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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근무기 1권(15화)
8장 만드라고라, 주문 폭주? NO, 주문 제로!(1)
데네시네카에서의 성공적인(?) 피크닉을 보내고 온 후부터 마왕성의 분위기가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관리할 것이라고는 없었던 마왕성이기에 업무라고는 하고 싶어도 할 게 없던 엘레나의 책상 위에 적지만 서류 더미들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흐음…….”
하지만 쌓여 가는 서류 더미의 모습에 엘레나의 마음은 무겁기는커녕 이제야 제대로 된 마왕으로서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신이 나는지, 한껏 들떠서는 자신의 업무용 책상에 앉은 채 연신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일다운 일 때문에 자신의 업무용 책상에 앉은 것이었다,
“음, 이제 업무실을 다시 알현실로 옮겨야 하려나? 지금이야 상관없지만 마왕성의 모습이 예전처럼 돌아온다면, 계속 내 방을 업무실로 사용하기는 조금 그럴 테니까.”
그녀의 손은 연신 서류를 넘기고 그것에 서명을 해 나가더니, 마침내 특히 중요한 일인 듯 서류들 옆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책자로 손길을 옮겼다.
“음, 어느 걸로 하는 게 좋을까?”
어제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답을 못 내린 그녀였다. 혼자 한 시간 가까이 고민하다가 결국 카지한과 상의하기로 하고 오늘로 미뤘던 일이고, 또 조금 전에 호출을 해 놓았으니 곧 그가 이곳으로 오겠지만, 그녀는 다시 양손에 책자를 든 채 두 개를 차례로 번갈아 보며 홀로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가 흘렀을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엘레나 님, 부르셨습니까?”
“아, 카지한. 이리 와 봐요.”
그녀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조금 전에 스켈레톤을 통해 급하게 호출을 받은 카지한은 무슨 중대한 결정인가 싶어 긴장하며 그녀의 옆에 섰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이달의 추천! 나의 성을 지켜 줄 몬스터 100선!
언데드의 마왕이 추천하는 언데드
위와 같은 제목을 가진 두 개의 작은 책자였다.
“어때요? 카지한은 어떤 게 좋을 것 같아요?”
들고 있던 것을 보여 주며 그렇게 묻는 그녀의 모습에, 카지한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몬스터 100선? 추천 언데드?
뭔가 신문에 나오는 ‘이달의 맛집과 요리 소개’ 같은 이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 혹시 이건 몬스터…….”
“네, 몬스터 구매 책자예요. 아무래도 세금이라든지 예전 업무를 재개하려면 일손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마치 엘런과 같은 순진무구한 표정과 말투, 카지한은 아무리 그래도 과연 남매구나 하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엘레나 님,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는…….”
“그렇죠? 역시 일손은 몬스터보단 마족이나 적어도 다크엘프 같은 반마인 정도는…….”
그러고서는 기다렸다는 듯 두 책자를 내려놓으며 서랍에서 ‘마계 전문 직업소개소’라는 책을 꺼내 드는 그녀의 모습에 카지한은 기겁하며 그녀를 말렸다.
“에, 엘레나 님, 지금 우리에게 그럴 자본이 어디에 있다고…….”
“예? 하지만 자연산 만드라고라에 대해 마계 판매업체 등록소에 등록도 했고, 광고도 냈으니 이제 자본은 문제없지 않나요?”
그렇다. 분명히 저번 피크닉 때 뜻하지 않게 자연산 만드라고라들을 대량으로 보유하게 되었고, 그 정도 품질의 자연산 만드라고라들의 가치라면 모르긴 몰라도 마왕성을 하나 더 사는 것도 가능하지만, 문제는…….
“엘레나 님, 아무리 만드라고라의 가치가 엄청나다고는 하지만, 팔리지 않으면 화폐로서는 가치가 없답니다.”
“네?”
“보통 실험용이나 약품 조재용으로 사용하는 만드라고라들은 그 엄청난 가격 때문에 양식, 그것도 중급 정도의 품질을 사용하는 게 보통입니다. 일부러 엄청난 가격을 주면서 자연산 최상급품을 사는 경우는 드물답니다.”
“하, 하지만 가격을 조금 낮춰서 판매한다면…….”
“그것도 안 되는 게, 판매규정법상 가격 파괴를 막기 위해 자연산 만드라고라에 대한 가격 기준은 정해져 있습니다. 거기다 만드라고라에 대한 부당 이익을 막으려는 엄격한 품질 등급 기준도 이 경우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아 버려서 등급을 낮춰서 가격을 낮추는 것도 못하죠.”
“그, 그렇다면?”
“네, 지금으로서는 그 만드라고라 꽃밭은 엄청난 가치면서도 동시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지요.”
카지한의 설명이 끝나고, 그녀의 표정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카지한은 그녀가 해 놓은 서류 더미들과 두 개의 책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얼마나 실망했는지도.
피크닉에서 돌아온 뒤, 마지막 남은 그 한 송이의 꽃을 옛 자신의 어머니 방에 안치한 뒤부터 그녀는 식사 시간마다 기분이 좋았었고, 마왕성을 재정비하기 위한 세세한 일들을 찾아내고 또 해결해 나가려 했다.
물론 인원과 자본이 부족한 현재로서는 그것들 하나하나는 단지 언젠가 실행될 계획에 불과하고, 또 그것이 실행될 때를 대비해서 미리 서명을 해 놓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주 복잡하고 그녀 혼자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일인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대였으리라. 곧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부정 당하는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카지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사 그녀가 얼마나 많이 기대했고 또 얼마나 많이 실망할지라도, 언제까지나 현실에 대해 모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왕이었고, 그런 그녀를 보좌하는 게 현재 자신의 일이니까.
“음, 하지만.”
카지한은 실망해 있는 그녀를 향해, 조금 전 차분했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드라고라 꽃밭을 지킬 필요도 있으니, 이왕이면 따로 먹이가 필요한 몬스터보다는 언데드, 데스나이트 정도가 좋겠지요.”
굳이 그 현실의 틀에만 자신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는 법. 필요하다면 현실의 틀을 자신에게 맞출 수 있는 융통성도 필요한 법이었다.
“하지만 자본이 지금 없다면서요?”
그녀의 표정에 다시 조금은 화색이 돌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카지한은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현재로서는 수요가 없기에 자금 또한 없지요. 하지만 그건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칠 때의 해당 사항, 중간 과정은 생략한 채 직접 담판을 짓는 거라면 가능합니다.”
“직접 담판……? 무슨 말이지요?”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아직 영문을 몰라 하는 엘레나를 향해 카지한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레나 님, 혹시 언데드의 마왕성으로 가는 포탈을 열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엘레나 님, 준비되셨습니까?”
마왕성 알현실, 재촉하는 듯한 카지한의 목소리에도 엘레나는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말한 방법이란 것은, 자신이 직접 만드라고라들을 가지고 마계에 위치한 언데드 마왕성을 방문해 거래를 성사시키고 오겠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저, 카지한,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분명 그가 제안한 방법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는 인간. 혼자 마계에, 그것도 언데드 마왕성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설마 푸른 지혜의 마왕님의 사자를 업신여기겠습니까. 그냥 마계를 돌아다니는 거라면 위험하겠으나, 정식 절차로 언데드 마왕성으로 포탈을 열고 바로 찾아가는 거니 큰일은 없을 것입니다.”
카지한은 문제없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단 배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그것은 마왕의 사자들이 자신들을 증명하기 위한 증표로써, 자신이 모시는 마왕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과 함께 특유의 마력의 흐름이 담겨 있어 그들의 신분과 안전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그 증표가 영 미덥지 못했다. 마족들 중에는 인간을 극도로 경멸하는 자들도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 그가 인간계에 있는 마왕의 사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통할지도 미지수였다.
여차하면 규칙 같은 것은 무시하고 난폭한 행동을 할 만한 마족들은 마계에 널리고 널려 있었고, 그들 중 몇 명이 언데드의 마왕성에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뚜벅뚜벅.
뒤에 서 있던 스켈레톤 하나가 들고 있던 고풍스런 상자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방금 전에 뽑아 온 만드라고라 세 뿌리였다.
“저, 그러면 스켈레톤이라도 몇 기 데려가는 게 어떠세요?”
임시방편이랍시고 급히 해 본 말이었지만, 카지한은 정중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스켈레톤 몇 기, 그것도 무기도 없는 것들이 있든 없든 무슨 차이겠는가.
“자, 그럼 엘레나 님, 부탁드립니다.”
“할 수 없군요. 그럼 부디 조심하세요.”
엘레나는 결국 품속에서 푸른색 수정 구슬 하나를 꺼냈다. 보통 마왕성들은 대부분 강력한 결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허락받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포탈을 열거나 텔레포트를 할 수 없다.
거기다 설사 예전에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보안상의 이유로 성에서 결계를 한 번 조정이라도 했다 하면 그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같은 마왕들끼리라면 경우가 다르다. 몇 백 년 전, 마왕들 간의 교류가 너무 없음을 문제로 여긴 마계 중앙 회의소는 ‘마계 중앙 마왕 교류협회’를 설립, 서로의 성을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마왕 본인들에게 마스터 포탈이란 이름의 수정구를 하나씩 지급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영원한 허락 같은 것이었다.
마왕의 칭호와 함께 이어받게 되는 특유의 마력을 읽어서 마왕 본인임을 확인만 한다면, 가고자 하는 곳이 마계 중앙 마왕 교류협회 마스터 포탈안에 찬성한 곳이라면 그가 가고자 하는 어떠한 성의 결계와도 동조하여 그곳으로 가는 포탈을 열 수 있는 물건이었다.
“후우…….”
엘레나는 천천히 자신이 들고 있는 그 물건에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몸에서 옅은 암청색의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팔을 따라 수정 구슬을 향해 흘러들어 갔다.
“푸른 지혜의 마왕의 칭호를 이어 가는 자로서, 언데드 마왕성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기를 바란다.”
특별한 주문도, 복잡한 영창도 필요 없었다. 그런 것은 바로 저 수정 구슬, 마스터 포탈이 대신하니까. 수정 구슬은 그녀의 마력과 목소리에 반응해 점점 푸른색의 빛을 뿜어내더니, 마침내 카지한이 서 있는 곳 앞의 공간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럼 엘레나 님, 다녀오겠습니다.”
마침내 일그러져 가던 틈새가 활짝 열리고 푸른빛의 포탈이 열렸다. 카지한은 엘레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은 채, 그 포탈로 속으로 몸을 옮겼다.
포탈 속에 들어서자 카지한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마나의 흐름, 아니 마나뿐만이 아닌, 마나와는 조금 다른 여러 것들이 섞여져 있는 기운의 흐름들을 느꼈다.
그리고 그 흐름에 잠깐 넋을 잃으려 할 때쯤, 흐름이 멈추고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어서 오십시오. 푸른 지혜의 마왕성에서 오셨지요?”
비록 자신도 마왕성에 살고 있기는 했지만, 언데드의 마왕성이라 하여 좀 더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를 생각했던 카지한은 눈앞에 보이는 예상외의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벽에 걸려 있는 것들은, 언데드의 마왕을 상징하는 문장이 수놓인 붉은 카펫과 천상을 배경으로 한 듯한 아름다운 그림들.
이토록 따뜻하고 고상해 보이는 분위기라니…….
아마 도착하자마자 검은 갑옷의 데스나이트가 정중히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면, 잘못 온 게 아닌가 걱정했을 게 틀림없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집사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아, 그러죠.”
데스나이트는 다시 한 번 정중히 인사를 하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그가 맡은 역할은 저 정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잠깐 대면했을 뿐인데도 그에게서 절로 느껴지던 범상치 않은 기도.
분명 그는 이 마왕성에서 일개 기사 정도의 위치일 게 분명한데도 저 정도라니…….
카지한은 과연 수많은 마왕들 중에서도 서열 2위인 언데드의 마왕성이구나 싶어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음? 근데 우리 마왕님은 서열이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떠오른 의문에 잠시 신경 쓰는 사이, 책임자가 도착했는지 닫혀졌던 문이 열렸다.
마법사들 간의 관례에 따라, 뛰어난 마법사만이 하는 것을 허락받는 황금빛 수가 곱게 놓아져 있는 검은 실크 로브, 그리고 해골뿐인 얼굴과 손, 죽음이란 순리에서 마력과 지식을 잃지 않기 위한 마법사의 또 다른 선택의 결과, 리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