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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14화)
第六章 운명의 길에 첫발을 딛다(2)


“아, 아버님. 어찌…….”
놀라고 애통한 마음에 단소운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를 구하러 갈 수도 뒤로 몸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그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소장주가 움직이지 않자 산화일장이 재빨리 다가와 그의 몸을 끌며 뒤로 물러섰다. 끌려가는 단소운의 시선은 장주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의 눈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통한의 피눈물이 흘렀다.
‘못난 자식 때문에…….’
시꺼멓게 안색이 변한 장주의 몸이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끝으로 뿌옇게 변한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몸으로 파고든 독이 퍼져 점차 아스라이 멀어짐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소장주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낸 산화일장은 서둘러 혈을 짚어 독이 퍼지는 것을 막고 상세를 자세히 살피다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독에 중독된 팔을 되돌릴 도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독이 더 퍼지기 전에 서둘러 중독된 부위를 잘라야 했다.
‘안타깝지만…….’
검을 쥐는 오른팔을 잘라야 하는 탓에 안타까웠던 산화일장은 품에서 예리한 단검을 꺼내 그의 겨드랑이에 끼우더니 이를 악물고 힘껏 당겼다.
서걱.
츄악―
산화일장은 단소운의 팔이 잘린 부위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자, 서둘러 지혈하고 금창약을 발랐다. 재빠르게 소장주를 치료하면서도 그의 예리한 눈은 효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장주가 바닥으로 쓰러졌고, 자신이 소장주를 뒤로 옮겼음에도 소년은 나무 인형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한 산화일장은 수하에게 소장주의 신형을 건네고 효로를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이지를 상실한 모양이군. 그 처죽일 인면마의 놈의 짓이겠지.’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던 효로가 다시 느릿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단가장의 정문으로 향하는 소년을 막으려는 수하들과 장원 무인들의 움직임을 만류한 산화일장이 입을 열었다.
“부조장, 나는 저 소년의 뒤를 쫓을 테니 부상자 중 움직일 수 있는 단원들과 함께 중독을 조심하며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철저히 막아라. 시신들도 안전해질 때까지 손대지 못하게 해라.”
산화일장이 굳은 얼굴로 지시하자 부조장이 명을 받들었다.
“존명.”
산화일장이 고개를 돌려 효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칠거리면서도 계속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위태로웠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안타까워만 하기에는 소년이 너무 위험한 존재였다. 아직 소년이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지만, 만에 하나 공격적으로 변하면 쉽게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어디로 가는 걸까?’
움직일 수 있는 단원들과 소년의 뒤를 밟던 산화일장은 소년의 몸에서 풍기던 위험한 기운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단가장을 나선 효로는 위험한 기운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이 적안도 아니고 평소의 맑고 검은 눈도 아닌 우울한 잿빛 눈으로 변해 있었다. 비틀거리면서도 이어지는 효로의 발걸음은 점차 마을의 중심부로 향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위험하다.’
지금은 느껴지지 않지만, 효로의 몸에서 뿜어졌던 지독한 독기를 떠올린 산화일장은 이를 악물었다. 막아야 했다. 무공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좌시할 수 없었다.
‘협의(俠義)의 길. 목숨을 건다.’
“소년을 막아라.”
산화일장의 명이 떨어지자 삼조원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려 소년의 앞을 막았다. 소년은 자신의 앞을 막는 그들을 보지 못한 걸까? 걸음을 멈추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비칠거리며 발을 옮겼다.
정무추포단원들은 신중한 자세로 다가오는 소년을 노려보았지만, 소년의 지독한 독기를 알면서도 얼굴에는 두려움을 떠올리지 않았다. 목숨을 도외시한 용기. 정파라는 자부심. 어떤 것이든 산화일장은 가슴이 아렸다.
‘미안하다.’
자신의 조원들에게 미안했고, 소년에게 미안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년을 막는다.”
조원들에게 자신의 각오를 전한 산화일장은 가장 먼저 몸을 날려 소년에게 쇄도했다.
쉭.
쾅.
산화낙영장을 떨쳐 소년의 가슴을 때린 산화일장은 팔로 전해지는 찌릿한 가격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공격이 먹혔다.’
산화일장의 장을 맞은 소년의 신형이 훨훨 날아가 바닥을 구르며 먼지를 피워 올렸다.
공격이 성공한 것을 확신한 산화일장은 서둘러 자신의 손을 살피며 중독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의 손은 말끔한 것이 중독의 기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행운에 미소 짓지 못했다. 저만치 나가떨어졌던 소년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키는 모습이 고개를 든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럴 수가. 어찌…….’
산화일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몇몇 단원들이 동시에 소년에게 쇄도하며 공격했다.
쉭― 쉭―
낭패감을 감추지 못한 산화일장의 눈에 소년의 적안이 들어오고, 몸에서 아른거리는 사이한 기운과 그를 공격하는 단원들의 모습이 느린 흐름으로 들어왔다.
깡― 퍽― 탕―
단원들의 공격은 힘없이 튕겨났고, 그 여파로 바닥을 구른 단원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아니, 다시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 이…….”
자신은 멀쩡한데 단원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분노한 그가 다시 공격하려 한 발을 떼 놓았을 때 남은 단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저희가 막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그럴 수는 없다.”
산화일장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초전우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조장님까지 가세하셔도 승산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저희가 시간을 벌 동안 조장님께서는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켜주십시오.”
좋은 생각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피할 시간을 준다면, 그들의 희생은 피할 수 있으리라.
“아니다. 내가 다른 조원들과 막을 테니 자네가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해라. 이것은 명령이다.”
산화일장의 명에 초전우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금세 굳은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존명.”
초전우가 마을로 신형을 날리자 산화일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남은 단원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 산화일장을 선두로 단원들이 다가오는 소년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

초전우는 마을로 들어가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모두 피하시오. 지금 위험한 인물이 마을에 들어왔소.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숨으시오!”
뜬금없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몸을 숨기기는커녕 웅성거리며 초전우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무슨 소리요?”
“누가 마을에 들어왔단 말이오?”
“당신은 누구요?”
각자 입을 열어 질문하자 저잣거리같이 시끌벅적해졌고, 초전우의 경고는 소란에 묻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잠시 지체하는 사이 그의 뒤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괴물이다.”
초전우는 놀라고 당황해 눈이 커졌다.
‘벌써?’
“마을에 괴물이 나타났다. 모두 공격!”
초전우가 미처 나설 틈도 없이 한 떼의 아이들이 나타나 효로의 앞을 막더니 평소처럼 괴롭히기 시작했다. 흙덩이를 던지고 장대로 그의 몸을 꾹꾹 찌르기 시작하자 이리저리 흔들리던 효로의 잿빛 우울한 눈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그러들었던 독기가 거칠게 뿜어지며 주변으로 퍼졌다.
위험을 느낀 초전우는 아이들을 만류하려 몸을 날렸지만, 그가 아이들 근처에 가기도 전에 뇌리를 울리는 위험한 기운에 신형을 멈추어야 했다. 당황한 그의 눈에 소리도 없이 바닥으로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순식간에 온몸이 검게 변해 바닥으로 나뒹군 아이들은 모두 절명했는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마을로 뛰어갔다.
“으아악.”
잠시 멍하니 서 있던 효로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식을 잃은 마을 사람들이 흥분해 손에 집히는 대로 농기구와 몽둥이를 챙겨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망할 자식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남정네들이 효로를 막아서자 아낙들은 그를 지나쳐 아이들이 쓰러진 곳으로 가더니 자식을 끌어안고 비통한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내 새끼.”
“순남아, 정신을 차려라. 순남아∼”
“석아, 어미다. 정신 좀 차려라.”
아낙들의 비명에 남정네들의 안색이 험악해졌다. 그들은 다짜고짜 욕을 하며 효로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 아비 어미도 없는 놈이라 불쌍하게 여겼더니…….”
“은혜도 모르는 새끼, 이런 놈은 죽여야 해.”
“우리 석이를 살려 내라. 이 처죽일 놈아.”
퍽― 퍽― 퍽―
인정사정없는 매질이 쏟아지자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싼 효로가 몸을 웅크렸다. 그의 몸에서 조금 가라앉았던 위험한 기운이 다시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말릴 기회를 놓친 초전우는 서둘러 신형을 날리며 고함을 질렀다.
“모두 피하시오. 그 소년은 독에 중독되었소.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니 얼른 떨어지시오.”
그러나 초전우의 고함이 자식을 잃은 슬픔에 묻혀 버렸는지 마을 사람들의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웅크린 소년의 몸에서 사이하고 위험한 기운이 주변으로 확 번졌다. 동시에 소년이 벌떡 일어서며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며 포효했다.
“으아아아!”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듯한 절규가 검은 하늘을 뚫고 쏟아 올랐고, 마을을 쩌렁쩌렁 울렸다.
놀란 초전우가 서둘러 다가섰을 때는 이미 그들은 들었던 몽둥이며 농기구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하나둘 검게 변한 얼굴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다급하게 호흡을 멈춘 초전우는 재빨리 신형을 뒤로 물렸다. 소년에게 매질하던 그들이 모두 쓰러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효로의 몸에서 솟구친 가공할 독기에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절명하는 모습에 초전우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헉.”
초전우는 아낙들마저 위험에 처할까 봐 소년에게 다가가는 것을 경고하려 시선을 돌리다 입을 벌리고 굳어 버렸다. 죽은 자식을 안고 통곡하던 여인들도 모두 쓰러져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중독된 이들의 사체가 급속히 말라 가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점점 말라 가는 모습, 급기야 바짝 마른 목내이로 변한 모습에 초전우는 놀라 말을 잊어버렸다.
‘도, 도대체 무슨 독이기에.’
한참을 하늘 향해 팔을 벌린 채 움직임이 없던 효로가 다시 비칠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독의 위험을 절실하게 느낀 초전우는 멀찍이 떨어져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소년이 마을을 벗어나는 것은 순탄하지 않았다. 소년의 포효를 들었던지 대부분의 마을 사람이 길거리로 뛰쳐나왔고, 소년의 앞을 가로막고 그를 핍박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동안 몇 번이나 소년의 앞을 막는 마을 사람들을 만류했지만,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발길질하던 장한이며 매질하던 아낙, 돌을 던진 이들은 하나도 무사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의 옆에 구경하던 이들까지 손쓸 틈도 없이 절명했다.
효로가 마을을 벗어나자 겨우 한숨을 돌린 초전우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그의 뒤를 밟았다.
‘마을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죽었겠군.’

***

효로가 떠나고 단가장은 발칵 뒤집혔다. 장주와 단가장의 많은 무인이 바짝 마른 목내이로 변해 목숨을 잃었고, 소장주는 팔을 잃은 채 의식이 없었다. 이 모든 사단이 초관 선생의 시동으로 있던 효로가 저지른 일이라는 소문이 입에서 입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
종국에는 시녀를 통해 자신의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괴로워하는 단소소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라 했느냐?”
“장주님은 돌아가셨고, 소장주님은 한쪽 팔을 잃고 의식이 없으시다 합니다.”
단소소는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유분수지, 좀 전에 찾아와 호통을 치고 가신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침상에 주저앉은 단소소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다른 것은 살필 정신이 없었고 아버지의 죽음만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