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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10화)
Chapter 5 주술사 이스마엘(2)


이욱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괴물이 아닌, 바로 사람의 시선. 하지만 계속되는 고통으로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는 이욱은 차마 그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모래 폭풍에 휩쓸리고 난 후.
처음 보는 사람.
그러나 이미 정신이 가물가물했고, 숨이 턱턱 막혀 오고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부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욱은 끝까지 살리안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피가 흘러 눈 속으로 들어가도, 눈을 부릅뜨고 살리안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살리안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보아도, 이런 독종은 처음 본다.
인간 중에 이리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불현듯 두려워졌다. 모든 인간들이 이와 같다면 정말 두렵기 짝이 없는 종족이 아닌가.
살리안은 짐짓 감탄을 터뜨렸다.
허나, 이욱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어차피 보잘것없는 인간뿐. 그저 죽이면 됐다. 죽여서 그 시체로 저녁을 지으면 될 일. 무엇이 두렵겠는가?
살리안은 글레이브를 들었다.
“하아압!”
가차 없이 내려찍으려는 그 순간!
우우웅!
공명음이 허공에 울리더니 알 수 없는 힘이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 힘은 살리안의 몸을 붙잡았다. 단 한 치의 움직임도 허용치 않는 힘!
“취, 취익?!”
살리안은 당황했다. 어쩔 수 없는, 너무 거대한 힘이었다. 살리안은 안간힘을 내보았다. 근육이 터질 것처럼, 푸른 힘줄이 톡톡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살리안은 붉게 충혈된 눈동자를 굴렸다.
도대체 이 갑작스런 힘은 무어란 말인가!
꽝!
“취엑!”
순간 일대를 장악하던 힘은 강하게 폭발했다. 그 폭발에 휘말려 살리안은 무려 10m가량 날아갔다. 살리안이 날아가자 쓰러져 있는 이욱의 곁으로 이스마엘이 급히 달려갔다.
“괜찮은가?”
“……?”
문득 귀에 꽂히는 목소리. 듣기 거북했던 괴물들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욱은 눈을 떴다.
붉었다.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모두, 하나같이 붉었다. 피로 얼굴이 범벅이 되어서였다. 어쨌든 세상이 붉다고 하지만, 바로 앞에 누가 있는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사람…….’
사람이다.
모래 폭풍에 휩쓸리고 나서, 처음으로 본 사람. 이욱의 마음이 불현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반가움이었다.
반가움! 정말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비정상적인 생존의 투쟁에서 드디어 만난 사람!
“괜찮나? 흐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인가?”
이욱은 도저히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열 기력조차 남지 않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노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듣는 언어.
“…….”
이스마엘은 이욱을 가까이서 보고 경악했다.
온몸이 피로 뒤범벅이었다. 갈비뼈도 여러 개가 부러졌고, 머리도 깨져 피가 줄줄 흘렀다. 가슴이 완전히 찢어져 뼈까지 보일 정도였다. 또 얼굴이 함몰되어 코뼈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허! 이런 상태로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욱의 상태를 확인한 이스마엘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끔찍했다. 어찌 사람이 이 지경까지 되어도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마치…….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괴물 같지 않은가?
이스마엘은 몰랐다.
이욱이 어떤 상황에서 버텨 왔는지.
어떤 결심으로 투쟁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무슨 일인가!”
쾅!
그때, 엄청난 위압감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거대한 인영이 뛰쳐나왔다.
수수숙!
인영이 나타난 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오크들이 그대로 부복했다. 땅에 코를 박고 경배했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몸을 덜덜 떠는 오크들의 모습은…….
마치 어쩔 수 없는 신을 경배하는 모습 같았다. 그 자존심 높던 오크들을 단번에 굴복케 할 수 있는 이는 사막, 아니 전 대륙에서 유일했다.
엄청난 위용!
사막의 모든 오크들을 전두 지휘하는.
오크 대족장, 카푸르였다.
카푸르는 고개를 쭉 펴며, 눈을 부릅떴다. 온 주위에 주술의 힘이, 마나의 힘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주술적인 힘! 일대 주위를 장악하는 그 거대한 힘을 느낀 카푸르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오크 주술사 중에는, 이 정도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주술사는 없다.
그렇다면, 얼마 전에 부족을 찾은 모래부족의 주술사들일 터!
카푸르의 예상은 정확했다. 자신의 눈앞에, 가슴팍이 완전히 부서진 오크와, 약간 떨어진 곳에서 주술을 부리는 사람이 비쳐졌다.
카푸르는 워해머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모래가 자욱하게 퍼졌다.
그런 모래 사이에서 카푸르의 눈이 번득였다.
“으…… 으윽.”
정신이 혼미해지던 이욱은 갑작스러운 압박감에 정신을 차렸다. 앞이 붉었지만, 거대한 괴물이 표정을 구긴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이욱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됐다.
‘대체…….’
대체 여기는 어떤 곳이란 말인가!
괴물의 신장은 무려 3m에 이르렀다. 주먹이 이욱의 상반신만 할 정도였다. 엄청난 크기! 어떤 곳이기에, 저런 괴물이 존재한단 말인가.
굴속, 마지막 괴물을 처리할 때보다 더욱 강하게 조여 오는 압박감!
이욱이 카푸르를 살피고 있지만, 카푸르는 이욱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못 썼다.
그의 신경은 모조리 이스마엘에게 가 있었으니까.
카푸르는 단단히 분노했다.
단지 부족 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기 위해 왔다는 주술사들. 그런데 감히 오크에게 주술을 사용해?
자신을 뭐로 보고 하는 행위겠는가!
“이스마엘!”
카푸르의 목소리가 허공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자신의 부족 일에 이방인이 관여하는 점은 정말 끔찍이도 싫어하는 카푸르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술을 사용한 이유는.
‘신기…….’
모래술사의 신기.
그것을 어찌 저 사람이 착용하고 있겠는가?
설마, 새로운 모래술사라도 된단 말인가.
어쨌든 그랬다. 모래술사의 신기를 갖고 있는 이상, 모래부족의 한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400년 동안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그 후계자일지도 모른다.
우선 어떻게든 살리고 봐야만 했다.
이스마엘은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미안하오. 카푸르 대족장.”
“이스마엘!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카푸르는 노한 빛을 띠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쿵! 쿵!
바닥이 울려 댔다. 모래로 이루어진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앞뒤가 꽉 막힌 족장이 카푸르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전사다운 사람이 카푸르였기도 했고.
“우리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다 하지 않았소? 물론 서로 부족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함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소.”
“뭐라?”
쾅!
이스마엘이 차근차근 설명하자, 카푸르는 오히려 더 노한 빛을 띠며 이스마엘을 압박했다. 워해머를 쥔 오른 팔뚝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살기가 도끼날을 예리하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이스마엘을 찍어 내릴 기세였다.
“또 다른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 접근한 것인가!”
“오해 마시오. 족장. 우리는 단지 저 사람을 찾고 있었소.”
이스마엘은 뒤에 있는 이욱을 가리켰다.
그러자 일순간 좌중의 시선이 모두 이욱에게 쏠렸다.
스윽, 슥.
마침 이욱이 힘겹게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간신히 두 다리로 일어선 이욱은 전신이 피로 뒤범벅이었다.
오로지 피, 피, 피!
너무나도 붉은 피에선 잔혹하다 못해 한편의 황홀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틈에서 이욱의 눈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욱의 눈빛이었다.
이욱을 흘깃 본 카푸르는 다시 이스마엘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자가 누구인데 찾는 것인가!”
“그건 우리 부족의 사정이오.”
“그 사정을 알려 주지 않는 이상, 용서하지 못하다!”
“서로 부족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막의 관례요.”
“그 관례를 먼저 깬 건, 너지!”
이스마엘의 말에 한 치도 밀리지 않으며 카푸르는 성큼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숨이 턱턱 막히는 압박감에 이스마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과연 사막 최고의 전사답다.
그러나, 지금 쓸데없이 감탄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스마엘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부탁하오. 오크부족에서 내 맘대로 주술을 사용해서 오크를 다치게 한 것은 내 잘못이오, 사과드리겠소. 허나, 저 사람만큼은 우리가 데려가야 하오.”
이욱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일이다. 엄청난 괴물과, 알 수 없는 기운을 내포하고 있는 노인! 당장이라도 한판 붙을 기세인데 끝까지 대화만 하는 모습이 아닌가.
무엇보다, 난생처음 들어 보는 언어로서 말이다.
노인이 그런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보단, 괴물이 인간의 말을 유창하게 하며 사람과 대화한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꼭 그렇지만은 않지.’
이욱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몸을 붙잡으며 생각했다. 오히려, 노인이 괴물의 말을 쓰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이욱에게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는 것!
그러나 이건 확실했다.
최소한 노인은 자신을 구하려고 하며, 괴물은 자신을 죽이리라는 것을.
이욱은 눈을 빛내며, 이 상황을 주시했다.
“이스마엘, 저놈은 극악무도한 놈이네.”
“……?”
“우리의 전사들 두 명을 반불구로 만들어 놓았지. 한 명은 가슴이 찢어져 끝내 죽고 말았고, 한 명은 살아남았으나 무릎 밑을 잃어 다시는 걷지도, 뛰지도 못하지. 그런 놈을 풀어 달라고? 데려가겠다고? 허! 웃기지 마라!”
쾅!
카푸르는 비웃음을 지으며 바닥을 다시 한 번 내리쳤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오크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취익, 죽인다! 취익!”
“우리 전사를. 취익!”
“취이익! 살리안도 저 늙은이 때문에 다쳤다! 죽이자! 취익!”
오크들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당장이라도 도끼를 들고 달려들 기세였다. 만약 카푸르가 워해머로 자신을 내려찍는다면, 한바탕 전투가 시작되리라.
이스마엘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 슬쩍 이욱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내심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꿈틀거리는 근육, 피로 뒤덮인 얼굴에서 매섭게 빛나는 눈빛은 침을 꿀꺽 삼키게 할 정도로 섬뜩했다. 그 모습에서 이스마엘은 느꼈다.
‘과연 권능의 신기가 선택한 사람이로고!’
권능의 신기.
모래술사가 죽기 전, 권능을 자신의 무구에 부여함과 동시에 탄생한 신기들!
그 신기가, 그 권능이 선택한 이욱이었다.
신기의 선택을 받은 이는 모래술사 이후, 그 누구도 없었다. 오로지 모래술사의 후계자만 그 권능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허나, 수많은 주술사들이 신기를 손에 넣었지만, 모두 권능의 선택을 받는 것에 실패했다. 그렇게, 신기들은 사막 곳곳, 아니 전 대륙 곳곳으로 퍼졌다.
그 권능의 선택을 받은 이가.
이제야 나타났다.
이욱의 기골을 보니 남달랐다. 무엇보다 이스마엘의 시선을 끄는 점은.
이욱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야수의 형상!
이스마엘은 볼 수 있었다.
야수는 포효하려 했다.
아직 힘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 만약 힘이 뒷받침된다면, 사막을 호령할 만한 야수의 포효!
과연 권능의 선택을 받을 만한 인물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때, 카푸르의 입이 열렸다.
“저놈은. 죽일 거라네.”
“카푸르!”
이스마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이었다. 카푸르의 말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런 전사는, 스스로가 최고의 전사임을 자부하는 카푸르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저리 말하면.
정말 죽이겠다는 뜻이다.
이스마엘은 급해졌다.
“일단, 나와 좀 더 대화, 아니 저 사람을 치료하고…….”
“비키지 않으면 이스마엘 자네도 가만히 두지 않겠네.”
“…….”
콰콰쾅!
엄청난 살기가 폭사됐다. 살기는 모래를 날려 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모래 속을 기어 다니던 작은 벌레들이 모두 터져 버렸다.
이스마엘의 표정도 급격하게 구겨졌다. 가공할 만한 살기!
그 순간…….
차차착!
이스마엘의 주위로 주술사들이 뭉쳤다. 이스마엘을 포함해 모두 열두 명. 이스마엘을 따라온, 모래부족의 주술사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카푸르가 냉소했다.
“막겠다는 건가?”
“……자네들…….”
이스마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이 모습은 수천의 오크들과 12명의 주술사들이 대립하는 장면 같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정말 그랬다.
누가 먼저 움직이냐에 따라 전투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 이스마엘은 눈을 감았다.
싸울 수는 없었다.
싸움 후에 오는 손해를 떠나,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다.
12명의 주술사로 수천의 오크를 어찌 제압하겠는가! 가장 강하다는 주술사들이 뭉쳐도 절대불가한 일이었다.
사막오크들은 강하다.
정말 끔찍하게 강하다. 결코 부딪칠 수 없었다. 미래가 촉망한 어린 주술사들을 여기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후계자를 포기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