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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근무기 1권(5화)
2장 마왕성 도착(3)
원래 네크로맨시라는 것은 아무리 흑마법사라 할지라도 그리 쉽게 행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에 뿌려져 있는 죽음이란 이름의 힘에서 비록 거짓된 생명이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힘,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 두 손은 마왕 서열 2위인 언데드의 마왕을 상징하는 여섯 개의 인을 차례로 맺어 나갔고 그에 따라 내 몸속 깊이에서 나조차도 잊고 있던 그 힘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망자의 강을 건넌 이의 사념이여. 이승을 떠도는 망령이여. 나 지금 그대들에게 거짓된 육체를 주겠으니 너희들은 내게 그 힘과 충성을 맹세하라.”
주문이 끝나자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뼈들이 천천히 분해되더니 마치 사람의 유골과 같은 형태로 재구성되어 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네크로맨서의 술법.
혹자들은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스켈레톤들이 인간의 유골로만 만들어진다고만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네크로맨서들은 다른 동물의 뼈로도 스켈레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네크로맨서가 뼈라는 것을 주술에 이용하는 이유는, 단지 뼈가 죽음을 가장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물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꺼지고 영혼이 빠져나가면, 시체가 남는다. 그 시체 중에서 가장 먼저 썩는 것은 살이며,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뼈이다. 그리고 그 뼈조차도 결국은 사라져 새로운 생명으로 돌아간다. 결국 돌고 도는 세상의 바퀴에서 죽음이 담겨져 있는 마지막 형태가 뼈라는 것이다.
그런 뼈를 매개체로 죽음이란 힘을 이용하고, 그 속에서 거짓된 생명과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 네크로맨서들에게 그 뼈가 원래 어떤 것의 뼈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네크로맨서들이 뼈로 만들어 내는 거짓된 생명체들을 최대한 생전의 그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어 내려는 이유는, 단지 최대한 그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영혼이 머물다 떠난 곳에는 그 영혼의 사념과 생전의 기억이 조금은 남아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렇기에 생전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냈을 때, 그 안에 남아 있는 사념과 기억이 익숙한 육체에 반응하여 거짓된 생명의 부족한 자리를 채우고 최고의 성능이 발휘되는 것이다.
‘뭐, 하지만 지금은 성능이 문제가 아니지. 성능 따져 가며 만들다가는 시간도 시간이겠지만 기껏해야 돼지, 소, 닭 같은 가축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서 어디다 써먹었겠어.’
술법은 끝났고 결과는 나름대로 성공이었다. 내 앞에는 열 기 정도의 스켈레톤이 서 있었고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뼈들도 조금은 줄어들어 있었다. 물론 여전히 작은 산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이 방 가득히 쌓여 있었지만.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옆에 서 있을 엘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엘런은 내 옆에 서 있지 않았다.
“와아……! 스켈레톤이다, 스켈레톤!”
폴짝폴짝 뛰어서 해골을 향해 다가가는 소년이라……. 설명 자체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니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왠지 모르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내가 잠시 내 정신세계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할 동안, 엘런은 내가 만든 스켈레톤의 뼈밖에 남지 않은(아니, 처음부터 뼈였던) 그 얇은 팔을 올려도 보고 내려도 보며 마치 재밌는 장난감이 생긴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즐겁게 웃고 있던 엘런이 돌연 몸을 돌려 내게 오더니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근데 이상해, 카지한! 이 애들 말을 못해.”
……?!
3장 스켈레톤은 말을 못한다?(1)
나는 한동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혀도 성대도 없고 이성조차도 없는 스켈레톤이 말을 하는 게 이상한가, 아니면 말을 못하는 게 이상한가.
당연히 말을 못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저기, 엘런 님. 원래 스켈레톤들은 말을 못하는 건데요?”
“아냐, 옛날에 여기서 일하던 스켈레톤들은 전부 다 말할 줄 알았단 말이야.”
순간, 네크로맨시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성을 가진 언데드 몬스터는 매우 희귀한데, 그런 이성을 가진 언데드 몬스터가 생겨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술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드는 경우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은, 저승이나 이승에 남아 있는 영혼을 불러서 스켈레톤이나 데스나이트 등에 불어넣거나 자신의 의식의 일부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아무래도 서로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는 것이다 보니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완성도가 아주 낮아서, 보통의 언데드들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이성을 가진 완벽한 하나의 개체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힘들다.’
그래 분명 마왕성에서 일을 시키려면 그래도 뭔가 보통보다는 나아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대답하려는 내게, 엘런이 또다시 덧붙였다.
“하하, 그건…….”
“나랑 같이 술래잡기도 하고, 체스도 두고 했단 말이야. 얼마나 잘 놀아 줬는데. 옛날이야기도 해 주고.”
그 순간, 스승님께서 하신 그다음 말들이 생각났다.
‘또 다른 경우는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경우로, 이 경우에 대한 정확한 학설은 없지만, 언데드를 만드는 주재료에 아직 영혼이 남아 있었거나 그 언데드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 영혼을 강하게 끌어 왔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거기다 이 경우에 만들어지는 언데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다름이 없으며, 그 능력도 보통의 언데드에 비해 최소 몇 배의 성능을 자랑한다고 한다.’
즉, 보편적인 학설에 따르면, 영혼이 아직 남아 있는 재료로 높은 수준의 네크로맨서가 만들어 낸 완성도 높은 언데드의 경우 비교적 이성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일했던 언데드들은 대체 얼마나 수준 높은 술사가, 얼마나 좋은 재료들로 만들어 냈단 말인가!
“하하하……. 그건, 글쎄요. 왜 그럴까요?”
“불쌍하다, 저 애들. 말도 못하고.”
누가 지금 저 순진한 마왕자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원래 언데드는 말할 수 없는 거고, 이성을 가지고 말을 하는 언데드가 엄청나게 희귀한 것이란 사실을…….
“자아, 어쨌든 일단 올라가도록 하죠.”
아직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스켈레톤들을 바라보고 있는 엘런을 겨우 달래 가며 창고 문을 나서는데 아직도 멀뚱히 서 있는 스켈레톤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왠지 그 모습이 갑자기 기분 나빠서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너희들, 날 따라와라.”
척, 척, 척!
엘런에게 하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퉁명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스켈레톤들은 군소리 없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특별히 엘런에게 환호성이나 존경의 눈빛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스켈레톤들을 만들었는데 돌아오는 것이 마치 내 미숙함을 탓하는 듯한 말이라니.
가슴 한구석에 조금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었다.
척척척.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것은 뒤쪽, 스켈레톤들의 발소리뿐이었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으로 올려다본 저 멀리 계단 끝에는 언제 저기까지 올라간 것인지, 엘런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봐, 봐! 누나! 스켈레톤이야!”
“엘런, 우리 성에 스켈레톤이 있을 리가…….”
아니, 엘런 혼자만은 아니었나 보다. 엘런의 성화에 못 이겨 반쯤 끌려온 듯한 모습의 흑발의 소녀는, 엘런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계단을 걸어 올라오고 있는 나와 내 뒤의 스켈레톤들을 보고는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인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저기에 있는 저 소녀가 이 마왕성에서 나와 엘런을 제외한 유일한 사람이며, 엘런의 누나로서 푸른 지혜의 마왕이자 내 고용주인 엘레나 폰 레쉬람이었다.
“카지한, 당신이 만든 건가요?”
계단 위에서 들려오는 약간 놀란 듯한 그녀의 목소리. 그래, 바로 이런 것이지.
나는 마치 무대의 배우라도 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멋을 부리듯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 모두를 세워서 가슴에 올려놓았고, 가볍게 허리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계단 자체가 좁았고, 무대처럼 관객들보다 위가 아니라 아래쪽이었기에 그다지 멋져 보이진 않았겠지만, 대답을 대신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대단하군요. 실제 유골도 아니고 다른 뼈를 이용했을 텐데도 이 정도로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니, 이 정도 정밀함을 가지기는 분명 힘들 텐데…….”
계단을 다 올라와 그녀 앞에 일렬로 선 스켈레톤들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녀가 감탄하듯 말했다.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엘런 때와는 다른 그녀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약간 흥분했나 보다.
“마왕성을 위해 쓰레기 처리와 병력 보충을 동시에…….”
내 혀와 손은 엘런에게서 받지 못한 감탄을 그녀에게서 다 받기라도 하려는 듯, 더 많은 환호성을 원하는 욕심 많은 배우처럼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배우의 바람과는 다르게 관중들과 현 상황은 필요 이상의 환호를 줄 마음은 없는 듯했다.
“누나, 근데 쟤들은 말을 못해.”
“엘런, 사실은 아버지가 부리던 스켈레톤들은 언데드의 마왕성에서 특별히 데려와서 그랬던 거고, 사실 스켈레톤들은 대부분 말을 못해.”
관중이 싫증 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그의 차례가 끝났다는 것이겠지. 기립 박수도 무대 위로 던져지는 꽃도 없이 막 뒤로 쓸쓸히 사라지며,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스런 공연이었어’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삼류 배우처럼 나는 잔뜩 고양되었던 가슴을 차갑게 식혀야만 했다.
거기다 비교 대상조차 사실은 내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말이다.
다른 곳도 아니라 하필 언데드 마왕성 제품(?)이었다니…….
난 조용히 내 옆에 서 있는 스켈레톤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제각기 다른 동물 뼈가 뒤섞여 있는 재료들로 저 정도 완성도의 스켈레톤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도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러나 언데드 그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언데드의 마왕 네케로니크 샌 데아스.
그와 직접 계약을 맺은 대마도사급의 네크로맨서들이 1년에 단 몇 기만 만들어 낸다는 언데드 마왕성 제품이라면, 말하거나 살아생전의 기억을 가지는 건 기본에다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저번에 들어 보니 언데드 마왕성의 스켈레톤 중에는 소드 마스터도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말 그대로 급이 달랐던 것이다.
“저, 근데 카지한, 저랑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부터 집무실에 가 있을 테니 시간 나시면 잠깐 올라와 주셨으면 해요.”
“네, 알겠습니다.”
땅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검은 드레스 끝자락을 살짝 들고 계단을 올라 집무실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그렇게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자 ‘스켈레톤은 말을 못한다!’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엘런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내 스켈레톤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따금씩 혼자 ‘아, 말을 못하는 거였구나’, ‘어? 그럼 혹시 밥도 못 먹는 건가?’라며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안아 주고도 싶었다.
“각자 청소 용구를 들고 성 구석구석을 청소하도록.”
척, 척, 척!
명령을 따르기 위해 스켈레톤들은 질서정연하게 복도 끝 청소 용구 창고를 향해 걸어갔고, 엘런은 그 모습이 신기한지 ‘와아, 정말 불평 한마디도 없네?’라며 스켈레톤들의 행진을 따라갔다.
“후우…….”
기본적인 행위들에 대한 정보는 이미 재구축 단계에서 필요한 만큼 충분히 주입시켜 놓았기에 특별히 그들에게 성의 구조나 방 배치, 청소하는 방법 등 사사로운 것들을 가르칠 필요는 없었고, 이제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저들은 명령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술사의 명령만을 따르는 스켈레톤들의 명령 계통을 위해, 엘런과 엘레나의 명령도 따르라는 명령을 따로 한번 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누가 뭐래도 일단 그들은 내 상관임이 확실하니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순식간에 스켈레톤들이 엘런의 장난감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뭐, 그건 잠시 보류하자. 정 안 되면 엘레나의 명령만 따르라고 하면 되니까.”
잠시 그 문제에 대해선 접어 두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겨 엘레나가 있을 마왕 집무실을 향해 갔다.
먼지와 거미줄투성이인 지하와는 다르게 그나마 최근까지는 청소를 했었던 것인지, 백색마궁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마계의 것인 듯 보이는 백색 돌들로 이루어진 계단과 복도는 거미줄은커녕 마치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훗.”
처음 안내를 받을 때 내가 이 화려함에 눈을 빼앗겼던 관계로, 몇 번이나 엘런이 성을 돌며 재설명을 해 줬던 것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 성의 아름다움은 단지 이것뿐만이 아니다.
기둥마다 새겨져 있는 지혜의 마왕을 상징하는 특유의 문장, 그리고 벽 곳곳에 새겨져 있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세련된 문양과 조각들은 특별히 다른 장식품을 걸어 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화려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지금 현재로서는 보는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과연 마왕성, 설사 예산 한 푼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예전에 고용되었던 지방 귀족들의 저택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급이 다른 곳이었다.
그렇게 이 성의 아름다움에 취해 걷다, 마침내 마왕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이름과는 다르게 거창한 무엇인가는 없었다. 다른 마왕성의 방들과 마찬가지로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문에 지혜의 마왕을 상징하는 문장인, 펼쳐진 책 중앙에 검은 날개를 단 검은 눈동자 하나가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