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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10화)
第四章 시련은 운명으로(3)


너무 아까웠다. 자신의 의도대로 대법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번 다시 이런 특이한 실험체를 발견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를 통해서라면 자신의 숙원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젠장.’
물끄러미 눈을 감은 효로를 바라보던 초관이 입술을 깨물었다. 숙원도 중요하고 임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이었다.
서둘러 대법의 결과만 확인하고 몸을 피하리라 작정한 초관은 준비를 서둘렀다. 아무리 서둘러도 최종 시술은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이틀만, 이틀만…….’
목갑을 꺼낸 초관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늘어선 각양각색의 자기 병이 위험한 기운을 풍기며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관의 손이 그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네놈의 운명이거니 생각해라.’

***

은림신접은 소년을 만났던 장소를 기점으로 소년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남은 흔적에서 효로의 신형이 조금씩 흔들린 것을 발견한 은림신접은 잠시 소년이 보법을 밟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금세 고개를 흔들었다. 보법이라 하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소년의 흔적은 제법 규모가 있는 장원으로 이어졌다. 담을 넘으려던 은림신접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접었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담을 넘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밤도 아니고 훤한 대낮에 다른 이의 눈을 피해 숨어든다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었고, 숨어들었다가 누구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난감한 일이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은림신접은 주변을 살피다가 장원 뒤쪽에 제법 커다란 나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무 위로 몸을 끌어 올렸다. 적당한 가지에 자리 잡은 그는 무성한 나뭇가지에 신형을 감추고 장원을 꼼꼼하게 살폈다.
연무장도 보이는 것을 보면 무공을 익힌 이가 거주한다는 의미였고, 제법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확인된 탓에 은림신접은 자신의 선택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인이 머문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인물이 없을 거라고 자신할 수도 없었다.
서녘으로 해가 많이 기울 때까지 자리를 지켰으나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탓에 불편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은림신접의 인내심은 자타가 공인하는 쇠심줄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분명히 소년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결국, 그의 오랜 기다림이 열매를 맺었다. 한 전각에서 비틀거리며 나오는 소년의 모습을 발견한 은림신접은 눈을 반짝이며 한시도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대문으로 향하던 소년의 앞을 건장한 청년이 가로막더니 다짜고짜 매질이 시작되었다. 지켜보던 은림신접의 눈이 커졌다. 비록 목검을 휘두르는 것이지만, 목검에는 적지 않은 내공이 실린 듯 보였다.
‘소년의 몸이 엉망인 것은 저놈의 짓이었군. 그나저나 일반인에게 내공 실은 매질을 하다니…….’
청년의 움직임에서 화산의 흔적을 발견한 은림신접은 눈을 찌푸렸다. 왜 소년에게 매질을 가하는지 분명한 이유도 모르면서 숨겼던 신형을 드러내 남의 일에 간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년이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모진 매질은 한참을 이어졌다. 고통이 대단할 터인데도 반항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고, 비명이나 애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간간이 신음만 흘리며 꿈틀거리는 소년의 강단진 모습에 은림신접은 놀라면서도 이상했다.
청년이 매질을 그치고 사라지고 나서도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거리는 소년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은림신접은 다른 장한들이 다가와 소년을 쓰레기 버리듯 장원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경거망동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은림신접은 아무도 모습이 보이지 않자 소년의 곁으로 서둘러 다가가 그의 상세를 살폈다. 잠시 완맥을 잡아 소년의 상세를 살피던 그는 소년의 기맥을 타고 흐르는 독기를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귀 뒤쪽에 핀 검은 무늬를 발견하고 놀라며 뒤로 펄쩍 물러났다.
‘헉.’
서둘러 자신의 손을 확인하며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그의 입에서 경악에 찬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극독, 절……대지독, 묵천하독(墨?河毒)이라니…….”
전설처럼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묵천하돈. 한 마리가 독을 뿜으면 황하조차 죽음의 강으로 변한다는 공포의 대상. 묵천하돈이 품은 독이 묵천하독이었다.
중독된 특징이라고는 귀 뒤에 생기는 검은 무늬가 유일하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던 은림신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절대지독이 사람의 몸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독을 품은 사람이 숨을 쉬다니…….
소년을 만졌던 손이 아직 멀쩡하고, 중독된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섰던 그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자신들이 추적하는 공적.
인면마의(人面魔醫) 조천관(趙天貫).
인체를 대상으로 갖가지 실험을 자행해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악마의 심성을 가진 의원. 필시 그가 소년에게 손을 쓴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소년의 주위에 있을 것이었다. 당장 북풍냉검에게 보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었음에도 은림신접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기만 했을 뿐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소년이 아직 의식이 없고, 자신이 소년을 옮기기는 너무 위험했다. 두고 가기도, 그렇다고 옮기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한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으나 쉽게 결론을 얻지 못했다.
“으……윽.”
간헐적으로 경련만 일으키며 의식이 없던 소년이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독을, 그것도 절대극독을 품고도 의식을 되찾는 소년의 모습이 마치 괴물처럼 느껴졌던 은림신접은 담벼락의 그늘로 몸을 숨겼다.

말로만 듣던 지옥의 형벌이 이럴 런가. 효로는 의식이 돌아왔음에도 전신을 찢어발기는 고통과 머리가 깨지는 두통을 동반한 어질어질함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누운 채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통증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든 통증으로 악다문 이빨 사이로 기어이 넘쳐흐르는 신음 속에서도 효로는 단소소의 화사한 미소를 떠올렸다. 누군가 효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미쳤다 손가락질하리라.
효로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얼굴이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일까.’
그리움이 폐에 박혔는가. 숨 쉴 때마다 아프다.
‘잊어야 하는가?’
연모의 감정이 심장에 머무는 걸까.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파문을 이루며 퍼져 왔다.
‘이제 그만해야 할까?’
미련이 그의 눈물샘을 터뜨렸는지 피인지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액체가 눈초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누님도 날 생각하고 계실까?’
눈 감은 채 드러누운 효로에게 단소소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고운 미소를 보냈다. 그의 입가에 일그러진 미소가 피어났다.
배에 힘을 준 효로는 안간힘을 쓰며 몸을 뒤집었다. 뼈와 근육이 아우성을 지르며 지독한 고통을 그에게 선사했다.
‘반. 드. 시. 지키리라.’
다시 팔에 힘을 주며 상체를 일으켰다. 참기 어려운 고통이 그의 발끝에서 머리로 관통하며 지나갔다.
‘결. 코. 잊지 않는다.’
허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저절로 그의 입이 딱 벌어지며 신음이 흘렀다.
‘절. 대. 멈추지 않는다.’
“끄응.”
‘소장주의 매질이 날로 느는 탓인가?’
나날이 심해지는 통증이 초관의 대법 때문임을 알 리 없는 효로는 모든 게 단소운의 매질로 말미암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야속하기는 해도 증오스럽지는 않았다.
습관처럼 강타하는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의 입에 걸린 미소는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어느새 겨울인가. 서리 찬 겨울바람이 칼날처럼 살을 에도 온몸은 후덥기만 하였다.

멀찍이 소년의 뒤를 따르는 은림신접은 놀란 가슴을 겨우 달래고 있었다. 극독을 품은 몸이 움직이는 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라 치부하더라도 그토록 심한 매질을 당해 금방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지독한 상처를 입고도 어찌 저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의지가 굳다고 해야 하는가, 미련하다고 해야 하는가. 믿기지 않는 소년의 움직임에 선뜻 나서 자신의 궁금증을 물어보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뒤를 밟기만 하였다.
이윽고 평범한 장원에 도착하고, 그가 작은 문간방으로 신형을 감추자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은림신접은 은밀하게 움직여 장원의 안팎을 살폈다. 노파와 소년만이 장원에 있음을 확인한 은림신접은 소년의 방으로 시선을 한 번 주고서 객잔으로 신형을 날렸다.

***

“그게 사실인가?”
야심한 시각에도 잠을 청하지 않고 은림신접을 기다리던 북풍냉검이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구 할 이상입니다.”
벌떡 신형을 일으킨 북풍냉검이 자신의 애검인 송문검을 허리에 두르며 입을 열었다.
“당장 가서 놈을 잡아야겠군.”
은림신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패검하던 동작을 멈춘 북풍냉검의 의아한 시선이 그에게 던져졌다.
“무슨 말인가?”
“정확하게 놈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으니 잘못하다간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북풍냉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교토삼굴(狡?三窟)이라 했으니 그 영악한 놈이 도망칠 구멍을 마련하지 않았을 리 없겠지.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가?”
은림신접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좀 전에 말씀드렸던 묵천하독에 중독된 아이의 주변을 살피면 놈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북풍냉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묵천하독에 중독되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매한가지인데 어찌 소년을 감시한단 말인가?”
은림신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쉽게 믿기지 않지만, 그 소년은 극독을 이겨 낸 듯싶습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제 직감이 그렇다고 합니다.”
북풍냉검도 묵천하독이란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절대지독 묵천하독. 어찌 인간으로 이겨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내공을 수련한 무인이라 해도 절대무위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했던 북풍냉검인지라 그의 직감이 빗나간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잠시 생각하던 북풍냉검이 고개를 끄덕여 그의 직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알았네. 자네 말대로 하지. 그럼 가서 쉬시게.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지.”
은림신접이 패검했던 송문검을 끄르며 부드럽게 말하는 북풍냉검에게 포권을 취했다.
“편히 쉬십시오, 부단주.”
“자네도 잘 쉬게.”
침상에 다시 엉덩이를 걸친 북풍냉검은 문을 닫고 나가는 은림신접의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은림신접의 보고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극독에 중독된 채 내공이 실린 모진 매질을 견디는 소년이 있다니. 쉬이 믿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은림신접이 거짓 보고를 할 까닭이 없었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이라면, 그 녀석이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말인데?’
그런 기사의 주역이 어찌 보통 소년일 수 있겠는가? 무언가 감추어진 비밀이 반드시 있을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그의 상념도 점점 깊어져 갔다.

***

단소소는 퀭해진 눈으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끼니조차 거르며 시름에 빠진 그녀가 안타까워 발만 동동 굴리던 시비가 찬모에게 특별히 일러 가져온 미음만 가끔 입으로 가져갔던 탓에 몰라보게 수척해진 그녀의 몸은 바람이라도 조금 세게 불면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쌀쌀해진 날씨에 시비가 닫으려 했지만, 그녀의 완고한 고집으로 열어 둔 창이 그녀의 유일한 출구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휘영청 뜬 달에 효로의 얼굴이 덧보이는지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설핏하게 미소가 어렸다.
‘효로야, 잘 지내? 시동은 할 만해? 글은 좀 배웠어?’
덧보이는 효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완전히 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조금 남았던가. 그녀의 뺨으로 가는 물줄기가 생겼다.
오라버니에게 애원한 후로 시비도 효로가 오라버니에게 매를 맞는 일은 없다고 했고, 그녀도 설마 오라버니가 계속 매질할 거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효로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열망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