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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9화)
第四章 시련은 운명으로(2)


“무슨 소리를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매질을 한 적이 없다는 건가요?”
뒤에서 쭈뼛거리는 시비의 모습이 들어오자 단소운은 누이동생이 이미 모두 알고 왔다는 생각에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효로의 비웃는 듯한 미소가 떠오르자 슬그머니 노기가 치밀었다. 치미는 분을 겨우 누르며 단소운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그놈에게 정신 차리라고 가르침을 준 것은 사실이다. 너도 생각해 보아라. 그 아이와 네가 진정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그놈과 너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다. 그 벌레 같은 놈은 어서 잊어버리고, 아버님과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멍청한 짓을 그만해라.”
“오라버니! 어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에게 매질을 하실 수 있어요? 차라리 절 때리세요. 가슴이 아프지도 않으세요? 미워요. 미워 죽겠어요!”
그녀는 말이 빠르게 이어지다 급기야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누이동생의 격렬한 반응에 단소운은 당황했다. 그녀가 효로를 마음에 담고 있다는 것이야 알았지만, 그를 위해 자신에게 이렇게 목소리를 높일 줄이야.
여태 보아 온 누이동생의 모습과 너무 다른 탓에 잠시 대꾸하지 못하던 단소운은 눌러 둔 노기를 거칠게 터뜨렸다.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놈이 대체 무엇이기에 나와 아버님의 가슴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 거냐? 그놈이 무슨 짓을 했기에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 나는 네 오라비다. 내가 내 동생이 잘못되기를 바라겠느냐? 나를 왜 이리도 아프게 하느냐? 네가 잘되기를 바라는 내가 잘못이란 말이냐?”
울부짖는 듯한 오라비의 말에 단소소은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의 진정이 절절하게 다가왔지만, 효로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녀의 야윈 뺨으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아파요. 나도 울고 있어요. 하지만, 내 마음은 그에게 다 줘 버리고, 남은 것이 없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러니 오라버니, 도와주세요. 그를 사랑하게 도와주세요. 제가 행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는 그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요. 제발, 이렇게 빌게요. 그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오라버니, 제발…….”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바닥에 털썩 무릎 꿇은 단소소가 눈물을 쏟으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애원했다. 그러나 단소운은 그녀의 모습에 더 분노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그놈이 무엇이기에, 그놈이 동생에게 어떤 짓을 했기에 이토록 아파하고, 애원해야 하는가. 어디에 내놔도, 누구와 비견해도 아깝기만 한 동생이 왜 흙먼지 가득한 땅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가슴속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거칠게 머리로 솟아오르며 단소운의 얼굴을 붉게 달구었다.
‘내 절대 네놈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내 동생의 눈물만큼 네놈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하리라. 내 네놈을 기필코 죽이고야 말리라. 이놈!’
무릎을 꿇고 숨죽인 오열을 하는 단소소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 없이 절규하는 단소운의 옷자락을 순탄하지 못한 앞날을 일러 주기라도 하듯 차가운 겨울바람이 거칠게 펄럭였다.

***

“놈의 행적이 이리로 향한 것이 분명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던 중년인의 입에서 굵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무추포단(正武追捕團) 부단주 북풍냉검(北風冷劍) 종낙현(鍾洛鉉). 단 한 번도 주어진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고, 냉혹한 손속에 사파인들이 그의 이름만 듣고도 몸을 움츠린다고 알려진 냉혈한이었다.
“분명합니다. 계림(桂林)에서 잠시 몸을 감추었던 놈의 행적이 이곳으로 이어졌습니다.”
은림신접(隱林神蝶) 위진표(委振標).
정무맹에서 가장 뛰어난 추적술을 가졌다는 무인. 천하에 자신의 추적을 피할 이가 없다고 공공연히 자랑하는 근착수(?捉手)였다.
“자네 말이라면 틀림없겠지.”
정무맹은 천하의 공분을 일으킨 악인을 추포하기 위해 정무추포단을 만들었고, 근착수는 공적을 추적하는 전문가였다. 근착수 중에 가장 뛰어난 은림신접의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수신호로 조장을 불러 모은 북풍냉검이 입을 열었다.
“일조는 동쪽, 이조는 서쪽, 삼조는 남쪽, 사조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각 조는 주변의 마을을 샅샅이 뒤져 놈의 흔적을 찾도록. 근착수의 말에 따르면 그놈은 변장의 명수라 하니 신중하게 대응하도록. 알았나?”
“존명.”
그의 명에 따라 각 조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멀어지는 수하들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북풍냉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위 근착수, 우리도 출발하세.”
은림신접이 포권을 취하고는 방향을 살피더니 몸을 날렸다. 그 뒤로 북풍냉검이 수신호로 자신을 따르라 지시하며 몸을 날리자 사조장 극진도(戟震刀) 홍황영(洪煌榮)과 조원들의 신형이 그의 뒤를 따랐다.

***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일상에 효로의 얼굴은 항상 퉁퉁 부은 채 부기가 가라앉을 날이 없었고, 뚜렷하지 않은 정신과 피폐해진 심신은 걸음조차 똑바로 옮길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개에 갇힌 듯 몽롱한 정신은 맑아지지 않았고, 움직임은 둔했고, 걸음은 흔들렸다.
흐릿한 정신과 엄습하는 고통은 종종 호흡법조차 수련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조차 지워 버렸다. 그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단소소의 얼굴뿐이었다. 단 하루도 단가장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이 멈추어지지 않은 것은 단소소를 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리라.
오늘도 부기로 이상해진 얼굴과 야위고 파리해진 몸으로 비칠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효로는 늘 그렇듯 그의 뒤를 따르며 재미 삼아 흙덩이를 던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에 땅만 보고 걷던 효로가 고개를 들자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낯선 인물들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지?’

냉혹하기로 이름난 북풍냉검조차 효로의 처참한 몰골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갓 지학을 넘긴 듯 보이는 아이의 퉁퉁 부은 얼굴에서 보이는 깊이 숨겨진 멍 자국은 하루 이틀의 매질로 생길 리 없는 흔적.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모질게 대한 것일까?’
북풍냉검은 자신도 모르게 평소 남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던 관례를 깨뜨렸다.
“이름이 무엇이냐?”
흐릿한 정신에도 효로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약간 쉰 듯한, 그러나 강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효로라고 합니다.”
입술이 부은 탓에 말이 조금 또렷하지 않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좋은 이름이구나. 그런데 몸이 많이 좋지 않은 듯한데. 괜찮으냐?”
“네. 괜찮습니다.”
북풍냉검은 겨우 두 마디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효로의 심성을 느낄 수 있었고, 아이를 이렇게 만든 이에게 분노를 느꼈다. 도대체 아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 꼴로 만들었다는 말인가.
“도대체 무슨 연유로 네 몸이 그리된 것이냐?”
다소 온화한 음성으로 북풍냉검이 묻자 그의 뒤에 늘어섰던 사조와 은림신접은 호기심을 안고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아이의 묵묵부답이었다.
북풍냉검은 아이의 입에서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질문을 바꾸었다.
“네가 대답하기 싫다면 좋다. 혹시 근래에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온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잠시 생각하던 효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기억 속에는 근래에 새로 마을에 온 인물은 떠오르지 않았다. 초관이 근래에 나타난 인물이지만, 효로에게는 아주 익숙한 인물이었기에 마치 오래도록 함께한 듯하여 새로운 얼굴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다.
북풍냉검은 고개를 끄덕이고 신형을 돌렸다. 잠시 연민을 느껴 소년을 도우려 했지만, 그는 본래 냉철한 무인이었다. 소년이 자신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데 굳이 애써 도울 필요는 없었다.
그에 반해 은림신접은 자신의 직감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비록 직접 소년과 말을 섞지는 않았지만, 소년의 몸에서 풍기는 묘한 기운이 그의 직감을 강하게 자극했다.
‘뭐지?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은데 묘한 이 기운은?’
묘하게 몸을 떨리게 하는 기운. 남 못지않은 경륜을 쌓았다 자부하는 그로서도 쉬이 판단할 수 없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저 흘려버리기에는 찜찜했다. 몸을 돌려 북풍냉검의 뒤를 따르면서도 그의 생각은 이어졌다.
‘알아봐야겠군.’

무인들이 멀어지자 효로는 다시 단가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인들에게 느껴진 기운이 단소운의 매질에서 느꼈던 기운과 비슷했기에 그들을 쉽게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소장주도 무공이란 것을 익힌 걸까?’
소장주의 매질이 무공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효로는 절로 무공에 관심이 갔다. 불현듯 자신이 무공이란 것을 익히면 이 힘든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금방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떨쳐 버렸다.
마을에서 무공을 익힌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은 소장주가 유일했다. 소장주가 익힌 것을 자신처럼 비천한 놈이 어찌 배울 수 있겠는가. 갖지 못할 것을 꿈꾸는 대상은 단소소 하나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멀리 보이는 단가장에 시선을 둔 효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볼 수 있을까?
‘소소 누님, 잘 계시는 거지요? 저는 잘 있으니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

효로와 헤어져 객잔을 찾아 걸음을 옮기던 북풍냉검은 아까 몸을 돌리며 느낀 기운을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히 내공은 아니었는데 소년의 몸에서 기묘한 기운을 느꼈었다. 그 탓에 소년을 도울 생각을 거두었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무슨 기운일까?’
객잔을 정하자마자 은림신접이 그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부단주님, 혹시 아까 그 소년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북풍냉검은 금방까지 생각하던 소년에 대해 물어오자 되물었다.
“무슨 말인가?”
은림신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분명히 소년의 몸에서 묘한 기운을 느꼈는데 그 정체가 모호합니다. 내공도 아닌 것이…….”
은림신접이 말을 줄이자 북풍냉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네. 예사롭지는 않았지.”
북풍냉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니 자신의 직감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리라.
“허락하시면 제가 그 소년에 대해 좀 알아보고 싶습니다.”
북풍냉검이 순순히 승낙하였다.
“그렇게 하게. 나도 의혹을 남겨 두긴 싫으니.”
“알았습니다.”
은림신접이 포권을 취한 후 바쁘게 밖으로 신형을 옮겨 멀어졌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북풍냉검은 수하들이 기다리는 탁자로 다가가 상석에 자리했다.
‘그나저나 놈은 어디에 몸을 숨겼을까?’

***

또다시 의식을 잃고 누운 효로의 몸을 살피던 초관은 손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서며 건넨 마을에 무인들이 나타났다는 효로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정무맹의 정무추포단이 떠올랐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로 실패한 실험체의 사체가 저들에게 발각되어 자신의 행각(行脚)이 밝혀졌고, 저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정무맹에서 자신을 공적으로 선포하고 정무추포단을 구성해 자신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뒤를 쫓는 자들을 지휘하는 북풍냉검은 가장 조심해야 할 인물이었다. 그의 독문무공인 풍비상박검(風裨霜雹劍)은 표홀하고 날카로운 한기(寒氣)를 품은 쾌검으로 무림의 일절로 통하였다. 그의 검을 마주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날카로운 한기와 빠른 초식에 치를 떨며 재대결을 극구 피할 정도였다.
뛰어난 무공을 가진 그가 왜 외단인 정무추포단에 있고 굳이 외곽으로만 나도는 부단주 직위를 고집하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처음 정무맹에 든 이후로 정무추포단을 떠난 적이 없기에 정무추포단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또한, 냉혹한 손속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라 주어진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다고 알려진 무인이니 쫓기는 그로서는 항상 경계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있다면, 자신의 행적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리라. 그들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흔적을 지우고 몸을 숨기는 것이 백번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몸을 피하면 효로에게 시술하는 대법은 완성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