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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7화)
第三章 시련은 안개처럼(3)


등 뒤에 들리는 마을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 효로의 가슴에는 눈물이 흘렀다.
“괴물이다.”
“마을을 지켜라!”
“공격!”
쉭―
괴상하게 변한 모습에 아이들이 따라오며 흙덩이를 던졌다.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았기에 걸어가는 내내 아이들의 흙덩이는 그를 괴롭혔다.
퍽―
피할 기운조차 없는 그의 얼굴을 스친 흙덩이가 생채기를 남겼다. 한 줄기 붉은 피가 그의 턱 선을 따라 흐르자 기어이 피를 본 아이들이 그제야 만족했는지 하나둘 멀어졌다.

초관은 안으로 들어서는 효로의 처참한 몰골에 눈이 커졌다.
“무슨 일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몸으로는 뭘 할 수 있겠느냐? 이리 앉아 차를 마시고 좀 쉬어라.”
자신을 배려해 주는 초관의 말에 참았던 억울함이 일시에 솟구쳐 올라 효로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지만, 꾹 참으며 그의 앞에 앉아 차를 들어 올렸다.
그윽한 다향(茶香)에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감미로운 맛에 긴장이 풀렸는지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졌다. 통제를 잃은 그의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쨍그랑―
초관은 효로의 상세를 잠시 살펴보고 침음을 흘렸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많이 망가졌군. 차질을 빗지는 않겠지?’
효로의 몸을 번쩍 들어 침상으로 옮기고 맥문을 잡은 채 대법의 진행을 관찰하던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약재가 조금 약했나?’
생각보다 쌓인 약 기운이 적었다. 이런 정도라면 약 기운을 모으는 데 너무 오래 걸릴 터였다.
‘양을 더 늘려야겠군.’

***

초관은 날이 갈수록 내심 당황했다. 매일 투약하는 양을 늘리는데도 효로의 몸에 잔류하는 약효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효로의 몸에서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매번 진맥할 때마다 자신이 대법을 잘못 시행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탓에 계속 투약하는 양이 급격히 늘어 갔다.
단소운에게 매일 저녁 매질당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숨어서 지켜본 바로는 그의 매질에는 내공이 실리지 않았기에 대법에 영향을 줄 수 없을 거라 관여하지 않았다.
또한, 대법을 시행할 때 효로의 몸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반탄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항을 자신의 내공으로 눌러 두기는 했지만, 내공도 없는 효로의 몸에서 느껴지는 반탄지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상태로는 대법의 결과를 얻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에 하루빨리 결과를 얻어야 하는 그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조급해졌다.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다음 단계로 바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그놈의 기맥이 견뎌 준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실패하면 곤란한데.’

효로는 단가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어김없이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법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호흡법이 없었다면, 진즉에 자리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을 터였다. 아니, 이미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호흡법을 하고 나면 그래도 몸을 움직일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흐릿한 정신을 조금이나마 추스를 수 있었다. 이제는 단소운의 모진 매질에도 익숙해졌는지 조금 일찍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고, 깊어져 이제 숨을 그쳤는지 아니면 숨을 쉬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고요해졌다. 호흡에 따라 그의 정신도 점점 깊이 침잠했다.
몽롱하던 정신이 점점 맑아지자 효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반추했다. 왜 자신이 이렇게 힘든 고초를 겪어야 하는가?
의식이 지금처럼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듯 몽롱해진 것의 시작은 초관의 차를 마시고 기절한 때부터였다. 분명히 차와 관련이 있었다. 매번 차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지 않는가. 아무리 단소운의 매질로 몸이 약해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보통 차라면 마실 때마다 기절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초관이 꿍꿍이가 없다면, 매번 기절하는 자신에게 계속 차를 권할 리가 없었다. 결국, 초관이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해 단가장으로 불러들였고, 자신에게 계속 차를 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매질하는 단소운이 관련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최소한 초관은 목적이 있어 자신에게 접근했다.
생각을 정리한 효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나름대로 대책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순식간에 그를 휩싼 통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헉.”
여태 호흡법을 계속 할 때는 고통이 줄어들기만 했지 심해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온몸이 불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뜨거웠고 상상하지 못했던 격통이 온몸을 거칠게 질주했다.
지옥의 고통이 이럴까.
통증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효로의 악다문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전신 혈맥이 굵은 지렁이같이 툭툭 불거졌다. 호흡법에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들숨과 날숨조차 이을 수 없었다. 찡그려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꼭 감은 눈에서 눈물까지 흘렀다.
급기야 자세가 흐트러졌고, 고통을 참지 못한 효로가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비틀었다. 몸을 날카로운 수십 개의 창으로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태 한 번도 지우지 않았던 효로의 미소도 자취를 감추었고, 급기야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지르지 않았던 비명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본채에서 잠들었던 홍 노파가 대경실색하며 뛰어나왔지만, 효로의 비명이 너무 모골 송연했기에 그의 방문을 열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장원 부근에 사는 이웃들도 모두 놀라 밖으로 나와 웅성거렸다.
“무, 무슨 일인가?”
“글쎄.”
“홍 노파의 장원에서 나는 소리인 듯한데?”
“홍 노파의 장원이라면 효로 놈의 목소리겠는데.”
장원에는 어느새 주인이 된 홍 노파를 제외하면 효로밖에 없었다.
“젠장, 미치려면 곱게 미치지. 퉤.”
“별 미친놈 다 보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효로를 욕하며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계속 들려오는 어둠을 찢어발기는 비명에 잠을 설쳐야만 했다.
“으아악!”

어스름 새벽이 되어서야 효로는 기진맥진한 채 잠깐 잠이 들었다가 홍 노파의 거친 욕설로 정신을 차렸다.
“야, 이 미친놈아. 아직도 처자빠져 자냐? 당장 마당 쓸고 장작을 패지 않으면 아침은 국물도 없는 줄 알아.”
그녀는 혹여 효로가 죽었을까 봐 무서워 방문을 열어 볼 용기도 없었기에 밖에서 고래고래 고함만 질렀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는지 방문이 스르르 열리고, 지독한 부기(浮氣)로 이목을 구별할 수 없는 얼굴로 비칠거리며 걸어 나왔다.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오늘은 전과 달리 왠지 섬뜩한 느낌에 홍 노파는 무어라 욕을 중얼거리며 슬그머니 주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장작을 패고 세안하려던 효로는 물에 비친 모습에 흠칫 놀랐다. 적안(赤眼). 흰자위는 보이지 않고 붉어도 너무 붉은 적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며 다시 확인했지만, 틀림없는 자신의 눈이었다.
‘이, 이게…….’
다행이라 할까. 퉁퉁 부은 눈두덩이 탓에 눈동자가 많이 보이지 않아 조심만 하면 다른 이에게 적안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턱없이 부족한 조반을 마친 효로는 축 늘어진 걸음으로 단가장으로 향했다. 초관이 자신에게 딴생각을 가진 것을 짐작하지만, 단가장으로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혹여 단소소를 볼 수 있을지도 몰랐고, 할아버지를 기다려야 하는 자신으로서는 홍 노파가 길길이 날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잠을 설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더 따가웠고, 그에게 날아오는 흙덩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를 괴롭혔다. 누구도 아이들의 행동을 만류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머리를 보호하는 효로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초관은 들어서는 효로의 눈이 붉게 변한 것을 보고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대법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초관은 여전한 표정으로 효로에게 차를 권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효로가 차를 마시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탁자에 몸을 눕혔다.
쨍그랑―
풍부한 경험을 가진 초관의 예리한 눈이 살짝 이채를 발했다.
‘영 맹탕은 아니군.’
그는 효로가 쓰러지며 바닥으로 머금었던 찻물을 슬며시 뱉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구나.”
평소처럼 효로에게 다가간 초관이 그를 안아 들어 침상으로 옮겼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고, 효로의 꾀가 통한 듯 보였다. 그러나 효로는 의식이 전과 다름없이 점차 안개 속으로 잠겨 들기 시작하자 당황하였다.
‘차가 아닌가……?’
의혹은 이어지지 못했고, 의식이 아스라이 멀어졌다.
효로의 상태에서 눈을 떼지 않던 초관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잔머리를 굴리다니. 흐흐흐.”
침상에 엉덩이를 걸친 초관이 효로의 완맥을 진맥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한꺼번에 촉발시키려 모으는 약효의 양이 현저히 줄어든 채 효로의 기맥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 현상이 마치 운기를 하는 내공이 흐르는 듯했지만, 단전에 축기하는 것과는 그 움직임이 여실히 달랐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놀라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투약된 양만으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약성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강한 약 기운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맥을 따라 흐르는 약한 기운만이 그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음. 아무리 약화시켰다고 해도 극독(劇毒)인데. 극독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초관은 처음 자신의 계획대로 기맥을 단련시키면서 조금씩 늘리려던 생각을 버렸다. 주입된 독이 축적되지 않는데다 효로의 기맥이 생각보다 더 튼실했다. 그리고 여태 주입했던 약 기운을 해독한 것을 보면 더 강한 독도 충분히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하는 수 없지. 죽으면 놈의 팔자지.’
침상 아래 깊숙한 곳에서 목합(木盒)을 꺼낸 초관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목합 안에는 다양한 색의 자기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침구(鍼灸)가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눈을 빛내며 찬찬히 살핀 초관이 조심스럽게 자색 병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조금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만…….”
효로의 입을 벌리고 자색 병을 살짝 기울이자 검붉은 액체가 조금 흘러 들어갔다. 다시 병을 바로 세운 초관이 뚜껑을 조심스럽게 닫아 목합에 담았다.
조금 많이 투입한 것 같은 생각에 초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칠보단장산(七步斷腸酸).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내장을 녹여 버리는 극독(劇毒). 초관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효로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의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효로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전신 혈맥이 툭툭 불거졌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더니 피부가 까맣게 변해 갔다.
의식이 없다는 것이 효로에게는 큰 다행이었다. 의식이 있었다면, 장(腸)이 녹는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천하의 극독이라는 칠보단장산의 악명이 무색하게 효로는 무려 두 시진을 꿈틀대며 저항하더니 결국 이겨 냈다.
효로의 몸이 움직임을 멈추고 호흡이 차분해지자 초관은 그의 완맥을 잡고 자신의 내기를 밀어 넣어 내부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효로의 내장은 멀쩡했다. 각 장부의 경련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미약했고 점점 잦아드는 중이었다. 성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초관이라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내공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 칠보단장산의 독성을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동안 투입한 독으로 말미암아 내성(耐性)이 생겼으리라 생각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투입된 독기 일부만 정상적인 독효를 발휘해 장부를 공격하고 대부분의 독성은 효로의 기맥(氣脈)으로 빨려든 모양이었다. 지금 효로의 기맥에서 거칠게 치닫는 독기의 움직임이 그 가설을 증명했다.
초관은 계속 내기를 흘려 넣으며 효로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기맥을 타고 흐르는 기운을 살피던 초관은 점점 경악에 빠져들었다. 처음 완맥을 잡았을 때 느껴진 그 많던 칠보단장산의 독성이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몸에 투입된 독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기맥으로 흡수된 현상도 믿기 어려운 기사(奇事)인데 그 독성들이 또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기맥의 끝이 외부로 연결되어 독성을 배출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