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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11화)
第四章 시련은 운명으로(4)
‘이러다 우리 다시 못 보는 건 아니겠지? 날 보러 올 거지?’
자신의 뺨을 살며시 감싼 그녀가 홍조를 떠올렸다.
‘나 많이 야윈 것 같아. 하지만, 다 너 때문이니 보기 싫다 말하면 안 돼. 그러면 미워할 거야.’
잠시 든 팔도 힘에 겨웠던지 아래로 툭 털어졌다. 베게 위로 비스듬히 몸을 기댄 단소소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네 얼굴이 더 또렷해지네.’
상상 속에서 효로와 함께 달리던 언덕으로 간 그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맑고 상쾌한 바람이 싱그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고, 따스한 햇볕은 눈부신 효로의 미소와 어울려 그녀를 행복하게 했다.
‘효로야, 내가 이 슬픔이 익숙해지기 전에 와 줘. 더 익숙해지면 영영 네게 갈 수 없을 것 같아. 이 슬픔이 영원해지기 전에…….’
수척한 그녀의 얼굴에 슬픔보다 더 서글픈 그녀의 미소와 함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나날이 야위는 그녀에게 오라비는 애원과 협박을 번갈아 하며 마음을 돌리려 애썼지만,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이었다. 혹시나 딸자식이 잘못될까 염려한 장주는 의원을 부르기도 했지만, 달인 약을 입에도 대지 않는 탓에 백약이 무효했다.
자신의 슬픔이 깊어지고 몸이 수척해질수록 효로에게 가해지는 오라비의 허무한 매질이 심해진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하나 어찌 슬픔과 고통 따위가 연모의 정을 지울 수 있겠는가? 그들의 정은 깊어만 갈 뿐이었다.
***
작은 마을의 하루는 새벽 첫닭의 울음보다 먼저 터져 나오는 효로의 비명으로 일찍 시작되었다.
“으아아악.”
객잔과 효로의 장원이 떨어져 있다고는 하나 무공을 수련한 무인들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고, 객잔에서 잠을 자던 무인들이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무슨 일이야?”
“글쎄.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어.”
정무추포단원들이 웅성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밖으로 나섰던 북풍냉검과 은림신접의 시선은 효로의 장원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뒤늦게 밖으로 달려 나온 객잔 주인이 무인들을 달랬다.
“무사님들, 별일 아닙니다. 마을에 새벽마다 비명을 지르는 미친놈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이 효로라고 하는데 근래 더 심해진 모양입니다. 저런 놈을 얼른 잡아가지 않고 귀신은 뭐 하는지. 젠장.”
계속 들리는 비명에 투덜거리던 객잔 주인이 별일 아니라며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정무추포단원들도 객잔주인의 말에 웅성거림을 멈추고 북풍냉검의 명을 기다렸다.
북풍냉검이 입을 열었다.
“기왕 잠이 깼으니 조용한 곳을 찾아 수련하도록.”
“존명.”
단원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복명한 후 사방으로 흩어졌다.
단원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북풍냉검은 다시 시선을 비명이 들려오는 장원으로 돌리더니 중얼거렸다.
“고통이 심하겠지.”
소년에게 신경이 쓰였는지 계속 장원으로 시선을 주던 은림신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먼저 가서 소년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포권을 취한 은림신접의 신형이 짙어진 새벽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
방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효로는 점점 통증이 잦아들자 신형을 바로 해 어렵게 가부좌를 틀었다. 호흡법을 시행하면 통증이 조금이라도 빨리 가라앉는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자꾸 흐려지려는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고 들숨과 날숨을 신중하게 번갈아 시행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통증이 천천히 꼬리를 말고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를 괴롭히는 통증은 결코 완전히 모습을 감추지는 않았다.
이미 고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효로에게는 남은 통증은 그저 가벼운 여운에 불과했다. 다만, 문제는 개운하지 않은 머리였고, 또렷하지 않은 의식이 몸을 일으키려는 그의 균형을 자꾸 무너뜨렸다.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장작을 패려 방문을 열고 나선 효로는 어스름한 어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소소 누나, 잘 잤어요?”
효로의 엉망인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몇 번이나 비틀거리며 신을 신은 그는 우물로 가 세안을 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화끈한 따가움이 뇌리를 관통했다.
벼락 맞은 듯 치를 떨며 조심스레 세안하고 장작을 평소보다 많이 팼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오늘은 장작을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 깬 홍 노파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의 등을 찔렀지만, 효로는 짐짓 모르는 체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미친놈아, 밥이나 먹어라.”
홍 노파가 악을 쓰며 작은 반상을 가리켰다. 효로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반상 앞에 자리했다. 웬일인지 찬이 세 가지나 되었다. 그동안 단 한 가지로 식사를 했던 효로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효로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현듯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산속에서의 아침이 떠올랐다. 아무리 사무치게 그리워해도 그때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법. 그는 젓가락과 밥그릇을 들고 천천히, 그리고 소중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효로의 모습에 홍 노파는 주방 문 뒤에 숨어 숨을 죽였다. 그녀는 효로의 모습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비장함을 느꼈다. 자신의 욕심으로 몰라보게 변한 그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홍 노파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약해지면 안 돼. 그 돈이면 팔자도 고칠 수 있어.’
식사를 마친 효로는 홍 노파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잘 먹었습니다.”
최근 들어 자신에게 대꾸조차 잘 하지 않았던 효로가 먼저 인사하자 홍 노파의 놀란 눈이 커졌다.
놀란 그녀를 뒤로하고 장원을 나선 효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통증의 여운은 발걸음마다 그를 괴롭혔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와 함께 걷는 그의 뒤로 평소와 같이 아이들이 따라오며 흙덩이를 던졌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뛰어 도망갈 수도 없었다.
퍽. 퍽.
흙덩이가 그의 등과 머리, 팔과 다리를 가리지 않고 날아와 부서졌다. 마을 사람 누구도 아이들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효로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긴 나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하니…….’
자신의 탓이라 치부하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효로와는 달리 그를 멀찍이 뒤따르는 은림신접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소년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걸까?’
어제와 마찬가지로 소년이 단가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뒤쪽에 있는 거목으로 신형을 뽑아 올린 은림신접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장원을 살폈다. 분명히 이 장원과 소년의 처지가 연관이 있을 터였다.
第五章 넋을 놓다(1)
“이놈만큼 잘 견딘 놈이 없었는데…….”
눈 감은 채 누운 효로를 앞에 두고 초관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을 쫓는 이들의 눈길을 피하려면 지금이라도 몸을 빼야겠지만, 대법을 완성할 기회를 놓치기도 싫었다. 지난밤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가능할까?’
자신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몸을 피하려 마련한 최후의 은신처로 효로를 데려가 대법을 완성하는 방법. 그러나 의식을 잃은 효로를 몰래 옮기기도 어려웠고, 저들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더 피할 곳이 없어지는 터라 쉽게 택할 수는 없었다.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고민하다 마음을 정했는지 초관은 눈을 번쩍 뜨더니 침상 아래에 숨겼던 목합을 꺼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신중한 손놀림으로 대법에 사용하는 독 중에서 가장 극렬한 독을 집어 들었다.
필바라독(必波羅毒).
지옥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부는 악풍(惡風)의 이름을 딴 독으로 몸의 수분을 순식간에 날려 버려 혈맥과 기맥을 굳혀 버리는 극독이었다. 중독과 동시에 강시(f屍)처럼 변해 버리는 탓에 시체조차 썩지 않는 독이기에 생강시(生f屍) 제조에도 사용되는 극히 희귀하고 무서운 독이었다.
물론 효로를 생강시로 만들려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평생 숙원이며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임무, 독성지체(毒聖之體)를 만드는 대법 과정이었다. 극독을 감당할 수 있는 매개체를 구해 제련하고 나서 그 매개체를 이용해 대공을 완성하는 것이다.
‘네놈이 이것마저 이긴다면, 천고의 힘을 가질 터. 물론 그 힘은 다른 이가 흡수하겠지만……. 크크크.’
호흡을 완전히 멈추고, 전신 모공을 다 닫은 초관은 효로의 입을 벌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필바라독을 흘려 넣었다. 자칫 실수해서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오래 독을 다룬 자신이라 할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터였다.
독액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려 넣은 초관은 효로의 몸에서 멀찍이 떨어져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세히 관찰하며 붓을 들어 나타나는 증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효로의 피부색이 극독의 작용으로 순식간에 검게 변하더니 호흡과 함께 하얀 김이 뿜어졌다. 체내의 수분이 말라 가는 모양이었다. 수분이 말라 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채 일다경(一茶頃)도 걸리지 않는 극독의 작용으로 효로의 몸이 서서히 응등그러지며 허연 각질이 일어났다. 이대로 계속 진행되면 초관은 목내이(木乃伊)로 변한 시체를 한 구 얻을 뿐일 것이다.
어느 순간 효로의 검던 피부색이 푸르스름하게 변했고, 코를 통해 나오던 하얀 김이 자취를 감췄다. 예상치 못했던 기사에 초관의 눈이 경악에 차 크게 떠졌고 손에 들린 붓은 미친 듯 춤을 추며 경과를 기록했다.
효로의 얼굴이 이리저리 뒤틀리는 것을 보면 지독한 고통이 그를 엄습한 모양이었고 사지를 거칠게 부들거리는 극심한 경련으로 응등그러진 피부에서 각질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나 더는 피부의 고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푸르게 변한 피부에는 새살이 돋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고통이 더 심해졌는지 의식이 없을 게 분명한 효로의 양손이 세차게 버둥거리더니 침상 모서리를 움켜쥐고 비틀었다.
우지직―
단단한 행자목(杏子木)으로 만든 침대 모서리가 힘없이 가루로 으스러졌다. 지켜보던 초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힘도 힘이지만, 부서진 조각들이 시커멓게 변한 것을 보면 독으로 말미암아 급속한 부식이 일어난 듯했다. 모공으로 체내의 독이 넘쳐흐른 모양이었다.
하긴 그의 몸에 투입된 독의 양은 큰 성도 하나쯤은 우습게 몰살시킬 만큼 많은 양이었으니 흘러넘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모공으로 새어 나오는 양은 미약했기에 초관조차 미리 감지할 수 없었다. 침상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서야 위험하다는 생각에 초관은 호흡을 멈추고 모공을 닫은 채 방문 앞까지 신형을 피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멀찍이 물러서 철저하게 조심하는데도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효로의 몸에서 뿜어진 독기의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가는 듯했다. 어찌 이런 지독한 독을 사람으로 견디고 있을까?
‘지독한 놈.’
독기가 밖으로 퍼지면 단가장의 식솔들이 대부분 목숨을 잃을 테지만, 마지막 시술만 마치면 더는 이곳에 몸을 숨길 필요가 없어 그들이 겪을 재앙은 초관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대법을 완전히 끝마칠 때까지 정무추포단이 들이닥치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었다.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비틀던 효로의 상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그의 입에서 천지가 떠나가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듣는 이의 모골이 송연해질 비명이 날카롭게 사방으로 퍼져 갔다.
“놈을 확인했나?”
사방으로 흩어졌던 단원들을 모아 서둘러 달려온 북풍냉검이 결과를 물었다. 은림신접은 시선을 장원으로 고정한 채 고개를 저었다.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놈은 분명히 안에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의심되는 전각은 저곳입니다.”
은림신접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 북풍냉검은 내력을 끌어올려 안력을 높였다. 그러나 제법 거리가 먼 탓에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진충!”
“네. 부단주님.”
선임조장이며 일조장인 섬류일수(閃流一手) 하진충(夏振蟲)이 어느새 북풍냉검의 뒤에 나타나 대답하고 명을 기다렸다.
“장원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게. 쥐새끼 한 마리도 벗어나서는 안 되네.”
“존명.”
복명한 하진충이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