증을…… 통증…….

……통증은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얀 침대 시트를 손으로 강하게 붙잡고 B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산소가 모자란 사람처럼 계속 허우적거리며 칼에 찔렸던 배를 붙잡고 헐떡였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마비되어 있던 B의 이성을 되돌려 놓았다. 제정신이 돌아오자 머리가 묵직해졌다. 뇌가 좁은 머리 안에서 퉁퉁 부은 것처럼 아파 왔다.

침대 위에서 굴러떨어진 B는 힘겹게 욕실로 기어갔다. 매끈한 바닥에 피부가 쓸리자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바닥에 얼굴이 쓸려 뺨에 있던 상처가 벌어지면서 그 부위에서 적은 양의 피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B의 결벽증은 그 핏자국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몸이 무거운 와중에도 기어코 입고 있던 옷소매로 바닥의 피를 훔쳐 낸 B는 무릎을 세워서 거북이처럼 느릿하게 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욕실에 도착하자마자 새하얀 변기의 뚜껑을 떨리는 손으로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속이 너무 거북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토하지 않고는, 버틸 방도가 없었다.

“우에에엑! 끅! 우윽!”

4일 전, 아니 3월 9일에 먹었던 음식들이 그대로 변기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몇십 분 내내 하얗게 뜬 얼굴로 몸속에 있던 것을 게워 낸 B는 더 이상 목구멍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변기의 물을 내리고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면대에 기대어 섰다.

불을 켜지 않아서 어두컴컴한 욕실 안의 거울이 희미한 윤곽으로 B를 그려 냈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셔츠를 쇄골까지 들어 올린 B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군살이 없어 다른 남자들에 비해 약간 마른 느낌을 주는 몸이 드러났다. B의 하얀 배는 멀쩡했다. 몇 번을 다시 보았지만 아무런 상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울을 믿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여서 직접 눈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상처나 피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살았다. 살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곧 바로 절망했다.

3번째와 마찬가지로 4번째 3월 10일이 찾아왔음을 깨달았기에.



* * *



몇 시간 만에 20년은 늙어진 표정으로 B는 TV를 켰다. 무미건조한 손짓으로 리모컨을 누르다 뉴스 채널로 화면을 고정했다. 컴퓨터로도 확인했고, 배달된 신문으로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3월 10일이다.

어제 B가 열성적으로 써 놨던 텍스트 파일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컴퓨터를 이 잡듯이 뒤져 가며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게임도 마찬가지로, 얻었던 아이템과 찍어 뒀던 스크린샷은 없었다. 게임 캐릭터는 B가 3월 9일 마지막으로 로그아웃한 장소에 그대로 서 있었다.



―3월 10일 날씨입니다. 오늘 날씨는 대체로 맑겠습니다. 다만 기온이 낮아서…….



뉴스의 날씨를 보던 B는 고개를 들어서 하얀 숫자를 바라보았다. 3월 10일, 토요일, 8시 12분.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

“……하하하.”

맥 빠진 웃음소리를 낸 B는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3번째 3월 10일에 던졌던 화분이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분명히 그 남자의 옆에 힘껏 던졌었는데.

그 남자. 악마 같은 얼굴을 한 남자를 떠올리면서 B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았다. 그렇게 리얼하게 칼에 맞고 피를 분수처럼 쏟으며 쓰러졌는데.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흔적은 없다.

오로지 남은 건 그 당시의 기억과 그 촉감. 서늘하게 날이 선 하얀 식칼이 자신의 배를 가르고 나오는 기분이란 한마디로―

“씨발.”

손발이 덜덜 떨렸다. B는 공포심에 또다시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검은 옷의 남자가 저 문을 열고 칼을 손에 든 채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공포심은 점점 상상을 먹어 치우고 제 몸을 불려서 B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자 B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파 밑으로 내려와 안쪽 구석으로 기어갔다.

“어, 어쩌지……. 설마, 설마 오늘 또 그놈이 찾아와서…… 그 아이를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

1번째와 2번째, 3번째 전부 옆집에서 큰 소리가 났다. 그러니 이 사건은 ‘B가 개입하지 않아도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오늘도 분명히 그 큰 소리가 나겠지. 그리고 3번째 3월 10일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가 또다시 아이의 목을 조를 게 분명했다.

B는 더 이상 관여하기가 싫었다. 자신이 아무리 3월 10일을 되감기 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죽는 경험은 너무나 무섭다. 본디 보통 사람이라면 인생에 딱 한 번만 경험해야 할 일인데 3번째의 일로 이미 B는 죽음을 맛보고 말았다. 한 번으로 그쳤으니 망정이지 또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B는 분명 미쳐 버릴 것이다. 차라리 영원히 3월 10일을 살아가는 것을 택할 정도로 B는―

“나는…… 못 해.”

평범한 겁쟁이였다.



* * *



복도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방 안에서 B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저 창문을 열고 살인범이 지나가나, 안 지나가나 확인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어차피 창문에 철창이 단단히 붙어 있고, 벽도 있어서 일정 거리만 유지하면 총이라도 맞지 않는 이상 100% 안전했건만, B는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한 번 죽었던 경험이 그를 더더욱 집 안으로 몰고 있었다.

벌써 시간은 9시 30분이 넘어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10시쯤에는 그 살인범이 저 집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걸 떠올리자 빈속에 또다시 토기가 올라왔다. 다시 한번 내뱉는 것을 막기 위해 목 아래를 손으로 때리며 B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일단 안전을 위해 바깥을 살피고 싶지만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고민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조금씩 다가가다 보니 이제 두 발자국만 더 가면 복도와 마주한 창문이 눈앞이었다.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회색의 철봉이 흐릿하게 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후우…… 후읍…….”

B는 심호흡을 하고 단번에 창문 앞까지 걸어갔다. 창문의 틈새 사이로 흘러오는 차가운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긴장한 탓인지 발바닥 아래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마치 단단하게 언 얼음 위에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서 있는 것 같았다.

차가운 창틀에 덜덜 떨리는 하얀 손가락을 올린 B는 슬쩍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흐릿한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아직은 없나……?”

신중하게 살펴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은 괜찮다는 생각에 B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대로 살피려면 창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쥔 B가 거칠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긁어내렸다. 꼭 공포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결말이 정해져 있기라도 하지 B는 아니었다. 엔딩이 정해져 있지 않는 100% 실제 상황이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죽고, 살아남더라도 하루가 반복되는 이 미친 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우울한 표정으로 다시 일어선 B는 소심하게 3cm가량 창문을 열고 시선을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열린 창문 너머로 흘러온 찬 바람이 이마를 스치자 온몸에서 소름이 쫙 돋았다. 복도는 B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도 잠시, 갑자기 창문 너머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작게 들리더니 닫혀 있던 옆집의 문이 열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B는 비명을 지르며 창문의 바로 뒤에 있는 벽까지 빠르게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리는…지?”

“……아마…일 거…렇…….”

B의 소리를 들었는지 창문 밖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감이 있고, 놀란 상태라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를 들었을 때 한 명은 어제 그 남자아이로 추정되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찾아온 안도감에 아래로 주저앉은 B는 땀이 흥건한 이마를 손으로 닦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이 뛰는 감각이 머리로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살아 있었어.

하루가 반복되었기에, 살아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간신히 차게 식은 몸에 조금 사람다운 온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갑자기 귓가로 아이의 목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어요?”

방금 전 들렸던 소리보다 훨씬 가깝다.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에 B가 놀라서 움찔거리다 말고 그대로 자리에서 굳었다. 소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창문 너머로 앙증맞은 아이의 손이 올라왔다가 금방 아래로 내려갔다.

그 손이다.

어제 유리 조각이 박혀서 피를 흘리던 아이의 손이었다. 언제 B의 집 앞까지 온 건지 아이가 창문 너머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차마 창문으로 다가가지는 못하고 B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로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있…있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아! 정말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아빠! 봐 봐! 내가 그랬지? 옆집은 빈집이 아니잖아.”

“……박다윤. 그만하고 이리 와.”

아빠라는 말과 함께 이어지는 남자의 목소리.

아이를 다그치기 위함인지,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엄했다. 그런 남자의 목소리에 아이가 네, 하고 대답하는 틈을 타서 B는 슬금슬금 창문 아래로 기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이렇게 하면 창문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의사 전달은 목소리만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웅크리고 앉아 있는 B의 머리 위로, 다시 돌아왔는지 작은 손 그림자가 빠르게 생겼다가 사라졌다.

“역시 인사하고 갈래! 선생님이 이웃사촌한테는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했어.”

“……박다윤.”

“안에 아무것도 안 보여. 아저씨! 안에 있죠? 다윤이랑 인사해요! 네?”

덜컥 스물다섯 살에 아저씨가 된 B는 굉장히 억울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지는 않았다.

다윤이라.

아무래도 그게 어제 그 아이의 이름인 모양이다.

이름을 인식함과 동시에 어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또다시 찔렸던 배가 서늘해지면서 고통을 되감기 한 탓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