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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술을 마시고 개꿈을 꿨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숙취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마시다가 그대로 고꾸라져 잤는지 옆으로 누운 내 눈앞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 즐비한 접시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었다. 아깝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모처럼의 휴일에 모처럼의 사치다. 게다가 가장 맛있는 부분은 이미 다 먹어 치웠으니까.
그나저나 어제처럼 술을 많이 마신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 내 꼴을 본다면 어떻게 그렇게 절제도 없이 마실 수 있느냐며 혀를 차겠지만, 솔직히 크게 폭음을 한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소주잔으로 한 잔씩, 여섯 종류쯤 되는 술을 조금씩 맛보았을 뿐이다. 일단 멀쩡할 때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왜 여기 맥주 캔들이 널브러져 있지. 으음, 아무래도 미스터리 중 하나인 ‘술이 술을 마시는 상황’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뭐, 언제나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지…….
럼, 진, 보드카, 테킬라, 위스키, 브랜디.
조리장에게 추천받은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종류로 딱 한 병씩만 샀다. 지갑을 털릴 각오를 했지만 보편화돼서 그런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아서,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번 와인만 맛보았던 날보다는 훨씬 빨리 취했는데, 솔직히 마시는 순간 독주라고 느끼긴 했지만 취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고주망태가 되어 버린 것은 예상외의 일이었다. 빨리 마신 것도 아니고, 고양이가 우유를 핥는 것마냥 할짝거리는 수준으로 마셨는데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매우 억울하다.
일단 내가 이성이 있을 때는 이렇게 마셨었는데.
저번 휴일, 그러니까 작년 설날 연휴에 와인을 마셨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서서히 취기가 올랐고, 숙취도 덜했다. 아니, 어쩌면 더했을지도. 체질상 술이 반쯤 독으로 작용하는 몸이라 자주 마실 일이 없어서 기억이 흐릿하다.
독. 사실 그게 맞는 말이다.
나는 술에 대한 내성이 매우 약한 편이다. 지금은 소량을 꾸준히 섭취해 온 덕에 간신히 술이 약한 사람 정도의 해독 능력은 가지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한 모금을 마시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인지 능력을 잃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뼈마디가 불에 달군 것처럼 아프고 근육 사이사이에 소금을 친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구토감과 열, 추위와 더위가 동시에 느껴지고 땀이 아니라 즙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탈수가 진행되어서, 수액을 맞지 않으면 회복하지 못할 정도였다. 뭐, 그건 꽤 예전의 일이고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어지간해서는 입에 대지 않고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이 독극물을 거금을 들여서 사들이고, 모처럼의 소중한 휴일에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는 타성적인 자살 같은 짓을 하는 이유는 내가 죽음이 가까운 고통에 쾌감을 느끼는 변태라서가 아니다. 물론, 맛을 좋아해서는 더욱 아니다. 그저 단순히, 내 직업과 관련이 좀 있을 뿐.
내 직업은 요리사다. 음, 조리사라는 게 보다 옳은 표현이지. 제철 식재료로 창의적이고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파는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소스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 바쁠 때는 굽기도 한다. 솔직히 썰고, 굽고, 볶고, 삶고, 튀기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내 업무 파트는 소스다.
보통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은 원래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싫어하게 되는 게 대부분이라지만, 다행히 나는 내 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절대 앉으면 안 되는 시끄러운 공간에서 뜨거운 열기를 맞으며 무언가를 열두 시간 동안 휘젓는 작업을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미각이 있는 동물들이 그러하듯,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꽤 좋아한다. 아, 당연히 먹이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맛있는 것을 만들려면 일단 어떤 맛있는 것들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기본적인 논리에 따라 나는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먹는 것에 사용하고 있다. 휴일에는 사실 대부분 새로운 소스를 만들거나 창작 요리를 시도해 보고, 스스로의 레시피를 만드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슬슬 내가 왜 독극물을 스스로 마시는 자해를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힐 것 같은데, 내가 먹으려고 시도하는 맛있는 것에는 술도 포함되어 있다. 숙취라는 페널티가 있는 이상 술에 도전하려면 설날이나 추석 같은 긴 연휴, 아니면 가게가 리모델링하느라 직원들에게 휴가를 준 이런 때가 아니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저번 휴일은 와인에 썼고, 이번 휴일은 증류주,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전통주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사실 지금은 맛있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고, 그저 ‘오크통 향’이라든가 ‘농후한 맛’이라든가 ‘시간을 머금은 향기’ 따위의 애매모호한 단어로 상상만 하던 맛을 실제로 혀 위에 올려놓고 느끼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이번 증류주는 갑자기 난이도를 너무 높였던 것 같다. 역시, 그냥 맥주나 열 종류 사다 놓고 맛볼 걸 그랬나.
슬슬 밑에 깔려 있던 한쪽 팔이 저려 오기 시작해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벌렁 누웠다. 한참 누워 있어서 그런지 두통은 좀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대로 계속 누워 있고 싶었지만, 갈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지를 그러모아 어기적거리며 냉장고로 다가섰다.
작은 생수병 하나를 꺼내서 그대로 벌컥벌컥 마시면서 차가운 물로 식도의 위치와 물이 위장까지 도달하는 속도를 확인하고 나니 그럭저럭 눈앞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일어서면서 흘긋 내려다본 거실은 생각보다 난장판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빨리 치워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나는 신발장 앞으로 다가섰다.
반듯하게 닫혀 있는 문 앞에 서서 나는 조금 실소하고 말았다. 대체 뭘 확인하고 싶은 건지. 문득 얼마 전 누군가와 나누었던 시답잖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별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괴담 같은 것이다.
낮에 직장에 가느라 집을 비우면 텅텅 빈 집에 노숙자나 외부인이 숨어들어서 생활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리고 집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침대 아래에 숨거나 다락에 숨거나 하며 살다가 집주인이 외출하면 슬그머니 다시 기어 나와서 생활한다.
그 이후 이야기는 여러 패턴이 있지만 주로 놀러 온 집주인의 친구가 침대 아래에 누워 자다가 숨어 있던 괴한과 눈이 마주친다거나, 혹은 생필품이 줄어드는 속도를 수상하게 생각한 주인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발견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 괴담을 어제의 개꿈에 연결시켜서 진지하게 고민하기에는 개연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숨는다면 왜 하필 신발장에 숨는단 말인가.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열어 보는 곳이다. 게다가 집주인인 내가 있는데 왜 문을 열고 튀어나오는 건지. 어쨌든 어제 그 남자는 술김에 꾼 개꿈인 게 분명하지만, 워낙 꿈이 현실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인지 신발장이 꽤 신경 쓰였다. 뭐든 확인해서 나쁠 건 없지.
천천히 신발장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혹시, 하는 긴장감에 고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단숨에 벌컥 열었다.
“음.”
뭘 기대한 건지.
맥이 빠져서 피식피식 웃으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비스듬히 정리된 우산, 가지런하게 놓인 운동화, 구두, 부츠 따위의 신발들. 남자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였다. 조용히 문을 닫은 나는 거실로 터덜터덜 걸었다.
거 꿈 한번 생생하네. 그나저나 이 거실은 어떡하지.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는데. 씻고 치울까, 치우고 씻을까.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산란한 술병들과 음식 접시들 앞에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던 나는 문득 미묘한 느낌에 우뚝 멈춰 섰다. 뒤통수에서 머리카락 딱 한 가닥만 허공으로 주욱 잡아당겨지는 느낌. 등을 돌리고 있어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때의 날카로운 기미. 갑자기 등줄기가 곤두서는 감각에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솔직히 기분은 1초에 백만 번 정도 ‘돌아서지 마, 돌아서지 마.’라고 외치고 있는 느낌이다. 응응, 공포 영화에서 뒤를 돌아보려는 희생자를 보면서 기도문처럼 중얼거리는 그거. 느낌은 느낌일 뿐. 그런 무서운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지. 자, 어서 돌아보고 현실에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신발장 문은 얌전히 닫혀 있었다. 그러나…….
달칵.
술을 마시고 개꿈을 꿨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숙취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마시다가 그대로 고꾸라져 잤는지 옆으로 누운 내 눈앞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 즐비한 접시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었다. 아깝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모처럼의 휴일에 모처럼의 사치다. 게다가 가장 맛있는 부분은 이미 다 먹어 치웠으니까.
그나저나 어제처럼 술을 많이 마신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 내 꼴을 본다면 어떻게 그렇게 절제도 없이 마실 수 있느냐며 혀를 차겠지만, 솔직히 크게 폭음을 한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소주잔으로 한 잔씩, 여섯 종류쯤 되는 술을 조금씩 맛보았을 뿐이다. 일단 멀쩡할 때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왜 여기 맥주 캔들이 널브러져 있지. 으음, 아무래도 미스터리 중 하나인 ‘술이 술을 마시는 상황’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뭐, 언제나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지…….
럼, 진, 보드카, 테킬라, 위스키, 브랜디.
조리장에게 추천받은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종류로 딱 한 병씩만 샀다. 지갑을 털릴 각오를 했지만 보편화돼서 그런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아서,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번 와인만 맛보았던 날보다는 훨씬 빨리 취했는데, 솔직히 마시는 순간 독주라고 느끼긴 했지만 취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고주망태가 되어 버린 것은 예상외의 일이었다. 빨리 마신 것도 아니고, 고양이가 우유를 핥는 것마냥 할짝거리는 수준으로 마셨는데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매우 억울하다.
일단 내가 이성이 있을 때는 이렇게 마셨었는데.
저번 휴일, 그러니까 작년 설날 연휴에 와인을 마셨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서서히 취기가 올랐고, 숙취도 덜했다. 아니, 어쩌면 더했을지도. 체질상 술이 반쯤 독으로 작용하는 몸이라 자주 마실 일이 없어서 기억이 흐릿하다.
독. 사실 그게 맞는 말이다.
나는 술에 대한 내성이 매우 약한 편이다. 지금은 소량을 꾸준히 섭취해 온 덕에 간신히 술이 약한 사람 정도의 해독 능력은 가지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한 모금을 마시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인지 능력을 잃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뼈마디가 불에 달군 것처럼 아프고 근육 사이사이에 소금을 친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구토감과 열, 추위와 더위가 동시에 느껴지고 땀이 아니라 즙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탈수가 진행되어서, 수액을 맞지 않으면 회복하지 못할 정도였다. 뭐, 그건 꽤 예전의 일이고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어지간해서는 입에 대지 않고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이 독극물을 거금을 들여서 사들이고, 모처럼의 소중한 휴일에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는 타성적인 자살 같은 짓을 하는 이유는 내가 죽음이 가까운 고통에 쾌감을 느끼는 변태라서가 아니다. 물론, 맛을 좋아해서는 더욱 아니다. 그저 단순히, 내 직업과 관련이 좀 있을 뿐.
내 직업은 요리사다. 음, 조리사라는 게 보다 옳은 표현이지. 제철 식재료로 창의적이고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파는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소스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 바쁠 때는 굽기도 한다. 솔직히 썰고, 굽고, 볶고, 삶고, 튀기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내 업무 파트는 소스다.
보통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은 원래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싫어하게 되는 게 대부분이라지만, 다행히 나는 내 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절대 앉으면 안 되는 시끄러운 공간에서 뜨거운 열기를 맞으며 무언가를 열두 시간 동안 휘젓는 작업을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미각이 있는 동물들이 그러하듯,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꽤 좋아한다. 아, 당연히 먹이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맛있는 것을 만들려면 일단 어떤 맛있는 것들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기본적인 논리에 따라 나는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먹는 것에 사용하고 있다. 휴일에는 사실 대부분 새로운 소스를 만들거나 창작 요리를 시도해 보고, 스스로의 레시피를 만드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슬슬 내가 왜 독극물을 스스로 마시는 자해를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힐 것 같은데, 내가 먹으려고 시도하는 맛있는 것에는 술도 포함되어 있다. 숙취라는 페널티가 있는 이상 술에 도전하려면 설날이나 추석 같은 긴 연휴, 아니면 가게가 리모델링하느라 직원들에게 휴가를 준 이런 때가 아니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저번 휴일은 와인에 썼고, 이번 휴일은 증류주,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전통주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사실 지금은 맛있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고, 그저 ‘오크통 향’이라든가 ‘농후한 맛’이라든가 ‘시간을 머금은 향기’ 따위의 애매모호한 단어로 상상만 하던 맛을 실제로 혀 위에 올려놓고 느끼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이번 증류주는 갑자기 난이도를 너무 높였던 것 같다. 역시, 그냥 맥주나 열 종류 사다 놓고 맛볼 걸 그랬나.
슬슬 밑에 깔려 있던 한쪽 팔이 저려 오기 시작해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벌렁 누웠다. 한참 누워 있어서 그런지 두통은 좀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대로 계속 누워 있고 싶었지만, 갈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지를 그러모아 어기적거리며 냉장고로 다가섰다.
작은 생수병 하나를 꺼내서 그대로 벌컥벌컥 마시면서 차가운 물로 식도의 위치와 물이 위장까지 도달하는 속도를 확인하고 나니 그럭저럭 눈앞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일어서면서 흘긋 내려다본 거실은 생각보다 난장판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빨리 치워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나는 신발장 앞으로 다가섰다.
반듯하게 닫혀 있는 문 앞에 서서 나는 조금 실소하고 말았다. 대체 뭘 확인하고 싶은 건지. 문득 얼마 전 누군가와 나누었던 시답잖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별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괴담 같은 것이다.
낮에 직장에 가느라 집을 비우면 텅텅 빈 집에 노숙자나 외부인이 숨어들어서 생활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리고 집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침대 아래에 숨거나 다락에 숨거나 하며 살다가 집주인이 외출하면 슬그머니 다시 기어 나와서 생활한다.
그 이후 이야기는 여러 패턴이 있지만 주로 놀러 온 집주인의 친구가 침대 아래에 누워 자다가 숨어 있던 괴한과 눈이 마주친다거나, 혹은 생필품이 줄어드는 속도를 수상하게 생각한 주인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발견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 괴담을 어제의 개꿈에 연결시켜서 진지하게 고민하기에는 개연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숨는다면 왜 하필 신발장에 숨는단 말인가.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열어 보는 곳이다. 게다가 집주인인 내가 있는데 왜 문을 열고 튀어나오는 건지. 어쨌든 어제 그 남자는 술김에 꾼 개꿈인 게 분명하지만, 워낙 꿈이 현실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인지 신발장이 꽤 신경 쓰였다. 뭐든 확인해서 나쁠 건 없지.
천천히 신발장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혹시, 하는 긴장감에 고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단숨에 벌컥 열었다.
“음.”
뭘 기대한 건지.
맥이 빠져서 피식피식 웃으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비스듬히 정리된 우산, 가지런하게 놓인 운동화, 구두, 부츠 따위의 신발들. 남자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였다. 조용히 문을 닫은 나는 거실로 터덜터덜 걸었다.
거 꿈 한번 생생하네. 그나저나 이 거실은 어떡하지.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는데. 씻고 치울까, 치우고 씻을까.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산란한 술병들과 음식 접시들 앞에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던 나는 문득 미묘한 느낌에 우뚝 멈춰 섰다. 뒤통수에서 머리카락 딱 한 가닥만 허공으로 주욱 잡아당겨지는 느낌. 등을 돌리고 있어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때의 날카로운 기미. 갑자기 등줄기가 곤두서는 감각에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솔직히 기분은 1초에 백만 번 정도 ‘돌아서지 마, 돌아서지 마.’라고 외치고 있는 느낌이다. 응응, 공포 영화에서 뒤를 돌아보려는 희생자를 보면서 기도문처럼 중얼거리는 그거. 느낌은 느낌일 뿐. 그런 무서운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지. 자, 어서 돌아보고 현실에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신발장 문은 얌전히 닫혀 있었다. 그러나…….
달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