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왕성 근무기 1권(11화)
5장 침략! 만드라고라(3)
“알았어요. 그렇다면 그 모체는 어디 있지요?”
“명하신다면 제가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엘런과 저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있을 테니 모체를 찾으세요. 그러면 내가 직접 그것을 태워 버릴 테니까.”
“예.”
“엘런, 여기 와서 앉아.”
엘레나는 그 자리에 싸 온 음식들을 펴 놓으며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엘런은 나와 엘레나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며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가 자신을 무섭게 쏘아보자 재빨리 그녀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런 분위기를 뒤로한 채,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 노력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왕의 명에 거역하고 이 정도 대가라면 결코 심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신이 도우셨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디 이것으로 내 평생의 운을 다 쓴 게 아니기를.
“휴우…….”
그렇게 조심스럽게 걷다가,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여길 수 있을 만한 거리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주변 풍경은, 절로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넓은 정원을 가득 덮은 만드라고라의 선홍빛 꽃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평생토록 하나 보기도 어려운 것이 이렇게 내 눈앞에 무더기로 펼쳐져 있다니. 그 이질적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겪어 온 현실이 오히려 꿈 같아 금방이라도 현실감을 잃을 것만 같았다.
예전에 흑마법과 네크로맨싱을 배울 때, 스승님께서 마계에서 인공 재배한 만드라고라 하나를 사 오신 적이 있다. 원래는 마법 약 제조를 위해 사 온 것이었는데, 스승님은 아까워서 손도 못 대더니, 결국 그대로 약장에 넣고 그저 고이 모셔 두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을 쓸 일이 생겼는지, 스승님은 조심스레 약장에서 그걸 꺼내 오시고서는 자신 앞에 있는 그것을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하셨다. 그리고 결국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칼을 드시고는, 끝부분을 약간 잘라서 솥에 넣고는 그것도 아까워서 손을 부들부들 떠시면서 솥을 저으셨다.
당시 만드라고라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겨우 약초 하나가 비싸 봤자 얼마이겠거니 하는 마음에, 그런 스승의 모습이 너무 웃기고 또 실망스러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은 스승님 앞에서 그걸 들고 장난쳤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로 저세상에 계신 어머니와 재회할 뻔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장장 네 시간에 걸친 꾸중을 가장한 고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때 들은 만드라고라의 가격에 그걸 들었던 오른손에 심리적 마비 증상이 와서는 며칠 동안 오른손에 힘이 안 들어갈 정도에다, 그 이후부터 약장에 있는 만드라고라라면 스승님보다 더 벌벌 떨었고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다른 약재를 대용으로 쓰자고 주장하게 되었으니 할 말은 다 했지 않은가.
그 당시, 그때까지는 들어 본 적도 감히 생각했던 적도 없는 금액의 존재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아직까지도 그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만드라고라에 관한 설명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기억하겠는가.
근데 그런 인공 재배가 아닌, 자연산 만드라고라가 이 정도의 숫자라니!
꽃밭이 아니라 금화와 온갖 보석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앞에 그 금화의 산은 내 것이 아닐뿐더러,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아, 어쨌든 서둘러야겠군. 그러니까 퀸 만드라고라에 핀 꽃은 보통 만드라고라들 것보다 조금 작고, 대신 꽃잎이 두 배 이상으로 크다고 했지?”
서두르지 않는다면 내가 준비하고도 오늘 점심은 굶어야 함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마왕성에서의 생활조차 위태로워질 테니 말이다.
“저, 누나…… 괜찮아?”
엘런은 지금 이 분위기가 괴롭기만 했다. 처음 성을 나설 때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찾을 길이 없이 사라져 버렸고, 누나는 카지한과의 싸움 이후로 아까부터 도시락 가방을 앞에 둔 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고 있었다.
“…….”
“저, 누나?”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엘런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언제나 상냥했던 누나였지만,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엘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왔을 때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풍경…….
유일한 어머니의 흔적이 이토록 망가져 버린 것은 어린 그로서도 마음이 아픈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처음 이 모습을 보았을 때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누나처럼 괴롭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까 카지한에게 화를 내는 누나의 모습에, 엘런은 왠지 누나에게 미안했다. 그때 자신은 이 꽃밭이 망가진 것보다는 카지한과 누나가 싸우는 모습에 더 가슴 아팠으니까. 왠지, 어머니를 사랑하는 누나의 마음을 배신한 것만 같았으니까.
누나에게는,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엄마의 흔적 일부보다는 카지한과 누나의 웃는 모습이 엘런에게는 훨씬 중요했으니까.
누나가 카지한에게 무섭게 대할 때 한순간 이런 꽃밭 같은 거 차라리 없었던 게 나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엘런.”
“응. 왜, 누나?”
갑작스런 부름에 대답하는 엘런의 얼굴은 마치 사탕을 훔쳐 먹다 걸린 아이 같았지만, 다행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엘레나는 동생의 그런 표정을 보지 못했다.
“왜 그래, 누나?”
“카지한은 나를, 아니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뭐?”
“나는 그를 잘 모르겠어. 어떨 때는 다정하다가도, 아까 전에 내게 말할 때는 다른 사람 같았어.”
“하지만 누나, 그건 우리를 생각해서…….”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가 우리의 감정을 조금 더 중요시했다면, 아무리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이까짓 것들보다는 내 명을 따라야 했어. 엘런, 난 잘 모르겠어. 카지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겠어.”
엘레나의 목소리는 조금 흐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카지한에게 위로 받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이 괴로운 현실에서 사실을 일깨우기보다는 그저 자신을, 자신의 투정을 자상하게 안아 주길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엘런은 자신도 모르게 조심스레 일어나 그런 그녀를 그 작은 몸으로, 그 작은 팔로 끌어안았다.
그녀가 앉아 있었기에, 그리고 몸을 숙이고 있었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엘런으로서는 왜 누나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왠지 이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자 그녀의 어깨가 조금 떨리는 듯하더니, 엘런의 옷이 점점 젖어 갔다.
“누나,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카지한이 좋아. 나도 카지한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는 몰라.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지내야 그에 대해 다 알 수 있는지도 몰라. 누나, 나는 백 년을 같이 살면서도 성에서 일하던 자들에 대해 제대로 몰랐어. 거기다 그들은 이제 떠나 버렸지.”
엘런의 목소리도, 약간 떨리고 있었다.
“누나, 카지한은 인간이야. 100년을 살기도 힘들 테지. 분명 우리보다 훨씬 빨리 늙고, 또 우리보다 빨리 죽을 거야. 그러니까 어쩌면, 그가 죽을 때까지도 우리는 그에 대해 전부 알 수 없을지도 몰라.”
엘레나의 떨림이 멈췄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 대해 다 알고 모르고는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다만 나는 카지한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카지한을 믿어. 그러니까 분명히 우리를 위해서 그랬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엘레나는 고개를 들어 엘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 이상 슬프거나 괴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동생의 생각에 놀랍고, 또한 한편으론 대견했다.
“……그래, 엘런. 네 말이 맞아. 어쩌면 나는 그를 믿기가 두려웠었나 봐.”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과연 자신은 어째서 그토록 불안해했고, 어째서 그토록 괴로워했을까. 무엇을 믿지 못하고,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이토록 어린 자신의 동생은 흔들림 없이 그를 믿고 있는데……. 그녀는 도시락 바구니를 열어서는 바닥에 천을 깔고, 접시들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 엘런! 그럼 카지한이 오기 전에 식사 준비를 하자. 카지한의 요리 솜씨가 대단해.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야.”
“와아!”
엘런은 윗옷 앞부분이 흠뻑 젖은 채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6장 퀸 만드라고라(1)
“후우, 도대체 이건 어디에 있는 거야!”
아무리 찾아도 보이는 것은 보통 만드라고라들뿐이다. 처음의 그 차올랐던 감격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 없고, 이제 남은 감정은 일대를 뒤덮은 만드라고라들에 대한 짜증과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다 뒤져 보나 하는 걱정, 그리고 귀찮음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아까 위험하게 반항하지 말고……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사람의 마음이란 과연 무섭구나. 목숨 걸고 말릴 때는 언제고, 조금 귀찮아지니 이런 생각마저 들다니. 하지만 이 넓은 곳에서 꽃잎 좀 큰 걸 어떻게 찾아야 되는지 막막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까 엘레나의 분위기를 보아 늦으면 더 큰일이 날 것 같던데…….
“처음에 내가 바라던 건 안정적인 생활이었는데, 용사는 안 쳐들어온다지만 어쩌면 이 피크닉이 용사의 침입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겠군.”
하긴, 피크닉을 데네시레카로 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일이었겠다만.
쉬이, 쉬익!
그렇게 퀸 만드라고라를 찾아 다른 것들을 헤집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쉬이, 쉬익!
빠르면서도 낮게 깔리는…….
나는 천천히 검을 들었다. 이 소리는 분명 뱀의 숨소리. 뱀이 적에게 하는 위협 소리였다. 뱀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보려 해 보았지만, 사방에 보이는 것은 만드라고라들로 붉은 꽃과 잎사귀들뿐. 눈에 의존하다가는 낭패를 볼 상황이었다.
거기다 이 코를 마비시킬 듯한 진한 꽃향기들도 문제였다. 만드라고라의 강한 향기가 사고 기관이라도 마비시키기라도 했는지 생각도 잘 되지 않았고, 거기다 이런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그 전장에서의 감각 또한 살아나지 않고 있었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리고 숨도 참았다.
핏빛의 기분 나쁜 색채도, 코를 마비시킬 것만 같던 꽃향기도 이제는 검은색 어둠에 먹혔고, 대신 그 어둠 위에 소리라는 물감으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쉬이, 쉬이.
다행히 위협 소리를 내는 것을 보아, 나는 사냥감이 아닌 단순한 침입자. 그저 그것에게서 약간만 거리를 둔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
스윽, 스윽.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도, 풀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무엇인가가 땅을 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방향이라면!
“제길!”
욕지거리가 뛰어나오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본능적으로 앞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들려오던 소리만으로는 몰랐지만, 뒤늦게야 깨어난 감각이 말해 주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쉬익! 쉬익!
내가 서 있던 그곳에는 어느새 거대한 구렁이가 새파란 독니를 드러내며 그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었다. 위협 소리도 작았고 들려오는 소리도 작아서 작은 뱀인 줄 방심했는데, 그것은 단지 비늘이 부드러워서 마찰음이 잘 나지 않았던 것에 불과했다.
아마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 독니에 목을 꿰뚫려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나도 물러졌군. 사령의 숲 데네시레카에서 만드라고라들한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뱀이라고 평범할 거라 생각하다니.”
옛 전우나 과거의 내 적들이 보았다면 땅을 치겠군. 겨우 저까짓 뱀한테…… 응? 그런데 잠깐! 저기 뱀 머리 바로 뒤쪽 목에 뭔가 보이는데, 저 붉은 것은 분명…….
“퀸 만드라고라!”
뱀의 머리 뒤쪽에 피어 있는 붉은색 꽃. 뱀의 움직임을 주시하느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잠깐잠깐 보이는 저 다른 것들에 비해 척 보기에도 커 보이는 꽃잎은 분명 퀸 만드라고라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과연 스스로 움직인다 하여 땅속을 헤엄치기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생물의 몸에 기생하여 그 몸을 뺏는 방식이었군.
“이거 적어도 더 이상 주변을 뒤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더 이상 찾아 헤맬 필요는 없게 되긴 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세를 잡으며 다시 검을 고쳐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단번에 목을 베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틈을 준다면, 목을 반쯤 잘랐을 때쯤 예리한 독사의 독니가 몸 깊숙이 꽂혀 진득한 독액을 혈관 속으로 흘려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