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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16화)
第六章 운명의 길에 첫발을 딛다(4)


노인의 극심한 노기에 반응한 효로의 눈이 적안으로 변하며 몸에서 지독한 독기가 흘러나와 주변의 초목과 대지를 검게 물들였다.
서둘러 신형을 뒤로 물린 노인은 자신의 노기가 효로의 기감을 자극했음을 깨닫고 마음을 다스렸고, 효로의 독기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효로의 기세가 줄었지만, 여전히 지독한 독기에 노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효로에게서 떨어졌다. 길이 열리자 효로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독기가 닿은 땅을 밟기는 껄끄러웠던 초전우는 멀리 우회하면서 그들을 뒤따랐고, 효로와 할아버지만 앞뒤로 나란히 걸었다.
그의 기감을 강하게 자극하는 독기가 손자의 몸에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기에 노인은 선뜻 그리웠던 손자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내공을 전부 동원해서라도 독기를 막으며 다가설 수 있겠지만, 그것이 손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마을로 내려올 때 그토록 즐거워하던 손자의 모습이 떠올라 더 괴로웠다.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를 두고 떠난 자신의 잘못이 날카롭게 심장을 찔렀다. 노안에 물기가 그득 맺혔다.

북풍냉검과 은림신접, 단원들이 속속 도착했고, 그들은 멀찍이 떨어져 노인과 효로의 뒤를 따르기만 했다. 모든 단원이 모두 합류하자 북풍냉검의 명으로 정무추포단은 두 사람을 호위하듯 넓게 퍼져 주변을 감시했다.
효로는 여전히 비칠대며 끊임없이 움직였고, 노인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르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기묘한 동행은 한참을 이어졌다.
무거운 분위기 탓인지 은림신접이 전음으로 북풍냉검에게 물었다.
“저 노인은 누구십니까?”
“소년의 조부라 하더군. 자세한 내력은 나도 모른다네.”
“제가 느끼기에는 대단한 노인인 듯합니다.”
“난 그의 경지를 추측할 수도 없네.”
북풍냉검의 대답에 은림신접의 놀란 전음이 전해졌다.
“네?”
“노인의 경지는 아마 맹주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네.”
“그 정도입니까?”
북풍냉검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림신접은 그제야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함을 깨닫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손자가 당한 일로 그가 분노해 단가장과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쓰려 한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모든 일을 모른 척 눈감아야 하는가? 아니면, 초고수를 상대로 마을 사람들과 단가장을 보호해야 하는가? 어느 것이 협의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정종무인으로 취할 도리인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갑자기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어디까지 따라올 건가?”
그냥 생각 없이 노인을 따르던 북풍냉검은 선뜻 입을 열어 대답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는가?
“저희가 어떻게 하면 어르신의 심경이 편하시겠습니까?”
“내가 저 아이를 맡을 테니 자네들은 이 아이에게 대법을 펼친 놈을 찾게. 조만간 자네들을 찾을 테니 그때 놈이 있는 곳을 일러 주게.”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북풍냉검이 입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과 단가장에 손을 쓰실 작정이십니까?”
노인의 음성이 싸늘하게 변했다.
“손을 쓰겠다면?”
북풍냉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림없을지는 모르지만, 목숨으로 어르신을 막아야지요.”
노인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손을 쓸 생각은 없네. 그들을 용서하고 안 하고 하는 결정뿐 아니라 모든 것은 이 아이에게 달려 있네. 이 아이가 원한다면, 그 누구도 내 손속을 막을 수 없네.”
“부디 관대한 처분을 부탁드립니다.”
“그만들 가 보시게.”
노인의 축객령에 북풍냉검이 걸음을 멈추고 최대한 공손하게 포권을 취했다.
“보중하십시오, 어르신.”
천천히 움직이는 노인과 소년의 신형이 점차 멀어졌다. 북풍냉검은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 섰다가 몸을 돌렸다.
“삼조장은?”
“소년을 막다가 모두 죽었습니다.”
초전우의 보고에 북풍냉검이 얼굴을 굳혔다.
“전부?”
“네.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소년이 마을에 들어 선 것으로 보아…….”
채 말을 잇지 못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초전우의 애통함이 절절히 전해지는 탓에 북풍냉검은 더 캐묻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막으려 몸을 던졌을 그들의 모습은 굳이 자세히 듣지 않아도 능히 짐작하고 남았다.
삼조의 죽음에 분노한 사조장이 다가와 물었다.
“뒤를 쫓을까요?”
북풍냉검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꿈도 꾸지 말게.”
은림신접이 덧붙였다.
“그들은 정종무인으로 마땅히 선택해야 할 길을 걸었네. 그리고 소년이 직접 연관되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소년도 희생자가 아닌가. 소년이 아니라 모든 일의 원흉인 인면마의에게 삼조원들의 죽음을 물어야 할 것이네.”
사조장 극진도 홍황영은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북풍냉검이 굵은 음성으로 명을 내렸다.
“전원 단가장으로 돌아간다. 당분간 그곳에 머물며 인면마의의 종적을 찾는다. 이동!”
“존명.”
북풍냉검을 시작으로 정무추포단은 단가장으로 신형을 날렸다.

효로의 이동 방향을 가늠하던 노인의 눈에 다시 습기가 어렸다.
“녀석,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더니 허름한 초옥이 그립더냐?”
위험한 상태인 효로를 당장 어찌할 수 없기에 때를 기다려야 했다. 기감을 높여 그의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몸 안을 가득 채운 독기가 아주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독기가 줄어들면 자신을 치료한 의원에게 효로를 데리고 가 다시 신세를 져야 할 터였다.
‘그 친구가 또 도와줄지 모르겠군.’
병을 치료하며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산책하는 듯 손자와 걷는 산길은 예전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밝고 환한 달이 비추는 산길은 고즈넉했고,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었다. 다만, 강중거리던 효로의 걸음이 비틀거렸고, 귀여웠던 얼굴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는 것이 노인의 가슴을 아리게 하였다.
자신이 분을 일으키면 그 기운에 효로의 독기가 발작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노인은 치솟으려는 분을 삭이려 먼 산을 바라보며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어둠이 점점 짙어질 무렵 노인과 효로는 행복했던 초옥에 다다를 수 있었다. 노인은 초옥의 문간에 걸터앉아 효로의 다음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효로는 초옥에 다다르자 마당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초점 없는 회색 시선은 멍하니 초옥을 향한 채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밤은 점점 깊어졌고, 싸늘한 겨울 칼바람이 효로의 몸을 거칠게 베며 지나갔다.
어느 순간, 효로의 몸이 아래로 스르르 가라앉았다. 노인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손자의 몸을 받아 들어 품에 안았다. 손자의 몸에 깃든 극독, 그 독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의 머릿속에 없었고, 넘어지면 손자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취한 행동이었다.
노인은 가슴이 뜨끔한 느낌에 서둘러 내력을 끌어올려 장기를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독기가 심장을 침습했는지 가슴 어림에서 뻐근한 통증이 미약하게 피어났다. 내력으로 장기에 스며든 독을 기맥으로 끌어들여 장기의 손상을 최소가 되게 조처한 노인은 품에 안긴 손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괜찮다. 이제 다 괜찮아질 거다. 걱정하지 마라. 불쌍한 내 새끼.”
다행히 손자의 몸에서 풍기던 독기는 서서히 줄어들더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노인의 관심 밖의 문제였지만…….
‘너무 가볍구나.’



第七章 모이는 암운(暗雲) 속에서도(1)


손자를 안은 노인은 파리하게 야윈 손자의 가벼움에 눈시울을 붉히며 그저 등을 쓸어내리며 아리고 메이는 가슴을 달래고만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시간이 흐르는 것도, 어둠이 짙어 가는 것도, 밤이 익어 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손자의 등과 팔을 어루만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리웠던 손자를 안은 채 침묵을 지키던 노인이 그를 안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제법 오래 비워 둔 방은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노인의 가벼운 손짓에 문밖으로 쓸려 나갔다. 세간은 그대로 두었던지라 요를 깔고 손자를 조심스레 눕힌 노인은 두툼한 이불을 살며시 덮어 주었다.
노인은 의식을 잃은 손자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리며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겼다. 전해 들은 말에 따르면 손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로 할 수 없는 박대를 당했고, 단가장의 애송이에게 맞아 붓기가 가신 적이 없다고 했다.
‘감히!’
속이 부글부글 끓어 왔다. 손자의 몸속에 있을 독기가 다시 발작할까 봐 분기를 삭이며 노인은 그들을 어찌할지 골몰했다.
‘놈들을 모두 쓸어버릴까?’
작은 마을과 단가장 정도는 청소하는 데 한 식경도 걸리지 않을 터였다. 자신의 행동에 들고일어날 무림도 무섭지 않았다. 그들의 공분을 자아내 공적으로 지목되는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미 과거에 한 번 겪지 않았던가.
노인은 감히 자신의 길을 막는 놈들, 특히 손자에게 해를 끼친 놈들을 징치하는 일에 막아서는 놈들은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천하가 막는다면 천하도 박살 낼 자신이 있었다.
다만, 자신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손자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손자에게 해가 되지 않을지가 그가 가진 염려 전부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노인은 효로의 고요한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 이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고 나서 생각하자.’
노인은 손자의 완맥을 짚으며 내기를 흘려 넣었다. 처음에는 신중하기만 하던 노인의 표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첫 표정은 놀람이었다. 손자의 몸에 깃들인 독기의 정체조차 파악할 수 없었고, 그 지독함에 놀랐다. 어찌 인간의 몸으로 이런 독기를 견딜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내공을 운용할 수 없는 효로였기에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또한, 견디는 것뿐만 아니라 독기가 마치 내공처럼 기맥을 따라 전신을 유주하는 것에 놀랐다. 전신을 누비는 독은 혈맥으로 흘러 효로의 장부를 공격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기맥의 흐름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이 또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사였다.
마지막 놀람은 기맥을 따라 흐르는 독기가 점차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독기가 밖으로 새는 것도 아닌데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독기의 정체는 독에 그다지 식견이 뛰어나지 않은 탓에 밝힐 수는 없지만, 기맥을 따라 흐르는 독기를 관찰하며 그 이유를 자세히 살폈다.
‘녀석.’
노인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흐뭇한 미소. 손자의 기맥이 튼실한 정도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자신이 전한 내공심법을 열심히 수련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튼실한 기맥은 스며든 기운은 무엇이든 담고 누설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기맥으로 스며든 독기는 여전히 기맥을 따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독기가 전신을 누비며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독기의 유입 경로가 곡기와 마찬가지로 섭취를 통해 몸으로 들어온 것과 혈(血)·기(氣)의 기능 차이 때문이었다.
독공(毒功)의 공격을 받았거나 피부로 유입되었더라면, 전신으로 침습하는 독의 공격을 심법으로 막을 수 없었겠지만, 섭취를 통해 들어온 독기는 한 곳에 뭉쳐 있었기에 아마 통제가 가능했으리라. 손자에게 전한 내공심법이 스스로 몸을 방어하는 위기(衛氣)를 키운 것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혈이 심장에서 나와 전신으로 돌며 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면, 기는 그 혈을 돌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기운을 말하는 것으로 전신에서 생겨 기맥을 따라 전신 혈도를 주행하며 혈의 작용을 돕는다.
그중에 위기는 체내의 나쁜 기운을 흡수하여 몸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내공심법으로 강화된 위기가 효로의 몸에 들어온 독기를 혈에서 뽑아 기맥으로 흡수해 갈무리한 것이리라.
효로가 노인이 전한 심법은 취기(取氣)의 효능이 탁월한 심법이었다. 축기보다는 취기에 중점을 둔 탓에 수련 초기에는 단전에 쌓이는 내공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초식을 펼칠 때는 전신에 뿌려 둔 내공을 취하거나 자연지기를 취해 펼치면 그만이지 굳이 단전에 많은 내공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선조의 오만이 만든 천고의 심법이었다. 더군다나 단전에 쌓을 수 있는 내공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기를 쉽게 취할 수만 있으면 주변에 존재하는 기는 무한한 것이지 않은가.
효로의 단전이 열리지 않은 것도 심법의 독특함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운기조식을 취하면서 받아들인 기운을 단전에 모으는 다른 심법과 달리 전신으로 흩뿌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 취하는 특이한 운공법이 굳이 단전을 열 필요가 없는 이유였다. 물론 효로의 경지가 높아지면 단전도 개방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경지까지 이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효로가 단소운의 내공이 실린 모진 매질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효로는 몰랐지만 전신으로 흩뿌린 기운이 근골을 지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로 단소운의 매질은 단단한 기맥과 튼튼한 근골을 만드는 데 일조(一助)한 결과를 가져왔다.
노인이 그저 구결과 의미만 간단하게 전했기에 지금은 효로가 기를 운용하지는 못하고 그저 기초만 닦은 것이지만,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위기가 스스로 움직일 정도의 성취라면 이제 제대로 취기하는 법과 기를 움직이는 법을 배워도 충분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