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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12화)
第五章 넋을 놓다(2)
예리하게 장원을 살피던 은림신접의 시야에 은밀하게 움직이는 정무추포단원들의 모습이 간간이 들어왔다. 그들의 움직임은 미리 알지 못했다면 그라도 쉽게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했다.
‘역시 추포단이군.’
“으아아악.”
듣는 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날카로운 비명이 차가운 초겨울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귀에 익은 비명.
굵은 눈썹을 찌푸린 북풍냉검이 중얼거렸다.
“그 소년이겠군.”
안색이 변한 은림신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돌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북풍냉검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장원을 가리켰다.
“보는 눈이 많아. 일이 잘못되면 저들의 원성을 감내해야 할 걸세.”
장원에 흩어져 각자의 일을 하던 식솔들이 놀라 초관의 전각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장원의 주인으로 보이는 장년과 한 청년이 잰걸음을 옮기는 모습도 보였다.
초관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의식이 없어야 하는 효로가 상체를 일으키고 비명을 지를 줄이야. 단가장의 모든 이들이 효로의 비명을 듣지 못 했으리 만무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감시하던 정무추포단의 시선을 끌어 모은 셈이 아닌가.
생각해 둔 탈출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대법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제 자신의 생명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효로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저 망할 놈이…….’
비명을 그친 효로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침상에 몸을 누인 것도 아니었다. 초관은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앉은 상태로 기절한 듯 조용한 효로를 눕힐 수도 없었다.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강한 독기가 흐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잘못 손대다가는 중독될 위험이 컸다.
“초관 선생, 안에 무슨 일이오?”
잠시 효로의 처리를 고민하던 초관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장주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와 중독되어 죽건 말건 상관은 없었지만, 아직 대법 완성에 미련이 남았던 초관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다.
간단하게 목례로 장주를 마주한 초관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동으로 쓰는 소년이 몸이 많이 상해 잠시 침상을 빌려 주었는데 악몽을 꾼 모양입니다. 지금은 괜찮은 듯하니 마음 쓰실 필요가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초관이 넌지시 소장주를 흘겼다. 마치 네 책임이다 하는 표정이었다.
단소운은 기분 나쁜 듯 살짝 눈썹을 찌푸리고는 아비에게 돌아갈 것을 권했다.
“아버님, 별일 아닌 듯싶으니 돌아가시지요.”
장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단소운이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하라 지시했다.
멀어지는 그들을 잠시 지켜보던 초관은 장원 밖을 흘낏 일견하고는 방 안으로 사라졌다.
“모인 이 중 의심이 가는 인물이 있었나?”
북풍냉검이 시선은 장원으로 향한 채 은림신접에게 물었다.
“소년이 들어갔던 전각의 주인인 듯한 자가 의심스럽습니다.”
은림신접의 예리한 눈은 문사복의 인물이 자신들이 은신한 곳으로 짧게 던진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북풍냉검도 그자의 행동을 본 것일까.
“지금 움직이는 것이 나을 듯하군. 놈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챈 듯하니.”
은림신접이 그의 결정에 동의했다.
“네. 그러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전음으로 명을 전하는지 북풍냉검의 입이 소리 없이 달싹거렸다. 그러자 장원 주변에 은신하던 정무추포단이 일제히 담을 넘어 장원으로 숨어들어 초관의 전각 주변을 엄밀히 에워쌌다.
북풍냉검과 은림신접도 신형을 날려 장원의 담을 넘어 전각으로 다가갔다. 장원 내부를 장악한 단원들이 초관의 전각을 포위하고 잠시 기다리자 사조장인 극진도가 장주와 소장주를 데리고 북풍냉검에게 다가왔다. 그들 뒤로 장원의 무사들이 저마다 손에 병기를 들고 우르르 따라왔다.
사조장인 극진도로부터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는지 화가 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장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기에 백주에 남의 집 담을 넘은 것이오?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요?”
북풍냉검은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사조장을 바라보고는 장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주, 놀라게 해서 미안하외다. 우리는 정무맹의 정무추포단이오. 무림공적(武林公敵)이 이곳에 숨었다고 판단해 결례를 범한 것이니 용서하시오. 놈만 추포하면 조용히 물러가겠소이다.”
장주는 무공을 익힌 소장주에게서 정무맹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무림에 그 명성이 쟁쟁한 정무맹의 이름 앞에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공적이라니 누굴 말씀하시는 게요?”
북풍냉검의 곁에 섰던 은림신접이 한 걸음 나서며 장주의 질문에 대신 대답하였다.
“인면마의(人面魔醫) 조천관(趙天貫)이란 자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각종 사악한 대법을 실험해 이미 많은 생명을 해친 극악무도한 자로 정무맹에서 공적으로 선포한 놈이지요.”
장주가 해연히 놀라며 물었다.
“그런 흉악한 놈이 내 집에 있다는 말씀이시오? 어찌 그럴 수가 있소?”
“그놈은 변용술(變容術)이 대단한 놈입니다. 다른 이의 신분으로 위장하는 것은 식은 죽 먹듯 하는 놈이지요. 일반인이 그의 정체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흉악한 인물이 자신의 장원에 숨어들었다는 말은 자신의 식솔들이 위험하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근심으로 얼굴이 어두워진 장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협은 내 집의 누구를 의심하는 것이오니까? 혹 글 선생인 초관 선생이오?”
은림신접이 전각을 가리켰다.
“초관이란 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전각의 주인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 장주께서 그를 불러 밖으로 나오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가장 식솔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협조해야 할 일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장주가 몸을 돌려 전각을 향했다.
“알았소이다.”
장주가 초관이 머무는 전각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단소운이 아비를 보호하려는 듯 바짝 따라붙었다.
“선생, 초관 선생 계시오?”
“…….”
전각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장주는 은림신접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하느냐는 의미를 담은 장주의 시선에 은림신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다시 불러 보시지요.”
“선생, 안에 계시오?”
다시 장주가 초관을 불렀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은림신접의 고개가 북풍냉검에게 돌아갔다.
“부단주님, 그냥 진입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북풍냉검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진충!”
“네, 부단주.”
“진입하라!”
“존명.”
하진충이 복명하고 단원들을 향했다.
“삼조가 진입하고, 나머지 조는 놈의 도주를 막는다.”
“존명.”
복명한 삼조장 산화일장(散花一掌) 기양천(寄陽天)이 손을 들어 조원들의 진입을 지시하자 삼조원들이 빠르게 전각으로 다가갔다.
한편, 전각 안에서는 기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기묘한 문양이 그려진 붉은 천이 바닥에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향로가 기이한 향을 모락모락 피웠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침상에 앉은 효로의 주변에는 그의 몸을 둘러싼 기괴한 검은 기운이 거칠게 회오리치고 있었다.
효로의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인면마의는 수인(手印)을 맺은 채 알 수 없는 주문을 나직이 읊조리고 있었다.
사령최심술(死靈催心術).
피술자의 정신을 지배해 시술자의 명을 절대적으로 따르게 하는 섭혼술(攝魂術) 중에서도 일절로 알려진 지독한 술법이었다.
다른 섭혼술은 나중에 이지를 되찾을 수도 있는 것에 반해 사령최심술은 다시 제정신을 차릴 방도가 없어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 한 시술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술법이었다.
“……위문청산옹록수수(慰問靑山翁綠水嫂) 태허지하대괴지상(太虛之下大塊之上) 유진가룡은현맥(有眞假龍隱現脈) 청탁혈명암국자(靑濁穴明暗局者) 하사야(何辭也) 육십화갑리(六十花甲裡) 유칠십이룡(有七十二龍) 칠십이룡하(七十二龍下) 유천백조화적(有千百造化跡)…….”
주문이 나직이 이어지자 바닥에 그려진 문양에서 피어나는 묘한 기운이 점점 짙어지며 효로의 몸을 휘감아 돌고, 향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효로의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평소 입었던 백색 문사의가 아니라 얼핏 보면 전각을 둘러싼 정무추포단의 복장과 비슷한 청의 무복을 걸친 인면마의는 주문을 읊조리면서도 문밖에서 들리는 대화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일 다경만…….’
성공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독성지체를 만드는 절차는 모두 마쳤다. 그러나 독성지체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저 괴물을 하나 만들었을 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일. 섭혼술을 펼쳐 효로의 정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자면, 잠시의 시간이 더 필요한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우지끈.
와작.
쾅― 쾅― 쾅―
“으아악.”
자신의 의도대로 문과 창으로 진입하던 정무추포단원들이 굉음과 함께 터진 소뇌환(小쾸丸)에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튕겨 나갔다. 뇌탄의 폭발로 희고 짙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났다. 지금을 놓치면 자신의 도주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다.
‘젠장.’
극히 짧은 순간 고민하던 인면마의는 섭혼술의 완성을 포기하고 창으로 몸을 날림과 동시에 거짓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진입하던 단원들이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튕겨 나오고 자욱한 연기가 피어나자 북풍냉검과 은림신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인면마의가 대비하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소뇌환을 터뜨릴 것은 몰랐다.
‘비열한 놈.’
북풍냉검이 급히 입을 열었다.
“모두 물러나 놈이 도주하지 못하게 포위망을 굳혀라.”
단원들이 한두 걸음씩 뒤로 물려 경계하자 재차 진입하려는 삼조를 물린 북풍냉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수하들의 희생을 염려한 그가 직접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은림신접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부단주, 뇌환이 더 있을지 모르는데 너무 위험합니다.”
북풍냉검이 고개를 흔들며 은림신접의 손을 치웠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앞장서야 할 것이네. 뇌환이 더 있다면, 단원들의 희생만 늘지 않겠는가? 나 혼자라면 놈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네.”
다시 선임조장인 섬류일수에게 고개를 돌린 북풍냉검이 명을 내렸다.
“하진충, 다친 단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라. 그리고 전각에서 쥐새끼 한 마리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아라.”
“존명.”
섬류일수가 손짓으로 단원들에게 부상자를 뒤쪽으로 물리라 지시를 내렸고, 명을 받은 단원들이 신속하게 다친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전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 탓에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부상자들 틈에서 한 인물이 슬금슬금 으슥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정무추포단 중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북풍냉검이 자신의 애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전각으로 다가갔다. 전각을 포위한 추포단원들은 부단주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바짝 긴장했다.
어느 정도 거리에 이르자 북풍냉검은 성급하게 문안으로 뛰어들지 않고 피어오른 연기가 사라지기를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연기가 바람에 날려가고 어느 정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자 북풍냉검은 내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며 부서진 문틈으로 안을 살폈다.
“음.”
북풍냉검의 입에서 저절로 침음이 흘렀다. 전에 본 소년만이 침상에 앉아 있었고, 인면마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놓친 것이다.
‘쥐새끼 같은 놈.’
내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지만, 기척을 느낄 수 없었던 북풍냉검은 납검하며 몸을 돌렸다.
부단주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발견한 은림신접이 몸을 날려 그의 곁에 내려섰다.
“부단주님.”
“놈이 도주했네.”
“어, 어떻게…….”
놀란 은림신접이 방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년의 모습만 보일 뿐 다른 인영은 볼 수 없었던 그의 입에서도 침음이 흘렀다.
장주와 소장주도 낌새를 차렸는지 그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초관 선생이 없소이까?”
은림신접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중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놈이 도망한 듯합니다. 혹여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있습니까?”
장주가 고개를 저었다. 어찌 식솔이 머무는 전각도 아닌 이런 작은 전각에 그런 시설을 했겠는가. 안을 쏘아보던 소장주가 효로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놈에게 물어보시지요.”
은림신접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서다 튕기듯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가득했다.
소장주가 이상한 듯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극독이 방 안에 퍼진 듯하네.”
은림신접의 말에 장주와 소장주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북풍냉검은 입을 열어 단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무도 전각에 들어가지 마라!”
그의 시선이 선임조장에게 향했다.
“하진충, 놈이 도주했다. 멀리 가지 못했을 터이니 부상자가 있는 삼조만 전각과 소년을 감시하고 나머지는 놈을 추적한다.”
“존명.”
섬류일수의 대답에 북풍냉검의 시선이 다시 은림신접에게 이어졌다.
“자네는 이조와 함께 움직이게. 난 일조와 함께 가겠네.”
“네. 알았습니다.”
다시 몸을 돌린 북풍냉검이 장주에게 포권을 취했다.
“장주께서는 전각과 소년을 감시하는 일을 도와주시오. 정무맹에서 장주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이외다.”
“알았소이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울 것이오.”
“고맙소.”
말을 마친 북풍냉검이 몸을 날리자 일조가 그의 뒤를 따랐고, 은림신접과 섬류일수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려 멀어졌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 멍한 기분에 잠시 움직이지 않았던 장주와 소장주는 삼조원들이 부상자를 살피고, 전각을 에워싸는 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장원의 무사들을 동원해 전각을 에워싸도록 지시하고 삼조의 임무를 도왔다.
의식을 잃었던 효로는 소뇌환이 터지는 굉음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전신을 난도질하는 듯한 지독한 고통과 몽롱한 의식으로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고,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