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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16화)
Chapter 8 생존 게임을 위한 준비 과정(1)


한참 대소를 터뜨리던 이욱은 문득 웃음을 멈추었다.
모래가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마치 제 몸인 양.
어쩌면 정말 이스마엘 말대로 자신의 신체가 모래로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욱은 눈을 빛내며 모래를 자세히 살폈다.
관찰.
중요한 무언가를 탐구하듯. 이욱은 학자의 모습까지 풍기면서 집중하며 관찰했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모래 알갱이.
‘느껴져.’
느껴진다.
무언가 다른 성질이 느껴진다. 이욱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모래의 느낌. 미묘한 감촉으로 성질이 아련한 안개처럼 느껴진다.
모래를 다루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예민한 느낌이었다. 이로써 이욱의 신체 내부가 모래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수긍해야 하리라.
하지만 이욱은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배를 가르지 않는 이상 믿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이욱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모래가 자신의 권속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화악!
이욱이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챠크라를 더 크게 개방했다.
우웅!
마나는 온몸의 신경을 타고 흘렀다. 끊임없는 흐름. 그런 흐름의 끝은 이욱의 손끝이었다. 순간 이욱의 손끝에서 푸른 기운이 수증기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스스스슥!
동시에 모래가 움직였다.
마나를 등에 업고. 챠크라와 소통하며, 이욱의 뜻대로 움직였다.
이욱이 손을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그러자 일부의 모래가 오른쪽으로 스스슥 움직였다.
휙.
이어, 왼쪽으로 비틀었다. 모래가 왼쪽으로 스르륵 움직였다. 마치 말을 잘 듣는 애완동물마냥, 모래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큭.”
이욱의 입가가 씰룩였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의해 자유자재로 모래가 움직이고 있다니!
이욱은 미소를 지었다. 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모래를 움직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자신에게 가까이, 그리고 더 멀리!
그럴수록 이욱의 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성취감!
그것은 성취감이었다.
3개월 동안.
따지고 보면 모래를 다루기 위해 마나를 느껴 왔고, 다뤄 왔다. 그 과정에서 몸 안의 장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세포가 거의 모래 입자처럼 재구성되기도 했다. 모든 과정은 모래를 다루기 위한 밑거름이었다.
이제 모래를 제법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성취감이 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욱은 상당한 시간 동안 모래를 움직였다.
그러다가 문득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다.
“모래를 허공에 띄울 수는 없을까.”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고 있다.
그것이 설령 많지 않은 양이더라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면 모래를 허공으로 띄울 수는 없을까?
이욱은 집중했다.
그리고 조용히 마나를 더욱 뿜어냈다. 옅은 푸른빛이 서린 모래들은 제자리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후우.’
이욱은 눈을 빛내며 더욱 힘을 줬다. 뿜어져 나가는 마나의 양이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순간.
스스슥!
“……!”
놀랍게도 모래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부유(浮遊).
말 그대로였다. 마치 가벼운 깃털처럼, 모래는 허공에 떠올랐다. 이욱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모래를 띄운 것만 해도 상당한 성과이리라.
“잠깐. 이것들을…….”
이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모래를 바라보았다.
허공에 떠오른 모래. 더 위로 높이 올려 보았다.
약간 힘든 작업이긴 했지만 충분히 가능했다.
모래는 거의 2m 가까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모래만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모습은 상당히 기묘했다.
어쨌든 2m만 해도 웬만한 사람의 키는 훌쩍 넘었다. 그러자 이욱은 다른 생각이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허공에 떠오른 모래.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위.
그 위에서 모래가 만약 화살처럼 쏟아진다면?
쉽게 방어할 수 없으리라.
씨익.
이욱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모래화살! 생각만 해도 무척 위협적이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화살이 떨어진다면 속수무책일 테니까.
그럼 모래를 화살처럼 만들 필요가 있었다.
“…….”
이욱의 눈이 매의 눈처럼 매섭게 빛났다. 그리고 챠크라가 더욱 열리고,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양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고도의 작업이었다.
모래를 하나의 ‘형체’로 만들어야 하는 작업!
이욱은 나름 화살처럼 모양을 만들어 내려 했다.
그러나 하면서 어려움이 닥치자 든 생각은 꼭 화살 모양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날카롭겠는가. 그것이었다.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좋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말 고도의 작업이다. 마치 장인이 도자기를 빚듯, 집중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욱의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우선 머릿속에 이미지를 구현해 낸다.
그리고 마나로 하여금 모래를 다듬는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간단한 작업이지만 좀처럼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조잡하지만 제법 화살 모양으로 변한 모래. 아니, 화살 모양은 좀 과장이었고 그저 날카로운 송곳 정도였다.
“후우∼후.”
이욱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나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동시에 모래화살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샤아악!
파파팟!
“…….”
결과는 참담했다.
기세 좋게 바닥으로 내리꽂히던 모래화살들은 중간에 바람결에 의해 보기 좋게 흩어져 버렸다. 너무나도 가벼웠기에 바람 한 점에 흔들린 것이다. 물론 마나로 꼭 잡고 있으면 괜찮았지만, 바닥을 향해 내리꽂히기 때문에 마나가 모래를 꽉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욱은 참담한 시선으로 모래를 바라보았다.
호기 좋게 했던 일이 실패했다.
“실패라…….”
그러고 보니 실패가 얼마만의 일인지 몰랐다. 생각해 보니 모래 폭풍에 휩쓸린 이후. 자신이 했던 일은 늘 성공했었다. 처음 살아남고자 하는 목표도, 어쩌면 현재진행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성공했다. 깊은 지하의 굴속에서도, 각종 괴물들로부터 살아남았다. 의심 반, 걱정 반으로 만들어 냈던 거대 함정도 상당한 효과를 보였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 탈출까지 했다.
중간에 오크들에게 잡히긴 했으나, 결국엔 탈출했다. 어찌 보면 다 성공하지 않았는가.
이욱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실패라…… 좋군.”
좋았다. 이욱은 향기 좋은 차를 음미하는 듯, 눈을 살짝 감으며 미소 지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것은 진리였다.
무엇보다 이욱의 승부 근성을 일깨우고 있었다.
생존 욕구에 가려졌던 승부 근성! 중동 사막에 파견되고 사막을 상대로 고개를 쳐들었던 승부 근성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한다면 한다.
자신이 성공하리라 하면 성공하리라.
아니, 그래야만 했다.
“누가 이기나 보자고…….”
모래가 이길지.
자신이 이길지. 이욱은 스스로에게 내기를 걸었다. 어떻게든 성공하리라. 모래를 화살로 만들어 적의 머리를 꿰뚫으리라.
이욱은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탁자에는 수많은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틈 사이로 이욱은 눈을 빛내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차착.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페이지.
“많군.”
이욱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주위에 널린 책들은 상당했다. 그 책들을 하나하나 읽은 이욱으로서는 사실 질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서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이 많은 책을 꾸준히 읽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이욱은 하고 있었다. 그 많은 책들을 모조리 읽어 가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책에 파고들고 있는 사실을 안다면 웬만한 독서가들도 혀를 내두르리라.
전에는 언어 학습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지식 습득이 목표였다. 그래서 전처럼 단어 하나하나 소리 내어 정독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원하는 지식만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서고에는 ‘모래’에 관련된 서적이 많았다.
이스마엘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자신이 모래를 다루게 될 주술사이다 보니까.
이욱은 모래와 관련된 정보는 닥치는 대로 두루 섭렵했다. 그러다가 문득.
흥미로운 내용을 보았다.

모래에도 그마다 성질이 있고, 종류가 있다.

모래에도 성질이 있고 종류가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래는 모두 같을 뿐이었다. 모래가 모래지, 뭐가 종류가 있단 말인가? 이욱은 의문을 갖고 천천히 내용을 읽어 나갔다.

모래에는 종류가 있다. 각 저마다의 성질대로 종류가 나뉘어져 있다. 사람도 착한 심정과 악한 심정을 가진 이가 있듯이. 모래도 그렇다. 모래는 숨이 붙어 있지 않는 무생물체가 아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많고 많은 자연 중 하나다. 모래는……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모래를 크게 나누면 이렇다. 흐른다. 무겁다. 그리고 단단하다. 좀 더 세분화시키면 이렇다. 흐르는 성질에도 뜨거움이 있다. 차가움이 있다. 미지근함이 있다. 뜨거움에도 불같은 뜨거움이 있고, 은은한 햇살 같은 따뜻함도 있다. 이 모든 걸 느낄 수는 없다. 만약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건 곧 전설의 재림이리라…….

중간, 중간 이해할 수 없는 단어나 문장도 많았다. 그러나 일부의 내용에 따르면 모래에도 종류가 있다는 소리가 맞았다. 허나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기 힘든 소리였다.
이욱은 당장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일어서려는 찰나.
차차착!
기이하게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책장을 넘겼다. 그저 열어 놓은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이려니 하고 넘어가려던 이욱.
“음?”
문득 이욱의 시선이 책에 꽂혔다. 그리고 잠시 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그림.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 그러져 있었다.
다른 설명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욱은 오로지 그림에만 매료되었다. 그림에는 웅장한 위용의 괴물이 그려져 있었다.
대지에 굳건히 서 있는 괴물!
얼마쯤 지났을까.
이욱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멋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