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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근무기 1권(13화)
6장 퀸 만드라고라(3)
“저, 엘레나 님? 이게 그러니까 진짜 퀸 만드라고라인데, 이게 말라 버려서 다른 것들하고 비슷하게…….”
그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한 채 필사적으로 자신이 가져온 그것이 퀸 만드라고라임을 증명하려 애를 쓰자, 고개를 돌리고 있던 엘런의 어깨가 아까보다 더 심하게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그런 그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도시락 가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쓸데없는 고민 할 것 없이, 그냥 이것으로 자연스럽게 넘기기로 한 것이다.
“후훗, 괜찮아요. 이제 됐어요. 그것보다 어서 이리 와서 식사하세요. 이러다가는 수프가 식어 버리겠어요.”
“그래, 어서 와서 같이 먹자.”
카지한은 그제야 아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도 엘런도, 자신이 가져온 퀸 만드라고라의 진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식사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저, 하지만…….”
갑자기 변한 이 분위기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신이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밝게 웃고 있던 엘런이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지한, 우리랑 같이 밥 먹기 싫어?”
단순한 어린아이의 추측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카지한, 안 올 거예요?”
거기가 왠지 미묘한 엘레나의 표정, 카지한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그의 자리는 엘런과 엘레나의 중간이었는데, 자리에 앉은 그를 본 엘레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수프를 담은 접시를 스푼과 함께 그에게 내밀었다.
“자, 어서 드세요. 엘런이 당신이 만들어 준 수프가 예전 요리사가 만든 것보다 맛있다고 하고 있었어요.”
“아, 과찬이십니다. 저, 근데 엘레나 님. 저건 어떻게……?”
그는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마음에 말라 비틀어져 버린 퀸 만드라고라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것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태연하게 말했다.
“카지한 마음대로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태연한 반응에,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리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가까스로 정신을 지킨 그는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일단 모든 생각을 접어 두기로 하고, 그냥 수프를 한 스푼 떠먹었다.
‘뭐, 좋아졌다면 그걸로 다행이지. 그런데…….’
착각이었을까, 카지한의 눈에 엘레나의 뒤쪽에 피어 있던 암청색 꽃이 흡사 고개를 숙이는 듯 앞뒤로 흔들린 것은.
“자, 엘런. 카지한도 왔으니 이제 다 같이 먹자.”
“응!”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은 다음에야, 사령의 숲 데네시네카에서의 단란한(?) 점심 식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7장 성녀 회고(回顧)(1)
밝은 노란색, 마치 태양빛을 연상시키는 그 색은 홀을 가득 채우고, 거룩한 빛의 문장 아래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사랑과 자비의 문장.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사랑과 자비의 신인 에나리스를 섬기는 신전임을 증명하는 그 문장 아래에서, 백색의 의복을 차려입은 사제와 신관들은 조용히 앉아 길었을 여행길의 도착점에 다다른 다섯 명의 어린 신관들의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모두 힘든 길을 잘 걸어와 주셨습니다.”
“아닙니다. 네비스 님과 에나리스 님의 가호 덕분인지 아주 편한 길이었습니다.”
주교의 인사에 어린 신관들의 대표로 보이는 소년이 정중하게 답했다. 나이에 맞지 않는 그 당당한 모습에 지켜보던 다른 신관들은 짐짓 감탄한 듯 시선을 모았고, 그중 몇 명의 신관들이 서로를 향해 조용히 소곤거렸다.
“과연, 소레타 후작의 자제. 기품이 넘치는군.”
“맞아. 역시 고귀한 가문은 뭔가 달라도 다르군.”
그들 중 대부분은 수도의 이름 높은 대귀족들의 자제들. 그들을 바라보는 신관들의 눈빛에 깃들어 있는 것은 선망과 질투가 뒤섞여 있는 미묘한 무엇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견습 신관이 되기 위해서 몇 년 동안이나 수도원에서 공부를 해야 하고, 또 그러한 견습 신관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일부만이 정식으로 사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자들은 그러한 절차 대신, 기초적인 수업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이름 높은 사제의 직속제자로 들어가 견습 신관의 직함뿐만 아니라 차기 사제, 주교가 될 수 있는 보증서를 얻게 된다.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언제까지 지금의 위치에 있어야 할지 모를 자신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곧 저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그런 일반 신관들에 비해 대신전에 의해 그들의 스승으로 뽑힌 사제들의 얼굴에는 그저 만족스러운 미소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제자들을 통해 대귀족들과의 교류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이들 중에서 한 명의 여사제 얼굴만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네비스 님과 에나리스 님의 이름 아래에 맹세의 의식을 행하겠습니다. 도르마 센 노메크는 앞으로.”
주교의 주관 아래에 조금 전 어린 신관 대표가 앞으로 나서 주교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르마 센 노메크, 그대는 스승 레지스 주교의 가르침 아래에 신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는 것에 노력할 것을 맹세합니까?”
“도르마 센 노메크, 레지스 주교님을 스승으로 하여, 신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이 노력할 것을 맹세합니다.”
역시나 가장 지위가 높았던 신관 대표가 주교의 제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다른 세 명의 귀족 자제들 또한 주교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모두 신부의 제자로서 임명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마지막에 남은 신관 한 명이 주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그에게도 선망의 눈길이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선망과 질투 대신 그에게 쏟아진 것은 멸시였다.
“저 녀석인가? 이나스 여사제님이 거두었다는 고아가?”
“그래, 어떻게 수도에서 이나스 님의 눈에 띄어 견습 신관이 되긴 했지만, 결국 그것뿐인 거지.”
마치 들으라는 듯, 조용한 분위기에서 흘러나온 멸시의 목소리. 하지만 주교는 그것을 제지하지도 않은 채 의식을 계속해 갔다.
“엘리얼, 그대는 이나스 신부의 제자로서 그 가르침 아래에 신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는 것에 노력할 것을 맹세합니까?”
“저 엘리얼, 이나스 신부님을 스승으로 하여 신의 말씀을 따라 노력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 맹세를 마지막으로 주교의 간단한 축복의 말과 함께, 그렇게 의식은 끝이 났다. 신관들은 홀에서 일어나 각자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견습 신관들은 각자 자신들의 스승의 안내를 따라 그들이 거주할 숙소와 신전의 여러 곳을 둘러보러 갔지만 엘리얼과 이나스는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냥 그곳에 서 있었다.
마침내 홀에 그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게 되자, 그녀는 천천히 엘리얼에게 다가가 그 금색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엘리얼. 정말 잘 참았어.”
의식 중 시종일관 무겁던 그녀의 얼굴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그런 따뜻함에 엘리얼은 고개를 숙였다. 간신히 참고 있었던 눈물이 끝내 흘러나온 것이다. 그녀는 그런 엘리얼을 허리를 숙여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조용히, 엘리얼이 눈물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괜찮아요, 이나스 님. 이제 괜찮아요.”
살짝 떨리는 엘리얼의 목소리에, 이나스는 안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여전히 물기가 가득한 엘리얼의 눈동자였지만 그녀를 배려하는 듯 그 표정은 밝게 웃고 있었다.
“엘리얼, 앞으로도 이런 멸시는 계속될 거야. 에나리스 님을 모시는 신관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사랑이란 자신에게 이익 되는 것만을 향하는 것이니까.”
그녀는 신관들이 나간 문 쪽을 바라보며 무거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내가 너를 이곳에 데려온 게, 오히려 너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지는 않을지…….”
“괜찮아요, 이나스 님. 저는 이나스 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불러 주셨을 때 너무 기뻤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그런 행동들은 이제 익숙해졌는걸요. 제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걸요.”
이토록 어린아이가, 이토록 착한 아이가 어째서 신의 품 안이라 말해지는 신전에서 그러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이나스는 그런 생각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래, 엘리얼. 하지만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 너는 누가 뭐래도 신에게 선택받은 신성력을 지닌 얼마 안 되는 신관이니까.”
이나스는 엘리얼의 손을 이끌었다. 신전의 여기저기를 안내해 주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괜히 돌아다니다 지금의 엘리얼이 다른 신관들과 마주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녀는 안내는 나중으로 미룬 채 먼저 자신의 집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와아!”
벽 여기 저기 조각되어 있는 세심한 문양들과 단순한 촛대에까지 그려져 있는 에나리스의 문장. 그리고 드문드문 신전 천정에 박혀 있는 고가의 조명용 마법 수정들. 엘리얼은 그 화려한 모습들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지만, 이나스는 그 수정 하나의 가격이 일반 가정의 몇 년 치의 생활비에 버금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탐탁치는 않았다.
에나리스 님의 이름 아래에서 신의 사랑과 자비를 대신해야 할 그들이었다.
그러나 분명 세상은 단순히 생각이나 이상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 물질적인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성직자가 거처도 입을 의복도 한 끼의 음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의 이상이 얼마나 숭고하든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신전의 아름다움이 신의 영광을 대변하고, 또한 사람들을 신의 곁으로 부르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째서 일반 신도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이곳에서 단순히 그들의 편의와 허욕을 위해 이러한 사치를 부려야 한다는 말인가. 벌써 몇 년째, 이쪽 사제들의 거처와 집무실이 있는 복도에는 촛불이 켜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불편한 마음을 알 길 없던 엘리얼은 여전히 주변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보며 순수하게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엘리얼이 그녀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자, 여기가 내 집무실이란다. 들어가자.”
그녀가 품에서 열쇠를 꺼내 돌리자 문이 열렸다. 그녀의 집무실은 비교적 수수해 보였다. 화려한 장식도 고풍스런 가구도 없었다.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낡은 책꽂이들과 평범해 보이는 작은 책상 하나, 그리고 허름한 소파 하나가 전부였다.
엘리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어린아이의 실망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 비해 초라한 그녀의 집무실에 엘리얼은 왠지 가슴이 아려 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 엘리얼의 마음을 알아챈 그녀는 일부러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나리스 님의 신관이란, 스스로를 희생하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자다. 그런데 엘리얼 너는 내가 사치를 부리지 않는 것에 괴로워하는구나.”
“죄, 죄송합니다, 이나스 사제님.”
그제야 이나스의 목소리는 다시 부드럽게 변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찌 되어든 스승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던가. 그녀는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거기 소파에 앉아라. 네가 앞으로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마.”
그녀는 엘리얼에게 신전에서 지켜야 할 것들과 생활 규칙 등을 하나하나 적어 주며 자세히 설명해 갔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실수가 없는 한 다른 이들이 특별히 그를 문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설명을 경청하던 엘리얼이 설명이 다 끝날 때쯤 되자,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 이나스 사제님. 무례한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그래, 엘리얼. 뭐가 궁금하지?”
“저번에 이나스 사제님께서, 예전에 사제님도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셨지요?”
그랬다. 그녀 또한 예전에는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가 고아원 한구석에서 앉아 있던 그를 발견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별거 아닌 일로 수도에 가게 되었던 그녀는, 일정보다 빨리 일이 끝나자 근처 고아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고아원 정원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그에게서 뭔가 익숙함을 느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와 대화를 주고받은 후에는 그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