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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8화)
第三章 시련은 안개처럼(4)


점차 시간이 흐르자 기맥을 흐르는 독성의 세력이 줄어들었고, 그 거친 움직임이 잔잔해졌다. 그때까지 계속 내기를 흘리며 관찰하던 초관은 침음을 흘리며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당장 다른 독을 투입해 다시 관찰하고 싶었지만, 효로의 몸이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귀한 실험체를 잃고 싶지 않았던 초관은 아쉬운 표정으로 목갑(木匣)을 침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내일 다시 시도해야겠군.”



第四章 시련은 운명으로(1)


핼쑥하게 야윈 단소소는 아비의 노여움이 이토록 길게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저 조금만 시간이 흘러 노여움이 가라앉으면 다시 효로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벌써 달포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떨어져 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를 향한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잘 지내는 거니? 나는 이리 아픈데 너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니? 꿈에서라도 한 번쯤 네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너무 보고 싶었다. 눈을 감았을 때나 뜨고 있을 때나 효로의 싱그러운 미소가 선했고,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를 떠올릴 때 외에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마치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오라비가 매일 찾아와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지만, 그녀의 묵묵부답만을 답답하게 지켜보다 되돌아갔다. 그녀도 아비나 오라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효로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의 가슴을 온통 차지한 탓에 그들의 사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창가에 몸을 기댄 단소소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네 얼굴이 더 잘 보여, 효로야.’
만나고 싶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그의 미소를 보고 싶고, 그의 얼굴을 만지고 싶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눈 감고 바람을 느끼고 싶다. 손잡고 너른 들판을 달리며 깔깔대며 큰 소리로 웃고 싶다. 예전처럼…….
효로와 함께했던 즐거운 순간을 회상하던 그녀의 감은 눈에서 맑은 눈물방울이 또르르 구르더니 야윈 뺨을 축축하게 적셨다. 슬픈 표정도 소리도 없이 끝없이 흐르는 눈물은 그녀의 눈에서 뺨으로, 뺨에서 턱으로, 턱에서 방울져 그녀의 가슴을 처연하게 적셨다.
‘효로야, 어쩌면 좋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니?’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이 시린 그리움을 안고 주변으로 잔잔하게 퍼져 갔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그리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더 깊은 슬픔으로 밀어 넣었다.

***

의식을 되찾은 효로는 몸을 일으키려다 신음과 동시에 다시 몸을 눕혔다.
“큭.”
보통 기절했다가 깨어나면 통증이 있더라도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은 머리가 흔들리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임에도 마치 전신을 날카로운 칼로 저미는 듯한 격통에 꼼짝할 수 없었다.
크게 호흡을 들이켜 통증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효로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 통증은 전신 곳곳을 누비며 그를 괴롭혔다.
초관이 다가오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소장주가 네게 몹쓸 짓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구나. 내가 그에게 그만두라 말해 주랴?”
효로가 힘들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알았다. 아직 해가 남았으니 좀 더 누워 있어라.”
초관의 부드러운 음성에 효로는 울컥하는 마음에 눈을 감았다. 여전히 고통이 느껴졌지만, 정도가 점점 약해지는 듯하자 효로는 지금 처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초관이 주는 차를 삼키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의식을 잃는다는 것은 차는 이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자신에게 이토록 잘 대해 주는 초관을 의심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이 이렇게 계속 의식을 잃는 것일까. 단소운의 모진 매질이 원인의 일부는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음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효로의 모습을 보던 초관은 또다시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아침에 보였던 적안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적안이 나타났기에 자신의 대법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통의 눈으로 돌아온 것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초관은 효로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펼쳤던 서책을 덮으며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더 쉬지 그러느냐?”
“아닙니다. 많이 쉬었습니다. 매일 폐만 끼쳐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 건강을 어서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게 미안할 필요는 없다.”
초관의 따뜻한 말에 효로는 근육과 뼈가 지르는 비명을 참으며 힘겹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일순 초관의 눈에 약간의 따스함이 떠올랐지만, 금세 지워졌다.
인사를 한 효로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섰다. 이제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었다.
단소운이 매일 효로에게 모질게 매질하는 것을 단가장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기에 그 시각이 되면 모두 자리를 피했다.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단소소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효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효로는 자신을 부르는 차가운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서서히 몸을 돌려 목검을 든 단소운을 향한 효로가 허리를 숙였다.
“소장주님.”
차가운 시선으로 효로를 바라보던 단소운이 입을 열었다.
“네놈은 내가 원하는 것을 알 것이다. 이제 그만하는 것이 어떠냐?”
단소운이 원하는 것이라면 단 한 가지. 단소소를 포기하겠다는 약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이제 겨우 지학(志學)을 넘은 그였지만, 연모의 감정은 그를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게 하였기에 이미 그녀는 효로에게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독한 고난을 겪을수록 소중함이 더해만 가는 그녀를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효로는 잠시 침묵하며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단단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누님은 제 호흡이고 심장입니다. 제게 숨을 멈추고 심장을 멈추라고 하시는군요.”
효로의 대답에 단소운의 얼굴이 흉신악살로 변했다. 누이의 마음을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 두려 했는데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는 효로의 대답에 단소운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 벌레 같은 놈이.”
단소운의 신형이 번개같이 다가오더니 목검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슈욱―
퍽―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난 단소운의 첫 매질에 내공이 실렸다. 효로는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독한 통증이 어깨로부터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윽.”
맞는 순간 낮은 신음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변했지만, 그 가운데 단소소의 얼굴이 떠올랐던 효로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효로의 미소는 단소운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맞으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미소. 그 미소가 자신을 능멸하는 걸로 머리 속에 새겨져 단소운은 이 끝나지 않는 대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퍽― 빡― 퍽―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쌌지만, 교묘하게 파고드는 단소운의 목검에 효로의 몸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이미 온몸에 그득한 통증과 현기증으로 피할 수도 피하려는 생각도 없는 효로의 몸이 목검의 움직임에 따라 들썩이며 꿈틀거렸다. 마치 벌레처럼…….
퍽― 퍽―
때리는 단소운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꿈틀거리는 효로가 그의 눈에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가. 점차 그의 목검에 실리는 내공이 늘어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높아졌다.
붕― 붕― 붕―
퍽― 퍽― 퍽―
결국 효로가 의식을 잃었는지 꿈틀거림조차 없어졌다. 그제야 매질을 멈춘 단소운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감히 네놈이…….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퉤.”
자각치 못하는 대결의 끝을 또다시 다음 날로 미루며 미동도 없는 효로의 몸에 침을 뱉은 단소운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단소운의 명을 받았는지 장정 둘이 와 효로의 몸을 들어 단가장 밖으로 내다 버렸다.
쿵.
거칠게 던져진 효로의 몸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몇 차례 구르더니 던져진 걸레처럼 길가 숲 속에 아무렇게나 구겨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겨진 효로의 몸에서 간헐적인 경련이 일어났다. 의식이 없는 것이 분명한데 경련은 한참을 이어졌다. 그러나 그 모습은 휘영청 뜬 달만 안쓰럽게 지켜볼 뿐 아무도 발견한 이가 없었다.
효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동녘이 희끄무레해진 시각이었다.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던 효로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큭. 으.”
떨어지지 않으려는 걸음을 옮기는 효로는 그다지 멀지 않은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이 천 리나 되는 듯 느껴졌다. 비칠거리는 그의 신형은 긴 그림자를 남기고 오래 이어지며 비틀거렸다.
간신히 자신의 방에 도착한 효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에 전력을 기울였다. 호흡법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최근에 여실히 깨달은 탓이었다.
그의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길이 이렇게 험로였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포기하기 싫었다. 어느 틈에 그녀는 그의 생명으로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 그의 깜깜한 뇌리에 떠오른 단소소의 웃는 얼굴이 점점 또렷해졌다.
‘누님.’

***

“무, 무어라 했느냐?”
단소소의 음성이 떨렸다.
“소장주님께서 효로에게 매일 매질을…….”
시비가 쭈뼛거리며 대답하자 단소소의 신형이 휘청 기울었다.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구나.’
다리에 힘이 풀려 지탱할 수 없었던 단소소가 기어이 침상에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파리하게 야윈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깊어지는 슬픔에 단소소의 소낙비 같은 눈물과 체읍 소리는 점점 커졌다.
“끅. 끅.”
가늘게 떨리는 어깨.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애절함에 시비는 가벼운 자신의 입을 원망하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렸다.
‘이대로 울고만 있을 수는 없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단소소의 울음이 잦아들더니 이윽고 입술을 꼭 깨문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야윈 교구를 일으켰다.
“지금 오라버니는 어디 계시냐? 당장 찾아 봬야겠다.”
그녀의 말에 시비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작게 우물거렸다.
“아마 연무장에 계실지도…….”
단소소가 굳게 닫혔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마주한 밝은 햇살이 눈부셨는지 아미가 잠시 찌푸려졌지만, 이내 걸음을 옮긴 그녀가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서 수련하다가 효로의 자신을 놀리는 듯한 미소가 떠오른 단소운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팔다리가 부러질 모진 매질에도 효로의 미소가 지워지지 않자 때리면서도 그 모멸감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젠 누이동생을 위한 매질인지 자신의 모멸감을 지우려는 매질인지 구분조차 잘 되지 않았다.
“감히, 벌레만도 못한 놈이…….”
붕―
거칠게 목검을 휘두른 단소운은 서서히 눈에 살기를 피웠다.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마뜩찮을 상황에서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버티는 효로를 당장 죽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슬그머니 피어오른 오기가 기어이 효로의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원하였다.
‘그래. 네놈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다시금 각오를 되새기던 단소운은 오랜만에 밖으로 걸음 한 단소소의 모습에 반색하며 수련을 멈추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 이제 마음을 정리한 것이냐?”
단소소는 표독한 시선으로 오라버니를 노려보았다. 어찌 그에게 매질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자신이 연모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 모질게 대한다는 말인가. 너무 원망스러운 마음에 그녀의 눈은 파랗게 독기가 피어올랐다.
“오라버니, 효로에게 매질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얼음보다 차가운 누이동생의 음성에 단소운은 눈썹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