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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13화)
Chapter 6 배워라, 익혀라!(3)
이욱에게 던져진 과제.
마나를 느껴라.
그렇다. 모든 생명의 근원에는 마나가 존재했다. 생명과 마나로 소통하며 그 힘을 빌리는 주술로서는 마나를 다루는 점이 가장 급선무였다.
허나 광범위했다.
너무 막연했다.
다짜고짜 마나를 느끼라니?
그 한마디로 어찌할 수 있겠는가. 느낀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마나가 아니었다. 어이없는 눈초리로 이스마엘을 노려보아도, 이스마엘은 차가운 표정을 유지한 채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허술한 놈인가?”
쿵!
이욱의 가슴을 후벼 파는 한마디!
그 말은 이욱의 자존심에 금을 가게 하는 소리였다. 이욱은 결코 허술한 놈이 아니었다. 남의 도움 따위 없어도 혼자서 성장하는, 혼자서 먹이를 사냥할 수 있는 야수였다.
이욱은 입을 악 깨물었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다.
아무런 도움 없이도, 막연한 과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음을. 그렇다고 맨땅에 헤딩하는 듯이 할 수 있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제시되지 않은 채, 마나를 느껴라! 라고 하면 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허나 이욱은 이미 책을 통해 배웠다.
마나는 주위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모든 생명, 아니 생명뿐만 아니라 굴러가는 돌에도 마나가 존재함을. 만물을 이루는 모든 에너지는 마나였다. 그럼 자신의 몸도 마나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 공기도 마나로 이루어졌으리라.
이욱은 쉽게 생각했다.
자신은 모르지만 이미 마나는 존재했다.
당장 이욱의 발밑에도, 손끝에도, 머리카락에도 존재했다.
‘마음을 편안히…….’
마음을 편안히 갖기로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마나를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 박동 수가 계속 빨라지고 있었으니까.
이욱은 문득 요가를 배웠을 때를 기억했다.
비록 좋아하는 여자 친구 때문에 흥미도, 재미도 없는데 배운 요가였지만. 요가를 할 때만큼은 꽤나 성실하게 했다.
왜?
편했으니까.
요가는 초반에 자세 때문에 조금 고통스러울 뿐. 어느 정도 숙달되면 정말 편했다.
사람들은 흔히 널브러진 것처럼 누워 있는 자세가 가장 편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요가 자세는 가장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정말 틀린 생각이었다.
이욱에게 있어서 요가자세만큼 가장 편한 자세가 없었다. 그중 가장 기본이 가부좌였다.
흔히 말하는 연꽃자세.
이욱은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가부좌를 취했다.
오랜만에 취하는 자세라 어색한 점이 많았다.
허나, 이욱은 그 누구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젠 습관이 된 풀무호흡.
가부좌를 취한 채 호흡을 하는 이욱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편안했다.
심신이 안정되고 있었다.
“후우……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이욱은 그저 묵묵히 호흡만을 계속했다. 머릿속으로는 끊임없는 명상을 계속했다. 흔히 머리를 비워야 한다고 하지만, 머리를 비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인간인 이상.
그렇다면 생각을 해야만 했다.
문제는 여기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폭력적, 성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이었다. 오히려 호흡을 흐트러지게 하니까.
사색.
그저 조용한 사색이었다.
이욱은 마음속으로 시를 읊었다. 마음을 편안히 해 주는 현대시는 충분히 많았다. 그중 몇 가지는 암송하고 다니기도 했으니까.
그 모습을 보며 이스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편안해 보이는군.”
이스마엘이 본 이욱은 그랬다.
편안함과 아늑함에 누워 있는. 사실 가부좌라는 자세는 일반인이 하기에는 엄청 불편한 자세다. 고작 30분도 못 버티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이욱은 벌써 3시간, 아니 4시간 가까이 그러고 있었다.
그럼에도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허어.’
이스마엘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했다. 저런 불편한 자세로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다니.
그런 자세로 이욱은 며칠을 보냈다. 하루가 지날 때쯤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아직 느끼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틀, 삼 일, 사 일이 지날 무렵부턴 이욱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 방법으로 마나를 느끼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초조함. 하지만 초조해질수록 이욱은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모든 일이 초조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빨리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쯤은 이미 살아오면서 충분히 알은 교훈이었다.
이욱은 침착하게, 차근차근 마나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식사를 거르는 것도 일쑤였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
‘독종!’
이스마엘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독종이다.
눈빛에 독기가 흐르는 점부터 이미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누가 알았던가. 정말 이욱은 독종, 그 이상이었다.
문득, 이욱의 귓가에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졸졸졸!
‘……!’
이욱의 머릿속이 순간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 이욱은 눈을 감은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위에 계곡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럼 저 계곡물 소리는…….
‘마나!’
마나(Mana)였다. 일주일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욱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마나를…… 어떻게.’
마나를 어찌 자신의 몸 안에 집어넣고, 움직일 수 있을까? 마나를 느끼는 것엔 성공했다. 허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어찌 자신의 몸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일주일.
마나를 느끼기 위해 허비된 시간이었다.
일주일 만에 마나를 느끼기에 성공했는데, 이욱은 또 다른 벽을 만난 셈이었다.
이욱은 고민했다. 마나를 잡는다는 느낌은 어떨까?
‘잡아 보자.’
이스마엘은 철저하게 이욱이 혼자 성장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절대로 이욱의 수련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욱의 싸움이었다. 남의 도움으로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중요한 순간, 마나를 조절하지 못하여 큰 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혼자 스스로 깨달아야 했다.
스스로 깨닫는 지식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이욱은 우선 마나를 잡아 보기로 했다.
물처럼 허공에서 졸졸 흐르는 마나들.
마나들은 계속해서 흘렀다. 그러나…….
‘잡히지 않아.’
잡히지 않았다.
마나는 잡힐 듯하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았다. 손에 잡힌다고 생각되는 순간, 마나는 허공에 샅샅이 흩어졌다.
“크윽…….”
팟!
이욱의 굳게 닫힌 입가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렵다. 정말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이 마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선 이스마엘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방법을 알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부탁하더라도 알려 줄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 자신만의 싸움이었다.
인내심 싸움.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수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수련들을 버티지 못하리라.
이욱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졸졸졸!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나가 느껴졌다. 맑고, 푸른. 이 마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욱은 고심했다. 무작정 잡으려고 하면 또 흩어지고 마리라.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주룩.
이욱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마나를 잡을 수도 없다. 그건 아마 마나를 억지로 잡으려 했기 때문에도 몰랐다.
‘그러면…….’
그러면 억지로 하지 않으면 됐다.
마나가, 자신을 친근하게 여길 때까지. 자신이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됐다. 그럼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올 것이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그러나 이욱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불편한 가부좌를 튼 채,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그의 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안 됐다. 아무리 기다려도 마나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멀찍이 흐를 뿐이었다. 그 때문에 답답했다. 이리 오라고 손짓해도 마나는 결코 가까이 오지 않았다.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이욱의 몸에 비가 내렸다. 땀이 주르륵 흘러내려 곧바로 탈진이라도 할 것처럼. 이욱의 몸이 땀에 범벅이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느낀 마나다.
여기서 잡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문득 이욱은 그런 생각을 했다. 마나와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에게 오라고 말할 수 있고, 쉽게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허나 자연을 이루는 마나. 그 마나와 따로 소통하는 방법은 없었다.
‘없……었나?’
이욱은 골똘히 생각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연과의 소통! 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소통하는…….
이욱의 머릿속에 스쳐지는 한 생각.
그것은 기발했다.
‘챠크라(Chakra)!’
챠크라였다.
Chapter 7 챠크라(Chakra)(1)
이욱은 챠크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때 배운 요가에서 챠크라의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했던 터였다.
‘챠크라……는 소통할 수 있다.’
자연의 기운을 느끼고,
자연과 동화되고, 그리고 소통한다. 그것이 챠크라의 힘이기도 했다. 허나 이욱은 챠크라에 대해 열성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저 개념만 알고 있을 뿐. 이욱의 몸에 챠크라가 열리지 않았다고 할까?
‘후, 생각해 보자.’
이욱은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했다.
생각해 보니 이랬다. 저 마나가 흐르는 소리는 어쩌면 나다(Nada)일지도 몰랐다. 요가경전에서 말하는, 챠크라를 일깨울 때 들리는 자연의 소리.
마나가 하나의 자연이니 곧 같은 말이 아닌가?
이욱은 집중했다.
식음을 전폐하고도 집중했다.
마치 과거 고행을 수행하던 석가모니가 그랬듯이.
그도 오로지 챠크라에 집중이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지났다.
딱 봐도 이욱의 상태는 심각한 지경이었지만 이스마엘은 묵묵히 지켜봤다. 혼자 뭔가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이었다.
이욱은 이미 한 단계는 넘었다. 챠크라를 열기 위한 마나의 소리, 즉 나다를 듣지 않았는가.
‘하나만 열면…….’
챠크라는 총 일곱 개로 구성된다.
그중 하나만 연다고 해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나는 이욱에게 다가왔다.
마치 말을 걸어오듯이.
우우우웅!
‘열렸다!’
챠크라가 열린 것이다. 비록 하나의 챠크라였지만 마나를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순간! 이욱의 배꼽 부근에 푸른 마나가 형태를 띠며 흡수됐다.
“큭!”
파파팍!
강렬한 충격이 복부를 강타했다. 순간 헛구역질이 울컥 솟았다. 이욱은 입을 악다물며 참았다. 여기서 흔들려서는 안 됐다.
덜덜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입술이 새파랗게 변했고, 이빨이 딱딱 부딪쳤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각종 노폐물이 담긴 땀은 주위를 흥건하게 만들 정도였다.
푸른 마나는 끊임없이 이욱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챠크라!
그것의 힘은 대단했다. 남들이었다면 몇 달, 아니 최소 1년 이상은 수련을 해야 모을 수 있는 마나를 삼키고 있었다.
거침없이 차오르는 마나!
챠크라는 자연을 불렀다. 자연을 끌어 모았다.
달변가.
그랬다. 사람으로 치면 달변가였다. 기가 막힌 달변으로 자연과 소통하고, 끌어들였다.
그리고 마나가 가득 찬 순간.
“억!”
부르르!
철푸덕!
이욱은, 경련과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