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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근무기 1권(12화)
6장 퀸 만드라고라(2)
쉬이!
뱀은 위협적으로 목을 이리저리로 흔들어 대면서 붉은색 그 긴 혀를 날름거렸다. 아마도 독니를 꽂을 틈을 찾는 거거나 아니면 나의 공격을 대비해 각도를 조절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뱀은 대체로 공격을 해 올 때 직선으로밖에 뻗어 오지 못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예전에 같은 용병 부대에 있던 녀석이 말해 준 것이었다. 자기가 지금까지 잡아먹은 뱀만 해도 수백 마리라고 자랑스레 말하던 녀석은, 결국 막사에서 자다가 어디선가 들어온 뱀에게 물려 죽었지만 말이다.
“후우…….”
천천히 호흡을 멈췄다. 한순간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 신중할 수밖에 없고, 온몸의 감각을 되살려야 하는, 아주 오랜만에 느껴지는 전장의 분위기였다.
쉬이.
탁.
쉬익!
탁.
녀석의 움직임에 맞춰, 새끼손가락으로 검 손잡이를 치면서 녀석의 리듬을 읽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반복되는 부분을 찾아야 했다. 다섯, 여섯, 녀석의 움직임을 미리 읽어야 했다. 일곱, 그래. 그렇게. 하나, 둘…….
이제 조금만, 다음 순간이 되면 내 검이 녀석의 목을 날려 버릴 것이었다. 일곱, 여덟. 그래, 지금!
“다크, 애로우!”
다음 동작을 하려는 순간, 리듬을 읽기 위해 들고 있던 새끼손가락 끝으로 검은 화살을 시전해 녀석이 머리를 옮기려던 곳을 향해 날렸다.
쉬엑!
갑자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은빛에 녀석은 당황하긴 했지만, 경이로운 야생의 본능 덕분인지 머리를 옮기려던 곳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되지 않는 곳에서 움직임을 멈췄고, 검은색의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녀석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나마 죽음의 순간을 경험한 녀석은 화가 난 듯 내게 당장이라도 달려들려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쉐엑?
녀석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나 보다. 이미 늦었지만 녀석은, 눈앞에 있는 상대의 모습이 뭔가 달라졌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그것이 어디로 갔고, 자신의 머리는 왜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땅으로 떨어지는 데에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툭.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짓. 녀석의 머리는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다크 애로우는 단지 미끼에 불과한 것, 녀석이 그것에 정신을 팔 동안 나는 들고 있던 검을 녀석을 향해 있는 힘껏 회전을 주어 던져 버렸고, 그것이 순식간에 녀석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었다.
목이 떨어진 줄 모르고 꼿꼿하게 서 있던 녀석의 몸통도,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그제야 천천히 옆으로 기울더니 만드라고라들 위로 쓰러졌다. 핏빛의 꽃잎들 위로 뱀의 피가 흘러나왔고, 피가 닿은 만드라고라들은 기분이 좋은 듯 한층 더 꽃잎을 세웠다.
과연 사형장에서 사형수들의 피를 받아먹는다는 저주의 식물다웠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지.
“어디를!”
눈길을 피해 조용히 도망치려는 무엇인가를 향해, 재빨리 소매 속에 숨겨 두던 단도를 꺼내 던졌다. 일부러 끝을 무겁게 제작한 단도는 빙글빙글 돌거나 하지 않고, 곧바로 날아가 목표물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것은 벌써 뱀 시체에서 빠져나와서는 새로운 숙주를 혹은 숨을 곳을 찾아 기어가고 있던 퀸 만드라고라였다.
그것은 단도에 꿰뚫린 채 다른 만드라고라들을 향하는 듯한 애처로운 몸부림을 계속했지만, 대답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낯선 침입자의 침범에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어미였지만, 그 자식 격인 다른 만드라고라들은 어미의 그런 모습에도 그저 비릿한 뱀의 피 맛을 천천히 즐길 뿐이었다.
“식물 혼자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거란 건 예상한 바야. 아마 생물의 머리와 가까운 곳 피부를 뚫고 들어가서는 뿌리를 내려 그 생물을 조종했겠지.”
가까이서 보니 사람 모양의 두꺼운 뿌리 주변에 다른 만드라고라들에게는 없는, 실같이 얇고 길쭉한 뿌리 세 개가 나와 있었다. 아마도 이것으로 신경을 장악했던 것 같다.
“이거, 죽은 건가?”
왠지 섬뜩한 마음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수가 적어서 다행이지, 만약 이런 것들이 많았다면 뱀이나 동물들 같은 것 말고도 인간이나 대형 몬스터들까지 이 녀석들의 숙주 노릇이나 하고 있을지 몰랐다.
“음? 이게 왜 이러지?”
아직도 약간씩 꾸물거리던 퀸 만드라고라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촉수 같던 긴 세 개의 뿌리가 미미하게 떨리더니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서서히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속도로 말라 가기 시작했다.
“윽!”
거기다 갑자기 퍼지는 악취에 뒤를 돌아보니, 뱀의 시체가 어느새 거멓게 변해서는 고약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아무리 생기를 잃은 시체라 할지라도 썩기 시작하려면 아직은 멀었을 텐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던 시체가 색이 변하고 이 정도의 악취를 뿜어내다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갑자기 말라 버리고 있는 이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었다. 과연 저주의 식물, 그리고 그것의 어미다웠다.
스윽.
조심스레 땅에 퀸 만드라고라와 함께 박혀 있는 단도를 뽑아 올렸다. 이제는 완전히 말라붙어서, 이 소름 끼치는 형태와 얼굴 모습을 제외하고는 말린 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단도에서 그것을 뽑아내 주머니 속에 넣고, 대수롭지 않게 단도를 다시 소매 속의 비밀 공간에 집어넣으려는데, 얇은 손잡이 끝에 새겨진 ‘K&J’라는 이니셜이 오늘따라 눈에 띄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것도 졸업 선물로 받은 거였지.”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왔다. 처음으로 생긴 제자이자 스승인 진.
의뢰 때문에 어떤 도시에 한동안 머물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한 소년과 길에서 부딪힌 적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이 도시에서 알아주는 소매치기였고, 내 돈주머니를 훔쳐 달아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난감했었는지,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나를 찾아와서는 내 돈주머니를 내밀며 검술을 가르쳐 달라 했을 때도.
‘내 이름은 진이에요. 아저씨가 잡학왕이라면서요? 이거 돌려줄 테니 나한테 검술 좀 가르쳐 줄래요? 안 가르쳐 주면, 다음에 또 아저씨 걸 훔쳐 갈 거예요. 그리고 그때는 이렇게 다시 찾아오지도 않을 거고요.’
전장에서 살아가며 나름대로 감각이 예민하다 자부하던 내게서 쉽게 주머니를 훔친 녀석의 능력과 단도 던지기 실력, 그리고 그 당돌함이 마음에 들어 녀석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나도 녀석에게 소매치기 하는 법과 단도 던지는 법을 배웠었다.
“후후, 내가 기본 훈련시킬 때 녀석 표정은 가관이었는데.”
‘이거 너무 힘들잖아요. 에에? 이걸 천 번이나요?!’
‘기본 훈련은 틈틈이 열심히 할 테니, 잔기술이라도 가르쳐 줘요. 네? 아저씨는 잡학왕이라면서요!’
“하지만 자기가 가르칠 때가 되면 전혀 달라졌지. 눈빛부터 빛났으니까.”
‘그런 식으로 하면 금방 들켜요. 적어도 도망칠 시간 동안은 모르게 해야죠.’
‘타깃을 잘 정해야 해요. 아저씨라면 눈썰미가 있으니 잘하실 거예요.’
그리고 우리 용병단이 의뢰를 마치고 떠나게 된 날, 녀석은 이 단도를 내밀었다.
한 달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가르친 것보단 배운 게 많은 내게 스승의 예를 지키면서 말했다.
‘이건 끝이 무겁게 되어 있어서 힘 조절만 잘하면 똑바로 날아갈 거예요. 아는 대장장이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만들어 온 거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가르쳐 주신 것들 안 잊어 먹고 열심히 할게요. 다음에 또 봬요.’
“후후, 녀석한테 배운 소매치기 방법 덕분에 용병단에서 나오고도 배를 굶지는 않았지. 또 이 단도 덕분에 쉽게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고. 녀석, 잘 지내려나.”
옛 추억에 잠기며 웃음 짓고는 있었지만, 점점 심해지는 이 악취를 보아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무리인 듯싶었다. 녀석이 준 단도를 다시 소매 속에 집어넣고는 아까 검이 날아간 방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검만 챙기면 이제 임무 완료였다.
“근데 이거 대체 어디까지 날아간 거야?”
아마도 아까 너무 힘을 준 모양이다.
엘런과 엘레나는 점심 준비를 끝내고, 식사를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와, 누나 굉장히 맛있다. 예전에 오스가 해 준 수프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엘런은 오늘 아침에 소스로 만들려다가 결국 그냥 담아 오게 된 수프를 한 스푼 떠먹더니 무척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오스는 가장 마지막에 떠났던 궁중 요리사의 이름이었다. 그가 떠난 뒤 몇 번의 시행착오 후부터는 음식을 먹어 본 적도 없고, 또 그 ‘시행착오’의 기억이 엘런의 미각에 너무 강한 인상을 심어 준 결과인지, 엘런은 카지한의 평범한 수프에도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
엘레나는 그런 엘런에게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그리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동생에게 그 시행착오의 기억을 심어 준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누나, 우리가 먼저 먹어도 되는 거야?”
“엘런, 카지한은 우리가 먼저 먹는다고 화내지 않을 거야.”
엘런은 그래도 꺼림칙한지, 들었던 스푼을 내려놓더니 물었다.
“카지한도 우리랑 같이 밥 먹기 싫어하는 거야? 아니면 예전처럼, 같이 식사하면 안 되는 규칙이 있는 거야?”
엘레나는 동생의 그 질문에 괜히 가슴이 아파 왔다. 원래 하인들이나 수하들이 그 주인과 함께 식사 시간에 동석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예절에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과거 마왕성에서 자신들과 함께 식사를, 아니, 자신들과 말을 나누는 것조차 반기는 자가 거의 없었다.
겉으로는 깍듯했지만 혼혈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멸시의 눈총을 받아야 했고, 자신들에게 그리 거부감을 가지지 않던 자들 또한 그런 분위기 때문에 자신들을 꺼려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엘런은 밥은 여럿이서 같이 먹는 게 즐겁다며 그들에게 식사 초대를 했지만, 그들이 응할 리가 만무했다.
엘런을 아꼈던 스켈레톤들은 먹지도 못하는 몸이면서도 동석해서는 같이 음식을 먹는 시늉을 했지만, 어떤 마족은 엘런에게 직접적으로 ‘더러워서 같이 먹을 수 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 말뜻을 이해 못하던 엘런이 아버지께 그 사실을 말했고, 자상하시던 아버지는 그때만큼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마족을 죽여 버리고는 자신의 마왕성에서 신하와 주인이 동석하는 일을 철저히 금하셨다. 그 누구도 다시는 엘런의 초대를 거부하지 못하게.
“누나, 왜 그래? 또 울어?”
“아니야, 엘런. 누나는 안 울어. 아니, 그런 규칙은 이제 없어. 그리고 카지한도 우리와 같이 먹는 걸 싫어하지 않을 거야.”
그는, 나도 받아 주었으니까.
엘레나는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것은 그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럼 난 카지한이 오면 같이 먹을래.”
“그래. 그럼 누나도 그때 먹을까?”
“엘레나 님, 찾았습니다.”
수프 접시를 내려놓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카지한이 자기 발아래의 다른 만드라고라들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생기라고는 없어 보이는 다 말라비틀어진 만드라고라 하나를 엘런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와! 카지한, 벌써 찾은 거야?”
“예, 엘런 님. 엘레나 님, 분부대로 찾아왔습니다.”
엘런은 순수하게 카지한의 성공을 축하했지만, 엘레나는 그의 성공에 마음이 미묘했다.
조금 전에는 화가 나서 무작정 찾으라고 보내긴 했지만 설마 이 넓은 곳에서 진짜 찾아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고, 나중에 그가 빈손으로 오면 그런 그를 용서하는 것으로 아까의 심각했던 상황을 무마하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가 성공해 버렸으니 그녀로서는 엘런처럼 마냥 좋아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명령을 잘 이행한 그에게 싫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거기다 이 넓은 곳에서 찾은 그 능력과 성의는 그녀로서도 약간 감탄하고 있던 차인데,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녀는 임무에 성공해서 돌아온 그를 바라보며 과연 어떤 표정을 지어 보여야 좋을지 고민했지만,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한동안 그냥 멍하니 그와 그가 가져온 그것을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다르게 받아들인 것인지, 카지한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갑자기 당황해서는 허둥지둥 자신이 겪은 일들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뱀이 있었는데, 그것에게 기생하고 있으면서 뱀을 조종하고 있었으며, 뱀에게 공격당했고, 뱀을 죽인 뒤 꺼내자마자 급속도로 말라 가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고, 뱀의 시체 또한 급속도로 부식되어 버렸다는 등의 설명을 땀까지 흘리면서 빠르게 쏟아 내는데,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후훗.”
그런데 그런 그녀의 반응도 또 다르게 받아들인 건지, 그의 표정이 한층 더 다급해졌다. 엘런은 그런 카지한의 행동이 재밌었는지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는데, 조금씩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아 몰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카지한 본인은 엘런의 행동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