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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19화)
Chapter 9 황금괴물(2)
쿠우웅!
“키에에엑!”
긴 목을 빼 들며 육중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거대 몬스터. 샌드웜이 괴성을 지르며 몸서리쳤다. 그런 샌드웜을 보며 이욱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우우웅!
순간 챠크라가 열렸다. 그리고 마나가 전신에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마나의 움직임을 느끼며, 이욱은 모래를 움직였다.
스스슥!
바람에 흩날리듯, 마나를 타고 움직이는 모래들!
“키에에엑!”
별안간 샌드웜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욱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얼굴로 기다렸다. 그리고 놈이 지척에 이른 순간.
마나가 하나로 집약되었다.
찬란한 태양에 황금빛이 번쩍였다.
모래가 마치 그물 엮듯이, 놈의 몸을 덮쳤다.
“샌드 바인드!”
마치 모래로 만든 그물 같았다. 모래는 그물처럼 엮어 올라가며 샌드웜을 묶었다.
“키에엑!”
몸이 묶이자 당황한 샌드웜.
콰콰쾅!
아무리 몸서리쳐도 샌드 바인드의 결박을 풀 수는 없는 노릇!
샌드 바인드.
이욱이 샌드 레인, 샌드 옵설베이션에 이어 만들어 낸 세 번째 주술이었다. 적의 움직임을 묶어 낼 수 있는 모래의 결박!
그것은 엄청난 크기의 샌드웜에도 아주 잘 먹혀들었다.
“후우.”
이욱은 코앞에서 발버둥 치는 샌드웜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모래를 움직였다.
사사삭…….
무엇도 뚫어 버릴, 헤쳐 나갈 기세의 거친 노도와도 같은 모래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흐른다. 흐르고 또다시 흐른다.
이욱은 더욱 집중했다.
그 강인한 모래 줄기는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쏟아지는 폭포처럼 변해 가는 유동성을 지닌 모래들!
그 거친 모래가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 갔다.
마치 뱀의 형상. 소리 없이 스멀스멀 죽음의 손길을 드리우는 뱀의 형상과 같았다. 조금만 닿아도, 그 거센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음을 맞이할 것 같은.
그리고 그것의 외형은 황금빛을 이룬 찬란하기 그지없는 강줄기였다.
황금빛 강줄기를 바라보는 이욱의 시선이 매섭게 변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유사다.
비록 그 크기가 지름 2m에 불과해 샌드웜을 집어삼킬 수는 없다. 그러나.
“키이이이이익!”
유사의 위력은 대단했다. 마치 진공청소기 빨아들이듯이 샌드웜의 몸뚱이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크기가 너무 커서 걸린다 싶어도 가차 없이 끌어당겼다.
우드득! 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어온다. 절로 뒷골이 섬뜩해질 소리! 하지만 이욱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노력 끝에 만들어 낸 네 번째 주술인 인위적인 유사. 충분히 이 정도의 효력은 있어야만 했다.
“후우우.”
이욱이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유사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그 자리에 뭐가 있었냐는 듯이, 평범한 모래뿐만 이었다.
콰콰쾅!
반쯤 모래에 집어삼켜진 샌드웜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모래를 뚫고 다시 뛰어올랐다.
유사로만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욱은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샌드웜과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험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들어 낸 주술의 실험!
사막의 괴수 중 하나라는 샌드웜은 지금 이 순간 실험용 쥐나 다를 바 없었다.
“키에엑!”
콰아앙!
샌드웜이 몸을 곧추섰다. 그리고 대기를 찢으며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 왔다.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달려드는 샌드웜! 그때.
이욱은 오른손을 뻗었다.
스슥!
다시 발동되는 샌드 바인드! 모래는 그물이 되어 샌드웜의 전면을 덮쳤다. 하지만.
콰지직!
늦은 일이었다. 모래로 샌드웜을 결박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샌드웜은 거의 코앞까지 왔으니까.
샌드웜은 자신을 막아서는 모래 그물을 부숴 버리며 돌진했다. 그대로 샌드웜에게 치이려는 순간! 오히려 이욱의 입가에는 냉소가 지어졌다.
우우우웅!
투두두둑!
짧은 시간. 챠크라가 미친 듯한 공명음을 내질렀다. 동시에 마나도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모래 입자가 순간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마치 옥수수 알이 팝콘이 되듯이! 다만 모래 입자는 팽창을 멈추지 않았다. 1초, 아니 0.1초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모래 입자는 무한정 팽창하다, 결국 터지고 말았다.
문제는 감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모래 입자들! 그 모래 입자들이 동시에 터진다면.
콰콰쾅! 쾅쾅!
이욱이 만들어 낸 다섯 번째 주술.
샌드 밤(Sand bomb)이었다.
가느다랗고, 허약한 모래 입자가 마치 공갈빵을 연상시킬 정도로 팽창된다. 끝도 없는 무한정의 팽창!
마침내는 그 버틸 수 없는 압박감에 자신을, 주변의 모든 존재를 폭발시켜 버리는 주술. 그 무시무시한 샌드 밤이 발휘되자 엄청난 폭음이 주위를 울렸다.
멀쩡하던 샌드윔의 신체의 부위 하나가 갑자기 터져 나왔다. 비상하는 청록의 피! 소멸되어 가는 누런 살점! 파팍 튀어 오르는!
살점이 이욱의 입안에도 들어왔다.
그러나 이욱은 뱉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 어차피 이스마엘이 알려 준 주술을 위해서는 먹어야 되니까.
질겅질겅.
이욱은 오히려 샌드웜의 살점을 씹었다. 너무나 역해 헛구역질이 치솟을 정도였지만, 살점을 씹어 삼키는 이욱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이미 괴수 100마리들의 신체의 일부분을 먹어 왔던 자신이다. 오히려 여기서 역겨워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리라.
“호? 죽지 않았군.”
샌드웜은 죽지 않았다.
곳곳이 터져 나갔음에도 놀라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몸을 꿈틀거리며 이욱을 향해 다시 한 번 돌진했다.
“흠…….”
그러나 그 속도가 무척 느려졌다.
맹렬한 기세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욱은 입술을 매만지면서 손을 뻗었다.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은 그 누구보다 이욱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욱은 자비심 따위 없었다. 적의 생존을 걱정해 주는 짓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적이 생존하면, 내가 죽는다. 반면에 내가 살면, 적이 죽는다.
이욱은 이타주의자 따위가 아니었다.
철저한 이기주의자였다.
자기의 안위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우우웅!
챠크라의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바닥에 모여 있던 모래들이 하나둘씩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욱이 만들어 낸 첫 번째 주술. 샌드 레인.
황금빛의, 그것도 날카롭기 그지없는 예기마저 뿜어내는 모래의 화살이었다.
그 높이가 10m에 도달한 순간!
투창 선수가 던지는 창마냥 모래화살이 맹렬한 기세로 땅바닥으로 꽂혀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샌드웜의 머리로!
콰콰콰!
공기가 찢겨지며 파공음이 생겼다.
저번에는 오크의 두개골도 뚫었던 모래화살이다.
파지지직!
모래화살이 머리가죽에 박혀드는 순간, 핏물이 허공에 치솟았고, 모래화살의 회전력에 가죽이 거의 찢어졌다. 그것은 일차적인 고통이었을 뿐. 이내 이차적인 고통이 뒤따랐다. 뜨겁게 달궈진 모래가 상처를 더욱 지졌다.
“크아아아악!”
샌드웜은 비명을 토해 내며 꿈틀거렸다. 뜨거움이 뇌까지 전해졌다. 샌드웜은 몸서리쳤다. 발작! 발작이었다. 하지만 샌드웜은 호락호락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죽음 그 순간에도, 아가리를 벌리며 몸을 날리고 있었다.
“제법 질린 놈이군.”
이욱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무릎을 약간 굽히고 오른팔을 길게 늘여 놓았다. 바닥에 닿을 정도로. 그리고 몸에 흐르던 마나를 모조리 오른팔에 집중했다.
사사삭!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던 모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마치 그 모든 존재를 끌어당길 만큼 흡입력을 가진 주먹.
바로 그 주먹에 모래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조그맣고 허약하던 인간의 손이 변해 갔다.
모래들의 응집화.
모래와 사람의 융합!
그 작디작은 알갱이들이 모여들며 강인한 갑옷으로, 무기로 변해 갔다.
거대해지는 손.
거대해지는 무기.
이욱이 만들어 낸 여섯 번째 주술.
모래 신체화였다.
이것을 만든 계기는 약간 특이했다. 바로 한국에서 보았던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스파이더맨.
거기서 나온 ‘샌드맨’이 뇌리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인상적이기 때문이었다. 스스로가 모래가 되고, 곧 모래가 자기 자신이었던!
이스마엘의 말대로라면 자신도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샌드맨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노력 끝에, 성공했다. 비록 영화 속 샌드맨처럼 빌딩만 한 괴물로 변할 수는 없으나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성과였다.
더욱이, 이욱은 자신의 몸이 모래로서 재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압!”
이욱은 달려 나갔다. 하나의 무기가 된 자신의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퍼퍼퍽! 퍽!
샌드웜의 몸뚱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강력한 파괴력이었다. 맞는 부분은 부어오르다 못해 터져 나갔다. 피가 모래 위를 알록달록 물들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샌드웜은 비명과 함께 몸에 경기를 일으켰다. 그 커다란 몸체가 경련을 일으키다니.
한동안 몸을 떨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후.”
이욱은 천천히 죽은 사체로 걸어갔다. 널브려져 있는 샌드웜. 벌써부터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었다. 이욱은 사체의 중간 부분, 그러니까 살이 두툼한 복부 부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이윽고 그가 하는 행동은 경악스러웠다.
콰직!
아드득! 질겅!
샌드웜의 피부를 입으로 뜯어내는 것이 아닌가! 이어진 이욱의 행동은 더욱 놀라웠다. 뜯어내다 못해 오히려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듯 씹었다.
그 누가 보았다면 역겨워 바로 고개를 돌릴 모습!
그렇지만 이욱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간신히 놈의 일부를 씹어 삼킨 이욱은 허리를 폈다.
그리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욱이 꺼낸 것은…….
해골이었다. 주먹보다 약간 큰, 인간의 머리는 아니었지만 일단 해골이긴 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욱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너무나도 독한……
사기(死氣).
단지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질식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이미 이 해골 머리에는 100여 개의 악령들이 담겨 있었다.
당연 죽음의 기운이 넘쳐 날 수밖에!
이욱은 해골을 샌드웜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알 수 없는 소리들을 읊조렸다.
“르게뤼……게리뜨리두……아레오뉴…….”
알 수 없는 주문을 외는 이욱.
앞에는 거대한 샌드웜의 시체. 그리고 죽음의 기운을 솔솔 풍기는 해골. 그 앞에서 주문을 외우는 이욱의 모습은 음산하기까지 했다.
흡사, 마치 영화 속 흑마법사들이 죽음의 의식을 펼치는 듯한 모습이 아닌가?
그 정도로 이욱의 모습은 두렵기까지 했다. 주위가 음산하게 변했다. 본래 생명이 쉽게 자라지 못하는 삭막함의 사막. 그 삭막함에 음산함이 더해지자 공포는 배가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이욱의 입이 멈추었다.
그리고 순간.
화아아악!
끼에에엑!
샌드웜의 괴성과 함께, 몸에서 무언가 훅! 빠져나왔다. 마치 안개처럼!
영혼! 영혼이었다. 죽은 샌드웜의 영혼!
영혼은 악령이 되었다.
악령이 되어서 해골 속에 갇혔다.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화악!
푸쉬시시!
영혼이 빠져나간 사체. 그렇기 때문일까. 사체는 급속도로 썩어 들어갔다. 질기던 가죽도, 숨겨졌던 얇은 피부 조직도, 이내 샌드웜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썩은 내만을 풍기는 액체만이 남았다.
어찌 사체가 이리 급속도로 부패할 수 있을까!
분명 역하고, 놀라운 상황인데 이욱은 담담했다. 살짝 미간을 찌푸렸을 뿐. 그뿐이었다. 이미 100여 번. 이런 현상을 백 번 보아 온 이욱으로서는 담담해질 수밖에 없었다.
덜그럭, 덜그럭!
해골이 덜그럭거렸다. 계속해서 어두운 불빛이, 음산한 기운과 같이 뿜어졌다. 그러나, 해골은 그냥 해골이 아니다. 그 어떤 영혼도 가둔다는, 모래부족의 귀한 물건 중 하나였기에.
“다 된 건가.”
이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101여의 악령이 모두 담겼다.
지금 막 들어간 샌드웜을 비롯해서, 거대 전갈, 스콜피온, 선인장괴수, 그리고 사막오크 몇 마리까지.
“사령빙의라. 성공할 수 있겠지.”
사령빙의.
현재 이욱이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준비하는 이유를 따진다면, 한 달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