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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9화)
Chapter 4 왕의 권능(3)


철컹! 철컹!
“당장 열지 못해!”
“취익, 취이익…….”
쇠창살 안, 이욱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문을 부수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쇠창살이 사람의 힘에 부러질 수는 없는 노릇. 이욱은 으르렁거리며, 쇠창살 건너의 괴물을 노려보았다.
살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취익, 취이익. 살다 살다, 이런 놈은 처음 본다.”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살리안이 잡아 온 인간만 해도 그 수가 상당한데, 이런 놈은 처음이다. 몇 번 두들겨 맞으면 그새 두려움에 떠는 게 기본. 허나 이 인간은 끝까지 발악하고 있었다.
손에 달았던 기괴한 무기마저 제거된 그는, 맨손밖에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슨 자신인지, 쇠창살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달려들고 봤다.
창대에 후려 맞아도.
몽둥이에 흠씬 두들겨 맞아도.
벌떡 일어서서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취익! 정말…….”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한 마리의 야수였다.
“먹기도 그렇고, 취익.”
오크가 인간들을 잡아 오는 이유가 뭐겠는가? 먹이로 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발악하는 놈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 괜한 골칫거리를 잡아 왔나 싶다.
“노오옴! 넌, 내가 죽인다!”
이욱은 소리를 지르며 쇠창살을 부여잡고 흔들었다.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났고,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런 이욱을 본 살리안은 흠칫했다.
모든 걸 부숴 버리겠다는 이욱의 눈빛!
살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뒷골이 서늘해졌다. 알아듣지 못할 언어였지만, 전해져 오는 의미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죽인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
“취익! 조용히 해!”
퍽!
“큭!”
알 수 없는 섬뜩함에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살리안. 살리안은 욕설을 지껄이며 창대를 거꾸로 쇠창살 사이로 밀어 넣어 이욱의 이마를 강타했다.
두개골이 흔들리는 강한 충격에 이욱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크으윽.”
이욱은 사납게 인상을 구겼다. 무너지면서도 이욱은 똑바로 살리안을 노려보았다. 싸늘한 시선. 그 시선을 맞받은 살리안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쇠창살에서 벗어났다.
“후우!”
이욱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려 보았다.
자신의 손에 단단히 묶여서, 훌륭한 무기가 되어 왔던 털북숭이의 손톱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괴물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제거했으리라.
왠지 허전했다.
자신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해 줬던 손톱. 굴속에서 마지막 몬스터를 상대할 때, 손톱이 아니었으면 거기서 죽었으리라.
“일단…….”
이욱은 일단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로 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괴물들은 굴속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뭉쳐 다니는 모습은 굴속의 털북숭이들이랑 같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뭉쳐 다닐 뿐만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고, 같이 지낸다는 점!
이런 거대한 마을까지 형성하면서 말이다.
음식을 하고, 술을 빚어 마시고, 축제를 열고.
영락없이 인간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만만히 봐선 안 된다!’
인간과 너무나 닮은 괴물들!
그러면서도 인간보다 훨씬 월등한 괴력을 소유!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찢어 죽이고 싶다. 아니, 실제로 그러리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당장 실행할 수 없다. 우선 이 쇠창살조차 벗어나지 못하는데 무얼 할 수 있으랴?
쇠창살을 벗어난다고 해도 문제였다.
이렇게 군집 생활을 하는 괴물들. 고작 일곱 마리를 상대하는 싸움도 처절하게 패배했다.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약하다!’
그랬다.
자신은 약했다.
혼자서 광분하고 날뛸 수야 있다. 그러나 약했다. 치밀하게 반격해 오는 괴물들에게 별다른 수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욱은 이가 갈렸다.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좀 더 치밀하지 못했을까. 좀 더, 빠르게 공격할 순 없었을까. 만약 그때,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했다면 어땠을까.
이욱은 그렇게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자신의 실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반성하고, 더 좋은 방안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이미지를 그려 냈다. 거기서 이욱은 싸우고 또 싸웠다. 새로운 방식으로,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이욱은 그렇게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다.


Chapter 5 주술사 이스마엘(1)


철컹. 철컹.
쇠창살에 기대 하룻밤을 지새운 이욱은 고단했다. 누울 만큼의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막의 차가운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이욱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요 며칠간 안 그래도 사막을 헤맸다. 피곤이 상당히 쌓여 있는 상태였다.
그때, 우락부락한 살리안이 철창으로 다가왔다. 살리안은 쇠창살을 뜯어내듯, 문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힘껏 잡아당겼다.
철컹!
쇠창살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이욱의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퍼억!
이욱의 주먹이 놈의 머리를 강타했다. 혼신의 힘을 담은 한 방이었다. 그러나 살리안은 고통스러워하는 기색 하나도 없이 오히려 열을 냈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악!’ 소리가 나올 법한 파워였지만, 살리안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취익?”
살리안은 거센 콧바람을 뿜어내며 거칠게 달려들었다. 이욱은 급히 몸을 틀고 발을 휘둘렀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뛰쳐나온 발동작. 하지만.
휘웅!
“취이익!”
이욱의 발은 허공을 갈랐다. 살리안이 빠른 몸놀림으로 피했던 것! 살리안은 화가 난 듯,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이욱의 발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퍼억!
“흡!”
이욱은 다리가 붙잡힌 채 바닥에 부딪쳤다. 이미 화가 날 대로 단단히 난 살리안이었기에 거칠 게 없었다.
안 그래도, 섬뜩한 눈빛을 뿌리던 마음에 들지 않던 놈이다.
이젠 먼저 선공을 가해?
용서할 수 없었다.
감히, 사막의 긍지 높은 전사인, 자신에게!
퍽! 퍼억!
“…….”
바닥에 여러 번 부딪침에도 이욱은 비명 하나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살기가 찐득하게 담겨 있는 눈길로 살리안을 쏘아보았다.
독했다.
살리안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다.
살이 까지고, 피가 줄줄 흘러나옴에도 신음 하나 내지 않는다. 손에 무기라도 있으면 당장 죽이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놈의 비명을 듣고 싶었다. 가죽을 벗기고, 펄펄 끓는 물에 산 채로 삶는 방법을 써서라도.
산채로 뜯어 먹으면서라도.
“취익! 네놈! 취익! 그렇게 쳐다보면! 취익! 어쩔 건데! 취익!”
푸악! 퍼억!
살리안은 더 강하게 바닥으로 이욱을 내리쳤다. 이욱의 얼굴이 거의 함몰되어 갔다. 머리가 터져 피가 줄줄 샌다. 가슴팍이 따 까지고, 뜯겨져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때, 이욱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하지만 살리안이 그토록 고대했던 신음이나 비명 따위가 아니었다.
“날 놓지 마라. 날 놓는 순간, 넌 죽는다.”

“저건 뭐 하는 건가?”
“으으음……. 글쎄요. 식량으로 쓰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이스마엘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이스마엘의 눈에 비쳐지는 모습.
한 젊은 남성이 오크에 의해 완전히 짓밟혀지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아무리 오크들이 인간을 식량으로 쓴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소리지만, 실제로 보나 역겨웠다.
같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참았다. 오크부족과 관계가 나빠져서는 좋아질 일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서로의 전통을 인정해 주며,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사막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사실은 당연했다.
안 그러면, 수백,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사막부족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울 테니까.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먹이의 눈빛이 아니다.”
먹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당연,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하는 존재가 포식자 앞에 놓인 먹이리라. 그런데 짓밟혀지고 있는 남자의 눈빛은 먹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자신을 짓밟는 오크에 대해 엄청난 살심을 품고 있는!
독기!
숨이 턱턱 막히게 할 만한 독기가 눈빛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결코 평범치 않은 사람!
이스마엘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한참이나 그 남자를 살폈다. 무엇보다 이스마엘의 눈길을 끄는 점은 남자의 행색이었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머리.
덥수룩한 턱수염.
햇볕에 완전히 탄 구릿빛의 신체. 그리고 꿈틀거리는 근육!
그 근육을 본 이스마엘은 놀랐다.
정말, 말 그대로 감탄스럽기 짝이 없는 근육이 아닌가? 전투에 용이하게 놀랍도록 치밀했다.
쓸데없이 크지 않았다. 적당한 크기에 최강의 괴력을 끌어낼 수 있는 근육. 저 근육은 결코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근육이다.
전투.
그것도 생존에 직결된 치열한 전투를 통해 단련된 신체라! 그런 신체를 가진 자가 고작 오크에게 저리도 짓밟힌단 말인가?
이상했다.
한참이나 남자를 살피던 이스마엘.
문득, 이스마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여졌다.
“아, 아니 저, 저건!”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은 덜덜 떨렸다. 한 번도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스마엘. 그런 이스마엘이 흥분과 경악에 말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의 목에 걸려 있는 무언가.
그것을 본 이스마엘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 모르겠는가!
오래된 서적에서나 나오던 그림의 펜던트!
이스마엘의 입에서 경악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모래술사의…… 신기가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