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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내 인생 최초의 사고
분명 부드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눈빛이 닿는 부분마다 불이 붙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은 레이는 꼭 자신의 것인 양 은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하게, 그의 손은 은서의 뺨을 스쳤고 그 뜨거운 온기에 은서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머릿속 경고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100프로 위험한 상황이라며.
“우리 정말…….”
‘잤어요?’라고 물어보려던 은서는 나오려던 말을 속으로 집어삼켰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어젯밤 일이 조각조각 떠올랐고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통증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휙휙 표정이 바뀌고 있는 은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레이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왜 이렇게 뜨거워?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손끝을 타고 뜨거워진 여자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
꿈틀.
당황하는 얼굴로 자신의 손끝에서 멀어지려는 그녀의 모습에 레이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누가 봐도 딴생각 중인 여자의 얼굴에 심기가 불편해진다. 어젯밤 자신에게 매달려 온기를 나누던 여자는 어디로 가고 낯선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일까?
“설마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아니지?”
여자의 뺨에서 떨어져 나온 레이의 손은 거칠게 자신의 머리칼을 헝클었다. 평소 짜증이 올라올 때면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다는 안 나요. 거기서 나와서 호텔 어디냐고 물은 것까진 정확히 기억이 나는데…….”
잠시 머뭇거리던 은서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레이와 눈을 마주쳤다. 좁아진 미간이 그의 지금 기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 지금 몹시 기분 나쁨. 그런 표정이네.
“고작 기억나는 게 그 정도다 이거야?”
레이의 목소리엔 한껏 짜증이 섞여 있었고 은서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못할 짓 한 것 같잖아?”
예전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눈 큰 고양이 흉내를 내듯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여자 보게? 마음 약해지게 만드는 군?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그래, 어제 엄청 마셔 대긴 하더군. 말려도 듣지 않은 채 말이지.
은서의 말에 레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취해 휘청거리는 여자의 몸을 부축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어 번쯤 그냥 버려둘까 잠깐 고민하긴 했었다.
“미안해요. 필름이 끊기는 일이 많은 편은 아닌데…….”
“있긴 있다는 소리군?”
살며시 펴졌던 미간이 다시금 좁아졌다. 그 모습에 움찔, 은서의 눈빛이 다시금 흔들린다.
“그래, 취해 있었으니까 기억이 안 날 수 있어.”
일부러 잊어버린 건 아니니까.
레이의 고개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끄덕거려졌다.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아니야. 내가.”
그래, 내가 그 정도 이해력은 겸비한 사람이지.
“……네에.”
이 와중에도 자신감 넘치는 레이의 말에 은서의 고개가 살며시 끄덕여지려던 찰나였다.
안심한 여자의 표정을 확인한 레이는 그녀의 가녀린 몸을 그대로 밀어 넘어뜨렸고 침대 위로 떠밀린 여자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서리기도 전 뜨거운 자신의 입술을 여자의 입술 위로 고스란히 덮어 버렸다.
“읍!”
“하지만…….”
갑작스러운 키스에 버둥거리는 은서의 고개를 한 손으로 고정시킨 레이는 맛있는 음식을 발견한 맹수처럼 아주 짧은 찰나 입맛을 다셨고 이내 깊게 그녀의 입 안을 탐하기 시작했다.
말캉거리는 여자의 입술을 혀끝으로 맛본 후 앙다물어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뜨겁고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 느낌. 어젯밤 느꼈던 짜릿한 뜨거움에 레이는 그제야 굳어져 있던 미간 사이를 폈다.
기억조차 남지 않았던 밤이란 게 조금 상처긴 하네. 키스 한 번에 나는 온몸이 저릿하는데 말이지.
“으읍! 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정신은 그가 전해 주는 열기로 인해 이미 몽롱해져 있었고 그의 집요함은 은서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어젯밤 마신 술이 아직 채 깨지 않은 것인지 몸이 공중에 둥둥 뜬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은서의 마지막 버둥거림을 느낀 레이는 자신으로 인해 부풀어 오른 여자의 입술을 혀끝으로 핥으며 잔뜩 짙어진 눈빛으로 은서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하아.”
말조차 나오지 않는 은서는 그가 옮긴 열기로 인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뭐 하는…….”
그를 향해 간신히 입을 뗀 은서는 어느새 다가와 자신의 볼에 입 맞추는 남자로 인해 더 이상의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싫으면 지금 거부해. 그렇지 않으면 멈출 생각 없으니까.”
방금 전까지 사납게 밀어붙이던 남자는 여유로운 몸짓으로 은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거칠던 입맞춤과 달리 너무나 살며시, 부드럽게 내려앉는 입술의 감촉. 그러고는 곧바로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 뽀얗게 드러난 여자의 목덜미에 도장을 찍듯 입술을 내리눌렀다.
움찔.
레이의 행동에 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바르르 몸을 떨었다. 발끝부터 저릿하게 올라오는 야릇한 기분.
“싫어?”
레이는 흐릿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
은서의 머릿속에 경고등은 이미 켜질 대로 다 켜져 있었지만 이성의 외침과는 달리 마음속에 열기는 그를 거부하고 싶지 않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잊지 마. 안 그럼 용서 안 해.”
* * *
새하얀 살결이 손끝을 지나칠 때마다 그 스치는 짧은 찰나가 아쉬워 레이의 입에선 탄식이 흘러나오려 했다. 부드럽고 매끄럽고 폭신한 느낌, 그 어떤 고급 구스도 이런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아…….”
레이의 입술이 천천히 삼키고 있던 은서의 입술을 놓아주자 자그맣고 빨간 입술에선 깊은 한숨 섞인 신음이 새어 나온다.
뜨거운 숨결이 순간 터져 나오자 레이는 그런 은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잔뜩 경직된 채 힘이 들어가 있는 몸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너무 뻣뻣해.”
할짝, 레이는 혀끝을 세워 은서의 입술을 핥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린아이 달래듯 은서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그러곤 이내 천천히 고갤 들어 은서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발그레해진 두 뺨을 하곤 레이의 다음 행동이 무엇일지 걱정 반, 긴장 반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하고 있는 은서를 향해 레이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번엔 잊지 말고 하나하나 다 기억해.”
입꼬리를 살며시 끌어 올리며 레이가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섹시하게 들려오는지 은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집어삼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레이는 은서의 입술에서 떨어져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살결의 촉감이 레이의 입술을 통해 전해 오자 아찔한 기분에 은서는 두 눈을 감아 버렸다.
* * *
“이봐,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잖아?”
“그냥 좀 잠깐만 내버려 둬요!”
은서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조금 전 남자와의 일이 머릿속을 웅웅거리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은서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그가 주는 열기에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기억나지 않았던 어젯밤 일은 새로운 기억으로 덮여 버렸다.
“이불 뒤집어쓰고 안 나오겠다 그거지?”
레이는 그런 여자의 반응이 서운하면서도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애벌레로 변신한 여자를 바라보며 빙긋 웃어 버렸다.
“배고파, 그만하고 밥 먹자.”
“밥 먹을 기분 아니거든요?”
꼼지락거리며 고개만 내민 은서는 잔뜩 인상을 쓰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부끄러움에 몸이 타 버릴 것 같았다.
“그럼 밥 먹을 기분으로 만들어 줄까?”
씨익. 남자의 입꼬리가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
“또, 또 하려는 건 아니죠?”
“뭘?”
레이는 얼굴만 간신히 내어놓고 꿈틀거리는 애벌레가 되어 버린 은서의 몸을 이불째로 끌어안았다.
“뭘 또 해?”
“그거요. 그거! 암튼 난 못 해요. 절대 못 해!”
“밥도 안 먹었는데 세 번 이상은 나도 힘들어.”
은서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레이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키득거렸다.
“그럼 뭔데요?”
“어제 가져온 기획안 제이디한테 보냈어. 읽고 답변은 해 주기로 했고.”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에 은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예요? 정말이죠?”
“당신 말처럼 그녀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직접 만나긴 어려울 테고, 아무튼 기다려 보라고.”
“진짜요? 거짓말 아니죠?”
“그런 거짓말해서 뭐 하게?”
레이의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은서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조금 전까지 울상이었던 얼굴은 금방 환하게 바뀌었다.
“내용이 괜찮다면 검토하고 연락 주겠지.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하며 레이는 이불에 꽁꽁 싸여 있는 여자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자신보다 20cm는 족히 작아 보이는 여자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이제 밥 먹자. 배고파.”
“알았어요. 먹어요, 밥.”
은서의 대답을 듣고서야 레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숙였던 허리를 세웠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어디론가 걸어갔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심장이 쿵쿵거리지?
연애란 것을 하지 않은 지 어느덧 5년. 연애 세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애 면역력은 현저히 떨어진 모양이다.
주책이다, 주책이야.
“그리고 이거 입어.”
잠시 사라졌던 레이는 검은색 종이 가방을 가져와 은서에게 내밀었다.
“이건?”
더 팜므(The Femme)의 로고와 화려한 꽃 문양을 한 독특한 디자인의 종이백에는 그동안 은서가 갖고 싶어도 갖지 못했던 팜므의 한정판 란제리가 들어 있었다.
“당신은 여기 쇄골부터 가슴으로 떨어지는 라인이 예쁘니까, S컬렉션보다 이쪽이 더 잘 어울려.”
레이의 손가락이 은서의 쇄골을 훑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얇은 이불로 간신히 가려진 그녀의 가슴 언저리를 스치듯 매만지곤 말했다.
“얼른 준비해. 꾸물거리다간 나한테 먹히는 수가 있어.”
* * *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 사람들의 수다 소리, 거기다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치킨의 향기. 1인1닭을 외치며 닭은 사랑이며 진리라, 그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은서는 오늘따라 더욱 공격적으로 치킨느님을 영접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락처도 모른다 그거야? 으이그, 멍청이!”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야무지게 닭 날개를 뜯던 은서는 목이 타는지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영의 말처럼 자신이 멍청하단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연락처라도 물어봤어야지!”
“그럼 어떡해? 그쪽은 나랑 연락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
밥도 같이 먹고, 웃으면서 이야기까지 잘했는데, 이상하게 그는 공항으로 데려다주던 차 안에선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 남자가 공항까지 데려다줘? 그런 비싼 속옷도 선물로 주고?”
“아, 몰라. 생각하면 나도 머리 아파. 술이나 마셔!”
분명 부드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눈빛이 닿는 부분마다 불이 붙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은 레이는 꼭 자신의 것인 양 은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하게, 그의 손은 은서의 뺨을 스쳤고 그 뜨거운 온기에 은서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머릿속 경고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100프로 위험한 상황이라며.
“우리 정말…….”
‘잤어요?’라고 물어보려던 은서는 나오려던 말을 속으로 집어삼켰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어젯밤 일이 조각조각 떠올랐고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통증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휙휙 표정이 바뀌고 있는 은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레이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왜 이렇게 뜨거워?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손끝을 타고 뜨거워진 여자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
꿈틀.
당황하는 얼굴로 자신의 손끝에서 멀어지려는 그녀의 모습에 레이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누가 봐도 딴생각 중인 여자의 얼굴에 심기가 불편해진다. 어젯밤 자신에게 매달려 온기를 나누던 여자는 어디로 가고 낯선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일까?
“설마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아니지?”
여자의 뺨에서 떨어져 나온 레이의 손은 거칠게 자신의 머리칼을 헝클었다. 평소 짜증이 올라올 때면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다는 안 나요. 거기서 나와서 호텔 어디냐고 물은 것까진 정확히 기억이 나는데…….”
잠시 머뭇거리던 은서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레이와 눈을 마주쳤다. 좁아진 미간이 그의 지금 기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 지금 몹시 기분 나쁨. 그런 표정이네.
“고작 기억나는 게 그 정도다 이거야?”
레이의 목소리엔 한껏 짜증이 섞여 있었고 은서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못할 짓 한 것 같잖아?”
예전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눈 큰 고양이 흉내를 내듯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여자 보게? 마음 약해지게 만드는 군?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그래, 어제 엄청 마셔 대긴 하더군. 말려도 듣지 않은 채 말이지.
은서의 말에 레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취해 휘청거리는 여자의 몸을 부축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어 번쯤 그냥 버려둘까 잠깐 고민하긴 했었다.
“미안해요. 필름이 끊기는 일이 많은 편은 아닌데…….”
“있긴 있다는 소리군?”
살며시 펴졌던 미간이 다시금 좁아졌다. 그 모습에 움찔, 은서의 눈빛이 다시금 흔들린다.
“그래, 취해 있었으니까 기억이 안 날 수 있어.”
일부러 잊어버린 건 아니니까.
레이의 고개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끄덕거려졌다.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아니야. 내가.”
그래, 내가 그 정도 이해력은 겸비한 사람이지.
“……네에.”
이 와중에도 자신감 넘치는 레이의 말에 은서의 고개가 살며시 끄덕여지려던 찰나였다.
안심한 여자의 표정을 확인한 레이는 그녀의 가녀린 몸을 그대로 밀어 넘어뜨렸고 침대 위로 떠밀린 여자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서리기도 전 뜨거운 자신의 입술을 여자의 입술 위로 고스란히 덮어 버렸다.
“읍!”
“하지만…….”
갑작스러운 키스에 버둥거리는 은서의 고개를 한 손으로 고정시킨 레이는 맛있는 음식을 발견한 맹수처럼 아주 짧은 찰나 입맛을 다셨고 이내 깊게 그녀의 입 안을 탐하기 시작했다.
말캉거리는 여자의 입술을 혀끝으로 맛본 후 앙다물어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뜨겁고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 느낌. 어젯밤 느꼈던 짜릿한 뜨거움에 레이는 그제야 굳어져 있던 미간 사이를 폈다.
기억조차 남지 않았던 밤이란 게 조금 상처긴 하네. 키스 한 번에 나는 온몸이 저릿하는데 말이지.
“으읍! 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정신은 그가 전해 주는 열기로 인해 이미 몽롱해져 있었고 그의 집요함은 은서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어젯밤 마신 술이 아직 채 깨지 않은 것인지 몸이 공중에 둥둥 뜬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은서의 마지막 버둥거림을 느낀 레이는 자신으로 인해 부풀어 오른 여자의 입술을 혀끝으로 핥으며 잔뜩 짙어진 눈빛으로 은서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하아.”
말조차 나오지 않는 은서는 그가 옮긴 열기로 인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뭐 하는…….”
그를 향해 간신히 입을 뗀 은서는 어느새 다가와 자신의 볼에 입 맞추는 남자로 인해 더 이상의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싫으면 지금 거부해. 그렇지 않으면 멈출 생각 없으니까.”
방금 전까지 사납게 밀어붙이던 남자는 여유로운 몸짓으로 은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거칠던 입맞춤과 달리 너무나 살며시, 부드럽게 내려앉는 입술의 감촉. 그러고는 곧바로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 뽀얗게 드러난 여자의 목덜미에 도장을 찍듯 입술을 내리눌렀다.
움찔.
레이의 행동에 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바르르 몸을 떨었다. 발끝부터 저릿하게 올라오는 야릇한 기분.
“싫어?”
레이는 흐릿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
은서의 머릿속에 경고등은 이미 켜질 대로 다 켜져 있었지만 이성의 외침과는 달리 마음속에 열기는 그를 거부하고 싶지 않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잊지 마. 안 그럼 용서 안 해.”
새하얀 살결이 손끝을 지나칠 때마다 그 스치는 짧은 찰나가 아쉬워 레이의 입에선 탄식이 흘러나오려 했다. 부드럽고 매끄럽고 폭신한 느낌, 그 어떤 고급 구스도 이런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아…….”
레이의 입술이 천천히 삼키고 있던 은서의 입술을 놓아주자 자그맣고 빨간 입술에선 깊은 한숨 섞인 신음이 새어 나온다.
뜨거운 숨결이 순간 터져 나오자 레이는 그런 은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잔뜩 경직된 채 힘이 들어가 있는 몸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너무 뻣뻣해.”
할짝, 레이는 혀끝을 세워 은서의 입술을 핥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린아이 달래듯 은서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그러곤 이내 천천히 고갤 들어 은서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발그레해진 두 뺨을 하곤 레이의 다음 행동이 무엇일지 걱정 반, 긴장 반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하고 있는 은서를 향해 레이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번엔 잊지 말고 하나하나 다 기억해.”
입꼬리를 살며시 끌어 올리며 레이가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섹시하게 들려오는지 은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집어삼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레이는 은서의 입술에서 떨어져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살결의 촉감이 레이의 입술을 통해 전해 오자 아찔한 기분에 은서는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이봐,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잖아?”
“그냥 좀 잠깐만 내버려 둬요!”
은서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조금 전 남자와의 일이 머릿속을 웅웅거리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은서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그가 주는 열기에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기억나지 않았던 어젯밤 일은 새로운 기억으로 덮여 버렸다.
“이불 뒤집어쓰고 안 나오겠다 그거지?”
레이는 그런 여자의 반응이 서운하면서도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애벌레로 변신한 여자를 바라보며 빙긋 웃어 버렸다.
“배고파, 그만하고 밥 먹자.”
“밥 먹을 기분 아니거든요?”
꼼지락거리며 고개만 내민 은서는 잔뜩 인상을 쓰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부끄러움에 몸이 타 버릴 것 같았다.
“그럼 밥 먹을 기분으로 만들어 줄까?”
씨익. 남자의 입꼬리가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
“또, 또 하려는 건 아니죠?”
“뭘?”
레이는 얼굴만 간신히 내어놓고 꿈틀거리는 애벌레가 되어 버린 은서의 몸을 이불째로 끌어안았다.
“뭘 또 해?”
“그거요. 그거! 암튼 난 못 해요. 절대 못 해!”
“밥도 안 먹었는데 세 번 이상은 나도 힘들어.”
은서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레이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키득거렸다.
“그럼 뭔데요?”
“어제 가져온 기획안 제이디한테 보냈어. 읽고 답변은 해 주기로 했고.”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에 은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예요? 정말이죠?”
“당신 말처럼 그녀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직접 만나긴 어려울 테고, 아무튼 기다려 보라고.”
“진짜요? 거짓말 아니죠?”
“그런 거짓말해서 뭐 하게?”
레이의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은서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조금 전까지 울상이었던 얼굴은 금방 환하게 바뀌었다.
“내용이 괜찮다면 검토하고 연락 주겠지.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하며 레이는 이불에 꽁꽁 싸여 있는 여자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자신보다 20cm는 족히 작아 보이는 여자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이제 밥 먹자. 배고파.”
“알았어요. 먹어요, 밥.”
은서의 대답을 듣고서야 레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숙였던 허리를 세웠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어디론가 걸어갔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심장이 쿵쿵거리지?
연애란 것을 하지 않은 지 어느덧 5년. 연애 세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애 면역력은 현저히 떨어진 모양이다.
주책이다, 주책이야.
“그리고 이거 입어.”
잠시 사라졌던 레이는 검은색 종이 가방을 가져와 은서에게 내밀었다.
“이건?”
더 팜므(The Femme)의 로고와 화려한 꽃 문양을 한 독특한 디자인의 종이백에는 그동안 은서가 갖고 싶어도 갖지 못했던 팜므의 한정판 란제리가 들어 있었다.
“당신은 여기 쇄골부터 가슴으로 떨어지는 라인이 예쁘니까, S컬렉션보다 이쪽이 더 잘 어울려.”
레이의 손가락이 은서의 쇄골을 훑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얇은 이불로 간신히 가려진 그녀의 가슴 언저리를 스치듯 매만지곤 말했다.
“얼른 준비해. 꾸물거리다간 나한테 먹히는 수가 있어.”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 사람들의 수다 소리, 거기다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치킨의 향기. 1인1닭을 외치며 닭은 사랑이며 진리라, 그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은서는 오늘따라 더욱 공격적으로 치킨느님을 영접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락처도 모른다 그거야? 으이그, 멍청이!”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야무지게 닭 날개를 뜯던 은서는 목이 타는지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영의 말처럼 자신이 멍청하단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연락처라도 물어봤어야지!”
“그럼 어떡해? 그쪽은 나랑 연락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
밥도 같이 먹고, 웃으면서 이야기까지 잘했는데, 이상하게 그는 공항으로 데려다주던 차 안에선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 남자가 공항까지 데려다줘? 그런 비싼 속옷도 선물로 주고?”
“아, 몰라. 생각하면 나도 머리 아파. 술이나 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