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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자아. 분홍반 친구들, 오늘 종이컵으로 전화기 만든다고 했죠? 다들 종이컵 들고 왔나요?”
“네!”
“여기요!”
“저도 가져왔어요!”
하나둘씩 제 앞에 놓인 종이컵을 들어 보이는 아이들에 연주가 가볍게 박수를 치곤 아이들의 주위를 끌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전화기를 만들어 볼까요?”
연주는 아이들 사이를 무릎걸음으로 다니며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만들기를 도와줬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완성이라고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연주는 다음 활동을 일러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
하지만 옅게 들리는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 쪽을 쳐다본 연주는 나오라는 손짓을 하는 원장에 무슨 일인가 싶어 아이들에게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곤 교실에서 나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연주 씨한테 자꾸 연락이 오는데 급한 일 아닌가 싶어서.”
“저한테요?”
“아이들은 내가 봐줄 테니까 가서 받아 봐.”
연주는 원장의 말에 고개를 살짝 숙이곤 얼른 유치원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근처에 가자마자 들리는 벨소리에 연주는 들어가면서 다른 선생님들께 죄송하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주, 주인아저씨세요?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
-오늘 내로 돈 입금될 테니까.
“아저씨 그건……!”
-그런 줄 알고 얼른 방 구해요!
“아저씨! 아저씨!”
다짜고짜 전화해 놓고 돈이 입금된다는 말만 남기고 뚝 끊은 주인집에 연주는 다시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듯 끊어진 휴대폰만 볼 수밖에 없었다. 기어코 돈을 입금시키겠다는 건 당장이라도 연주는 방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그렇게 사정을 했는데도 주인집은 연주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귀가 때마다 집 앞을 지키고 있는 아저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왔었는데 이제 유치원에서까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니.
연주는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혹여 다시 전화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서 휴대폰을 서랍 속에 넣었다.
“유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네.”
“아, 그게…….”
“무슨 일인데요?”
연주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앞자리 선생님까지 고개를 들어 연주를 쳐다봤다. 대답을 고민하는 찰나, 위를 누가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
연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수그리며 가슴 아래쪽을 감쌌다. 그 모습에 놀란 선생님들이 모두 연주에게로 다가왔다.
“아아.”
“어머! 유 선생님, 괜찮아요?”
“왜 그래요, 어디 아파?”
“최 선생님, 거기 구급상자 좀!”
갑자기 고통에 찬 소리를 내뱉는 연주에 놀란 선생님들이 그녀를 빠르게 의자에 앉혔다.
연주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통증에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 2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일어나도 괜찮아요?”
“네,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요.”
“아니, 무슨 일이래요. 갑자기.”
“그러게요. 저도 갑자기 위가 막 아파서…….”
어느 정도 통증이 사라진 연주가 앞자리 선생님의 말에 대답하고 물을 마시려는데 그녀가 조그마한 팩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내가 먹는 건데, 양배추 즙이에요.”
“양배추 즙이요?”
“보니까 위경련 같아서요. 저도 위염이 좀 있어서 아는데 그럴 땐 이게 직통이거든요.”
“감사해요.”
“그나저나 무슨 스트레스 받는 일 있어요? 갑자기 위경련이 다 오고.”
“그게…….”
“도대체 뭐 때문에 그래? 응? 알아야 해결을 하지. 혼자 끙끙 앓으면 뭐해.”
연주가 우물쭈물하다 선생님의 재촉에 입을 열었다.
“집에서 쫓겨나게 됐거든요.”
“뭐?”
“어머.”
“왜?”
느닷없이 집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말에 다들 놀라 연주에게 시선이 쏠렸다.
“아니, 어쩌다가?”
결국 그간 있었던 사정을 털어놓는 연주의 말을 듣고 난 교무실 내 사람들 모두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아니,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게. 아직 방학도 안 됐잖아.”
“저도 그래서 걱정이에요.”
다들 제 일처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 연주는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당장 집을 구해야 할 판이라 금세 걱정이 밀려들었다.
“웬만하면 우리 집에 오라고 하고 싶은데…….”
“우리 집은 시어머니가 계셔서. 그래도 괜찮으면 우리 집에라도 올래요?”
“아,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너무 감사해요. 저 그럼 교실에 가 볼게요!”
다들 제 일처럼 걱정을 해 주는 모습에 연주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다고 선생님들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어 정중하게 거절하며 얼른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연주가 나가고 교무실에선 한동안 그녀에 대한 걱정과 무자비한 주인집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 *
“자,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에요! 차례대로 줄 서세요!”
연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교실 문 앞에 순서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연주는 아이들을 한 명씩 세어 교실 문 앞에 온 선생님께 인계했다. 저마다 앞 친구 어깨에 두 손을 올린 채 조그만 기차처럼 칙칙폭폭 입소리를 내면서도 그녀한테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나가는 아이들에 연주가 양손을 흔들었다.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들이 점점 작아졌다. 아이들을 모두 내보낸 연주는 가만히 책장 앞에 앉아 책을 보는 한을 보고 얼른 교실 뒷정리를 시작했다.
“한아, 심심하지 않아?”
“괜찮아요.”
“선생님이 이것만 끝내면 같이 병원 가자. 알겠지?”
“네에.”
병원에 가는 것이 싫은 듯 말꼬리를 늘이는 모습에 연주는 역시 아이는 아이라며 작게 웃었다. 얼른 뒷정리를 마무리한 뒤, 유치원 내에서 입는 앞치마를 벗었다. 이윽고 연주가 부르자 제가 보던 책을 책장에 꽂아 넣고 쪼르르 걸어오는 아이였다.
제 곁으로 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 유치원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병원으로 들어갔다. 자주 와서 그런지 이젠 접수를 받는 간호사들도 연주를 알아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또 오셨네요! 오늘도 데려오셨어요?”
“네, 아이가 미열이 좀 있는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아이 귀 좀 대 주실래요?”
간호사의 말에 한을 안아들자 간호사가 아이의 귀에 체온계를 꽂았다. 얼마 안 가 체온계가 삑 하는 소리를 냈다.
“열이 있긴 한데, 심각한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정말요? 다행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트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은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가고 연주는 한을 안은 채 대기석 소파에 앉았다. 얌전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문득 병원에 들어선 이후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아이가 신경 쓰여 눈을 맞췄다.
“한아, 혹시 병원이 무서워?”
“조금요오.”
“괜찮아. 이렇게 한이 옆에 선생님이 있잖아. 선생님이 우리 한이 아프지 않게 할게.”
연주는 꼼지락거리는 오동통한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조금 무서움이 가셨는지 아이는 유치원에서처럼 방긋방긋 웃었다.
아직 감기 초기의 가벼운 증상일 뿐이라며 이틀치 약을 처방받은 연주는 한을 안아들고 병원 1층에 자리한 약국으로 들어가 처방전을 냈다. 그런 연주를 뒤로한 채 한은 약국에 들어오자마자 또래 아이들처럼 캐릭터가 그려진 비타민이 가득한 곳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아, 이리로 와.”
연주의 목소리에 뒤돌아 본 아이가 자신을 향한 손짓에 빠르게 옆으로 와 앉았다. 그럼에도 아이의 눈은 여전히 비타민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사 달라고 하면 사 줄 텐데.
아이는 비타민을 연신 쳐다보면서도 연주에게 갖고 싶다는 말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되레 연주가 아이의 귀에 대고 조근한 말투로 물었다.
“한아, 저거 가지고 싶어?”
연주의 물음에 아이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가지고 싶긴 한데…….”
“그럼 선생님이 사 줄게.”
“정말요?”
“아까 우리 한이가 씩씩하게 진료도 받았으니까 선생님이 상으로 사주는 거야.”
“우와!”
연주의 말에 아이는 신이 났는지 얼른 비타민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이는 연신 눈으로 이것저것 보다가 결국 양손에 비타민을 한 개씩 잡았다. 연주가 두 개를 모두 계산해 달라고 하려는데 아이가 축 처진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니임, 딸기랑 포도 중에 어떤 걸로 해요?”
“한이는 어떤 것이 더 좋은데?”
“저는 딸기가 좋은데…….”
“그럼 딸기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아빠가…….”
“아빠?”
“한이 아빠는 포도를 좋아해요.”
“으음, 그렇구나. 그러면 어떤 게 좋을까?”
세상에서 제일가는 난제를 풀고 있는 사람처럼 끙끙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연주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럼 특별히 이번에만 선생님이 두 개를 선물로 줄게.”
“한이는 착한 일을 하나 밖에 못 했는데요?”
“하나는 한이가 진료를 잘 받아서 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한이 마음이 너무 예뻐서 선생님이 주는 거야. 그럼 괜찮지 않을까?”
그럴듯한 이유를 말하는 연주의 말에 아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야 고민을 해결한 듯 환히 웃는 아이였다.
“최한 어린이, 약 나왔습니다.”
연주는 아이를 안은 채 다가서자 약사가 약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연주는 약을 받아 들고 비타민도 함께 계산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려고 했다.
“이걸로 계산해 주십시오.”
낮은 목소리와 함께 순간 약사에게 내밀어진 카드에 연주가 고개를 돌렸다.
“아빠!”
“자아. 분홍반 친구들, 오늘 종이컵으로 전화기 만든다고 했죠? 다들 종이컵 들고 왔나요?”
“네!”
“여기요!”
“저도 가져왔어요!”
하나둘씩 제 앞에 놓인 종이컵을 들어 보이는 아이들에 연주가 가볍게 박수를 치곤 아이들의 주위를 끌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전화기를 만들어 볼까요?”
연주는 아이들 사이를 무릎걸음으로 다니며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만들기를 도와줬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완성이라고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연주는 다음 활동을 일러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
하지만 옅게 들리는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 쪽을 쳐다본 연주는 나오라는 손짓을 하는 원장에 무슨 일인가 싶어 아이들에게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곤 교실에서 나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연주 씨한테 자꾸 연락이 오는데 급한 일 아닌가 싶어서.”
“저한테요?”
“아이들은 내가 봐줄 테니까 가서 받아 봐.”
연주는 원장의 말에 고개를 살짝 숙이곤 얼른 유치원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근처에 가자마자 들리는 벨소리에 연주는 들어가면서 다른 선생님들께 죄송하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주, 주인아저씨세요?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
-오늘 내로 돈 입금될 테니까.
“아저씨 그건……!”
-그런 줄 알고 얼른 방 구해요!
“아저씨! 아저씨!”
다짜고짜 전화해 놓고 돈이 입금된다는 말만 남기고 뚝 끊은 주인집에 연주는 다시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듯 끊어진 휴대폰만 볼 수밖에 없었다. 기어코 돈을 입금시키겠다는 건 당장이라도 연주는 방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그렇게 사정을 했는데도 주인집은 연주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귀가 때마다 집 앞을 지키고 있는 아저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왔었는데 이제 유치원에서까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니.
연주는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혹여 다시 전화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서 휴대폰을 서랍 속에 넣었다.
“유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네.”
“아, 그게…….”
“무슨 일인데요?”
연주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앞자리 선생님까지 고개를 들어 연주를 쳐다봤다. 대답을 고민하는 찰나, 위를 누가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
연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수그리며 가슴 아래쪽을 감쌌다. 그 모습에 놀란 선생님들이 모두 연주에게로 다가왔다.
“아아.”
“어머! 유 선생님, 괜찮아요?”
“왜 그래요, 어디 아파?”
“최 선생님, 거기 구급상자 좀!”
갑자기 고통에 찬 소리를 내뱉는 연주에 놀란 선생님들이 그녀를 빠르게 의자에 앉혔다.
연주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통증에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 2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일어나도 괜찮아요?”
“네,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요.”
“아니, 무슨 일이래요. 갑자기.”
“그러게요. 저도 갑자기 위가 막 아파서…….”
어느 정도 통증이 사라진 연주가 앞자리 선생님의 말에 대답하고 물을 마시려는데 그녀가 조그마한 팩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내가 먹는 건데, 양배추 즙이에요.”
“양배추 즙이요?”
“보니까 위경련 같아서요. 저도 위염이 좀 있어서 아는데 그럴 땐 이게 직통이거든요.”
“감사해요.”
“그나저나 무슨 스트레스 받는 일 있어요? 갑자기 위경련이 다 오고.”
“그게…….”
“도대체 뭐 때문에 그래? 응? 알아야 해결을 하지. 혼자 끙끙 앓으면 뭐해.”
연주가 우물쭈물하다 선생님의 재촉에 입을 열었다.
“집에서 쫓겨나게 됐거든요.”
“뭐?”
“어머.”
“왜?”
느닷없이 집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말에 다들 놀라 연주에게 시선이 쏠렸다.
“아니, 어쩌다가?”
결국 그간 있었던 사정을 털어놓는 연주의 말을 듣고 난 교무실 내 사람들 모두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아니,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게. 아직 방학도 안 됐잖아.”
“저도 그래서 걱정이에요.”
다들 제 일처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 연주는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당장 집을 구해야 할 판이라 금세 걱정이 밀려들었다.
“웬만하면 우리 집에 오라고 하고 싶은데…….”
“우리 집은 시어머니가 계셔서. 그래도 괜찮으면 우리 집에라도 올래요?”
“아,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너무 감사해요. 저 그럼 교실에 가 볼게요!”
다들 제 일처럼 걱정을 해 주는 모습에 연주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다고 선생님들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어 정중하게 거절하며 얼른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연주가 나가고 교무실에선 한동안 그녀에 대한 걱정과 무자비한 주인집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 *
“자,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에요! 차례대로 줄 서세요!”
연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교실 문 앞에 순서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연주는 아이들을 한 명씩 세어 교실 문 앞에 온 선생님께 인계했다. 저마다 앞 친구 어깨에 두 손을 올린 채 조그만 기차처럼 칙칙폭폭 입소리를 내면서도 그녀한테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나가는 아이들에 연주가 양손을 흔들었다.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들이 점점 작아졌다. 아이들을 모두 내보낸 연주는 가만히 책장 앞에 앉아 책을 보는 한을 보고 얼른 교실 뒷정리를 시작했다.
“한아, 심심하지 않아?”
“괜찮아요.”
“선생님이 이것만 끝내면 같이 병원 가자. 알겠지?”
“네에.”
병원에 가는 것이 싫은 듯 말꼬리를 늘이는 모습에 연주는 역시 아이는 아이라며 작게 웃었다. 얼른 뒷정리를 마무리한 뒤, 유치원 내에서 입는 앞치마를 벗었다. 이윽고 연주가 부르자 제가 보던 책을 책장에 꽂아 넣고 쪼르르 걸어오는 아이였다.
제 곁으로 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 유치원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병원으로 들어갔다. 자주 와서 그런지 이젠 접수를 받는 간호사들도 연주를 알아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또 오셨네요! 오늘도 데려오셨어요?”
“네, 아이가 미열이 좀 있는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아이 귀 좀 대 주실래요?”
간호사의 말에 한을 안아들자 간호사가 아이의 귀에 체온계를 꽂았다. 얼마 안 가 체온계가 삑 하는 소리를 냈다.
“열이 있긴 한데, 심각한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정말요? 다행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트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은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가고 연주는 한을 안은 채 대기석 소파에 앉았다. 얌전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문득 병원에 들어선 이후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아이가 신경 쓰여 눈을 맞췄다.
“한아, 혹시 병원이 무서워?”
“조금요오.”
“괜찮아. 이렇게 한이 옆에 선생님이 있잖아. 선생님이 우리 한이 아프지 않게 할게.”
연주는 꼼지락거리는 오동통한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조금 무서움이 가셨는지 아이는 유치원에서처럼 방긋방긋 웃었다.
아직 감기 초기의 가벼운 증상일 뿐이라며 이틀치 약을 처방받은 연주는 한을 안아들고 병원 1층에 자리한 약국으로 들어가 처방전을 냈다. 그런 연주를 뒤로한 채 한은 약국에 들어오자마자 또래 아이들처럼 캐릭터가 그려진 비타민이 가득한 곳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아, 이리로 와.”
연주의 목소리에 뒤돌아 본 아이가 자신을 향한 손짓에 빠르게 옆으로 와 앉았다. 그럼에도 아이의 눈은 여전히 비타민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사 달라고 하면 사 줄 텐데.
아이는 비타민을 연신 쳐다보면서도 연주에게 갖고 싶다는 말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되레 연주가 아이의 귀에 대고 조근한 말투로 물었다.
“한아, 저거 가지고 싶어?”
연주의 물음에 아이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가지고 싶긴 한데…….”
“그럼 선생님이 사 줄게.”
“정말요?”
“아까 우리 한이가 씩씩하게 진료도 받았으니까 선생님이 상으로 사주는 거야.”
“우와!”
연주의 말에 아이는 신이 났는지 얼른 비타민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이는 연신 눈으로 이것저것 보다가 결국 양손에 비타민을 한 개씩 잡았다. 연주가 두 개를 모두 계산해 달라고 하려는데 아이가 축 처진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니임, 딸기랑 포도 중에 어떤 걸로 해요?”
“한이는 어떤 것이 더 좋은데?”
“저는 딸기가 좋은데…….”
“그럼 딸기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아빠가…….”
“아빠?”
“한이 아빠는 포도를 좋아해요.”
“으음, 그렇구나. 그러면 어떤 게 좋을까?”
세상에서 제일가는 난제를 풀고 있는 사람처럼 끙끙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연주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럼 특별히 이번에만 선생님이 두 개를 선물로 줄게.”
“한이는 착한 일을 하나 밖에 못 했는데요?”
“하나는 한이가 진료를 잘 받아서 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한이 마음이 너무 예뻐서 선생님이 주는 거야. 그럼 괜찮지 않을까?”
그럴듯한 이유를 말하는 연주의 말에 아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야 고민을 해결한 듯 환히 웃는 아이였다.
“최한 어린이, 약 나왔습니다.”
연주는 아이를 안은 채 다가서자 약사가 약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연주는 약을 받아 들고 비타민도 함께 계산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려고 했다.
“이걸로 계산해 주십시오.”
낮은 목소리와 함께 순간 약사에게 내밀어진 카드에 연주가 고개를 돌렸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