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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18화)
Chapter 8 생존 게임을 위한 준비 과정(3)


이욱은 이 기분을 더 만끽하고 싶었다.
스스로 하나의 ‘기술’인 주술을 개발해 낸 것에 뿌듯함이 너무나도 컸다. 그에 비례해 성취감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나 이스마엘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바람에 이욱은 그 기분을 더 만끽할 수 없었다.
“멋진 기술이군.”
“…….”
“직접 만든 주술인가?”
“그렇다.”
“파괴력이 대단해. 무엇보다 모래들의 특성을 알맞게 이해하고 서로 적당히 혼합해서…… 솔직히 말해 믿기지 않는군.”
이스마엘은 이욱의 행동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모래를 허공에 띄워 화살처럼 만든 후, 소나기가 퍼붓듯 내리꽂히는 주술은 멀리서 봐도 무척 위협적이었다.
순간 머리가 싸늘하게 식을 정도로.
머리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화살의 비는…….
정말로 위험했다.
그런 주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이 모래의 특성과 성질을 잘 이용해 성공시킨 점이다. 이스마엘은 순수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정말 대단해.”
“그다지……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이욱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허?’
이스마엘은 황당해서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 정도는 경이적인 발전이었다.
자신도 술사로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이렇게 독자적인 힘으로 빨리 성장하는 괴물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하다니!
하지만 이내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전대 모래술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
아직은 그랬다.
그렇지만 이 속도라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무엇보다 이욱은 젊었다. 아직 피 끓는 청춘의 20대가 아닌가. 시간이야 충분했다.
9개월 후 올 대결에서만 승리한다면, 시간과 기회는 많았다. 이스마엘은 그제야 자신이 이욱에게 다가온 이유를 떠올렸다.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뭐지?”
“내가 왜 너에게 주술을 가르치는 줄 아는가?”
“강해지기 위해서.”
이욱은 갑작스런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강해지기 위해서.
참으로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곧 그것이 사실이었다. 오크에게 잡혀서 굴욕을 당했던 사실에 이욱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강해지리라 결심했다.
그때, 손을 건네 온 사람이 이스마엘이었다.
그림으로서 의미를 전했던 이스마엘.
강해지지 않겠는가?
이욱은 강해지리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련을 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왜 뜬금없이 저 질문을 한단 말인가? 이스마엘은 살짝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너에게 강함을 주겠다고 하는지 아는가?”
“……?”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진지해졌다.
이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스마엘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모르고 있던 이유가 있었단 말인가. 하긴, 이상하긴 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갑자기 강해지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수련에 열중할 수 있게 조언해 주고,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왜 그랬겠는가?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순간 이욱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콰콰콰!
‘……무슨.’
한순간 바뀐 이욱의 기세에 이스마엘조차 당황했다.
흉포했다.
광폭함? 그랬다. 날카로워진 눈빛 아래 느껴지는 광폭함은 과연 야수의 눈빛과 같았다. 허나 이스마엘은 이내 평온함을 되찾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막의 최고의 술사가 아직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욱에게 밀려서야 쓰겠는가.
“반년하고, 약간 남았군.”
“…….”
“그때, 너는 생사가 걸린 싸움을 해야만 하지.”
순간 이욱의 눈이 부릅떠졌다.

* * *

“재밌군.”
이욱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슬쩍,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용의 펜던트. 그동안 잊고 있었다. 마치 한 몸같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일까.
아니 사실 펜던트는 걸려 있지 않았다.
딱 부착되어 있었다. 마치 원래 피부의 한 부분인 듯,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이욱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권능의 신기다?”
이스마엘이 한 얘기는 놀라웠다. 수많은 문헌으로 이미 모래술사가 누구인지는 대충은 알고 있었다. 모래술사의 활약도, 업적도 큼직큼직한 것들은 모두.
워낙 대단한 인물이지 않은가.
주술의 끝.
그리고 스스로가 모래가 되었던 이.
대륙을 향해 포효를 내지른 한 마리의 야수.
그런 이를 모른다는 사실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운 건,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이 용의 펜던트가 모래술사의 신기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사막왕 모래술사의 권능이 담긴!
“모든 이를 굴복케 하는 지옥의 눈이라.”
어쩌면 지하 굴속에서 사라진 기억의 일부가 그것일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발휘된 왕의 권능. 그 때문에 순간의 기억을 잃어버렸을지도.
아니, 기억을 잃었다기보단.
그땐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듯, 그런 느낌이었다. 즉 그 소리는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함을 뜻했다.
권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능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이 아닌가.
“더럽군.”
이욱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누군가 자신을 지배했다는 사실. 짧은 순간이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일임은 분명했다. 자신의 몸은 자신만이 다룰 수 있다.
그런데 권능이 자신을 지배했다?
“하!”
이욱은 기막힌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정신력이 부족하기에. 권능의 인정을 받았더라하더라도 그 그릇이 되지 못했기에 그렇다고 이스마엘이 말했다. 딴에는 위로의 말이었지만 이욱에게는 아니었다.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가게 하는 소리였다.
“권능 따위. 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내 것으로 만들어 주지.”
그렇기 위해서는 차기 모래술사가 되어야만 했다.
9개월!
“생사가 걸린 싸움이라.”
9개월 후, 생사가 걸린 싸움이 시작된다.
아니, 지금 중요한 사실은 생사보다 바로 이 권능의 신기에 달려 있다. 승리한 자는 권능의 신기를 얻고 차기 모래술사로서 인정과 축복을 동시에 받는다.
하지만…….
패배자는 잊혀질 뿐.
죽음으로서 그 이름조차 떨치지 못하고 모래로 사라지리라.
그렇기에 이욱은 권능의 신기고 모래술사로서 인정이고 나발이고, 살아남음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자신에게 있어선 싸움이란.
생존과 죽음이었다.
이긴 자는 살아남는다.
패배한 자는 말없이 죽으리라.
그러면 이겨야만 했다.
“이거 참. 나도 평탄치만은 않은 삶이군.”
이욱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생존과 직결된 게임을 벗어난 3개월. 그러나 그건 더 큰 생존 게임을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이었다.
앞으로 9개월.
이욱은 더욱 강해지리라 다짐했다.
보기 좋게 부족 최고의 주술사를 격파하여 승리의 기쁨을, 생존의 기쁨을 누리리라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선.
“수련하자.”
이욱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수련! 끊임없는 수련!
수련만이 살 길이었다.


Chapter 9 황금괴물(1)


사막의 오크부족!
모든 오크들을 전두 지휘하는 오크 대족장 카푸르는 호쾌하게 웃어 젖히며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벌컥벌컥!
“캬아! 크하하핫. 술맛 좋구나.”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오금이 저릴 장면이었다.
술을 들이붓는 카푸르의 주위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스콜피온, 샌드웜, 거대 전갈…… 사막의 괴수들이란 괴수들이 모두 처참하게 부서지고, 깨져 있었다.
장기들이 모조리 바깥으로 튀어나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구역질이 나온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카푸르는 술을 마시고 웃어 젖히고 있었다.
장대한 체구.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광포함을 내뿜는 눈빛.
스스로가 사막 제일의 전사임을 자부하는 카푸르!
그는 늘 전투를 끝내고 그 현장에서 술을 마셨다. 짜릿한 전율을 계속하여 느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스스슥.
“으음?”
순간 카푸르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모든 이를 오줌 지리게 할 정도의 험악한 인상이다. 거기에 표정을 찌푸리니 오죽하겠는가.
“흠? 착각인가.”
카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적으로 모래가 자신의 주위로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사와는 약간 달랐다.
마치 모래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느낌?
어쨌든 그랬다.
거의 한 달 전부터 그랬다. 한 달 전부터 자신의 거처 안에도 어느 순간, 모래가 널려 있었다. 이 기묘한 현상을 어찌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크큭. 모래가 이 몸을 두려워하여 따르는 것이겠지!”
카푸르는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설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막의 바질리스크도 자신의 해머 앞에는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던가.
그에겐 두려움이란 없었다.
허나, 훗날 오늘의 상황을 뼈저리게 후회할 날이 오리라.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감이, 후에 분명 후회하게 되리라.
카푸르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누군가 있었다.

우웅, 우웅!
이욱은 눈을 감고 모래를 움직였다.
무려 500m 너머에 있는 모래.
거기에 있는 모래를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주먹 한 줌조차 되지 않는 적은 양이다. 허나 이 먼 거리에서도 모래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리라.
얼마 남지 않은 대결.
이젠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 용의 펜던트가 신기임을 안 지도 3개월이 지났다. 3개월 동안 이욱은 많이 성장했다. 더욱 이를 악물고, 독하게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후. 후. 후.”
이욱은 호흡을 빠르게 했다. 온몸에선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얼굴이 창백한 빛으로 질려 갔다. 500m 떨어진 모래를 움직인다는 점은 무척 힘들었으니까.
무엇보다.
이욱은 모래를 통해 보고 있었다.
500m 앞을 말이다.
모래와 소통한다. 그리고 모래와 정신을 나눈다. 그것을 통해서 모래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노력 끝에 만들어 낸 주술이었다.
모래를 통해 시야를 넓힌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욱은 이 주술을 샌드 옵설베이션(Sand observation)라 불렀다.
“합!”
번쩍.
이욱은 감았던 눈을 뜨며 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계속 모래와 정신을 공유해서 샌드 옵설베이션을 사용했다간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샤샤삭!
눈을 뜬 이욱은 품에서 종이들을 꺼냈다.
그리고 무언가를 빠른 속도로 그려 나갔다.
마치 신이라도 들렸는지, 이욱의 펜은 거침없었다. 그림이 미리 그려져 있는 종이는 한둘이 아니었다. 거의 수십 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그림이, 간단한 스케치 정도가 아니었다.
모두들 엄청 정밀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었다.
아니, 더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하나의 ‘도안’에 가까웠다. 마치 건물의 도안 같은. 실제로 그것들은 도안이었다.
장장 한 달 가까이 제작하고 있는 도안.
아직도 절반조차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완성되리라.
현재 이욱이 그리는 부분은 팔뚝이었다. 근육이 우람한 팔뚝! 마치 건물을 지을 때처럼, 이욱은 오크 대족장 카푸르의 모습을 설계도로 그려 내고 있었다.
종이마다 각 부분을 그려 넣고 있었다.
팔뚝, 주먹, 어깨, 허벅지…….
한 달 동안 카푸르를 관찰해 낸 결과의 산물이었다.
마치 건축을 하듯.
이욱은 카푸르를 새롭게 건축할 생각이었다.
카푸르를 거대한 하나의 ‘건물’로 보고서. 그렇게 이욱은 계속해서 펜을 놀렸다. 머릿속에 담은 이미지를 계속 기억해 내며 수정과 삭제, 그리고 새로운 부분을 끊임없이 그려 넣었다.
해가 저물 때까지.
이욱은 그 작업을 계속 해내 갔다.

* * *

이욱은 모래를 다루는 범위를 넓혀 가면서도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을 멈추지 아니했다.
카푸르의 몸은 정말 최고의 신체였다.
과연 사막 제일의 전사라 자부할 만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장대한 체구에, 우람한 근육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근육들이 제각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소리는 쓸데없는 근육이 없다는 점.
전투에 최적화 된 근육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신체 비율도 가장 최적이었다. 3m의 체구에 팔과 다리의 길이가 짧지 않고 오히려 꽤나 긴 편이었다.
근육이 많으면 아무래도 짜리몽땅할 수밖에 없는데 카푸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설계도를 만드는 작업은 갈수록 길어져만 갔다.
늘 먼 거리서 샌드 옵설베이션으로 관찰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욱은 상당한 공간지각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세계 제일을 향해 달려가는 이름 높은 건축회사의 직원으로서, 엘리트 루트를 타기도 했을 정도로.
어쨌든 이욱은 카푸르를 하나의 ‘건축물’로 보았다.
그래서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샌드 옵설베이션으로 관찰하기 불가한 부분이더라도 충분히 생각해 내고, 오히려 더 완벽에 가깝게 설계도에 그려 낼 수 있었다.
공간지각 능력이 극도로 발휘된 결과였다.
이욱은 한동안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단단한 모래를 모았다.
단단한 모래만큼 샌드 골렘을 제작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는 없었다. 지금 단단한 모래는 카푸르를 본떠 만드는 샌드 골렘이란 건축물의 가장 중요한 건설자재였다.
하지만 단단한 모래는 의외로 그 양이 무척 적었다. 그래서 꾸준히 모으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다행히도 설계도를 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니, 그동안 이욱은 제법 많은 모래를 모을 수 있었다.
그런 이욱의 행동은 기이한 것이었다.
적어도 이스마엘에겐 있어서는 말이다.
하기야 이욱의 행동이 은밀하긴 했다. 끊임없이 모래를 이용한 수련을 하면서도, 방 안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그리기에 열중하고 모래를 따로 모으기만 하고 있으니.
그러나 이스마엘은 간섭하지 않았다.
충분히 잘 해내리라. 무언가 뜻이 있기에 하는 행동이리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스마엘은 조언의 말을 해 주며, 마나폭주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끔 마나를 제어하는 방법도 알려 주곤 했다.
무엇보다 이스마엘이 열을 다해 가르치는 건.
이 사회의 문화와 역사였다.
후에 모래술사가 되면 모래부족을 이끌 인물!
아무래도 여러 방면에 두루 지식이 많아야 했다.
그렇게 이욱은 성장하고 있었다.
조금씩이 아닌.
급격한 성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