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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17화)
Chapter 8 생존 게임을 위한 준비 과정(2)
아닌 밤중에 이욱은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챠크라를 열었다.
우웅.
약간의 움직임에도 상당한 파동이 퍼져 나갔다. 그만큼 챠크라의 능력이 더욱 커졌음을 의미했다. 이욱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느꼈다.
챠크라를 통해 모래와 소통을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미 모래에는 서로 다른 성질이 있고,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책으로 알았기 때문일까.
이욱은 불현듯 느낄 수 있었다.
“모래도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이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펴자, 그 사이로 모래가 스르르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너무나도 유연한 몸놀림.
“이건 흐르는 모래.”
흐르는 모래.
절대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금씩 흐르는 모래였다. 모래 입자 스스로가 유동성을 띠고 있었다. 마치 물처럼. 아주 조용히 흐르고 있는 모래였다.
유사를 만들어 내는 모래였다.
사막의 늪이라는, 지옥이라는 유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욱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일반인이라면 전혀 느끼지 못할 모래의 특징.
그러나 이욱은 달랐다.
몸의 신체가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인간, 그 자체였다. 모래를 권속으로 받아들인 그가 모래의 특징을 못 알아낼 리가 없지 않은가?
아주 미세한 차이.
그런 미세한 차이가 모래의 종류를 구별하게 하고 있었다.
이욱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같아 보이는 모래. 하지만 이욱의 시선에는 달랐다. 방금 전 흐르는 모래는 아주 작은 입자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의 모래는.
“무겁다.”
무거웠다. 정말로, 흐르는 모래와는 달리 무척 무거운 느낌이 강했다. 사실 모래의 무게가 얼마나 나가겠냐고, 그것이 그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욱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느껴졌다.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챠크라로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모래였다. 왜냐? 무겁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에 반해 흐르는 모래는 가장 자신의 뜻대로 잘 움직였다.
극과 극.
흐르는 모래가 유쾌하고 잘 따르는 반면.
무거운 모래는 과묵했다. 말이 없고 마치 바위처럼 굳건했다. 챠크라로 계속 소통하다 보면 힘들지만 약간이나마 움직일 수는 있다. 단지 그뿐이다. 흐르는 모래처럼 자유롭게 퍼뜨리거나 아주 작은 유사를 만든다거나…… 다른 주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별로군.’
별로 좋지 못했다.
무겁기 짝이 없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무거운 모래는 별로였다. 이욱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흠?”
이욱은 흥미로운 눈길로 모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남들이 보면 다 똑같은 모래.
허나 이욱의 눈에는 달랐다. 그 성질이, 다르게 느껴졌다. 챠크라로 느껴지는 모래. 그리고 피부로 전해져 오는 느낌.
“단단하다.”
단단했다.
무겁지도 않고 가볍고 탄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입자가 흐르지도 않고 적당한 유동성을 띠고 있었다. 흐르는 모래와 무거운 모래의 장점만을 담아낸 성질의 모래였다.
이욱의 눈에 흥미가 가득했다. 단단한 모래라니. 그것도 두 가지 모래의 장점을 고루 갖춘.
“……호오?”
문득 단단한 모래를 살피던 이욱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호기심 가득한 미소였다. 책에서 본 그림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필 딱 모래의 종류에 대한 내용을 보고 봤기에 바로 기억이 났을지도 몰랐다.
이욱은 모래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가능할까?”
최적이었다.
단단한 모래는 그 ‘그림’에 그려진 것을 만들기에 정말 최적이었다.
단단함!
적당한 무게감과 동시에 탄성력!
하지만 아직 자신이 그 정도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되겠냐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어렵다. 400년 전, 모래술사의 사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을 자신이 재현한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허나.
이욱에겐 불가능이란 단어는 애초에 있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불가능이란 포기자들의 하찮은 변명에 불과했으니까.
못하면.
되게 하라.
쉽지 않은가? 군대에서도 저 말을 배웠었다. 사회에 나가서도 저 말을 배웠었다. 그리고 저 말은 자신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곤 했다.
지금, 여기서도 그러리라.
불가능하면.
가능하게 만들면 되리라.
시간은 많다. 충분한 노력과 연구라면 만들 수 있으리라. 400년 동안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샌드 골렘.”
샌드 골렘을.
이욱은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마저 줄여 가며 수련에 임했다. 하루도 쉬지 않는 이욱을 보며 이스마엘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독종이군.”
독종!
그랬다. 밥 먹는 시간마저 줄여 가며 수련에 열중하는 이욱의 모습은 독종 그 자체였다. 스승이 있으면 몰라도 저리 독하게 열성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놀라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이스마엘은 자신이 곧 ‘스승’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욱을 빠르게 성장하게끔 뒤에서 밀어주는 ‘조력자’에 불과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수련을 살펴보면 직접적으로 이스마엘이 개입된 건 없다. 이욱 혼자서 해내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이욱이 벽에 막혔을 때, 간단한 힌트나 조언을 남기는 정도였다.
그나마 제대로 가르쳐 주는 건 언어뿐.
이젠 의사소통이 되는 정도니 이욱은 언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로지 모래를 다루는 데에만 집중했다.
‘천재다!’
정말 천재였다.
강렬한 야수이면서도,
무척이나 지능적이었다.
포효하는 야수이면서도,
상당한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천재.
하늘이 내린 사람.
이스마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죽은 모래술사가 내려 보낸 천재임을. 후계자임을.
권능의 인정을 받은 모래술사의 후계자!
분명, 대결에서 기필코 승리하리라.
이스마엘은 이제 말할 필요를 느꼈다.
사실 지금까지 ‘대결’에 관한 언급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강해지지 않겠냐는 질문에 이욱이 응했을 뿐. 그뿐이었다.
아무래도, 생사가 걸린 대결이다.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을까 했던 염려 때문에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건 빗나간 생각이었다. 이스마엘이 완전히 이욱을 알지 못했기에 그랬다.
자신의 앞길이라면 피하지 않는 성격의 이욱이다.
그것이 설령 생사가 걸린 문제라도.
만약 그런 문제라면 오히려 더 독기를 품고 달려들 것이리라. 이기기 위해서, 남을 죽이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이욱은 정말로 이기적이었으니까. 생존에 관련된 문제만큼은, 가차 없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이는 악랄한 야수였으니까.
멈칫.
“흠?”
조심이 이욱에게 다가가려던 이스마엘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이욱이 수련을 끝마치지 않았던 터였다. 무엇보다 지금 아주 중요한 수련을 행하고 있는지 그의 표정이 무지 진지했다.
물론 모든 수련에 진지하게 임하지만.
어쨌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스마엘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흠……. 모래를 나누고 있다? ……잠깐?”
이욱의 수련을 바라보던 이스마엘은 눈을 부릅떴다.
“허! 벌써 모래의 성질을 이해하고 종류를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이스마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여졌다.
벌써 모래의 성질을 이해하고, 그 특징에 따라 종류를 나누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날고뛴다는 술사라고 하더라도 모래 입자 구성부터 배열을 배우고 알아야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모래 입자를 느낀다는 소리는 무척 힘든 수련의 과정이다. 너무나도 작은 모래 입자, 그 모래 입자에 담긴 수많은 성질을 이해하기란…….
그런데 이욱은.
모래를 다룬 지 고작 일주일도 안 돼서.
모두 해내고 있었다.
“어찌……!”
이게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저렇게 발전하다니!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놀라다 못해 이젠 기가 막히다.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속도다.
“신체가 모래로 변한 탓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외관상 별다른 문제 없는 전사의 모습이었지만 내부는 아니었다. 모든 장기들이 모래로 이루어졌다. 꿈틀거리는 세포 하나하나도 모조리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 입자가 더 쉽게 이해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이해라기보단, 자연스럽게 터득한다고 봐야 하리라.
이스마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욱을 바라보았다.
문득.
“전설인가.”
이스마엘은 미래를 본 듯했다.
아니, 보았다.
전설의 재림이라는 미래를. 그것을 이욱에게서 보았다.
* * *
이스마엘이 자신을 경악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실도 모른 채, 이욱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 전 실패했던 모래화살.
그것을 다시 해 볼 요령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주 신중하게, 천천히 작업해 나가고 있었다.
우선 이욱이 한 일은 모래의 종류대로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저번에는 모래가 너무나 가벼워서 힘이 없었다.”
이욱은 저번 실패를 잊지 않았다.
남들이라면 실패한 사실을 어떻게든 잊으려고 애쓰리라. 하지만 이욱은 아니었다. 실패를 머릿속에 명확하게 입력해 놓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했다.
끊임없는 반성!
그것이 성장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욱은 저번 실패의 결정적 이유가 모래가 너무 가벼워 힘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때 사용했던 모래는 다루기에 아주 쉬운 ‘흐르는 모래’였다. 유동성이 무척 강하니까 아무래도 움직이기가 편했다.
허나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
흐르는 모래.
입자의 유동성.
화살 같은 하나의 ‘형체’를 만들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렇다고 다른 성질의 모래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가장 좋은 건 ‘단단함’을 가지고 있는 모래였다.
하지만 의외로 단단한 모래는 그 양이 적었다.
한참을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 양이 주먹 한 줌조차 되지 않을 정도.
기가 막힐 지경이다. 그럼 남은 모래는 흐르는 모래와 무거운 모래.
허나 흐르는 모래는 부적합. 무거운 모래는 움직이기 무지 어렵다. 그래서 이욱이 선택한 방안은 바로 둘을 적당한 비율로 섞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율 맞추기가 고비였다.
적당한 비율을 찾기도 어려웠고, 마나로써 그 성질이 다른 모래를 서로 결합하게 함도 어려웠다. 벌써 4시간째. 이욱은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쓰러지지 않고,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말이다. 4시간 동안 챠크라를 열어 놓았기에 이욱은 완전히 기진맥진이었다.
우우웅.
“후우. 다시…….”
이욱은 다시 한 번 도전했다.
모래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후두둑.
“…….”
순간 모래의 일부분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이욱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꾹 마나로서 그 형체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형체를 잡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긴 탓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허공에 떠오른 모래들은 화살의 모양으로 변했다. 조잡한 모양이 아닌, 이번에는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화살이.
무려 스무 발 가까이 떠올라 있었다.
만약 저 화살이 그대로 머리 위에서 폭격한다면, 말 그대로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리라.
‘일단 지금까지 한 것들보다 훨씬 좋다.’
지금까지 만들어 온 화살보다 모양이 훨씬 좋았고, 뭉쳐 있는 느낌도 상당히 좋았다. 왠지 이번엔 느낌이 좋다. 가능하리란 생각이 머릿속에 자꾸 들었다. 그렇다고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천천히.
이욱은 마나로 모래의 형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순간 자연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동시에.
콰콰콰!
마나가 바닥의 목판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내려왔다. 그에 따라 모래화살도 빠른 속도로 목판에 돌진했다.
콰콰콰쾅!
순간 폭음이 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이욱은 눈을 부릅떴다. 자욱한 모래 탓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겠지만 이욱의 시야에는 모든 것이 비쳐졌다.
이욱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점점 더 짙어졌다.
“하. 성공이군.”
성공이었다. 꾸준한 노력 결과 성공하고야 만 것이다.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그야말로 짜릿했으니까.
이욱은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이 느낌을 오랫동안 만끽하고 싶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욱이, 문득 중얼거렸다.
“샌드 레인(Sand Rain).”
샌드 레인.
이욱이 이 주술에 붙인 이름이었다.
훗날 세상이 치를 떨게 될…….
모래술사의 첫 주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