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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20화)
Chapter 9 황금괴물(3)


대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약 3개월이 남은 시점이었다. 벌써 이스마엘이 하자르의 제안을 받아들인 때로부터 9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이욱은 총 여섯 가지의 주술을 개발해 냈다. 샌드 레인을 시작으로, 샌드 옵설베이션, 인공 유사, 샌드 바인드, 샌드 밤, 그리고 모래 신체화까지! 모두들 이욱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주술들이었다.
그런데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만들어 냈다.
다름 아닌.
샌드 골렘!
400년 전.
모래술사의 죽음 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샌드 골렘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웅장한 기상을 그대로 담아낸 샌드 골렘은 그 자체로만 해도 위엄이 넘쳤다.
하지만.
그건 단지 석상이었다.
6개월간의 연구와 노력 끝에 만들어 냈긴 했지만 석상에 불과했다. 오크부족에 세우면 딱 좋을 정도랄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샌드 골렘은 대족장 카푸르를 본떠 만들었다. 그 생김새나 신체적인 구조가 몹시 비슷할 수밖에.
더욱이.
뜨거운 태양 빛에 번쩍이면.
마치 황금과 같았다. 모래가 아닌 황금으로 이루어진 석상과 같은 느낌이었다. 오크부족에 세우면 딱 알맞은 그런 것이 아닌가?
이욱은 참담했다.
6개월간 만들어 낸 샌드 골렘을 움직일 방법은 없었다. 수많은 서적을 뒤져도 아무런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그저 석상에 불과하단 말인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관절 하나하나가 움직이기에 최적으로 지어져 있었다. 이욱은 골렘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골렘이라는 거대한 건물을 ‘건축’한 결과였다.
허나, 이리도 쓸모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욱은 거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찾은 건, 이스마엘이었다.
사막에서 술사로서 가장 지식이 많고 강한 인물이다. 그라면 무슨 방법을 알고 있을지 몰랐다.
이스마엘에게 자초지종을 말한 이욱.
이스마엘의 반응은 당연했다.
놀람, 아니 놀람을 넘어선 경악!
“새, 샌드 골렘이라고?”
“…….”
“그, 그게 무슨 소린가! 샌드 골렘을 만들어 냈다니?”
“미완이다. 움직이는 방법을 모른다.”
“일단 그걸 보여 줘 보게!”
이스마엘은 이욱에게 샌드 골렘을 보여 주기를 청했다. 그만큼 샌드 골렘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경악 그 자체!
샌드 골렘!
모래술사의 사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악마의 병기가 아니었던가.
샌드 골렘을 만들어 내려는 움직임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왜 실패했는가? 바로 설계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기관과 주술적인 힘으로 움직이는 샌드 골렘. 그런 샌드 골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설계도가 없었기에 불가했다. 아니, 만들어 내는 과정조차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지, 전해지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욱이 샌드 골렘을 만들어 내다니!
비록 움직일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만 해도 충분히 경악적인 일이었다.
이욱을 뒤따라간 이스마엘.
이내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3m의 웅장한 체구는 말할 수 없는 위압감으로 사람을 억눌렀다. 꿈틀거리는 근육은 마치 숱한 전투로 단련된 전사들의 그것과 같았으며 살아 있다는 듯한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거기에 너무나도…….
“카푸르?”
오크 대족장 카푸르와 유사한 외모는 이스마엘에게 충격을 주었다. 순간, 카푸르가 황금으로 재탄생했다고 착각을 받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번쩍이는 골렘!
골렘을 본 이스마엘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골렘이라고 하면, 몇 가지 전해지지 않는 문헌에 그려진 그림의 이미지만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정석이라 믿어 왔었다.
하지만 이욱이 만들어 낸 골렘은 문헌과 천지 차이였다. 카푸르의 모습을 본떠 그대로 만들다니!
하기야!
사막 제일의 전사인 카푸르라면 최고의 모델이기도 했다.
“대단하군!”
이스마엘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수한 감탄을 터뜨렸다. 정말 대단했다. 가까이 다가가 관절 하나하나를 살펴봐도, 근육을 살펴봐도 모든 게 완벽했다. 마치 직접 보고 만든 것 같았다. 더 과장을 보탠다면 그대로 복제를 한 듯싶기도 했다.
“이걸 너 혼자 만들었다는 건가?”
끄덕.
이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런데 이걸 어찌 움직이냐고?”
“그렇다.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이스마엘은 표정을 구겼다. 자신이라고 알겠는가? 샌드 골렘을 움직이는 방법을? 그나마 전해지는 문헌에 의하면 주술적인 에너지가 담긴 기계적 장치를 설치해야만 한다고 했다.
허나, 보아하니 그런 장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그저 석상에 불과했다.
“흠. 무슨 방법이 좋을까.”
이스마엘은 고심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때, 이스마엘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골렘은.
영혼이 없다. 그것은 당연했다. 무생명체로 만들어지는 골렘이 어찌 영혼이 있겠는가? 그럼 그런 골렘에 영혼을 부여하면 되지 않겠는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하지만 무언가에 영혼을 부여하는 주술은 거의 ‘금지주술’로 할 정도로 무척 위험했다. 이스마엘조차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대부분의 영혼 관련 주술은 왜곡되거나 잘못된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적어도 자신이 알기에는 대부분이 그랬다.
온전히 전해지고 있는 주술이라 하더라고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는 주술이 있었다.
“사령빙의라면 가능할지도…….”
“사령빙의?”
갑작스러운 단어에 이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령빙의!
수많은 악령들을 한데로 모아, 대상에 그 악령들을 한꺼번에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수많은 악령이 하나의 ‘사념체’로 합쳐진다는 사실.
그럼 악령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것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이스마엘의 설명을 들은 이욱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방법은 간단해. 수많은 악령을 한데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하지. 일단 이런 샌드 골렘을 움직여야 한다면……. 101마리의 악령이 필요해.”
“…….”
101마리의 악령.
결코 만만치 않은 숫자였다. 하지만 이욱은 겁먹지도, 위축되지도 않았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럼 하면 됐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다만, 그 악령을 어찌 모으냐는 것이다.
“그 악령들을 어떻게 모을 수 있지?”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죽여야지. 그것이 오크든, 전갈이든 일단 죽이면 돼. 그리고 죽인 것들의 사체 일부를 씹어 삼키고 주문을 외우면 돼. 영혼을 불러내는, 영혼을 사체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주문. 다만 여기에 마나적인 소모가 크지만.”
“…….”
이스마엘은 슬쩍 이욱을 바라보았다.
이욱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알려 달라.
그것이었다. 이욱이 원하는 것은. 그 모습에 이스마엘은 살짝 미소 지었다. 분명 이 작업은 힘든 일이었다. 얼마큼의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고. 그럼에도 이욱은 하고자 원하고 있었다.
이스마엘, 자신도 솔직히 원했다.
400년 만에 첫 등장하리라는 샌드 골렘!
어쩌면 그것은 곧 전설의 재림과 일맥상통할지도 몰랐다. 모래술사의 재림과 동시에 샌드 골렘의 부활! 멋지지 않은가?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며 세차게 뛰어올랐다.
“좋아. 일단 그 영혼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내가 빨리 갖다 주도록 하겠네. 일단 이 주문을 외우게나.”
이스마엘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이욱은 모든 감각을 활짝 개방했다. 지금은, 이스마엘의 말에 집중할 때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욱은 이스마엘이 알려 준 주문을 모조리 외웠다. 더욱이 그 주문에 마나를 담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담는 악령의 본래 힘이 강할수록 저 샌드 골렘에 담겨지는 힘도 강해지지. 하지만, 그만큼 자네가 다루기에 힘들어지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돼.”

* * *

그때를 떠올리며 이욱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사막의 괴수란 괴수의 악령들은 모조리 이 해골에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막오크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아무래도 사막오크의 악령이, 오크의 형상을 띠고 있는 샌드 골렘을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욱은 결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 만들어진다.”
오늘 기필코 만들어 내리라.
이욱은 굳게 다짐했다. 오늘 어떻게든 만들어 내리라고. 수많은 악령이 하나의 사념체로 합쳐져 샌드 골렘이 싸움터를 누빌 수 있도록 만들겠노라고.

“하! 멀리서부터 그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는군!”
이스마엘은 다가오는 이욱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강력한 악령의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 걸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음산한 죽음의 향기!
그 향기는 점점 짙어졌다.
“왔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달에 101마리의 악령을 채운 건 대단한 거지.”
이스마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욱의 손에 들려져 있던 해골을 받아 들였다.
받는 순간.
“흡!”
이스마엘은 질식할 뻔했다. 순간 아찔한 향기가 코를 통해 폐부 깊숙이 찔렀다. 그러자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동시에 호흡이 일순간 막혀 버렸다.
그 정도였다.
악령이 담고 있는 사이한 기운은!
간신히 위험을 넘긴 이스마엘은 급히 호흡을 몰아쉬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대로 당했으리라.
“지독한 사기군.”
이스마엘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지독한 이 사기. 이 모든 기운이 하나의 사념체로 합쳐지리라. 그리고 그 사념체는 샌드 골렘을 움직일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자, 준비하게나.”
“후우.”
이욱은 긴장이 되는지 말을 잃었다. 아직도 배우는 입장에 있기에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닌지라, 원래 말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말이 없어졌다.
긴장.
그런 긴장이 온몸을 감쌌다. 전신이 그런 긴장 속에 감춰져, 터질 것처럼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욱은 호흡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이스마엘의 비밀 수련장이었다.
혹여나 하자르가 이욱을 감시할지도 모른다는 판단하에, 지하에 따로 만들어 놓은 비밀 수련장. 비록 지하라지만 이곳에도 모래가 풍족했다. 마치 모래사막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모래들 위에는 핏빛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악마를 상징하는 무늬들이었다. 수많은 무늬들이 연이어 겹쳐져 있었다. 그리고 무늬들의 중심에는, 이욱이 만들어 놓은 샌드 골렘이 있었다.
이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샌드 골렘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살아 움직일 샌드 골렘.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놈을 제압해야만 한다.”
“…….”
이스마엘의 말에 이욱은 살짝 경직됐다.
자신이 만들었기에 그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저놈이 살아서 날뛴다면 어떤 이도 쉽사리 막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악령이 하나의 사념체가 되어 샌드 골렘을 지배하면 우선 너에게 달려들 것이다. 만반의 대비를 하고, 내가 알려 준 방법. 잊지 말라.”
“…….”
이욱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대답했다. 그리고 샌드 골렘을 바라보았다. 가슴팍에 그려진 용의 문양. 모래술사의 신기인 용의 펜던트의 모양과 똑 닮은 모양이었다.
비록 상징적인 그림이었으나.
이미 충분히 주술적인 장치로서 그려진 문양이었다. 저것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욱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불현듯 골렘의 양팔에 달려 있는 기다란 손톱들이 이욱의 눈에 들어왔다.
“하……하.”
이욱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저 손톱들은 자신이 썼던 무기였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무기.
그것이 지금 골렘의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카푸르처럼 워해머나 배틀엑스 같은 무기를 쥐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숙달이 되지 않으면 그냥 무작정 흐르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손톱을 달았다.
카푸르를 본떠 만들었기에 전투 능력만큼은 최고이리라! 그러면 순식간에 자신의 무기를 이용해 적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주술이 발동되면.
저 손톱은 자신을 꿰뚫기 위해 날아오리라.
그럼 막아야 했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자신을 죽인다라. 웃기지 않는가.
“죽긴 누가 죽어.”
이욱은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죽지 않는다.
1년 동안, 숱한 생존 게임에서 끝내 승리해 살아남아 왔다. 고작 여기서 자신이 만든 부산물에 불과한 샌드 골렘에게 당하겠는가.
그때, 이스마엘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시작한다!”