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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11화)
Chapter 5 주술사 이스마엘(3)


“무얼 원하나, 카푸르?”
“……훗.”
그 말에 카푸르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크의 미소.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카푸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이건 어느 정도 생각하고 벌인 일이라고.
가히 오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지능이다. 이스마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푸르는 인간보다 훨씬 지능적이면서도, 강한 전사였으니까.
“주술사들에게 원하는 것이 뭐가 있겠나?”
“주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인가?”
“주술법. 심화주술의 중간단계 이상을 우리 부족의 주술사에게 전해라.”
이스마엘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주술은 모래부족만의 힘이었다. 다른 부족에도 주술사야 많지만, 모래부족에게는 조족지혈이었다. 그만큼 모래부족은 주술에 정통성이 강했다.
그만큼 보안도 심했다.
부족의 주술사들이 아닌 이상, 모래부족만의 주술법을 가르치지 않다는 사실.
“다른 건, 원하지 않나?”
“주술법을 전하라고 말했다.”
카푸르는 완강했다. 이스마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가지를 원하나.”
“두 가지.”
“…….”
한 가지도, 아닌 두 가지. 치명적이었다. 두 가지의 가치만 따져도 어느 정도의 황금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었다.
“저놈 때문에 위대한 전사 두 명이 사실상 죽었다. 그럼 두 가지지.”
“그렇게 하도록 하지. 저자를 데리고 돌아간 다음, 주술법을 전하겠네.”
“이스마엘 님!”
이스마엘의 말에 놀란 건 다른 주술사들이었다. 주술법을 저리도 순순히 오크들에게 넘기다니! 주술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말이 없었다.
묵묵부답.
주술사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이스마엘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괜찮나?”
“…….”
이스마엘은 경악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경악스러웠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 놓고서도 이욱은 쓰러지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굳건히 서 있었다.
붉게 흐르던 피가 어느새 찐득하게 굳어 있었다.
“공용어를 못하나?”
“…….”
이욱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그럴 수밖에. 이스마엘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듣기에는 아랍어하고 억양이 비슷하기도 한데, 자세히 들어 보면 전혀 딴판이었다.
그러나 흘러가는 분위기와 상황.
이욱은 대충 자신의 상태에 대한 말이라는 점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끄덕.
“자넨, 우리와 같이 갈 걸세.”
이스마엘은 보디랭귀지를 통해 말을 건넸다. 어느 정도 이해한 이욱. 문득 이욱이 고개를 저었다.
“……?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이스마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크들 사이에서 구해 주겠다는 뜻인데, 고개를 젓다니?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스마엘은 다시 보디랭귀지로 열심히 설명했다.
허나…….
“…….”
이욱은 고개를 저었다.
“허?”
이스마엘은 허탈한 신음을 내뱉었다. 무조건 데리고 가야만 했다. 가서 그가 정말 후계자인지 더 세밀히 살펴봐야 했고, 우선 치료부터 해야만 했다.
그런데 거절하다니?
이욱이 이스마엘의 몸짓을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이해했다. 구해 줄 테니, 자신을 따라오라는 소리.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이스마엘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왜?
“…….”
이욱은 물끄러미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없다는 듯한 표현을 했다. 이스마엘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어 푹푹 찌르는 행동까지 보여 줬다.
전신이 피로 뒤범벅인 상태에서 그리 행동하는 이욱의 모습은 섬뜩하다 못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아마도, 자신의 손에 있던 무기를 찾는가 보군.”
“무기?”
“손에 기괴한 손톱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걸로 우리네 전사를 죽였더군. 위험한 무기야.”
카푸르의 말에 이스마엘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 무기를 가져오라 말했다. 허나 오크들이 이스마엘의 명령을 듣겠는가?
멀뚱히 서서, 오크들은 흉흉한 눈길로 이스마엘을 쏘아보고 있었다.
결국 카푸르가 명령했다.
“가지고 오라.”
차차착!
오크들이 재빨리 가져온 무기는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손톱들이었다. 가죽에 엮인 손톱들. 그것을 이욱 앞에 내려놓았다.
“…….”
이욱의 눈이 밝게 빛났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숙여 자신의 손에 가죽을 덧대며 손톱을 묶었다. 이스마엘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손톱…….’
본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문헌에서 본 적이 있는 손톱이다. 과거, 모래술사가 모래를 빚어 만들어 냈다는 괴물들.
그 괴물들의 손톱은 철도 자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설마 그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최소한 모래술사가 남긴 흔적과 부딪쳤으리라. 그 과정에서 신기를 얻었을 테고. 그리고 권능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은 맞았다.
저자는 후계자라고.
400년 만에 나타난, 모래술사의 후계자라고.
“후……후후.”
이욱은 자신의 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 관절의 움직임에 따라 손톱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허전한 느낌이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다. 한참을 그렇게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던 이욱.
반짝.
별안간 그의 눈이 번득 빛났다.
그리고.
“합!”
쾅!
이욱이 무릎을 굽히더니, 이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아, 아니!”
“취이익!”
엄청난 점프력이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순식간에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욱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상당한 살기가 이욱의 주위에서 뿜어졌다. 그 살기는 피부로 파르르 전해져 올 정도!
푸우욱!
촤악!
“취, 취에에에악!”
순간이었다.
붉은 핏방울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한 움큼의 피가 이욱의 안면에 튀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저, 저런!”
이스마엘이 순간 경악을 터뜨렸다.
이욱의 손톱이, 오크의 목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는 이욱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기괴하게 비틀린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했잖아. 날 놓는 순간, 넌 죽는다고.”
이욱이 죽인 오크는 다름 아닌 살리안이었다. 살리안은 눈을 부릅뜨며 이욱을 바라보았다. 뜨겁다. 목에서부터 시작한 고통은 온몸의 세포를 타고 비명을 지른다.
짧은 시간.
살리안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죽었다. 저놈에게, 자신이 그리도 가벼이 봤던 저 자식에게.
죽어 가고 있었다. 사막의 긍지 높은 전사, 자신이……. 살리안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
“……끄으억…….”
그러나 가래 끓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이욱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결국…….
“컥…….”
살리안은 죽었다. 목이 완전히 꿰뚫린 채.
정적.
좌중이 정적에 휩싸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 때문일까. 이스마엘도 넋 나간 시선으로 이욱을 바라보았다. 모든 시선이 이욱에게 쏠렸다.
순간 엄청난 도약으로, 몇 미터 떨어져 있는 곳까지 달려 나간단 말인가. 그리고 단 한 방에 목을…….
“취, 취익! 죽여라!”
“취익! 살리안을 죽였다! 취익!”
채채챙! 챙!
모든 오크들이 이욱을 둥글게 포위했다. 그리고 목 앞에 바로 글레이브를 들이댔다.
“…….”
수백의 오크가 순식간에 둘러싸였음에도, 이욱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무런 감흥조차 없는 표정이었다. 핏물이 서린 손톱을 보며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그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놈은 죽이고 가야지. 죽인다고, 했으니까.”
눈이 감긴다.
다리가 비틀거린다.
붉었던 하늘이, 노래지고, 더욱 붉어지다가, 다시 검어졌다.
어떻게든 버텨 왔던 정신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스르르!
털썩!
이욱은 무너졌다. 아니, 하고자 했던 일을 성공했기 때문에 더 버틸 이유도 없었다. 그의 몸은, 정말 죽음 직전에 놓인 아주 급박한 상태였으니까. 살리안을 죽이고자, 그 기회를 얻고자 버텼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리안을 죽이고자 버텼다.
살리안을 죽였으니 됐다.
스스로가 했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긴장이 풀렸다.
이제 이욱의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리라. 쓰러지는 이욱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Chapter 6 배워라, 익혀라!(1)


모래부족.
사막의 4대 수호부족 중 하나.
모든 주술의 근원은 모래부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래부족은 주술에서 단연 최고였다.
그리고 400년 전.
그때, 등장한 모래술사라는 거대한 왕!
모래부족이 배출해 낸 희대의 영웅.
모래술사는 광폭했다. 순식간에 사막을 휘어잡고, 그토록 오만했던 대륙을 향해 포효했다.
대륙과 사막의 전쟁!
그 서막이 올랐다. 치열한 전투는 거듭 일어났다. 싸우고, 죽이고, 승리하고, 패배하고. 그 누구의 승리를 예측할 수 없던 대접전이었다.
허나…….
전쟁 도중 모래술사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허나 완전한 종결은 아니었다. 엄연히 휴전조약을 맺었으니까.
모래술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사막은 혼란에 빠졌다.
특히 모래부족은 더더욱 그랬다.
모래술사는 애석하게도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죽었다. 그러자 모래부족은 분열했다. 서로 자신이 모래술사가 되리라고, 족장이 되리라고.
친구를 죽이고.
전우를 죽이고.
스승을 죽였다.
그렇게 분열하는 가운데, 오아시스 부족이 세력을 늘렸다. 순식간에 권력을 휘어잡은 오아시스는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권력을 이어 오고 있었다.
모래부족은 억압받았다.
오아시스 부족의 손아귀에 숨통이 쥐여졌다.
그렇게,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모래부족에 다시 한 번,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사막을 전율케 하는.
폭풍이.

그 폭풍의 핵에는 이욱이 있었다.
이욱은 사막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모래부족을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아.”
대단했다. 거대한 성의 모습. 그 성의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으로 길이 쭉 뻗어 있었다. 그 중앙에는 거대한 오아시스가 형성되어 있었고, 주위로 수많은 인공 오아시스가 넘쳐 났다.
오아시스 중심으로 각종 밭이 형성되어 있었다. 상당히 풍요로운 모습이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마치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했다.
둥그런 곡선이 인상적이었다.
이스마엘을 무작정 따라온 이욱은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사막 도시의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면서도 대단했으니까.
“사람……들이 사는 곳이군.”
여기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사막에서……. 이욱은 진정 오아시스에 찾아들었다.
허나 이욱은 몰랐다.
곧 진정 오아시스라 생각했던 곳에서, 목숨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수련과 싸움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이욱의 등장으로 모래부족의 분위기는 상당히 뒤숭숭했다.
오아시스 부족의 압력으로 원로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던 이스마엘이 데리고 온 사내, 이욱 때문이었다.
온몸을 붕대로 꽁꽁 맨 사내.
붕대 사이로 내뿜은 안광은 실로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꿈틀거리는 근육과 길게 자란 손톱은 그 어떤 검보다 날카로워 섬뜩함을 갖다 줬다.
무엇보다 사내를 소개하던 이스마엘의 발언이 문제였다.
그 발언은 순식간에 모래부족을 혼란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뜨리게 했으니까.
‘모래술사의 후계자를 찾았다.’
“후계자라니…….”
현재, 모래부족 원로장 하자르.
하자르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모래술사의 후계자. 400년 동안 명맥이 끊어졌던 후계자가 지금에서야 나타나다니?
무엇보다 이스마엘의 말이 충격인 점은.
신기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허나 그건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모래술사의 신기 중 하나, 용의 펜던트.
분명 사내는 그 펜던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권능을 다루지는 못했다. 아니 권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즉 그 말은 권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
모래술사의 후계자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무엇보다 공용어를 못하는 이방인.
어디가 고향인지도,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방인에게 모래술사로서의 인정을 할 수 없었다.
또한 400년 동안, 신기를 손에 넣는 자는 많았다.
여러 주술사가 신기를 찾았지만, 그 권능을 다루지 못했다. 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방인이 인정을 받았다면 그건 분명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허나, 확실치 않다. 인정을 받았단 증거가 없다.
“이스마엘은 단단히 그가 후계자임을 믿고 있군.”
그게 문제였다.
신기를 찾은 점은 분명 대단한 일.
충분히 모래술사를 탄생시킬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한 셈이니까. 그러나 권능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저 장신구일 뿐. 하자르가 보기에 이방인이 권능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강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독기가 가득했다.
무엇이든지 해내고 말겠다는 독기.
허나.
주술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뛰어난 전사임에는 분명해도, 주술사는 아니었다.
단 한 줌의 마나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평생 주술을 모르고 산 사람 같았다. 그런 사람이 주술의 끝을 본 모래술사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말이나 되겠는가?
“이스마엘하고 담판을 지어야겠군.”
하자르의 생각은 이스마엘과 달랐다. 신기를 얻었으면, 그 권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에게 줘야 된다는 것!
바로 부족 내, 젊은 층의 주술사에서 가장 강한 이이게 줄 생각이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스마엘과 담판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었다.
모래부족의 권력은, 하자르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모래부족에서.
이스마엘이 지는 해라면, 하자르는 떠오르는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